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칼럼> 자기 자식의 비리 보도 못하면 기자 아닌 위선자

<김현철칼럼> 자기 자식의 비리 보도 못하면 기자 아닌 위선자

공사 분별력이 언론인에겐 가장 중요

지난 40년간의 기자 생활을 돌이켜보면 나는 가시밭길이라는 언론인의 길을 걸으면서 개인적인 인기나 욕심, 심지어는 가족의 명예까지도 포기해 가며 공과 사를 분명히 하고 오직 있는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는 기자의 직분에만 충실하려고 노력해 왔다.
나는 50년 전인 1964년 1월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 박정희) 출입을 필두로, 잔슨 미대통령 방한 당시 전방 시찰 수행, 월남전 종군, 국방부, 내무부(치안국=현 경찰청),교통부(철도청) 등 수 많은 출입처를 드나들면서 한 때는 같은 출입처의 동료기자들로부터 기자 세계의 영예인 ‘특종왕’이라는 별명을 듣기도 했다.
특히 기자 세계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온갖 유혹에도 단 한번 넘어가 본적이 없는 깨끗하고 강직한 기자 생활을 영위해 왔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얼마 전까지도 미국 내 한인 언론사에는 가끔 기사 가치 News Value를 몰라서 자신과 가까이 지내는 이웃집 아이 돌잔치를 사회면 머리기사로 다룬다든가, 자신은 물론 자기 부인의 큰 사진까지 올려 전혀 기사 가치가 없는 내용을 4~5단 기사로 보도하는 행태, 더구나 미사여구로 없는 사실을 조작해서 선배 기자를 모함하는 따위의 마을 회보만도 못한 수준의 인쇄물을 만들어 ‘신문’이라고 배포함으로써 다른 언론 선배들의 얼굴을 뜨겁게 하는 용감무쌍한 기자(?)들이 있었다.

유능한 기자는 아무에게도 환영 못 받는 법

기자 세계에는 “가장 유능한 기자는 아무에게도 환영받지 못한다”는 말이 전설처럼 흘러오고 있다. 가장 많은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가장 유능한 기자라는 뜻이다. 물론 내가 유능한 기자라는 말은 아니다. 나는 그러한 유능한 기자가 되어 보려고 꾸준히 노력해 왔을 뿐이다.
참다운 기자 생활의 결과가 항상 그렇듯 나는 우리 동포 사회에서 적지 않은 적을 만들어 왔다. 교회 성직자들도, 공인들도, 가까웠던 사람들도 내가 맡은 사회적 사명을 실천하기 위해 그분들의 불의와 부정을 예외 없이 고발 할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나 역시 인간이기에 언론에 고발당한 당사자, 가족, 친척, 친구 등이 나에게 보내던 차가운 눈초리를 의식했다. 이것이 바로 나의 인간적인 고뇌였다. “왜 하필이면 내 자신이 비정하게 그들의 그릇된 행동을 사회 양심에 고발할 수밖에 없는 기자 신분을 택했는가?”하는 괴로움 말이다.

자기 자식의 비리를 보도 못하면 기자 아닌 위선자일 뿐

그러나 이 사회에서 누군가가 수행해야 할 기자 신분을 자신이 스스로 천직으로 택했다면 기자의 친자식이 사기를 쳐 사회에 물의를 일으켰을 경우마저 다른 사람의 경우와 똑같은 비중으로 이를 분명히 기사화해야 한다는 신념, 만일 그 선을 넘을 용기가 없다면 그날부터 기자직을 그만 두어야 한다는 각오를 지니고 기자직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끝내 짊어지고 가야할 기자직을 천직으로 삼은 자들의 십자가인 것이다. 못된 자기 자식은 감싸면서 남은 비판하는 기자야말로 위선자 중의 위선자에 다름 아니다.
나는 불의를 고발당한 사람들 또는 그 측근들이 나를 냉대할 때마다 자신이 언론의 정도를 제대로 걷고 있음을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적당히 욕을 얻어먹지 않고, 기자생활을 자신의 돈벌이 또는 명예욕을 달성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후배 기자가 혹 있다면 나는 선배답게 “이 사회에 죄를 그만 짓고 그 정력으로 차라리 장사나 하라”고 권하고 싶다.
또 기자 생활을 출세의 발판으로 삼겠다면 힘있는 자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기사를 쓰게 될 테니 이는 순수한 기자를 가장한 사이비 기자 이상 다름이 아닐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기자직을 올바로 수행하면서 욕을 먹지 않는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이는 비단 언론인 뿐 아니라 법관, 검사, 경찰관 등도 꼭 같이 적용되는 철칙이다. 다시 말하면 기사로 인해 욕을 먹지 않는 기자는 결코 올바른 언론인의 길을 가고 있지 않다는 반증인 것이다.

도덕성과 공신력 아쉬운 일부 기자들 언론 선후배 관계부터 배워야

미국 내 후배 기자들 중 불행히 한국의 언론계에서 기자 생활을 할 기회가 없었던 일부 기자들은 언론계의 선후배 관계가 군대의 선후배 관계 못지 않게 엄격하다는 상식을 갖추질 못하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군사독재 시절, 필라델피아에 사는 유명한 언론계 대선배가 인권유린을 밥 먹듯 하던 모국 군사독재 정권에 아부하는 글을 계속 신문지상에 발표하는 것을 보고도 당시 재미(국내 기자출신들) 후배 기자 십여 명은 서로 장거리 전화로 ‘생선 가게 망신 꼴뚜기가 시킨다’며 뒤에서 흉을 보았을망정 어느 한사람 언감생심(焉敢生心= 어찌 감히 그런 마음을 품을 수 있겠냐는 뜻), 지상에 반론을 제기하거나 가십화 할 엄두를 못 냈었다. 그것이 바로 한국 언론계의 전통이자 미덕인 것이다.
나는 정의로운 사회발전을 위해서는 선배의 잘 못을 보도하지 못하는 이러한 풍조가 반드시 옳은 것이라고 보지는 않지만 이러한 풍조는 선배의 실수를 덮어 주자는 게 아니라 언론계 선후배 관계에서 오는 끈끈한 고리에 상처를 줄까 두려워하는 매우 신중한 자세에서 오는 전통임을 예로 든 것이다.
더더구나 확실한 근거 하나 대지 못하면서 선배 기자가 쓴 사실 기사를 비난하는 태도는 기자로서의 자격이 없는 존재로서 언론계에서 매장되기 십상인 경거망동에 속한다. 이는 동포사회를 위해 정상적인 언론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 과거에 불의를 저질러 언론에 폭로됨으로써 그 기사에 감정을 품은 몇몇 사람들에 매수당해 지금껏 모든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정론을 펴오고 있는 선배 기자를 의도적으로 흠집을 내자는 속셈을 드러내는 것 이상 다름 아니다.
의식 수준 높은 독자들이 먼저 이를 간파하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왕 기자직을 택했다면 누가 봐도 흉잡히지 않을 보도는 물론, 좀 더 겸손하고 숙연한 자세로 기자 생활을 해 나갔으면 한다.
작가 홈스Oliver Wendell Holmes, Sr.(1809~1894)는 “언론자유의 가장 엄정한 보호는 극장에서 거짓말로 불이 났다고 고함을 쳐 공포심을 불러일으킨 인간을 보호하지 않는 것이다”고 갈파했다. 이러한 거짓말로 고함치는 언론이 다시는 우리 동포사회에 혼란을 초래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kajhck@naver.com <900/201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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