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동칼럼> 야구열풍과 호사다마(好事多魔)

<김원동칼럼> 야구열풍과 호사다마(好事多魔)

제2회 월드베이스볼 클래식에서 태극마크를 단 전사들의 활약상은 눈부시다.
특히 4강 진출전에서 숙적 일본을 격파한 짜릿한 순간을 맛 본 이는 밤잠을 설쳤을 것이다. 일본야구의 안타제조기라는 별명으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까부는 이치로가 코가 석자나 빠진 채 야구장을 퇴장하는 뒷모습에서 희열을 느낀 한국인 또한 그 얼마나 많았을까.
오래전이다 일본으로 진출했던 투수 선동열이 던진 볼에 스트라이크 아웃되던 이치로라는 그 악발의 입에서는 나오지 못할 말이 튀어나왔다. “지독한 마늘냄새가 묻어 나오는 공이라 칠 수가 없었다”는 그의 독설에 점잖은 선동열이 귀국을 고려해봤다는 말도 있었다.
이름이 안중근과 같아서 승리투수 봉중근을 “봉중근 열사”라는 표현과 함께 그의 위력에 굴복해 한 점의 안타도 못 날린 이치로를 두고 일본 언론은 “이치로는 전범이다”라는 표현의 제목을 쓴 기사도 나왔다. 이치로나 그 기사를 쓴 기자나 다 전범의 후예들인데 누가 누구를 전범 운운할 처지도 못 돼지만 이치로에 대한 전범이라는 용어와 안중근을 본 딴 봉중근열사라는 제목의 패러디를 같은 날 같은 시각에 본 감회는 남다른 그 무엇으로 와 닿았다. 여기에도 어김없이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진리가 파고드는 틈새가 벌어졌다. 그래서 잠시나마 야구광으로서의 뜨거웠던 열기는 차갑게 식어갔다. 직업이 기자라 그런가?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표어가 적힌 현수막을 든 채 대-한-민-국을 외치며 샌디아고의 스타디움을 뒤흔들던 응원단의 함성이 끝나고 이어지는 한심한 뉴스 한토막이 문제였다.
이번 WBC대회에 출전하여 4강을 달성하므로 세계무대에 한국야구의 위상을 드높인 선수들에게 병역면제 혜택을 줘야한다는 한국프로야구협회 사무총장의 빗나간 발언 때문이다.
물론 스포츠를 통한 국위선양 및 국가브랜드 향상과 민족적 자존심을 고취하기에 충분했던 그들 태극전사들에게 국가나 국민이 뭣을 해준들 아깝기야 하겠는가. 그러나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에서 그 어떤 공로든 병역문제를 흥정의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다.
그리고 축구나 야구 등 인기품종의 스포츠에만 특혜를 베풀려는지 그것도 문제다. 지구상에서 야구하는 나라가 몇 나라나 되는가, 그 보다는 전 세계인이 참여하는 동계올림픽에서 종합전적 세계7위를 달성한 쇼트트랙 같은 건 아예 메달을 몇 개씩 걸고 와도 병역문제와 흥정하는 경우는 없었다. 이건 병역면제혜택 남발을 두고 벌어지는 형평성 훼손행위다. 그리고 병역문제까지 대중영합주의로 몰고 가서는 안 되기에 하는 말이다.
병무청에서는 지난 2004년부터 병역이행 명문가(家)찾기 운동을 벌리고 있다. 할아버지 아버지 자식 3대가 모두 병역의무를 완수한 가정들을 찾아 시상하고 있는 이 사업은 병역의무를 성실히 한 사람이 존경받고 긍지와 보람을 가질 수 있는 사회분위기를 조성하자는 취지에서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미국이야말로 병역의무수행에 관한한 적잖은 명문가(家)들이 즐비하다. 짧은 역사지만, 그리고 한국과는 정반대로 지도층 인사들부터 병역의무에 관한한 그들은 너무나 떳떳하다. 그것이 오늘날 미국을 이끄는 힘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논산 훈련소 연병장 그 뜨거운 불볕더위도 잊고 입대하는 아들을 부여잡고 우는 어머니들의 한결같은 외침은 한마디였다. 돈 없고 빽 없는 부모들을 만난 죄로 너는 군대로 가고 있다는 그 가슴 아픈 흐느낌 말이다. 유전면제(有錢免除) 무전입대(無錢入隊)라는 유행어가 돌던 그 시대에 있었던 일화 중에 하나다. kwd70@hotmail.com <681/2009-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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