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이 무더운 여름에………..

<김명열칼럼> 이 무더운 여름에………..

요즘 매일같이 92~93, 4, 5도가 오르내리는 무더위가 지속되고 있다.

식을줄 모르는 폭염과 습도속에 한증막같은 찜통더위가 연일 맹위를 떨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19 때문에 마스크를 벗지 못해 답답하고 짜증이 나는 터에 폭염까지 기승을 부리니 남은 여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걱정부터 앞선다.

집안에서 성능 좋은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고 지내면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할수도 있겠지만, 하루24시간 에어컨 바람을 쐬며 지내는 것도 좋지 않은데다 자연주의자인 내 생각엔 아무래도 현명한 피서법은 아닌 듯하다.

일찍이 다산 정약용선생은 1824년에 소서팔사(消暑八事)란 시를 지어 더위를 이기는 8가지 피서법을 이렇게 적었다. 대자리 위에서 바둑 두기, 소나무 숲에서 활쏘기, 누각에서 투호놀이 하기, 느티나무 아래서 그네타기, 연못에서 연꽃 구경하기, 숲속에서 매미소리 듣기, 비오는 날 한시 짓기, 달 밝은 밤에 발씻기이다. 그 외에도 여유와 풍류를 즐기던 옛 사람들은 서늘한 계곡을 찾아가 발을 담그는 탁족(濯足), 시원한 강 바람 맞으며 뱃놀이하는 선유(船遊), 장쾌하게 쏟아지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귀와 마음을 씻는 관폭(觀瀑)등으로 여름을 났다.

그중에도 탁족과 청선(聽禪)은 전통적으로 선비들이 더위도 피하고 정신도 수양하던 방법이었다. 맑은 계곡물에 발을 담그는 것은 비단 더위를 피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세상살이의 먼지도 함께 씻어낸다는 의미가 있었다. 청선은 말 그대로 숲속에서 매미소리(蜻吟)를 즐기는 것이다. 옛 사람들은 매미를 가을의 전령으로 여겼다. 매미소리를 들으며 이제 여름도 지나가는구나! 하면서 더위를 물리쳤다고 한다. 선풍기나 에어컨없이 기껏해야 손부채와 죽 부인으로 여름을 견뎌내야 했던 옛사람들의 피서법을 살펴보면 어디에나 자연이 배경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아무리 태양의 열기가 뜨거워도 찡그리며 피어나는 꽃이 없듯이, 자연과 더불어 호흡하며 오감을 열어놓으면 폭염의 여름도, 짜증스러운 계절이 아닌 낭만이 넘치는 계절이 될 수도 있다.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코로나19 때문에 사람들 만나는 것이 여전히 꺼려지는 요즘, 나는 더위가 느껴지면 가끔씩 녹음 짙은 숲길을 걷는다. 숲 그늘은 무더위를 식혀줄 뿐만 아니라 늘 나의 시선과 마음을 묵묵히 받아주는 초록의 숲은 내게 그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던 어머니의 마음 같아 편안하다. 숲은 언제나 새롭다. 익숙한 길이라 해도 어제 보았던 풍경과 오늘 바라보는 풍경은 색다르다. 어제 보았던 꽃은 사라지고 오늘은 또 새로운 꽃이 나를 반긴다. 푸르던 열매는 어느새 빨갛게 익어 있기도 하고, 날씨에 따라, 시간에 따라, 숲은 시시각각 새로운 풍경을 펼쳐 보인다. 숲길엔 울퉁불퉁한 요철이 있고 굽이를 틀 때 마다 매번 새로운 풍경이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기쁨을 얻는 숲길을 걷는 것은 단순한 산책이나 운동이기 보다는 즐거운 자연탐구 생활이라 할 수 있다.

매일같이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열에 대지는 온통 더위를 먹고 뜨거운 입김을 불어내고 있다. 정말로 덥다.

일상이라는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순간들이, 그러한 반복들이, 딱히 뭐라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시간의 중첩적인 부산물들이, 무더위 앞에서 조금 새로워진다. 집안에서 24시간 돌아가는 에어컨은 지금은 서늘한 냉기를 토해내며 집안의 열기를 식혀주고 있다. 한가로운 오후, 점심을 먹고 난후 식곤증에 겨워 쏟아지는 졸음을 털어내며 서재로 들어왔다. 글을 쓴다. 써야할 글들이 많지만, 온 몸이 나른해서인지 손가락조차 움직이기 귀찮을 정도로 기운이 빠져있다. 글 쓰는 것이 집중이 잘 안 된다. 급히 일어나 뜨거운 물에 인스탄트 커피를 잔에 한 스푼 크게 떠 넣는다. 설탕을 평소보다 조금 많이 부어넣으면서 잔속의 커피에서 우러나오는 그윽한 커피향을 콧속깊이 들여

마셔 본다. 뜨거운 커피가 목구멍 속으로 깊이 깊이 스며들며, 무겁게 갈아 앉았던 기분은 Up되어서 이내 서서히 머리위로 떠오른다. 어느새 비워진 커피잔을 책상위에 올려놓으며 펜을 내려놓고 창밖을 내다본다. 바깥의 여름풍경은 같지만 모두가 각각 다른 여름 안을 지나고 있다.

지금 우리 곁에 멈춰 서있는 계절은 언제나 지나간 계절과 다가올 계절의 사이에 있다. 그래서 매번 새롭고, 때로는 버겁다. 살다보면 일상으로 편입되지 못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것은 삶을 소진시키거나 혹은 또 다른 순간에 대한 갈망으로 보다 역동적으로 만든다. 오늘은 문득 기록이란 일상의 바깥에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은 새로운 공간과 시간에 정박시킨다는 점에서…………며칠 전 어느 지인의 집을 방문했을 때다. 이렇게 무더운 여름철에는 시원한 음료가 제격인데 그분은 의외로 뜨거운 차를 내 왔다. 자기네는 언제나 이열치열의 방법으로 이렇게 무더운 여름에는 뜨거운 차를 즐겨 마신다고 했다. 처음 몇모금 마실 때는 답답하기 그지없었는데, 시간이지나며 그것이 더위를 잊는 좋은 방법임을 알게 되었다. 조금 전 나는 뜨거운 커피를 마셨다. 여름을 나는 방법은 모두가 제각각이다. 시원함을 찾거나, 더위를 잊거나, 혹은 그냥 여름은 원래 이렇게 더운거야 하거나….. 그 차이들은 뭘까?

이웃집 화단에 피어난 수국은 이렇게 무더운 여름날에 곱게 피어나 더위에 무기력해진 나에게 “더워도 여름날 시간은 흐르고, 피워야 할 꽃들은 피워내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유난히도 무더운 여름이지만 이 한때만을 위해 피어난 꽃들은 지천명(知天命=나이 50세를 한자말로 바꾸면 지천명)이라고 한다. 공자가 50세에 이르러 천명(天命)을 알게 되었다는 뜻에서 나온 말로 논어 위정편(爲政編)에 있다. 천명을 안다는 것은 하늘의 뜻을 알아 그에 순응하거나 하늘이 만물에 부여한 최선의 원리를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충설명을 더 곁들인다면, 사람의 나이 40까지는 주관적 세계에 머물렀으나 50세가 되면서 객관적이고 보편적 세계인 성인(聖人)의 경지로 들어섰음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풀이도 있다. 나이와 관련된 한자를 보면, 15세 지학(志學=학문에 뜻을 둠), 20세 약관(弱冠=결혼을 하여 어른이 됨), 30세 이립(而立=기반을 닦음), 40세 불혹(不惑=미혹되지 않음), 50세 지천명(知天名), 60세 이순(耳順=무슨 일이라도 이해가 됨), 70세 고희(古稀), 77세 희수(喜壽), 88세 미수(米壽), 99세 백수(白壽), 100세 상수(上壽) 등이 있다)의 도를 깨달은 모습이어서 아름답기만 하다. 아마 그래서 이해인 시인은 수국을 가리켜 ‘꽃잎마다 하늘이 보이고 구름이 흐르고 잎새마다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꽃이며 각박한 세상에서도 서로 가까이 손 내밀며 원을 이루어 하나 되는 꽃’이라고 했나보다.

내고향 내가 살던 집 옆, 조그마한 연못에는 해마다 하얀 연꽃이 피어나 장관을 이루었다. 여름은 연못에 연꽃과 수련이 피어나는 계절이다. 작은 연못에 피어난 어리 연은 작지만 우아하고 아름답다. 부는 바람이 만들어준 파문 위에 그림자를 띄워 목욕을 하는 작은 선녀같은 모습이다. 꽃에 비해 넓은 잎 위에 소금쟁이나 실잠자리에게 편안한 휴식처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어리’는 ‘어리다’의 의미로 작은 꽃이 마치 어린 연꽃처럼 보여서 그렇게 부르나 보다.

하얀꽃이 마치 눈송이 같다고 해서 영어로는 물 눈송이(Water Snowflake)라고 부른다. 자세히 보면 정말 눈송이 같아 여름의 더위를 식혀줄 것만 같다. 여름은 어쩌면 바삐 살아온 지난날들을 돌아보면서 천천히 쉬엄쉬엄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계절이라고 일러주는 것 같다. 나도 작은 어리 연처럼 누군가의 작은 그늘이 되어 보기도 하고, 누군가의 그늘 속에서 쉬어가기도 하는 여름을 보냈으면 좋겠다. 때로는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고 느껴지다가도, 힘든 일이 있을 때면 너무 느리게 가는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머지않아 이 지독한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리라는 확실한 희망이 있기에 이 여름을 견뎌본다.

우리네 삶에는 이처럼 힘든 시기가 밀려오곤 한다. 그래서 긍정적인 희망과 믿음을 갖는 일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8월은 7월보다 나으리라는 희망으로, 그리고 9월은 또 8월보다 더 나으리라는 희망으로 살아가게 된다.

숲가에 원예종 왕 원추리도 그런 희망을 바라보고 피어있을 것만 같은 무더운 여름이다. Sun Belt 지역으로 항상 햇볕이 많은 지역, 플로리다라고 하지만 열대지방이 되어버린 것만 같은 이 여름, 뜨거운 한낮의 태양을 피해 조용히 달빛을 맞으며 피어나는 달맞이꽃도 지속되는 열대야로 인해 어쩌면 몸살을 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밤마다 삶의 고뇌를 녹여내며 달빛을 닮은 꽃을 피워내는 달맞이꽃을 보며 꽃말처럼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올 그런 날들을 기다린다. 달맞이꽃의 꽃말은 ‘기다림’ 이며 달맞이꽃은 남미의 칠레가 원산지이다. 해가지면 꽃잎이 활짝 피었다가 아침햇살이 뜨면 오므라들기 시작한다. 달 만을 사랑했던 림프가 오랜 기다림 끝에 자신을 찾아 헤매던 달의 신 아르테미스를 끝내 만나지 못하고 죽어간 후, 무덤가에 피어난 달맞이꽃은 그녀의 기다림처럼 안타깝게도 2년만에 시드는 두해살이 풀 꽃이다. 오경옥 시인의 시에서 달맞이꽃은 ‘삶에 묻혀 말갛게 가라앉혀졌던 것들이 밤이면 가슴 가득히 환하게 피어나는 꽃’이 되기도 한다.

이 여름을 살아가는 야생초중에는 가늘고 약한 몸을 곧추세우고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강아지 풀도 있다. 너무도 흔하고 어디에나 자라나는 잡초이지만, 나에게는 늘 고향과 같은 정감이 가는 풀이다. 작은 바람에도 살랑이며 사랑스럽게 인사를 하는 강아지풀들도 이 여름의 지독한 더위에는 지친 모습이다. 벌써 가을을 기다리는 애타는 마음으로 초록빛을 잃어가고 있어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길가에 자라고 있는 강아지풀들과 잠시 하나가 되어 무더위 속에 머물러보았다. 하지만 잠시의 머무름만으로도 온 몸이 땀에 젖어있다. 강아지 풀들의 강인한 생명력에 감탄하면서 흐르는 땀을 주체할 수 없어 얼른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그늘이 되어주지 못한 미안한 생각을 마음 한 구석에 남긴채……….. 하지만 지독히도 더운 이 여름도 머지않아 지나가리라. 그리고 작열하는 태양 볕 아래에서 영글어가는 강아지풀들 씨앗들은 이 여름을 기억하면서 더욱 강인한 생명력으로 내년을 준비할 것이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1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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