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 기자의 큐바통신 <9>

혁명 전엔 큐바가 미국의 라스베가스였다.

혁명 전엔 큐바가 미국의 라스베가스였다.

김현철 기자의 큐바통신 <9>

작년 한국상품 $5천만 수입
과거엔 큐바가 미국의 라스베가스였다

몇해 전부터 큐바에는 자유시장의 물결이 일면서 큐바의 쟁쟁한 앨리뜨들이 장사꾼으로 바뀌고 있다.
큐바는 관광객 유치에도 온 힘을 쏟고 있다.
이 나라의 허약한 산업구조는 제당산업이 주이면서 상품화된 설탕은 귀하고, 유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휘발유는 귀하다는데서 그 심각성을 엿볼 수 있다.
큐바에서 생산되는 오일은 너무 묽지를 못 하고 걸쭉해서 베네수엘라에 보내 정제시켜 다시 들여오는 어려움이 있단다.

현재의 하바나는 미국에 대항한 죄로 화려했던 옛 모습을 잃었다.
하바나는 명실상부한 캐리비안 최대의 항만도시였다. 스페인의 아메리카대륙 식민지배 중심지이자 무역중계지로서 일찍이 발전한 도시였고 1898년 큐바의 독립으로 수도가 될 때만 해도 아메리카대륙에서 손꼽히는 유서 깊은 도시였다.

까스뜨로 혁명전까지만 해도 미국 부호들의 별장이 줄지어 있었고, 많은 관광객이 모이는 환락도시였다. 그것이 혁명 이후 큐바 사회주의 건설의 중심지가 되면서 생산도시로 바뀌고 만 것이다.

큐바를 찾는 관광객은 한국, 일본, 중국, 캐나다, 독일, 프랑스, 네델란드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미국인들은 큐바 여행이 불법이라 제3국을 경유해서 많이들 온단다.
작년에 이 나라를 다녀 간 관광객은 무려 2백5십여만 명, 관광 달러가 니켈 수출, 외국 거주 큐바인들의 송금과 함께 이 나라 외화 벌이에 큰 몫을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미국의 철저한 경제봉쇄로 가난을 면치 못하고 있는 ‘살사'(Salsa)의 고장 큐바지만 하바나에는 이제 전 세계 164 개국의 대사관, 영사관, 대표부가 나와 있으며 한국은 아직 대표부는 없지만 KOTRA(한국무역관)가 5년 전(2005,9)부터 나와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인 직원은 김정동 관장을 포함해서 2명, 큐바 현지 직원 2명 등 4명으로 작년 한 해 동안 약 5천만 달러 상당의 한국산 승용차, 가전제품, 핸드폰을 큐바로 들여 왔다.

큐바는 그 대신 약 6백만 달러 상당의 커피, 설탕, 담배, 고철류, 백신(예방약) 등을 한국에 수출했다. 중남미에서는 큐바가 생화학, 예방의학, 의료, 보건 등 분야에서는 세계 수준이란다.(계속) 779 / 2011-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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