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단풍이 곱게 물든 숲 길을 거닐며………..

<김명열칼럼> 단풍이 곱게 물든 숲 길을 거닐며………..

울긋불긋 곱게 물들어 가을의 정취를 한껏 부풀어오르게 했던 각종 나뭇잎들이 만추(滿秋)가 되니 낙엽이되어 지고있다. 내가 보고 느낀 올가을의 단풍들은 유난히도 아름답게 물들어 사람들의 마음 역시 온통 붉고 노랗고 밤색 등으로 채색시키고 정든 가지를 떠나고 있다. 겨우내 얼었던 동토(凍土)의 땅에서 깊고 지루한 겨울을 인내와 부동의 자세로 견디며 기다려왔던 온갖 초목들은 봄이 되면 저마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꽃을 피워 장관을 이뤄낸다. 이렇게 한껏 부풀어 오르는 기대감 속에, 봄이 설렘의 계절이라면 우리들 곁에 아직도 머물고 있는 이 가을은 그리움의 계절이다.

모진 추위, 악천후의 설한풍(雪寒風)속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고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는 것을 시작으로 겨울을 인내한 꽃들이 일제히 아우성치며 앞 다투어 피어나는 봄은 새롭게 전개될 세상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가을은 봄의 설렘과 여름의 열정을 뒤로하고 흘러간 날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한 계절이다.

깊어가는 가을 밤, 달빛도 사라진 이슥한 어두움 속에 창가에 파수꾼처럼 한여름을 버티고 서있던 파랗던 은행잎이 어느덧 찬 서리를 맞아 힘없이 바람에 날려 지고 있고, 시간은 가을바람에 실려 또 하나의 추억을 잉태시키고 있다. 알록달록 울긋불긋 고운 옷으로 갈아입고 서늘한 바람에 화려하면서도 처연(凄然)하게 떨어지는 낙엽은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덧없이 흘러간 세월들은 돌이킬 수 없기에 더욱더 애틋하고 아름다운것인지도 모른다. 생선이 썩을 때는 코를 들 수 없을 정도로 악취가 풍기고 병균들이 득실거리지만 낙엽이 썩을 때는 고운 향기가 풍긴다. 떨어진 낙엽은 썩어 가지만 다음해 봄이 오면 또다시 새잎을 돋게 하고 꽃을 피우는 자양분이 되는 것이다. 우리들이 살고있는 이 도시의 낙엽들은 안쓰럽다. 빗물 한방울 스며들 수 없는 차갑고 딱딱한 아스팔트 위에 떨어

진 낙엽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스산한 바람 따라 정처 없이 딩굴면서 방황한다. 그러한 모습은 마치 실향민의 눈물 같기도 하고 사랑을 잃은 실연(失戀)인의 슬픈 발걸음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우리들 곁에 지금도 머물고 있는 이 가을은 비움의 계절이다. 청춘속에 짙푸른 여름을 노래하던 나뭇가지가 잎을 내려놓듯이 이 가을엔 우리의 삶속에 짊어지고 있는 무거운 짐들을 살포시 내려놓아야 한다. 모든 가식과 위선, 교만을 모두 다 떨쳐버리고 깊은 자아 성찰과 함께 참회록을 써야한다.

지나친 물욕과 욕심이 나의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하지는 않았는지?………나의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행동이 남의 가슴에 못을 박은적은 없는지?……교만 속에 잘난 척 하고 남을 업신여긴 꼴 볼견을 연출한 적은 없었는지?……내마음속에 있는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을 때 나 자신은 비로써 자유를 얻는 것인 것을, 나의 영혼을 아름답게 가꾸지 못하고 온갖 불평, 불만, 감정의 노예, 시기와 질투, 욕망에 사로잡혀 참된 평화를 상실하고 있지는 않는가?……..

가을은 별리(別離)의 계절이다. 꽃이 지고, 낙엽이 지고, 우리의 인생도 흘러간다. 이세상의 모든 것은 때가되면 언젠가는 떠나는 것이고 사라지는 것이다. 우리도 저렇게 떨어지는 낙엽처럼 언젠가는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모든 욕심과 근심걱정도, 푸른날의 열정과 잠 못 이루게 하던 번뇌도 조용히 내려놓아야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사랑으로 보듬으며 한없이 축복을 빌어주어야 한다. 언젠가는 우리도 가련한 낙엽인 것을…….. 소슬한 바람에 낙엽이 지고 있다. 잘 가거라 가을아 ~ ~……… 눈가엔 이별을 아쉬워하는 눈물이 흘러나고 있다. 잘 가거라 그리움도……..낙엽은 지고 가을은 저물고 있다. 나는 이렇게 쓸쓸히 가을을 보내지만 이듬해 봄, 또다시 파릇파릇하게 돋아날 연초록의 새잎을 기다리고 있다.

어느새 저 멀리서 겨울이 차가운 바람과 함께 우리들 곁에 머물고 있는 가을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다가오는 겨울의 차가운 바람은 현란한 색으로 멋을 부리던 나무를 이내 벌거벗은 흉한 모습으로 만들고 우리의 마음까지도 황량하게 만들 것이다. 길위에 떨어져 이리 저리 뒹구는 낙엽은 잠시 아름다움과 추억을 선물했지만 이 또한 우리마음에 쓸쓸함을 더해준다.

떨어져 뒹구는 낙엽을 보며 문득 겨울을 보내기 위해 봄과 여름의 푸르름을 자랑하던 잎들을 내려놓는

나무의 지혜를 배운다. 추운겨울은 나무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의 시간일 수 있다. 햇볕을 쬐일 수 있는 일조량이 줄고 신진대사가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다. 푸르고 많은 잎을 가지고는 겨울을 지낼 수 없기 때문에 겨울이 다가오면 모든 잎을 내려놓게 된다. 우리들에게도 어려움과 고통 앞에서 자신을 비우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지러운 마음을 정리하고 욕심과 또는 미움을 내려놓아야 한다. 여건과 환

경을 원망하는 마음도 어려움을 이겨내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혹은 과다한 의욕도 포기해야한다. 다 내려놓아서 보기 흉하게 될지라도, 창피한 모습이 되더라도 겨울 같은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비우는 지혜를 나무와 낙엽에서 배운다.

산다는 게 더러는 바쁘고 힘들지라도 나뭇잎이 곱게 물든 가을철에는 한번쯤 자신을 돌아볼수 있어야 한다. 살아온 세월이 후회스럽고 안쓰럽다 해도 거짖이 없는 가장 바르고 참된 마음으로 허세도, 위선도, 벗어놓고 진실하게 드러나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면, 그래서 겸손해지고 정직해지면서 자신의 모습을 되찾고 나면 혼탁한 영혼의 물결은 맑아질 수 있으리라. 인생은 무엇을 위해 빠른 걸음으로 달릴 수 있지만 때로는 멈춰 서서 걸어온 길을 바라보며 성찰의 시간도 필요한 법, 지난날을 돌이켜 생각할 수 있는 건 보다나은 앞날을 위해 보람 있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이제는 아름다운 삶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이 깊어가는 가을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성찰의 시간을 갖고 내면의 세계를 맑고도 조용하게 다스릴 수 있도록 하자.

오늘도 나는 숲속의 길을 걸어본다. 걷노라면 하늘도 바람도 구름도 햇살도 아름다움으로 채색된 단풍들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 집을 떠나 여행을 하며, 이렇게 호젓하게 단풍진 숲속 길을 걸어보는 것도 멋진 낭만과 추억을 잉태시키는 즐거운 일이며, 플로리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추색(秋色)을 만끽할 수 있고 가을을 가을답게 그 속에 자신을 묻혀 가을속 삶을 음미해 보는 것이다. 이제는 곧 저 아름다운 단풍들의 모습도 자취를 감추고 앙상한 나목의 모습을 내 보일날도 그리 멀지 않으리라 믿는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있듯이 저물어져가는 만추의 가을속, 11월도 이제는 하순을 향해 내리막길로 줄달음치고, 어느새 산과 강의 붉은 단풍 사이로 낙엽은 바람에 휘날리고 억새풀이 서걱거린다. 그러면 웅크린 그리움과 아쉬움, 그리고 허전함이 되살아나 갈대처럼 마음이 흔들린다. 하물며 그 흔들림으로 자연의 심연(深淵)에서의 소리가 무언(無言)으로 들리기도 한다. 어쩌면 이는 자연이 우리들에게 삶이 짐과 세월의 무게를 내려놓고 내밀(內密)하게 성찰해보라는 소리일 것이다.

이제는 가을이 너무나 깊어져가고 있다. 가을이 깊어지면 이제 사유와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겠다.

사유와 성찰이란 무엇인가? 먼저 사유(思惟)란, 어떤 대상을 두루 생각하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사물이나 현상이 보편적 본질적인 특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유는 직관(直觀)에 의해서 주어진 잡다한 인식이 아니라 고찰(考察)을 통해 얻어진 추상되고 응축된 개념이다. 우리가 사물과 현상의 본질 또는 보편적 성질의 법칙이나 원리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를 분명히 알고, 그 의의(意義) 를 바르게 이해하며 판별하도록 하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 성찰(省察)이란? 자신의 마음이나 행동에 대한 반성과 살핌을 말한다. 즉 자신을 되돌아보고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바로 알기위해 깊게 사유하는 심리적 과정이다. 무릇 우리는 성찰을 통해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래야만 진정한 자아(自我)를 찾아내어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성숙한인간이 될 수 있다. 이와 같이 성찰은 그 나름대로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일찍이 소크라테스는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라고 하였다. 모름지기 내가 원하는 삶을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성찰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성찰에 의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깨달아야 능동적 긍정적으로 살수가 있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단단하게 성장과 성숙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이다. 하긴 성찰은 고뇌가 따르는 어려운 심리적 행위이긴 하다. 그래도 이를 행하는 의지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어쩌면 나무가 그토록 오래 생명을 유지하는 것도 나무 스스로가 진지하고 굳건한 힘으로 깊이 있게 성찰하기 때문이다. 깊어가는 이 가을에 우리는 마음을 비우고 조용히 정좌하고 앉아서 성찰과 사유의 시간을 가져보자. 이를 위해 홀로 가을의 숲속을 거닐어보자. 인간은 이렇게 홀로 거닐 때 주위를 천천히 살피고 자신의 내면 깊은 곳을 비춰볼 수 있는 것이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1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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