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아름답고 소중한 인연

<김명열칼럼> 아름답고 소중한 인연

아름다운 인연을 만나는것은 서로의 향기에 취해 말없이 물들어 가는 것이다. 서로의 환경을 이해하고 서로의 색깔을 인정하면서 서로의 향기에 묻혀가는 것이다.

지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 중의 하나로, 그것은 아름다운 인연을 만나는것이고 그보다 어려운 것은 그 인연을 곱게 지켜가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사람은 인연인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그 인연을 살려낸다.

우리가 살아가는데는 어떤것보다 사람과의 인연을 잘 짓는 일이 중요하다. 때로는 나와 뜻이 맞지않아 하는 말마다 시비가 이루어지고 끝내 다툼이 있는가 하면, 때로는 나의 생각이 바로 저 사람과 맞아 말이면 말, 행동이면 행동, 서로가 죽착합착(竹着合着)이 되어 떨어지기 싫을 정도로 붙어있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런가하면 예전에는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인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마음이 통하고 서로의 의견이나 성격이 맞아서 좋아지는 인연도 있다. 또한 우연하게 만난 인연이 일생을 좌우하는 좋은 인연도 있다.

그 예를 소개하여 드리도록 하겠다.

어느 부유한 귀족 아들이 시골에 가서 수영을 하려고 호수 물에 들어갔는데 그만 갑자기 발에 쥐가 나는 바람에 수영은 커녕 물에 빠져죽을 지경에 처한다. 그가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것을 어느 농부의 아들이 듣고, 매일 수영을 연마했던 실력으로 그의 목숨을 구해줬다. 그들은 서로 편지를 주고 받으며 우정을 나누면서 어느덧 13세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해가 되었다. 귀족 아들이 물었다. “너는 커서 뭐가 되고싶냐?” 농부의 아들은 “나는 의사가 되고 싶어, 하지만 우리집은 가난하고 형제가 9명이나 돼서 집안일을 도와야 해” 라고 말했다.

귀족아들은 가난한 시골 소년을 돕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마침 귀족아들의 가족들은 런던으로 가게 되었다.

아버지를 졸라서 시골아이도 런던으로 데려가게 되었다.

그 후 시골아이는 열심히 공부해서 런던의 의과대학에 다니게 되었고, 그후 포도상구균이라는 세균을 연구하여 페니실린이라는 기적의 약을 만들어 냈다. 이 사람이 바로 1945년 노벨의학상을 받은 알렉산드 프레밍이었다. 그의 학업을 도와준 귀족아들은 정치가로 뛰어난 재능을 보이게 되어 26세 어린나이에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런데 이 젊은 정치가가 나라의 존망이 걸린 전쟁중에 폐렴에 걸려 목숨이 위태롭게 되었다. 그 무렵 폐렴은 불치병에 가까운 질병이었다. 그때 알렉산드 프레밍의 페니실린이 급송되어 그의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렇게 시골소년이 두번이나 생명을 구해준 귀족의 아들은 다름 아닌 민주주의를 굳게 지킨 윈스틴 처칠 경이었다. 우연한 기회로 만난 우정이 두번씩이나 목숨을 지켜주고 세계적으로 훌륭한 의사를 만들어 낸 아주 보기 드문 아름다운 인연이다.

세상의 속담중에 이러한 말이 있다. ‘한번 맺은 인연은 영원하다’ 오늘 목마르지 않다고 하여 우물물에 돌을 던지지 마라. 오늘 필요하지 않다고 하여 친구를 팔꿈치로 떼밀지 마라. 오늘 배신하면 내일은 배신당한다.

사람의 우수한 지능은 개구리 지능과 동률을 이룰 때가 많다.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까맣게 잊듯, 사람들도 자신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을 까맣게 잊고 산다. 그러다가 다시 어려움에 처하면 까맣게 잊고 있던 그를 찾아가 낯 뜨거운 도움을 청한다. 이게 개구리와 다를게 뭐가 있는가?. 비 올 때 만 이용하는 우산처럼 사람을 필요할 때만 이용하고 배신해버리는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한다.

우물물은 언제고 먹기 위해서는 먹지 않는 동안에도 깨끗이 관리해 놓아야 하듯이, 필요할 때 언제고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필요 없는 동안에도 인맥을 유지시켜 놓아야 한다. 지금 당장 도움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무관심하거나 배신하면 그가 진정으로 필요할 때 그의 앞에 나타날 수가 없게 된다. 포도알맹이 빼 먹듯 필요할 때만 이용해먹고 배신해버리면 상대방도 그와 똑같은 태도로 맞선다. 한번 맺은 인연은 소중히 간직하여 오래도록 필요한 사람으로 남겨두는 것이 좋다. 내가 등을 돌리면 상대방은 마음을 돌려버리고, 내가 은혜를 저 버리면 상대방은 관심을 저버리며, 내가 배신하면 그는 아예 무시하는 태도로 맞서버린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창조적 섭리에 따라서 인연이 만들어지고, 그 인연을 따라 소멸하는 인연생기의 법칙이 있다.

그리고 인연생기의 법칙은 이 세상 유정이나 무정의 그 어느 존재라 하드라도 인연의 법칙에서 예외적으로 벗어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삶은 환경에 따라 많이 변화되고 그 변화속에서 많은 인연들을 만들어 간다. 사람들은 싫은 것은 버리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나 지금 내게 다가온 삶의 환경들은 내가 버린다고 해서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이 삶은 나에게 주어진 내 인연인 것이다. 인연은 그 인연에 따라 잠시 오고 가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머무르지 않아 무상(無常) 타고 말하고, 거기에 어떤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무아(無我)하다라고 말하며, 무상과 무아의 일체는 괴로움(苦) 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삶은 무상과 무아속에서 괴로움을 겪으며 단련되어가는 것이며, 이 단련은 후일과 미래에 더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인연은 자신의 자아 안에서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좋은 인연을 만들어나가고자 할때는 나 스스로의 두껍게 문을 닫았던 교만과 아집을 버리고 새롭게 다가오는 인연을 향해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기쁘게 맞이해야 한다.

사람과 사람끼리 살다보면 어느날 우연히 어느 사람을 만나게 된다. 만남이라고 하면 금방 떠오르는 말이 인연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것은 모두 다 인연이고, 사람이 사물과 만나는 것도 인연이다. 장사를 해본 사람은 안다.

수십, 수백, 여러명이 물건을 보고 가지만 마지막에 물건을 갖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그래서 각물유주(各物有主)라고 하는 것이다. 불가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삼생의 인연’ 이라고 한다. 삼생(三生)은 전생, 현생, 내생이니, 옷깃만 스쳐도 80곱하기 3은 240년의 인연이라는 것이다. 또 부부의 인연은 3000겁의 인연이라고 본다. 1겁은 무한대의 시간인데, 3천겁 이라면 영원에 가까운 세월이다. 유행가의 가사중에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라는 가사가 있는데 기실 모든 만남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 이다. 그런데 만남을 잘 가꾸어 선연으로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악연으로 괴로워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가고 있다. 가깝게는 가족과 이웃, 직장동료, 그리고 지나가면서 옷깃을 스치는 알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불교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스쳐 지나가는 인연들 모두가 우연의 인연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스치고, 만난다는 것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시간, 어쩌면 우리가 상상하기조차 불가능한 시간동안 기다린 아주 소중하고 어렵고 귀한 인연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 인연들을 소중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지내고 있다. 나와 마음이 맞지 않는다고 배척하고,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무시하고, 미워하며 지내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특히 부모와 자녀, 직장에서 상,하관계가 형성 될 때는 더욱 그러하다. 이는 복지정신에 맞지 않는 것이다. 복지는 다 함께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인연속에 함께 하는 이들과 동행이 되기 위해서는 동반자들이 내 뜻을 따르길 바라기보다는 내가 동반자들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나만 옳고 다른 이들이 틀렸다고 하기 보다는, 나와 다르다고 인정을 해야 한다. 그 인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자기 자신이고, 스스로 인정을 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는 것이다.

불교에 애별이고(愛別離苦)라는 말이 있다. 좋은 인연속에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고통을 이르는 말이다. 살아서 헤어지든, 죽어서 헤어지든 인연을 맺고 사랑을 나누던 사람과의 이별은 인간세상의 가장 큰 고통일 것이다. 헤어지는 것만이 고통이 아니다. 때로는 만나는 것(악연)도 고통이 될수 있다. 원증회고(怨憎會苦)라고 한다. 원망하고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는 것이 고통이라는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는 것이 고통이기에 그 고통을 피하기 위하여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지 않으려고 하고,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가능한 것은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는것이다. 자기 자신이 스스로 미워하는 마음을 없앤다면 원증회고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고, 고통에서 벗어난 삶이 행복한 삶이 되는 것이다.

지금 내 주위에 스쳐가는 사람들, 나와 함께 대화를 나누고 나와 함께 같은 공간에서 지내는 사람들, 나와 함께 식사를 하고 한 지붕밑에서 사는 사람들, 나와 인연을 맺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참으로 귀하고 소중하며 필요한 사람들이다. 이 모든 사람들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인정할 때, 또 함께 공존할 때, 내가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며 우리들의 사회가 살기 좋고 즐겁고 명랑한 복지의 사회가 이루어지는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1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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