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칼럼>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진짜 얼굴은? (4/끝)

<김현철칼럼>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진짜 얼굴은? (4/끝)

임정(임시정부) 요인들은 드디어 이승만의 대통령직 사퇴를 요구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평생을 돈벌이와 권력 잡기에 혼신을 다해 온 이승만이 이런 요구를 받아들이겠는가?
결국 ‘저런 썩은 대가리와는 일할 수 없다’는 주장 등으로 독립운동은 파국을 향한다. 이동휘 총리가 떠나고 김규식, 안창호 마저 떠났다. 이렇게 되자 이승만은 재빨리 미국으로 돌아가 버린다. 임정 붕괴 전략이 성공한 것이다.
결국 1924년, 임정은 개혁 욕구로 뭉친 여운형, 윤기섭, 최창식 등이 임정 실권을 장악, 이승만의 대권을 정지시키는데 성공한다. 그러자 사이비 애국자 이승만은 즉시 하와이 갱단 깡패의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임정에 가던 ‘독립 자금 완전 차단’이었다.
이제 임정은 자금이 바닥나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요인들은, 잠은 청사에서 자야했고 식사는 동포들의 집을 드나들며 빌어먹는 신세가 된 것이다.
1926년 12월, 조국이 독립만 된다면 정부 청사의 문지기도 마다하지 않겠다던 열혈민족주의자요, 맨주먹으로 왜놈 첩자를 때려잡았던 김구가 임정 주석이 되면서 임정은 허무맹랑하고 비현실적인 말만 뇌까리던 이승만 때와는 확 달라진다.
‘미약하더라도 우리가 직접 일본과 싸워야만, 1921년 워싱턴에서 열린 군축회의에서 일본의 한국 지배를 동의했던 미국과 영국 이외의 일본의 적대국들이 우리를 주목한다’며 상해주둔일본군사령부, 국내의 조선총독부, 만주의 관동청, 도쿄의 일본천황을 타격 목표로 정하고 이를 결행하기 위해 ‘한국애국단’을 창설한다.
드디어 1932년1월18일, 이봉창은 일본 천황에게 폭탄을 던졌으나 실패한다. 이어 거사 9일전 김구 주석으로부터 거사실행 명령을 받은 윤봉길은 1932년 4월 29일 샹하이 훙커우(虹口)공원에서 열리는 일본군 전승기념식 석상 4미터 앞에까지 나아가 폭탄을 던져 샹하이 주둔 일군사령관 시라카와 대장 등 10 여명을 죽이거나 부상을 입히는 전과를 올린다.
윤봉길의사는 거사 직전 “이번 거사로 조국이 독립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나는 한국인의 독립 의지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목숨을 바친다”고 비장한 각오를 밝힌바 있다.
하와이의 민족반역자 이승만은 이번에도 주제넘게 김구 주석에게 “어리석은 짓 그만 하쇼, 독립운동에 전혀 도움이 안 되요”하며 왜놈들이나 할 소리를 내뱉는다.
한편 장제셰(장개석) 당시 중국 총통은 윤봉길 의사의 거사를 본 후 “30만 중국군이 하지 못한 일을 한국인 한 사람이 해냈다”며 감격, 막대한 한국독립군 지원금은 물론 임정의 조국 독립운동을 지원하기 시작함으로써 조국의 독립운동에 새 활로를 개척하는 계기를 만든다. 이승만의 자세와 중국인 장제셰의 자세를 비교해 보자. 바로 이것이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진짜 얼굴이었다.
1941년 8월8일 일본군 하와이 침공으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다. 일본과 미국이 친할 때는 일본인이나 할 수 있는 짓을 해 온 이승만이 이제 정반대로 처신할 때가 온 것이다. 그동안 일본 쪽에서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어 조선의 발전에 기여한다’며 ‘외교천국, 투쟁지옥’을 강조해 온 이승만은 언제 내가 친일을 했냐는 듯 어느새 미국 편이 되어 미국 내 동포들에게 “분투하라! 싸워라! 우리가 피를 흘려야 한다!”며 이제 ‘투쟁천국’으로 화려하게 변신한다. 사기꾼의 처세법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이승만은 이어 미국의 유력한 인사들과 계속 접촉, 자신이 전 후 조국의 최고 권력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움직인다.
한편 임정은 이때 연합국과 대일 전선에서 같이 싸우기 위해 전쟁 참가 계획을 세우고 1943년 광복군을 영국군에 파견한데 이어 미 전략첩보국(OSS)의 요청에 따라 일본에는 첩보원을 침투시켜 대일 전투에 간접 참여한다.
처음에 OSS는 싸전트 소령(Major Sargent)을 이승만에게 보내 이승만의 협조를 받을 생각이었으나 “이승만이 OSS를 자신의 대외 선전용으로 이용한다”는 정보를 입수, 그와의 관계를 끊고 이범석 장군을 찾아가 광복군의 대일전선 간접 참여를 성공시킨 것이다.
1945년 3월 10일, 도쿄 대공습에 이어 1945년 5월, OSS는 임정과 독립군 활용에 정식으로 합의, ‘국내 진공작전’인 이글플로젝트(Eagle Project) 성공을 위해 노능서, 김준엽, 장준하 등 독립군은 혹독한 군사훈련에 들어간다. 임정의 독립군이 일본군과 한반도에서 전투를 한 다음 종전이 온다면 전 후 임정의 발언권은 강화될 것이었다.
임정 요인 및 독립군의 염원은 프랑스나 영국 같은 민주국가 건설이었다. 개인의 자유 보호, 전기,철도,의료 등 공공분야의 국가 관리를 꿈꾸었다. 임정요인들은 자신들을 ‘민주국가 건설을 위한 혁명가들’로 믿었다. 자유로운 사회, 평등한 사회, 착취가 없는 사회, 억압이 없는 사회, 즉 ‘참다운 민주공화국’이었다. (이상은 역사학자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의 도움말)
이렇게 임정의 활동이 활발해지자 초조해진 이승만은 당시 ‘태평양의 황제’라 불리던 맥아더 연합군사령관을 찾아간다. 그 후 맥아더 장군이 철저한 반공주의자임을 알아 낸 이승만은 ‘자신 역시 철저한 반공주의자’라며 맥아더 장군의 환심을 사기 위해 연애편지를 수 없이 써 보낸다.
“친애하는 맥아더 장군님, … 저희는 대일 전쟁에 꼭 참여하고 싶었어요. 그러나 나쁜 소련의 반대로 좌절됐어요. ….”
물론 소련은 독립군의 대일전쟁 참여를 반대한 사실이 없었지만 이승만은 능란한 거짓말로 맥아더 장군에게 아첨하기 위한 편지를 써 보낸 것이다.
여러 차례의 편지를 받고 맥아더 장군은 드디어 이승만에게 답장을 보낸다.
“… 이박사의 숭고한 정신에 감명을 받았소….””이런 회신을 고대하던 이승만은 꿈을 꾸는 느낌이었으리라.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원자탄 때문에 예상보다 일찍 항복한다. 이는 독립군과 임정에는 악재로 작용했다. 독립군이 국내에서의 대일전에 제대로 참전을 하기 직전이었으니 한국인들이 당당하게 권리를 주장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제 소련과 미국의 앞잡이가 되어 대리전쟁을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이승만은 계속 맥아더 장군에게 연애편지를 썼다.
“… 미국 단독으로 한국을 점령해 주세요. 저는 소련이 싫거든요. …”
역시 자신이 맥아더 장군과 같은 반공주의자 임을 강조해 환심을 사야 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때가 왔음을 안 이승만은 1945년 10월13일 ‘태평양의 황제’맥아더 장군을 만나기 위해 도쿄로 날아간다. 이 날이야 말로 자신이 일본인이나 된 듯 미국 정부에 진짜 애국자 박용만 장군을 고발해서 미국에서 추방하고 결국에는 독립군 양성을 중단시켜버린 민족반역자요, 하와이 민족학교 부동산을 개인 돈벌이에 황령착복한 사기 협잡꾼이오, 임정의 독립운동을 철저히 방해하고 자신은 국적이 일본임을 자필로 기록하며 반민족행위로 돈벌이에만 온 힘을 다했던 친일파 장사꾼이오, 애국동포들이 고생고생하며 사탕수수밭에서 푼푼이 모아 준 독립자금을 백인여성, 20대 초반의 딸과 깥은 한국 유학생 등과의 유흥에 탕진했던 플레이보이요, 자기 편할 대로 그 때 그 때 남을 속인 거짓말쟁이 이승만이 대한민국 초대대통령이 되는 계기를 만들어 준 우리 민족의 슬픈 날이었다. (끝) kajck@naver.com <956/2014-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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