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변화해 가는 세상에, 나는 어떻게 살아갈까?…..

<김명열칼럼> 변화해 가는 세상에, 나는 어떻게 살아갈까?…..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해 가고 있다.

지금의 세상,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현대는 무척이나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때문에 인생관이나 자신의 삶의 잣대가 혹 과거에 고착되어 있다면 자신을 개발시킬 수가 없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에는 늘 유동성이 있기 마련이다. 특히 인생관이나 종교관, 정치관, 교육관은 옛 시대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나이 들수록 퇴보되는 정신세계를 스스로 인정하되 슬퍼하지 말고 현시대에 발 맞추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물이 유유히 흘러가듯 시대는 무심히 변해간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은 무상(無常)이다. 그리고 홀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더불어 변화해 간다. 이 성질을 무아(無我)라고 한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이란 말이 있다. 그리고 또 인생무상(人生無常) 이란 말도 있다. 이 말에는 많은 의미와 감정들이 중첩된다. 이 말의 사용은 보통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에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즉 허무감이 많이 묻어나는 말이다. 이 인생무상이란 말은 불교 신자들에게는 제행무상을 떠 올린다. 제행무상은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임인 삼법인(三法印)가운데 하나다. 보통 삼법인은 제행무상, 제법무아(諸法無我), 일체개고(一切皆苦), 또는 열반적정(涅槃寂靜)을 말한다. 따라서 불자들은 이 말을 많이 들었을 줄로 생각된다. 반대로 제행무상이란 말을 처음 듣는 사람은 ‘인생무상’에서 오는 허무감으로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제행무상은 인생무상처럼 허무감을 던져주는 말이 아니라 이 세상의 변화하는 모습을 말한다. 이 말의 뜻을 쉽게 설명을 한다면, 가령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 동쪽에서 해가 뜨면 서산너머로 해가 진다,

어린이가 성장해서 청년이 되고 결국에는 곧 노년이 된다. 이 세상에서 보면 어느 것 하나 항상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드물다. 즉 세상의 모든 것은 변화한다. 무상(無常)이다. 이 무상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은 곧 행(行) 이라고 한다. 행은 항상 움직임을 뜻한다. 그래서 제행무상이다. 여기서는 행의 의미를 사물의 변화, 운동, 움직임으로 이해하고 있다. 세상 모든 것은 변화, 운동한다는 측면에서 세상의 모든 것을 제행(諸行)이란 말로 대신한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것은 그렇게 변하고 움직이는 것이니 항상 ‘언제나 제 모습’인 것은 없다고 한다. 이러한 말 내면의 뜻은 ‘세상은 이처럼 변하는 것이니 무엇을 붙잡아 두려거나 너무 집착하거나 욕심 부리지 말라’는 이야기다. 욕심을 내어 붙잡아 두려고 하니 항상 불만족을 느끼고 마음속으로 괴로움을 느끼고 있다는 말이다.

이제 이상의 설명한 내용들을 정리해 보면, 제행무상은 불교적 존재론인 동시에 연기법에 대한 시간적인 해석을 의미한다. ‘이것이 생(生)하면 저것도 생(生)하고, 이것이 소멸하면 저것도 소멸한다’는 연기법의 시간적인 관점에서 인(因)과 연(然)에 의해 잠시 현재의 모습을 잠정적으로 띄지만 그것이 고정적 일수 없으며, 더더욱 영원할 수는 없고, 무상해서 변한다는 말이다.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됐을 때 얼음과 물은 별개가 아니다. 얼음과 물은 다만 변화했을 뿐이며 다른 것이 아니라는 원리, 불이(不異)이나 그 모양과 형태가 다르므로 ‘같다’고 할 수는 없으나 얼음이 변해서 물이 되고 물이 변해서 얼음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르다고도 할 수 없다. 이와 같은 변화의 측면을 무상이라고 한다. 그리고 무상은 고정됨이 없음을 말하는데, 만약 고정돼 있다면 어떻게 물이 얼음이 될 수 있으며, 어린이가 어른이 될 수가 있고, 나무가 자랄 수가 있겠는가, 그러니 고정돼 있다는 것은 바로 죽은 세상일 것이니 그런 차이란 있을 수가 없다. 이 사회가 점점 발전하는 것도 무상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인간의 감정을 예로 들어보겠다. 사람이 일순간 아주 기분 나쁜 일이 있어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고 하자, 화가 났을 때는 분명 화가 나 있었으나 상대방이 사과를 해서 기분을 되돌리고 나면 어느새 화는 사라지고 만다. 이럴 때 화의 실체란 무엇인가? 화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슬픔, 불행뿐만 아니라 기쁨, 즐거움, 행복 같은 감정도 어느 순간 있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없어지고 만다. 그렇게도 사랑했던 연인과 결혼했지만 어느새 사랑이 식어버려 헤어지게 되는 것도 무상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 세상 모든 것은 항상(恒常)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한다. 모든 존재들은 예외 없이 생주이멸(生住異滅)한다. 즉 만들어진 모든 것은 잠시 머물렀다가 변화해 결국은 소멸되고 만다는 얘기다.

맹자의 만장편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인위적으로 하려던 일이 아닌데 저절로 되는 것은 하늘(天)의 뜻이요, 원하지 않았는데 닥쳐오는 것은 운명(命)이 하는 일이다. 운명론자들은 인간의 수명이나 삶의 궤도는 초인적인 어떤 힘에 의해서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이며, 인간이 아무리 의지적으로 노력하고 발버둥을 쳐도 결코 그것을 벗어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와 반대로 자유 의지론자들은 인간은 자유 의지에 의해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할 뿐 미리 결정된 운명이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운명론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전적으로 부정한다는 점에서 분명히 문제가 있다. 그렇지만 자유의지론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를테면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나고 또 지구에서 태어나고, 그중에서도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 그리고 이 혼돈과 위기의 시절에 세상에 태어난 것, 그것은 자유의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태어난 시간과 공간은 자유의지로 결정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의 의지로 넘어설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운명적인 존재로 살아야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만약에 운명의 굴레속에서 자신의 삶을 팔자소관으로 돌리고 의지적인 노력을 포기한다면 그야말로 운명론으로 빠질 것이다.

그러나 이미 주어진 운명과 인과(因果)를 수용하면서도 그 불합리한 부분을 의지적으로 부단히 극복하고 바꾸어 가고자 한다면 그것은 숙명적인 존재에서 운명적인 존재로 거듭난다고 할 수 있다. 운명과 숙명이 다른점은 ‘운명의 화살은 앞에서 오고, 숙명의 화살은 뒤에서 온다’고 한다. 그래서 운명의 화살은 막을 수 있어도, 뒤에서 오는 숙명의 화살은 막을 수 없으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앞에서 오는 운명의 화살을 막는 세가지의 질문을 여러분들께 던지겠다. 첫째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둘째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습니까? 셋째 지금 무슨 행동을 하고 있습니까? 바로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생각과 말과 행동이 당신의 운명을 결정한다.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은 내가 되고자 한다면, 나의 운명을 바꾸고자 한다면, 이렇게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해보는 것이다. 질문에 대한 답에 따라 나의 가치가 달라지고, 나의 운명이 바뀐다. 성공하고 승리하는 사람의 특성은 모든 일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정열적으로 활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항상 불평, 불만, 원망의 생활을 감사의 생활로 바꾸며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 정신으로 초지일관 하는 것이다.

탈무드에 보면,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어떠한 경우에도 배움의 자세를 갖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지금 이 모습 그대로 범사에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이다. 라고 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은 감사하는 사람의 것’이라 했고,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는 ‘감사의 분량이 곧 행복의 분량’이라고 했다. 사람은 감사한 만큼 행복하게 살 수 있다. 행복해서 감사한 것이 아니라 감사하기 때문에 행복해지는 것이다. 또한 빌 헤름 웰터는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가장 많이 소유한 사람이 아니라 가장 많이 감사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결국 행복은 소유에 정 비례 하기보다는 감사에 정비례 하는 것이다. 아무리 지식과 권세와 부를 많이 쌓아놓았다고 해도 감사가 없으면 진정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없는 것이다. 감사가 없는 마음은 지옥과 같고, 감사가 없는 가정은 메마른 광야와 같다. 이와 같이 감사는 행복의 원료이며 풍요로운 삶의 재료이다.

숙명이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운명이야 능히 내 자신의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인생은 행복과 성공으로 바꾸는 방법은 바로 이 감사 생활이다. 내 손으로 먹을 수만 있어도, 내 발로 걸을 수만 있어도, 내 입으로 말할 수 있고, 내 눈으로 볼 수 있고, 아름다운 음악소리, 가족의 사랑스런 말소리를 들을 수만 있어도 이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제행무상이라 했다. 이제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허망한 재색명리(財色名利=돈과 섹스 그리고 명예와 이익)에 몸부림치지 말고 감사하는 생활로 인생의 힘든 문제를 해결하고 행복하게 살아가자.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1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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