<김원동칼럼> 어느 후배의 유언을 생각하며

<김원동칼럼> 어느 후배의 유언을 생각하며

암에 걸린 후배가 투병생활 중에 병상을 방문한 필자에게 했던 뼈아픈 소리다.
그는 “한글판 신문들 정말 문제 많습니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노모를 위시해 한글을 해독하는 두 딸과 함께 사는 가정에서 이건 정말 난감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라는 얘기였다.
거기에 나오는 기사와 일부 광고내용이 한 지붕 3세대 간에 함께 보기에는 너무나 낮 뜨겁고 민망한 내용들이라는 것이다. 그 말을 들었던 필자는 작년 어느 날 젊은이들이 시작하는 매체에 편집책임을 맡아 발을 디디면서 했던 첫 약속이 있었다. “애물단지가 아닌 매체로 품위를 유지하겠다”며 편집에 관여 말라는 약속을 하고 들어갔다. 최근 그 매체의 어려운 여건으로 자원사직 할 때까지 나는 편집을 마감하는 날에는 전과는 달리 후배의 유언을 명심하고 유난히 한 번 더 꼼꼼히 살피며 챙겼다.
그래서 발행인으로 재직한 몇 달동안 내가 관여한 그 매체는 한 지붕 몇 세대건 함께 살면서 돌아가며 읽어도 얼굴 화끈거릴 기사가 없는 글들로 채우며 그리고 광고도 독자정서에 반하는 내용은 못 싣겠다고 버티면서 영업사원들과 불화를 겪기도 했다. 교회 친교실에도 마음놓고 갖다 놓을 수 있는 거부반응 없는 수준까지 끌어 올려놓고 나왔다. 그런데…..
최근 바로 그 작고한 후배가 우려했던 유사한 사안들이 방송 신문 할 것 없이 기사화 되어 튀어나온다. 숨 돌릴 겨를도 없이 연이어 터져 나오고 있는 소위 “섹스 스캔들”로 도무지 끝이 없다. 민주노총 성추행사건, 청와대 비서 성 접대사건, 성 상납 강요에 대한 고통이 한 신인여배우를 죽음으로 몰고 간 소위 연예계 성 상납사건이 그것이다.
3월 31일에는 ‘언론 주권 국민 참여이다’ 라는 대형현수막을 들고 C일보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여는 사진이 온라인 선상에 떴다. 시위자들은 그 신문의 장자연 사망사건 왜곡축소 보도를 규탄하면서 그 신문사 사주가 성 상납 의혹 대상인물로 경찰 수사선상에 올랐기에 그곳에서 데모를 한단다. 한국최고의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신문, 그 신문사의 오너정도면 그 누구보다 단연 최고의 도덕성이 요구되는 위치다. 이쯤 되면 가족이 함께 모국 TV 화면 앞에 앉을 수가 없도록 리빙룸의 소파는 가시방석이고 그 내용이 실린 신문은 후배의 표현대로 단연 애물단지다.
빙상의 여왕으로 등극하던 찬란한 김연아를 보면서 한 가족 모두가 열광하던 순간! 금메달에 입술을 대면서 연신 뜨거운 눈물을 흘리던 연아와 함께 감격에 목메어 함께 울먹거리던 그 순간! 그런 방송 그런 기사가 실린 신문만 계속 우리의 리빙룸을 차고 넘쳤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 땅에 태어난게 부끄러울 정도로 너절한 뉴스가 홍수를 이루는 와중에서도 그 진했던 감동과 행복의 순간이 아직 이어지고 있기에 해보는 말이다.
자식들 앞에서 부모님들 앞에서 부끄러움 없이 버젓이 내놓을 그런 떳떳한 신문이 아쉽다. 타향에 둥지를 튼 우리이기에 더욱 간절히 느껴지는 것일까, 그런 선정적이고 부적절한 뉴스를 밑도 끝도 없이 늘어놓아야 신문가판이 잘 되고 방송시청률이 올라가는 그곳의 원시문화나 똥/덩/어/리 정서는 무시해도 좋다. 그것도 뉴스이기에 이곳에서 안 싫을 수 없다면 그런 건 가볍게 전하고 후속기사 같은 건 생략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보다는 더 절실하고 이민생활에 유익한 실질적으로 영양가 높은 알맹이 정보들로 지면을 채워주기를 독자들도 바라고 있을 것이다. 후배가 떠난지 3주기가 되는 날 아침 그의 유언을 생각하며 써본 글이다. kwd70@hotmail.com<682/2009-04-08>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