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우리의 인생은 하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

<김명열칼럼> 우리의 인생은 하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

 

지난 12월27일, 탬파에 사시는 어느 여성분(L여사) 독자에게서 이메일을 보내주셨다.

연말과 연시를 맞으며 “김 작가님 감사 합니다”라는 서두를 시작으로, 매주 나의 글을 읽으며 많은 감명을 받고 있다고 칭찬의 말을 곁들였다. 그분께서는 플로리다 코리아에 매주 게재되는 나의 글을 10여년동안 빠짐없이 읽으며 애독하고 있다고 하며, 자기는 매년 매년 한 해가 다 가도록 책 한권 읽지 않고 있는데, 나의 글을 읽으면서 매주 교양서적을 한권씩 읽는 것과 같은 만족감을 느낀다고 소감을 말했다.

내가 써 올리는 글의 내용중에는 교양적인 내용은 물론 정치, 경제, 문화, 역사, 철학, 도덕, 문학 등등이 골고루 총 망라되어 매주 수요일마다 각각 다른 내용으로 게재되기 때문에 너무나 흥미있고 재미있으며 지식과 정보, 삶의 양식을 쌓는데 더 없이 좋은 참고서가 되고 유익하기에 매주 수요일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아울러 글의 말미에는 “지난주에 작가님의 글을 읽으면서 지천명이란 내용이 들어 있었는데 구체적으로 그것이 무슨 뜻인가요?” 라고 문의해오셨다. 그분은 이따금씩 종종 나에게 독후감이나 감사의 말씀을 전해오시는 분인데, 이번에는 이러한 질문을 함께 보내주셨다.

간단히 그분의 문의 사항에 답해 드리면서, 내친김에 지천명에 대한 말씀을 첨언삼아 소개하여 드리도록 하겠다. 지천명이란 옛날 중국의 공자가 50세에 이르러 천명(天命)을 알게 되었다는데서 나온 말로,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에 있다. ‘천명을 안다’는 것은 하늘의 뜻을 알아 그에 순응하거나 하늘이 만물에 부여한 최선의 원리를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 성공한 삶이란 무엇인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물음에 대해 한번쯤 생각을 해 보았을 것이다. 특히나 인생의 중반을 넘어서면서 그동안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다가올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남은 삶의 길에서 진정한 행복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그동안 내가 살아온 삶은 보람있고 즐겁고 행복했는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삶의 궤도를 추적해보며 여러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맴돌 것이다.

논어에 보면 공자(孔子)가 나이 오십세에 이르러 천명을 알게 됐다는 데서 나온 말로 지천명(知天命)이란 글자의 뜻 그대로 ‘하늘의 이치와 뜻을 안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하늘의 뜻을 안다는 것이며 세상속에 흐르고 있는 진리를 흐르는 냇물처럼 듣고 느낀다는 것이고 그 뜻을 어기지 않고 그와 일치되어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는 하늘의 뜻은 무엇일까? 그것은 양심을 어기지 않고 이치에 따라 거짓 없이 사는 것이며, 세상을 축복하며 사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이 세상을 만족하면서 살기 위해서는 욕심을 버리고 가진 것에 만족하는 기술을 터득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무리 많은 돈을 가지고 있어도 욕심이 넘치면 만족할 수 없고, 오히려 가난해도 욕심을 버리고 만족한 삶을 사는 사람보다는 불행할 것이다. 사람답게 사는 법이라는 에세이집에서 보면,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은 가진 것으로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다. 소유욕은 인간의 가장 중요하고 가장 강한 욕망의 하나다. 욕망이 있기 때문에 발전하고 전진하고 번영한다. 이 욕망이 없으면 발전이 없고 진보가 없다. 욕망이 없는 사람은 침체하고 퇴보한다. 욕망은 발전의 원동력이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알아야 한다. 자기의 분수를 망각하고 자기의 능력에 지나친 욕망을 추구하면 반드시 실패하고 좌절한다. 과욕은 패망의 어머니이다. 허욕은 불행을 낳는다. 그리고 탐욕은 비극을 초래한다. 일찍이 지혜의 큰 스승이었던 노자(老子)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지지(知止=머무를 줄 알아라), 지족(知足=족한줄을 알아라), 그렇다. 우리 인간들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욕심을 버리고 만족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출세하고, 승진하고, 더 많은 돈을 벌기위해서 앞만 보고 달려간다면 그 삶은 분명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출세도 좋고 부자도 좋지만 주변을 살피고 가족을 살피며 주위의 이웃이나 지인, 동료, 친척을 돌아보며 함께 살아가야 한다. 우리들 주변에도 살펴보면 과욕을 멈추지 못해서 결국에는 실패하고 불행해지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지천명의 뜻을 되새겨보며 우리는 분수의 철학을 배워야 한다. 본인의 분수에 만족하고 본인의 처지에 만족하며 남을 위해 베풀면서 살아가는 행복을 실천해가야 한다. 비록 현재의 삶이 뜻대로 안되고 원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지금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보람을 찾으며 만족하고 사랑과 인정을 베풀며 살아간다면 그 삶은 성공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최선을 다한 멋지고 후회 없는 삶이 될 것이다. 당신의 삶이 지금까지 아쉬움이 많이 남더라도, 이제부터라도 참된 행복인으로 살아가길 바란다.

행복한 삶에 대하여 하버드대학의 어느 교수는 ‘평범한 삶이 가장 행복한 삶’ 이라고 말했고, 여러 철학자들이나 종교인들도 행복한 삶에 대해서 다양한 정의를 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수환 추기경님은 “당신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당신만 울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날 때 당신혼자 미소 짓고 당신 주위의 모든 사람이 울도록 그런 인생을 사십시요” 라고 말했다. 지천명의 뜻을 새기며 앞으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할것인가? 많은 생각을 하도록 만들어 준다.

17세기와 18세기 유럽을 중심으로 일어난 철학사조를 계몽주의라고 한다.

존 로크, 임마누엘 칸트, 헤겔 등 독일과 영국, 프랑스의 철학자들이 인간의 이성과 자연의 보편적 원리를 강조하며 정치, 사회, 철학, 과학, 문학 등등 거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인간들의 이성에 빛을 비춘다는 말이 있다. 영어로는 Enlightenment 라고 한다. 이것은 이성을 깨워서 그동안 교회 교리와 전통적 가르침에 의해 어둠에 묻혀있던 인간의 이성, 그리고 지적인 영역에 빛을 비추어준다는 철학사조이다. 그래서 생각을 보다 합리적이고 보편적으로 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계몽주의의 결말은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이었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중 계몽주의 철학의 근원지라고 할 수 있는 독일에서 6백만명이 넘는 무고한 유태인들이 단순한 이유, 즉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 그래서 미운털이 박힌 나쁜 민족이라는 이유로 가스실에서 참혹하게 죽어갔다. 인간의 이성을 깨우고 지각력을 높여놓았다고 자부했는데, 그 결과는 결국 인종청소 라는 참담함뿐이었다.

공자는 말년에 ‘논어’ 위정편에서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며, 열다섯에 지우학(知于學) 학문에 뜻을 두었고, 30세에는 이립(而立) 스스로 뜻을 확실하게 세울 수 있었고, 40세에는 불혹(不惑)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게 되어 세상일에 흔들림이 없게 되었다고 했다. 50세에는 지천명(知天命) 즉 하늘의 명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나이 40까지는 자기중심적 세계에 머물러 있었는데, 50에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세계관을 깨우치면서 이타적 성인(聖人)의 경지에 들어섰다고 하였다. 그리고 60세에 이순(耳順), 70세에 종심(從心)으로 나아갔다. 50세의 지천명의 단계는 자기의 내면에 불이 켜지는 상태, Enlightenment 계몽에 해당 한다고 볼 수 있다. 이제는 자기중심, 자기 주관성에 머물러 있었는데 타인에게로 또는 자연 만물계로 눈이 열리면서 큰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그렇게 내면이 밝아지고 나면 그 후 60 이순, 70 종심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흔히들 말하기를 ‘무엇 무엇에 눈이 어두웠어, 사랑에 눈이 멀었어, 권력에 눈이 어두웠어’라고 말들을 한다. 마약에 눈이 어두워진 사람, 도박에 눈이 어두워진 사람, 인터넷 바둑에 눈이 어두워진 사람 등 내면의 눈, 영혼의 깊은 곳에 그들은 공히 흑암이 드리워져 있다. 참고로 성경말씀 구약 시편 18:28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아, 주님, 진실로 주님은 내 등불을 밝히십니다. 주 나의 하나님은 나의 어둠을 밝히십니다’ 죄 때문에 어두웠고 눈이 멀은 사람들, 이기적인 습성과 고정관념이 영혼을 어둡고 혼돈상태에 빠져있는 사람들은 지천명(知天命) 즉 하늘의 뜻,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서, 어둠이 물러나고 자기의 내면이 밝아지려면 등불이 켜져야 한다. 등불은 심지가 타고 기름이 소모될 때 빛을 발한다. 심지를 태우고 기름을 소모시키는 것, 그것은 곧 자기를 태우고 자기를 희생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내려놓고 비우고 또 비우며 낮아 지는 것, 겸손해 지는 것, 그것들이 우리를 밝고 빛나게 해준다.

새롭게 찾아온 New Year 2022년, 금년도 새해에는 더 비우고, 더 희생하고, 더 겸손해져서 자기 내면의 빛이 항상 타 오르게 해야겠다. 죄악과 이기심의 어두움이 드리우지 못하도록, 이기주의가 아닌 이타적이고 선의적인 사랑과 희생으로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과 소금이 되어야겠다. 지천명, 즉 나를 알아야 하늘의 뜻을 알 수 있는 것이다.

2022년 새해를 맞아 애독자 여러분들의 가정과 자신들에게 하나님의 한없는 축복과 은혜가 넘쳐나시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

<문학 작가 김명열 배상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293/2022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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