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동칼럼> 빗나간 모성애(母性愛)

<김원동칼럼> 빗나간 모성애(母性愛)

“광우병칼럼 고만 쓰고 시위장에 끌려나온 <알라들 이야기>나 쓰라”며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로 전화를 건 어느 친구는 긴 한숨을 쉬며 유모차(乳母車) 부대를 들먹거린다.
진압경찰의 물대포 앞에서 쏠테면 쏘라며 젖먹이를 볼모로 잡고 서 있는 그 빗나간 모성애 를 두고 하는 말이다.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인간방패로 끌려나온 그 젖먹이들이 정면에서 물대포를 맞았을 때는 즉석에서 맞이할 최후밖에는 없다. 물대포의 수압(水壓)은 어린 목숨을 순간적으로 앗아 갈만한 가히 살인적 흉기에 다름없다. 적어도 그 젖먹이들에겐….
그 귀중한 어린생명을 어디 광우병 촛불제단(祭壇)에 바칠만한 일인가! 인간이 아닌 동물들에게도 “동물의 생명과 그 안전을 도모하도록 존중함으로써 국민정신함양에 이바지할 목적”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그런데 하물며 위험천만한 시위현장에 젖병을 물고 있는 유아(乳兒)들을 데리고 나온 엄마들을 보고 과연 저 사람들의 친자식일까 하는 의문과 함께 친자식이 맞다면 절대로 그럴 수가 없다는 자식 가진 사람들의 분통 터뜨리는 말이다.
선진국이라면 어떤 대응이 있었을까? 우선 위험 앞에 노출된 아이부터 급선무로 빼앗았을 것이다. 그리고 데리고 나온 부모에 대해 법에 의한 강력한 규제가 따랐을 것이고, 일단은 자식을 보호할 의무를 유기(遺棄)했다는데서 잠정적이나마 공권력에 의한 부모의 친권(親權)이 박탈된다. 이어 어린이는 아동보호국 시설이나 정부가 지원하는 양부모 밑으로 들어가 보호받으며 동시에 부모의 접근도 법에 의해 금지된다.
“보호자로써 아동의 건강과 복지를 해(害)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정서적 가혹행위 및 아동보호자에 의한 유기”등 아동학대금지법에 의해 보호자의 기능은 일시적으로 정지될 수밖에 없는 법 집행상의 강력한 구속력 때문이다.
그런데 아직 한국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가족 간의 심각한 수준의 폭행사건이나 어린이 학대문제의 신고 앞에서도 어디까지나 가정문제라며 프라이버시 운운하며 미그적 거리는 한국 경찰의 한심한 대응을 어느 TV화면에서 본적이 있다.
이참에 한국도 이제 시위현장에 애기들을 데리고 나오는 행위를 금지시키는 강력한 법조항이라도 신설해야 한다. 그러나 법을 만들 국회의원들이 국회가 아닌 시위현장에 끼어들어 촛불이나 들고 서성거리는 상황이고 보면 입법자체가 어려운 형국이긴 하다.
그리고 차제(此際)에 한마디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가해자가 죽었기에 법적 구속력도 없지만 생활고를 비관하며 목숨을 끊을 바에야 제 혼자나 죽지 어린 자식들까지 데리고 동반 자살하는 경우도 그렇다. 자식이 자신들의 소유물은 결코 아니다. 어린자식들을 데모현장에 인간방패로 삼는 빗나간 모성애나 혼자 죽기 싫어서 죄 없는 어린생명들을 죽음으로 함께 몰고 가는 물귀신 작전의 동반자살 주범이나 그들은 생명의 고귀한 가치를 모르는 인명경시(人命輕視)라는 아주 더러운 공통점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게 어디 우리만이 걱정하는 “알라들의 비극”인가. 이미 CNN등의 전파를 타고 지구촌이 다 보았다. 젖먹이들에 대한 비인간적인 학대의 그 야만성을 말이다.
시위야 어느 나라인들 없겠는가, 과격시위가 아니고 강경진압이 아니라면 시위자체를 나무랄 일은 전혀 없다. 그러나 빗나간 모성애 분야에서 단연 기네스북을 장식할 “젖먹이들의 인간방패”, 한국이 아니고 또 어디 있겠는가, 이 무슨 망신살인가! kwd70@hotmail.com <2008-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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