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6.25 민족상쟁의 가슴아픈 전쟁을 생각하며….

<김명열칼럼> 6.25 민족상쟁의 가슴아픈 전쟁을 생각하며….

지금으로부터 72년전 6월25일, 그날은 북한의 김일성이가 자유대한민국을 불법남침한 날이다. 그때 그 당시 나는 아직 국민학교에 입학도 하지 않은 어린시절이었다. 그러나 그 어린시절, 그때 그 당시에 있었던 일들이나 상황들을 어렴풋이 그리고 어느 것은 아주 또렷하게 지금도 기억속에 남아있다. 세월이 참으로 많이 흘러갔지만, 너무나 엄청나고 잔인했던 그 당시 상황들은 너무나 충격적이고 무서웠었기에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나의 뇌리속에 잠재해 있다.

내가 살고 있던 고향마을은 아군과 적군이 번갈아 가며 점령을 하고 점령을 당했던 피비린내가 떠나지 않았던 전쟁속의 전장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리석고 우둔하기 짝이 없는, 겁 없고 바보같은 주민들이 그곳에서 살고 있었다. 총탄과 포탄이 빗발치듯 쏟아지는 전쟁속의 와중에 우리동네 사람들은 ‘설마하니 순진한 농민들을 그들인들 어찌하겠나? 그리고 피난을 가봐야 어디로 가나?’라는 자포자기 체념속에 그대로 동네에 눌러앉아서, 동네 앞 신작로로 군인들과 탱크, 군 트럭들이 분주히 오갈 때 모두가 동네 뒷산 숲속에 숨어서 숨죽이며 그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후퇴하는 아군과 쳐들어온 적군(인민군)을 맞을 수 밖에 없었다. 불행중 다행이라고나 할까 그러한 전쟁의 와중에도 우리동네 사람들은 누구한사람 다친 사람 없이 고분고분히 북쪽에서 온 인민해방군을 맞이했다. 그들은 우리고향 면소재지에 들이닥쳐서는 제일먼저 지주, 면장이나 지서(지금으로 말하면 경찰서 파출소)등등의 공무원들이나 학교 선생, 지식층들을 강제로 붙잡아다가 반동분자로 몰아부쳐서 인민재판을 공개적으로 실시하여 그 자리에서 잔인하게 처형했다. 그들(빨갱이및 적색분자, 인민군 앞잡이)은 커다란 국민학교 운동장에 동네사람들을 모아놓고 인민재판을 시작했다. 재판의 결말은 이들 모두가 ‘부르조아, 반동분자, 좀 간나새끼들’로 몰려 즉결 처형되었다.

평소 일도 하지 않고 빈둥대며 놀고먹던 건달들이라던가 또는 머슴살이를 하던(지주밑에서 농사일을 하던), 그리고 하급 대우를 받던 부류의 사람들이 빨간 완장을 팔 소매에 붙여 차고 거들먹대며 평소에 마음에 들지 않고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사람들을 콕 집어서 반동으로 몰아 눈을 부라리며 “동무는 모든 인민의 적이오” 라는 프레임을 씌워 인민재판에 세웠다. 그들은 이미 계획대로 정해놓은 각본이나 수순에 의해 죽창(그들은 총알을 아끼려고 총을 쏘지 않고)으로 반동분자들의 배를 찌르고 목을 찔러서 즉석에서 죽여버린다. 죽창에 찔린 면장, 지서장, 면서기, 선생, 눈 밖에 난 사람들은 피가 몸에서 튕겨나오며 비명을 지르고 배에서는 창자가 찢겨져 튀어나오고 목이나 가슴에서는 선혈이 샘처럼 솟구쳐 나왔다.

목불인견(目不忍見)이란 말이 있듯이, 이 말뜻대로 차마 눈을 뜨고서는 볼 수 없는 잔혹한 참상이 눈앞에서 버젓이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 지켜보는 주민들은 비명을 지르고, 울고, 눈을 가리고, 주저앉아 통곡을 하고, 어느 사람은 무서워서 까무라치고 등등 그야말로 지옥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거짓말 같은 사실적 잔혹상이 그 당시 실제로 인민군(북한 공산당)들의 만행으로 점령지에서 무수히 자행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너무나 엄청나고 잔인한 참혹상을 나는 직접 목격하였기에 수십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도 그 당시의 무서웠던 일들을 잊지 못하고 생생히 머리속에 기억이라는 아픈 역사의 한 페이지로 잊혀지지 않고 남겨놓고 있다.

그 당시 우리동네 사람들은 무언중에 모두가 어서 속히 후퇴했던 우리 국군장병들이 다시 북진하여 이들을 섬멸하고 우리동네를 자유대한민국으로 해방시켜줄 것을 학수고대 염원하고 있었다.

이들(공산군)들은 공산주의의 이념과 사상교육을 동네 주민들에게 철저하게 시켰는데, 매일같이 낮에는 어린이들(5세부터 14세까지의 아이들을) 모아놓고 사상 교육을시키고 밤이면 농사일을 마치고 들어온 동네 어른 남녀노소를 불러 모아 사상교육을 시켰다. 그리고 이웃간에는 공산주의사상을 배척하거나 인민군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고발케 하여 불화를 조성하고 주민들간에 불신을 조장했다. 무조건 공산주의 체제에 따르고 복종하며 인민해방을 위해서는 몸을 사리지 말고 충성을 강요했다. 정말로 무섭고 두려운 공포 그 자체의 세상이었다. 그 당시 보고 느꼈던 그들의 잔학상과 비 인간적 행동, 야수같은 만행들을 일일이 다 열거하여 이 좁은 지면에 옮겨 표현할 수는 없다. 다만 나의 어린시절 직접 겪고 보고 느꼈던 소름끼치는 그 시대적 참상들이 아직도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고 남아있어서, 이번 6.25를 맞아 조금이나마 여러분들에게 북한 공산주의가 어떤 세상이며 얼마나 나쁜 인간들인가를 인지시키고 알려드리기 위해 지면을 할애하여 소개하여 드렸다.

6월25일은 1950년 한국에서 남북간에 전쟁이 일어났던 날이다.

북한은 6.25 한국전쟁을 조국해방전쟁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남한은 6.25전쟁이라고 부른다. 북한에서는 지금도 6.25전쟁을 남한과 미국이 일으켰다고 하지만 그것은 샛빨간 거짓말이고, 사실은 북한의 일방적인 침공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전쟁에는 정의의 전쟁과 부정의의 전쟁이 있다고 한다. 민족해방전쟁 반동통치제도를 전복하기 위한 국내 혁명전쟁, 방위전쟁 등은 정의의 전쟁이고 침략전쟁은 부정의의 전쟁이라고 한다.

북한의 정의대로 라면 6.25전쟁은 남한의 반동통치제도를 전복하고 민족을 통일하기 위한 국내혁명전쟁일 것이다. 그러나 그 전쟁은 실패로 끝났다. 전쟁시기 남북한 합쳐서 약 150만명 이상의 사망자와 360만여명의 부상자를 냈고 국토가 완전히 파괴되었다. 전후 10여년동안 주민들은 전쟁의 피해를 없애기 위해 허리띠를 잔뜩 졸라매야 했다. 북한은 통일을 위해서 전쟁을 일으켰지만 전쟁으로 인해 남북의 적대감은 극도로 심화되었고 분단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다. 전문가들은 동서독일은 통일되었지만 남북통일이 안되는 이유로, 동서독일은 전쟁을 하지 않았고 따라서 동,서독간의 적대감이 남북처럼 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전쟁은 필요한가? 전쟁은 정의로운가?

북한뿐 아니라 적지 않은 나라와 민족이 지금도 이러한 의문을 가지고 있다. 전쟁은 정치의 연장으로, 어떤 외교적 수단으로도 문제를 풀 수 없을 때 사용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다. 그리고 전쟁은 피할 수 없이 참가해야 할 때도 있다. 자기를 해치러 쳐들어 올 때 방위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전쟁은 표면적 승패에 관계없이 모두가 처참해지는 가장 참혹한 행위이고 그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인류가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악행’ 이라고 평가한다.

실제로 전쟁은 영화나 소설, 미디어에서 표현되는 것 같은 영웅적인 장면으로 일관된 것이 아니다. 전쟁이 벌어지면 상상을 능가하는 각종 비리와 범죄가 발생한다. 군대는 물론 민간인을 상대로한 살인, 상해, 강간, 방화, 폭행, 협박 등이 수없이 일어나며 평화시기에 만들어진 법률, 사회적 규율, 도덕적 가치관 등이 총체적으로 붕괴되고 만다. 최근 우크라이나~러시아 간의 전쟁에서 우리는 그 실제적인 사례들을 목격하며 그러한 참상과 현실들을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상황들이 이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쟁에서 받은 트라우마는 전쟁이 끝난 후 수십년이 지난 후 까지도 지속적으로 사람들의 삶에 치명적 영향을 준다.

북한은 과거 남북간, 북미간 수뇌회담에서 완전한 핵 포기에 동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들어서 연속적으로 미사일을 발사하며 핵전쟁에 몰입하고 세계적인 긴장을 증폭시키고 있다.

아직도 북한은 전쟁에 대한 기본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도전적 침략적 근성을 버리지 않고 호시탐탐 남침의 야욕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민주주의국가 주민들이 전쟁을 싫어하는데 비해 염전사상이나 부에 대한 애착 때문인 것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이러한 요인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가 발전하면 할수록 사람들 속에서 생명존중사상이 높아지게 된다.

한국이나 미국에서 인권중시, 장애인 존중, 동식물과 자연을 사랑하는 운동 등은 북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이다. 생명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어떤 이유에서든지 전쟁은 일어나면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대한민국 광복 후 5년간 건설의 생기가 돌던 도시와 마을, 공장들은 잿더미가 됐고 산림은 불타 황폐화 됐다. 북위38도선을 대체하는 새로운 DMZ가 생겼고 도로와 철길이 끊겼다. 6.25전쟁 때문에 1천만 이산가족이 생기고 전시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가 생겼다. 흥남항의 비극과 ‘단장의 미아리고개’가 생겼다. 또 6.25전쟁 때문에 남북이 서로 반목하고 증오하며 질시하는 비극의 역사가 70여년째 지속되고 있다. 6.25로 인한 분단으로 남북의 이질화와 북한주민들과 청소년들이 영양부족으로 신장이 작아지고 평균수명이 짧아져 타인종화 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민족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2500만 북한 동포들이 김씨 왕조의 노예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만여명이 짐승만도 못한 학대와 고문, 처형의 공포속에서 죽지못해 살아가는 정치범수용소가 운영되고 있고 북한땅 전체가 철창없는 수용소가

됐다. 4만명이 넘는 탈북자들이 21세기 새로운 이산가족이 됐다. 김정은은 3대 세습 폭정으로 북한주민을 노예로 만든 것도 부족하여 핵과 대량살상 무기로 동족을 겁박하고 있다.

이 모든 화근의 원인은 바로 6.25전쟁 때문이며 그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과 북한정권 때문이다.

6.25전쟁 때문에 한민족의 반쪽은 불행의 고통속에서 살고 있고, 다른 반쪽도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 6.25전쟁, 그 전쟁은 한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과 불행을 안겨준 김가 정권의 가장 극악한 ‘원죄’이다. 이번 6월25일을 맞으며 6.25전쟁이 남북한 모두에게 전쟁의 본질을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참고> 부르조아(프랑스어 Bo’urgeois)=원래 성 안사람 이란 뜻이었으나 마르코스주의 이후 현대에는 유산시민(有産市民), 자본가 및 지주(地主)계급을 뜻한다.

<문학 작가 김명열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316/2022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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