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렬칼럼> 찔레꽃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작년이맘때 6월 중순 어느 날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공원산책로를 한가로이 거닐다보니 길가 풀숲에 무성하게 자라난 찔레꽃의 향기가 코끝을 자극하여 곁으로 다가가 하얗게 피어난 꽃잎에 코를 문지르며 그윽한 찔레꽃의 향기에 흠뻑 취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하얀 꽃을 바라보며 모든 사람들이 저렇게 때묻지 않고 하얀 마음으로 아름다운 인간의 향기를 풍기며 오순도순 재미있게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젖어본다. 그리고 나의 어린시절 하얀 마음으로 잠시 추억 속을 헤매며 찔레꽃의 추억에 잠겨본다.
나의 어린 시절, 나의 고향마을 그곳에는 지천으로 찔레가 피고 자란다. 한여름의 큰 장마가 오기 전 미리 오는 장대비에 찔레는 하루에 한뼘도 넘게 새순을 키워낸다.
굵고 통통하게 자라 올라온 찔레의 새순을 밑둥까지 꺾어 이파리와 껍질을 벗기고 연한속살을 한입 베어 문 순간, 상큼한 찔레 향과 달콤하고 풋풋한 가지의 즙이 입안에 가득히 고이고……. 눈깔사탕하나 살 가게도 없는 우리 동네에선 그것이 최고의 간식이었다. 초록이 투명함을 동반하고 무성해질 즈음 찔레는 한꺼번에 피지 않고 하나씩 천천히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그러다 합창을 하듯이 우수수 약속이라도 한 듯 한꺼번에 쏟아버리듯이 왕창 피어난다. 세상에서 흰빛 중에 가장 순수한 빛은 찔레와 박꽃의 흰빛이다. 하얀색은 언제나 순수함과 때묻지 않은 것을 표현한다.
하얀색의 찔레꽃은 장미과에 속하는 관목이다. 동북아시아지역이 원산지로 한국과 일본, 중국 등지의 야산이나 들에 광범위하게 분포되어있다. 한국에 피어난 찔레꽃나무와 같은 종류는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찔레꽃나무가 이곳 우리가사는 미국에도 공원이나 야산에 지천으로 자생하고 있다. 봄부터 이른 여름까지 작은 흰색 꽃을 피우고 열매는 가을에 붉게 익는다. 줄기나무는 약3~5미터까지 자라며 일반적으로 가시가 있다. 한국에서는 고도가 높지 않은 지역의 양지바른 산기슭이나 골짜기, 냇가 등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예로부터 부인질환에 좋다고 하여 시골의 아낙네들은 봄이면 나물을 뜯으러가서 으레 찔레꽃의 순이나 잎, 또는 줄기를 잘라서 산나물 보따리 속에 함께 담아오기도 했다.
한의학에서는 찔레나무를 석산호라고 부르며 찔레나무열매를 영실, 혹은 색미자라고 부르고 약용으로 귀하게 사용하여왔다고 한다. 찔레나무의 꽃, 뿌리, 새순, 그리고 찔레나무에 기생하는 버섯도 귀한 약재로 사용되어왔다고 한다.
옛날 나의 시골 고향마을에서는 여성분들이 생리통이나 생리불순에 찔레나무열매를 그늘에 말린 후 그것을 물에 넣고 달여서 복용하면 그러한 통증이나 부작용이 쉽게 없어진다고 하여 많이들 애용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변비나 신장염 및 방광염에도 아주 좋은 효능을 보여 남자나 여자나 널리 사용을 해왔다. 그 외 찔레나무 뿌리는 산후에 좋고 관절염에도 좋다고 하여 시골의 어른들은 찔레나무의 열매나 잎, 뿌리 모두를 잘 말려서 간직해두었다가 집안의 상비약으로 사용하는 것을 보았다.
찔레꽃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찔레꽃과 관련된 슬픈 이야기가 있어서 이곳에 소개해 드리겠다. 찔레꽃이야기는 옛날 고려시대로 올라간다. 그때 우리나라는 힘이 약해서 몽골족에 침략을 당해 항복을 하고 일 년에 한 번씩 예쁜 처녀들을 공녀로 바쳐야만했다.
이때 찔레라는 이름을 가진 예쁘고 마음씨 착한 처녀가 있었는데 그녀도 다른 처녀들과 함께 몽고로 끌려가서 그곳에서 살게 되었다. 찔레는 몽골에서 운 좋게 착한 사람을 만나 호화로운 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찔레는 고향과 부모님, 그리고 동생들의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10여년의 세월을 눈물 속에 보내던 어느 날 찔레를 가엾게 여긴 주인이 사람을 고려로 보내 찔레의 가족을 찾아오라고 했으나 찾지 못하고 그냥 돌아왔다. 찔레의 마음은 더 아팠고, 더욱더 가족들과 고향이 그리워 병에 걸리고 말았다.
찔레의 병은 누구도 고칠 수 없는 병이었다. 보다 못한 주인이 찔레에게 고향의 가족을 찾아가도록 허락을 했다. 단 한 달 동안만 있다가 돌아오라는 조건을 붙였다. 찔레는 부푼 꿈과 희망을 안고 고향집을 찾아갔지만 이미 고향집은 다 불타서 없어진 상태이고 찔레는 동생과 부모님의 이름만 애타게 부르며 여기저기 산속을 헤매었지만 가족을 만날 수가 없었다. 한 달의 기한이 다 가도록 찾지 못하고 몽골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 슬픔에 잠긴 찔레는 몽골로 다시 가서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서 고향집근처에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이듬해 봄이 되니 이전에 보지 못했던 꽃들이 찔레가 부모와 동생을 찾아 헤매던 곳곳마다 찔레꽃이 피어났다.
찔레꽃이 들판 여기저기 피어나지 않는 곳이 없는 이유는 그렇게 찔레가 동생과 부모를 찾아다녔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찔레의 가시는 무엇이든 잡으면 놓지를 않으려고 하는데 “우리엄마, 아빠, 우리 동생들을 본적이 있나요?” 하고 애타게 물어오는 찔레의 마음이 가시로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찔레꽃에 관한 이야기나 노래, 그리고 문학작품들은 대개가 보면 어떤 “슬픔”을 이야기하고 있다. 찔레의 꽃말도 “고독”이다. “주의가 깊다”는 꽃말도 있는데 아마도 동생과 부모님을 주의 깊게 찾아다니던 찔레의 아픔을 바탕에 깔고 있는 꽃말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찔레를 볼 때에는 여느 꽃들을 볼 때보다 엄숙해지고 마음이 착 가라앉는 느낌이 든다. 옛날의 어린 시절 찔레에 대한 전설이나 꽃말을 모르면서 나물을 뜯으러 산에 오르는 엄마와 누나를 따라 산에 올라 계곡 물이 흘러내리는 냇가의 찔레꽃 군락에서 새순도 따먹고 새로 나온 줄기를 벗겨 씹으며 달콤한 그 맛에 도취되기도 했다. 엄마와 누나는 그 꽃과 잎을 따다가 쌀가루와 섞어서 떡을 만들어 먹었든 기억이 새롭게 머릿속에 떠오른다.
조금 있으면 찔레가 한여름의 햇빛을 가득 먹고 탐스럽게 퍼져 무성해질 때가 올 것이다. 만약에 들에 산책을 나가신다면 여러분들도 건강에도 좋고 맛도 상큼한 찔레의 새순과 줄기를 따서 먹어 보는 것도 좋으리란 생각이 든다. (내가 이사 와서 사는 이곳 플로리다는 찔레나무가 없어서 유감이지만……)
어릴 때 찔레 순을 따러 나무 밑에 들어갈라 하면 뱀 때문에 항상 겁이 났던 생각도 하면서, 그 시절의 아름다웠던 추억을 생각하며 공원 숲속에 무성하게 펼쳐져 피어난 찔레꽃을 그리면서 옛 시절 찔레꽃에 얽힌 추억들을 더듬어 글로 옮겨보았다.
<myongyul@gmail.com> 885/0702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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