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해 지고 밤이 되니, 이 생각 저 생각에 잠겨…

▲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에 – 빈센트 반 고흐

<김명열칼럼> 해 지고 밤이 되니, 이 생각 저 생각에 잠겨…

지구의 자전과 함께 해가지면 어두운 밤이 온다.

밤은 낭만적이다. 해질 무렵이면 나는 가끔씩 집에서 멀지않은 바닷가로 나가 수평선 너머로 숨듯이 사라져가는 태양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명상에 잠길 때가 있다. 하루종일 햇볕을 받아 온수로 변한 바닷물을 삼키며 침전하듯이 수면 아래로 빛을 감추며 내려가는 태양빛 주위에는 으례히 그렇듯이 빨간 저녁노을이 친구처럼 동반한다.

해질 무렵이면 이렇게 나와 한적한곳에서 저녁노을을 감상하는 것도 별미중의 별미 이다. 햇볕이 한풀 꺾이는 시간이 되면 모든 것에 진실해 진다. 힘들고 지쳐있는 삶을 다독이는 어머니 품 같은 밤이 되면 속상함도, 서러움도, 즐거움도 모두를 가감없이 털어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맘때 어둠이 땅위에 땅거미처럼 엉겨붙을 때면 한적한 산사(山寺)의 동종(銅鐘)이 울고 일찌감치 저녁공양을 마친 스님들의 염불이 고요한 산속의 적막을 깨고 은은하게 울려 퍼진다. 피로에 눅눅해진 거리에는 작은 불빛들이 하나 둘씩 켜지며 거리를 밝힌다.

왠지 모를 멀리 있는 정다운 친구를 향한 그리움과 삶의 아픔을 되새김질 하는 시간을 즐길 줄 알아서인지 늘 나만의 시간은 밤에 이루어진다. 어둠을 밝히는 거리의 불빛이 현란한 광고 사인의 조명과 함께 반짝이면 밤의 불빛을 좋아하는 족속들이 몰려와 거리를 배회하며 시끌벅적 소란을 떨면서 거리는 한층 더 활기를 띄고, 찬란했던 낮 시간의 영역을 사정없이 점령한다. 밤길을 걷는이의 모습도 제각기 다르다. 소금에 절여진 배춧잎 같은 무거운 발길을 내려놓기 위해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의 눈빛이 더욱 애잔해 보인다.

밥의 속도는 하절기와 동절기가 완연히 다르다. 낮의 길이가 밤의 길이보다 훨씬 긴 요즘 같은 여름은 낮이 길다보니 초저녁의 여유를 주지 않고 쏜살같이 깊은 밤을 몰고 온다 또한 낮이 짧은 겨울밤은 속도가 빨라 초저녁을 잘 다스려야 한다. 초저녁은 절정의 밤을 이어주는 서막이듯이 잿빛 어둠을 갈아 치우는 불빛이 하나 둘 무대를 펼치는 안무처럼 현란하고 분주한 밤손님을 안내한다. 취객들의 비틀거리는 발걸음과 고성방가로 무르익어가는 밤 시간임을 알수 있다. 술집의 밤은 솔직하다. 술기운이 몸속에 번지기 시작하면 얼굴빛부터 반응을 보인다. 잔이 부딪칠 때 마다 덮어둔 감정을 들추며 옳고 그름을 우기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연인들의 밤은 더욱 황홀하다. 흐릿한 불빛아래 사랑을 속삭이며 거리를 누비는 실루엣은 마치 연리지 나무처럼 뒤엉킨 것 또한 밤의 배려이다. 불안과 화해가 반복되면서 서로의 관계가 돈독해지는 것 또한 이러한 밤이다.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는 속설처럼 어두운 밤에도 수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일과 중 가장 피로감이 몰려오는 것도 밤이지만, 피로를 푸는 것 또한 밤의 문화다. 밤 시간은 어쩌면 위로를 받고 싶은 사람과 외로운 사람들의 공간이기도 하고 누적된 하루의 긴장감을 늦추는 가장 은밀한 안식처이다. 도시의 밤과 달리 교외의 밤은 너무나 적막하다. 다문다문 어둠을 안고 호젓하게 서 있는 가로등 불빛에 외로움이 흐른다.

도심과 농촌을 이어주는 경관은 밤이 더 매혹적이다. 불편한 시선을 끄는 허름한 건물과 쓰레기를 덮을 수 있는 어둠이 참으로 좋다. 나도 내 허물을 덮고 싶어서 이렇게 밤을 좋아하는지 모른다. 불빛을 타고 유유히 흐르는 강가에 모인 억새들의 춤사위에 마음이 흔들린다. 가을의 억새는 유난히도 고독과 쓸쓸함을 연상케 한다. 어둠 사이로 비추는 가을 달빛에 빛을 반짝이며 흔들리고 있다. 억새풀의 노래가 바람소리와 조화가 되어 강둑을 넘어 멀리멀리 메아리치며 사라진다. 아직은 가을이 멀었지만 이러한 밤에는 옛날 가을밤 강가를 거닐며 억새풀잎의 노래를 들으며 한없이 걸었던 옛 추억이 파노라처럼 머리속에 떠오른다. 이렇게 밤은 세월의 다리를 아무런 장애 없이 건너게 해준다.

어둠이 깊어지면 별은 영롱하게 더 빛나서 별들만의 세상을 드넓은 하늘위에 펼쳐낸다. 끝도 없이 펼쳐진 은하수를 바라보며 견우와 직녀가 일년에 한번 만나는 해후의 장소가 어드메쯤인가 나름대로 더듬거려 본다. 태양은 암흑 같은 어둠에 침몰되어도 또 다른 빛의 탄생을 위해 지구 저편에서 숨죽이고 있을 뿐이다.

감미롭게 흐르는 밤의 향기는 그윽하다. 혼돈의 공허도 내일을 위해 핀다. 인간사 필수로 따르는 불협화음도 고요히 잠들고 결핍된 자양분을 키운다. 이렇게 매일 밤의 깊은 자기 성찰이 자신을 더욱 성숙의 단계에 올려놓는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인류의 삶은 보다 더 편한쪽으로 진화되어가고 있다. 달나라에 가는 세상이니, 어쩌니, 우주선을 타고 궤도 밖의 무중력 상태에서 여행을 즐기는 억만장자들의 헤설픈 수다가 매스컴을 타고 세계적인 관심거리가 되어 회자되는 이때에…………..현실적으로 손에 닿는 것 하나하나가 문명의 혜택을 받지 않은 것이 없고, 이만하면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는 게 아닌가 싶은데도 하루가 멀다하고 신 기술, 신제품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발전 속도가 빨라진 만큼 사람들의 적응력도 덩달아 높아져서 이제는 정말로 획기적인 물건을 접해도 별로 감흥이 없거나, 놀라움이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우린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리모컨이 망가지면 TV도 보기 귀찮고, 비행기 탄것을 자랑하던 사람들도 없어진지 오래다. 휴대폰이 보편화 된지가 불과 20여년밖에 안되는데도,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는 게 실감나지 않을 정도다.

나는 간혹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이러한 물건들이 없었던 옛날 사람들은 불편해서 어떻게 살았을까. 이 문제는 또 어떻게 해결했을까? 하는 생각들………… TV드라마의 사극 등에서 보여지는 옛사람들의 생활모습을 보면, 물론 여러모로 불편해 보이는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그 시절 사람들만의 재미라던가 정취 같은 것들이 느껴진다. 오늘날 필수품의 빈자리가 의외로 그다지 크게 보이지 않는다. 어느날 그 시대로 뚝 떨어진다고 해도 지금의 지식을 활용해서 왠지 나름대로 잘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런데 진짜로 과연 그럴까? 손 닿는 곳에 있는 모든 것이 갑자기 사라져버린 삶이라는 것을 상상하기가 그리 쉽지만은 아닌 것 같다. 그중에서도 특히, 밤이 가장 그렇다. 해가지고 세상의 모든 빛이 사라지고 나면 어땠을까.

세상이 온통 지금의 가로등 없는 으슥한 밤거리처럼 캄캄했을까? 설마 아마도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말 그대로 칠흑 같은 어둠이었을 거다. 조명을 켜고 촬영을 하는 드라마속 사극의 어두운 밤거리는 그 당시 어디에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과 같이 조명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의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았으리라는 짐작쯤은 누구라도 할 수 있겠지만, 지금보다 조금 더 불편하던 불과 20여년전 이전의 생활조차도 망각하고 사는 현대인들이 백년, 이백년전, 혹은 몇백년전 사람들의 삶을 체감하기도 힘든 일이다. 그래서 추상컨데 이 시대 사람들의 밤의 생활은 정말로 고난의 연속이고 힘겹기 그지없으리란 생각이 든다. 이렇다보니 낮 동안의 모든 활동은 중단될 수 밖에 없고, 시각 정보의 대부분이 차단된 상황에서의 사고도 잦았다. 밤에 대한 온갖 미신과 헛소문이 떠돌았고, 특히 범죄에는 완벽하게 무방비 상태라서 밤에는 온갖 범죄자들이 판을 치고 살인사건도 대개는 이렇게 캄캄한 밤에 일어났다는 것도 충격적이다. 어쨋거나 오랜 옛날 과거에는 해가 진후 밤이 되면 이렇게 온갖 부정적인 단면들이 많았으나 오늘날에 와서는 밤이 그렇게 부정적이고 나쁜 것만은 아니다.

별들도 밤이 깊어 조는 듯 빛이 흐려지고 있다. 밤이 이슥해지고 자정을 향한 시계의 바늘은 재깍 재깍하며 한밤중의 자장가를 불러주고 있다. 모두가 잠이든 고요한 밤이다. 밤에 솟아나는 순수하고 깨끗한 열정, 자신의 촉신을 불태워 빛을 내고 있는 촛불처럼 생명의 연소로 누군가에게 따듯함과 빛을 주려는 선의(善義)가 샘물처럼 솟아오른다. 살아가기 위하여 자신만의 생존에 급급해 가슴이 식어가는 시대, 그리움으로 밤을 지새우는 일도, 쓰고 지우는 정성어린 편지는 이젠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꾹꾹 손으로 눌러 쓰는 편지지 위에 자신의 마음을 담아 정다운 이에게 보냈던 시절의 얘기는 이미 옛날 옛적의 이야기가 된지도 오래됐다. 그러나 시대가 문명이라는 수레에 올라타고 걷잡을 수없이 빠른 속도로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이미 우리의 삶을 에워싸고 있는 여러 가지 일 들은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가치와 의미가 담겨져 있음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이 삭막하고 인정이 메마른 세상에, 슬기와 지혜의 빵으로 배를 채우고 깨달음의 생수로 기갈을 풀게 하는 원동력은 기도이며 사랑이다. 사랑받고 있음으로 해서 사랑하는 일, 어렵고 억울함을 당한 이에게 보살피고 편들어 주는 마음으로 외로움과 비탄에 젖어 울고있는 이들의 곁에 머물며 꺼지지 않는 위안의 촛불을 어둠에 갇힌 그들의 마음과 가슴, 머리속에 밝혀주는 일이다.

존재의 고독, 그 깊고 깊은 심연에서 생명의 뿌리를 묵상하며 영의 현존 아래 기도가 샘솟게 되면 자기를 바로 살피게 되고, 생소한 타인들이 내 피붙이 같은 친밀한 이웃으로 여겨질 것이다. 이 깊은 밤, 영혼의 처소에 불을 밝히는 주님의 성령께서 이 밤 그대들을 위하여 축복하시고 쏟아지는 비처럼 은총으로 흠뻑 적시게 해 주시기를 손모아 간절히 축원해드린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1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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