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 3개주 여행 <1>  국립공원 엘로우스톤 및 주변 3개주

김명열 3개주 여행 <1>  국립공원 엘로우스톤 및 주변 3개주

“몬태나, 아이다호, 와이오밍” 여행 기행문

 

성경말씀 구약전서 출애굽기 20장 12절의 말씀에 기록된 내용이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신명기 5장 16절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또한 명심보감(明心寶鑑)의 효행편(孝行篇)에도 보면 이렇게 써 있다.

시경(詩經)에 써 있는 글이다. ‘나를 낳고 기르고 가르쳐 한 인간으로 만들어주신 부모님의 수고와 은혜는 이루 헤아릴 길이 없다. 설사 아무리 부모에게 효도를 극진히 한다 하더라도 부모의 은혜는 다 갚을 길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효(孝)를 모든 행실의 근본으로 삼고있는 것이며, 사람으로서 가장 큰 죄는 불효를 짓는 일이다’.

이상의 글 내용에서 보았듯이 부모님에게 자식이 효도하는 것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식의 근본 된 도리이며 필수적인 책무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옛날의 가부장적 대가족제도는 사라지고 핵가족시대가 되고 보니 자식들의 부모사랑과 효심은 그만큼 희석되고 줄어든 듯 하다. 심지어는 부모를 홀대하고 패륜의 행각을 서슴치 않는 불효막심한 불한당 같은 나쁜 자식들도 세상에는 많이 있다. 이러한 사회 현상을 보고 시대를 탓하고 원망을 해야 하는지? ….. 벙어리 냉가슴 앓듯 말문이 막힐 때가 참으로 많다. 가끔씩 신문지상이나 TV화면에 자식이 부모를 학대하고 방치하며,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하는 뉴스를 접할 때 그것이 남의 일 같지 않고 안타까운 마음은 물론 화까지 치밀어 오를 때가 많았었다. 또 어느 부모는 자식이 부모님을 돌보지 않아 외롭고 쓸쓸하게 병석에서 고통을 겪고 신음하다 세상을 떠나가는 슬픈 소식을 접할 때도 종종 있다. 이렇게 인륜이 망가지고 효도가 땅에 떨어진 세상에……. 그러나 아직은 그러한 불효자나 패륜아보다는 부모님을 성심으로 섬기며, 어려운 중에도 자신을 희생하며 정성껏 사랑과 효심으로 부모님께 효도하는 착한 자녀들이 우리들 주변에는 다행스럽게도 많이 있다.

세간에 말들 하길, 자식 자랑하는 부모는 팔불출(八不出)은 어리석은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팔불출의 유래는 제 달을 채우지 못하고 여덟달 만에 세상에 태어난 아이를 일컫는 팔삭동(八朔童)을 말한다. 그런데 여기에 비유해 낮 간지럽고 쑥스러운 자랑을 늘어놓는 사람을 우리는 팔불출 이라고 한다.

그 팔불출의 내용은 1) 스스로 잘났다고 뽐내며 자기자랑 하는 사람 2) 마누라 자랑 3) 자식자랑 4)부모님이나 조상 자랑 5)저보다 잘난 듯 싶은 형제 자랑 6) 어느학교의 누구, 선후배라고 자랑 7) 자기고향이 어떻고 어느 사람이 거기 출신이며 자기가 잘 안다는 사람 8)외모(미모)자랑. 자기 자신이 예쁘다고 자랑, 몸매가 날씬하다고 자랑, 피부가 곱다고 자랑, 눈이 쌍꺼플 졌다고 자랑. 등등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나도 이번에 팔불출 속에 끼어보고 싶다. 나의 자식자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금년에도 나는 나의 아들과 딸의 도움으로 8박9일간의 효도관광을 다녀왔다. 올해 들어 벌써 10여년째 나의 자녀들은 제 부모님을 위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효도관광을 시켜주고 있다. 어느 때는 두세번을 다녀온 적도 있었다. 효도관광을 갈 때는 나의 막내딸이 제 부모님이 행여라도 불편을 겪거나 힘들어할까봐 언제나 바쁜 시간을 할애하여 우리부부와 동행하여 편리를 봐주고 안내와 인도를 곁들인다. 특히 현지에 가서는 영어가 부족한 나를 위하여 그곳의 모든 시설물이나 관광지의 특성 및 역사, 안내문, 소개문 등등의 영어로 된 설명문들을 자세히 한국어로 통역을 해주어서 이렇게 기행문을 쓰는데 커다란 도움을 주고 있다. 아울러 이번에도 특별히 나의 딸에게 감사를 전할 말은, 나의 딸은 지난 8월2일부터 워싱턴 DC의 W.H에 입성해 전문인력으로 특별 스카웃되어 중요 직책을 맡고 근무중인데, 그곳에 들어 간지 이제 갓 1개월이 지난 상황에 휴가를 낸다는 것은 정말로 어렵고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직장내의 보스가 나의 딸의 부모에 대한 각별한 효심에 감동하여 특별히 휴가를 내 주어 부모님과 함께 휴가를 보낼 수 있었다.

작년 여름에 나의 딸은 코로나19이 극성을 부리고 세계적으로 창궐할 때, 그 때는 코로나사태로 모든 휴양지나 관광지는 개점 휴업상태이거나 폐업 및 휴업이 속출할 때여서 현지의 호텔이나 Airbnb 역시 손님이 없어서 파리만 날리고 있을 때 나의 딸은 엘로스톤이 멀지않은 곳의 에어비엔비에 미리 금년 9월4일부터 12일까지 할인된 가격에 예약을 해 놨다. 평상시 성수기에는 하루 사용료가 $800에서 $1000을 홋가 하는데 다행이도 나의 딸은 거의 반값에 준하는 1일 사용료 $500에 8박9일을 예약할 수가 있었다. 선견지명(?)의 딸 덕분에 3Bed Room의 넓고 쾌적한 단독주택 전체를 빌려서 편리하고 안온하게 휴가를 즐길 수 있었다. 이번에 그곳에 가보니 때마침 노동절(Labor Day) 연휴라서 호텔이나 에어비엔비, 기타 숙박업소는 모두가 손님들로 만원을 이뤄 방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무척이나 힘든 상황이었다. 그리고 나의 딸은 공항 터미날 내의 렌터카 업소에도 이미 우리가족이 휴가 동안 타고 다닐 자동차까지 모두 예약을 해놓은 상태였다.

이제는 우리부부가 여행을 떠날 차례다. 여행을 떠나기 전 우리는 그곳에 가서 먹을 김치나 쌀, 라면, 밑반찬 등을 냄새가 나지 않고 국물이 흐르지 않도록 지프락에 싸고 또 그 위에 비닐 포장지로 몇겹을 싸서 완전하게 포장을 마무리했다. 만약에 혹시라도 공항 검색대에서 물품을 압수당할 경우를 대비해, 여차하면 쉽게 꺼내어 버릴 각오로 식료품들은 메고 가는 Back Pack에 넣어서 갔다. 9월4일 출발하는 당일 우리 부부는 새벽5시에 일어나 준비된 러게지와 식료품이 든 백팩을 차에 싣고 오전 7시30분 집을 출발하여 탬파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의 Long Term 파킹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터미날로 들어가 항공티켓을 들고 검색대에 섰다. 등에 진 백팩의 김치나 밑반찬류들이 검색원들에게 적발되어 압수가 되면 어쩌나(?)하며 가슴을 죄이며 검색대에 모든 짐가방들을 밀어 넣었다. 그러나 참으로 다행으로 나의 짐가방들은 모두 무사 통과되었다. 길게 한숨을 내 쉬며 우리부부는 시카고로 향하는 UA Air 의 탑승구로 향했다.

우리는 시카고에 가서 그곳에서 몬태나의 Bozman으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타야 했다. 아울러 그곳에서 딸을 만나 함께 가기로 했다. 탑승수속을 마치고 기내로 들어와 보니, 노동절 휴일을 맞아 시카고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로 만석을 이루고 있다. 2시간40분을 날아서 비행기는 시카고의 오헤어공항에 무사히 착륙을 했다. 기내에서 나와 보니 나의 딸이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엄마, 아빠를 반갑게 맞이한다.

몇달만에 해후한 딸과 엄마 아빠는 반가움속에 가벼운 포옹을 나누며 피부깊이 뜨거운 혈육의 정을 나누었다. 1시간 반을 공항대합실에서 기다린 후 우리 3식구는 다시 몬태나주 Bozman으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탑승 후 3시간15분을 비행한 후 Bozman 공항에 도착했다. 그곳을 나와 공항터미날 안에 있는 렌트카 센터에서 미리 예약했던 차를 대여 받고 공항 밖으로 나왔다. 공항을 나온 후 얼마를 더 운전을 하고난 후 우리는 시내의 어느 커다란 슈퍼마켓에 들렀다. 8박9일동안 머물면서 먹을 식빵류와 고기, 과일, 식수, 감자, 버섯, 파, 양파, 오이 등등 필요한 식료품들을 사서 차에 옮겨 실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약 105마일 정도 남서쪽에 위치한 아이다호 주의 Henry Lake 근처의 우리가 묵을 Airbnb(에어비엔비)로 차를 몰았다. 차를 타고 가면서 주위를 보니 도로변 주변에는 소와 말, 염소, 양, 또는 사슴 등을 방목하여 기르는 드넓고 광활한 목장들이 수없이 많이 시야에 들어왔다. 농사를 지어도 좋을 땅에 모두가 소와 말을 풀어놓아 기르고 있으며, 소와 말이 없는 들판에는 가축들을 먹일 목야지(牧野地)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몬타나는 북쪽으로 캐나다의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앨버타주, 서스캐쳐원주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미국 북단의 주이다. 동쪽으로는 노스 다코다주, 남쪽으로는 와이오밍주와 남서쪽 및 서쪽으로는 아이다호주와 접해있다. 몬태나주 하면 가장먼저 예날 인디안 원주민들과의 싸움이 생각난다. 옛날 서부영화에서도 보면 몬태나의 인디언들이 자주 등장한다.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대(對) 인디언 전쟁들이 이곳 몬태나주에서 있었다. 1876년 6월25일 인디언 수족과 샤이엔족이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 중령 휘하 기마부대 7연대의 일부를 전멸시켰다. ‘커스터의 마지막 저항’으로 알려진 이 전투는 몬태나 남서부에 있는 리틀 빅혼강 근처에서 벌어졌다. 몬태나에서 마지막으로 벌어진 대 인디언 전투는 미국정부가 네즈버스 인디언들을 오리건에 있는 그들의 땅으로부터 이주시키려 할 때 시작되었다. 추장 조지프는 자신의 종족을 몬태나를 지나 캐나다로 이끌었다.

인디언들은 미국 군인들과 아이다호에서 수차례 소규모 교전을 벌인 이후 몬태나 남서부에 있는 리틀 빅혼에서 2일간의 전투를 벌였다. 넬슨 A 마일스대령 아래의 군인들은 캐나다 국경으로부터 40마일 되는 곳에서 추장 조지프의 인디언들을 사로잡았다.

참고로 이곳에 인디언 사냥의 대표적인 주자로 알려진 조지 암스트롱 카스터장군(중령)에 대해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다. 미국 서부개척사에서 카스터만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사람도 보기 드믈 것이다. 웨스트 포인트 재학시절 학교성적은 늘 꼴찌였으며 징계를 워낙 많이 받아 퇴학직전에 이르렀으나 마침 때맞춰 터진 남북전쟁이 카스터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카스터와 같은 3학년 생도들은 모두 한해 먼저 3년만에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계급장을 달고 전투현장으로 배치됐다. 남북전쟁에서 카스터는 많은 전설을 만들었다. 23세의 나이에 비록 임시계급이지만 소장까지 진급하는 역사적 사건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남북전쟁이 끝난 뒤에는 중령의 계급으로 제7기병대장을 맡아 1868년 와시타강 전투에서도 큰 공을 세우며 승승장구 했다. 이번의 리틀 빅혼강 작전에 참가하면서는 아라카라족 인디언 정찰병들에게 ‘이번 작전이 카스터의 마지막 참전이 될 것이며 장래에 미국 대통령이 되어 백악관에서 아라카족을 잘 보살펴주겠다’라고 이야기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앤드류 잭슨도 전쟁영웅에서 대통령이 됐고, 남북전쟁당시 북군 총사령관이던 그랜트도 대통령이 되었으니 그런 포부를 가질 만도 하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1280>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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