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의 재미있는 커피 이야기<1>

김명열의 재미있는 커피 이야기<1>

6.25 전쟁이 일어난 1950년대 초, 내가 소년시절 살았던 내 고향마을 시골 농촌에서는 커피라는 단어조차 아예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도대체 이 커피가 무슨 물건인지? 어떤 상품의 이름인지, 또는 먹는 음식인지? 등등 이러한 의문점 투성이의 이 커피는 한국전에 참전한 미군들에 의해서 알려졌고 전해졌으며, 그들로 인해 난생처음 커피라는 기호품을 보게 되었고 알게 되었으며, 마시는 음료라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나 역시도 어린 소년시절이었지만, 그 당시 나의 나이 또래 아이들 중에서는 가장 먼저 커피맛을 본 커피 시음의 선구자? 라고 할 수 있다. 그 당시에는 그것이 커피라는 차 종류의 음료수라는 것을 모르고 그저 다만 미군들이 공짜로 주는 식용품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덮어놓고 호기심 어린 감정속에 한갖 과자의 일종이려니 생각하며 ‘개머루 먹듯 먹었다’ 너무나 쓴 맛에 인상을 찌프리며 이내 곧바로 입 밖으로 내 뱉었던, 머나먼 이국땅 미국 양키들이 먹는 기호식품으로만 생각했었다.

그러한 커피가 오늘날에 와서는 나의 생활속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음료수(차) 라는 것을 새삼스레 느끼며, 그 시절 그 옛날 아득한 세월속의 추억과 기억을 더듬으며 커피에 대한 여러 가지 재미난 이야기들을 지면위에 옮겨보고자 한다. 커피 하면 오늘날 우리들의 문화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필수품이 되다시피 했다. 내가 처음 커피 맛을 본 것은 동족상쟁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한국의 6.25전쟁 때이다. 그 당시 나는 코흘리개 어린 시절이었다.

북한의 남침으로 인해 6.25전쟁이 발발하고,(한국의 일부 주사파나 전교조및 좌빨들은 6.25전쟁이 북침이라고 어거지를 부리는데, 이들의 어불성설인 상투적인 속임수 내지 세뇌교육에 현혹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물밀듯이 몰려오는 인민군과 중공군을 막고 쳐부수기 위해 불가항력적으로 유엔군, 16개국이 참전을 하고 그중에 주전군(主戰軍)이 된 미군은, 1950년 6월27일 부터 1개 야전군 규모로 한국전쟁에 참전하였으며 총 참전군은 1,789,000명이었고, 그중에 전사자 36940명, 부상자 92134명, 실종자 3737명이 피해를 입었다.

전쟁기간동안 대표적인 전투로는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인 오산 전투를 비롯하여 대전 전투, 낙동강선 방어 전투, 인천 상륙작전, 서울 및 평양 탈환작전, 장진호 전투, 흥남 철수작전, 벙커고지 전투, 그리고 저격능선 전투 등이 있다.

역사적으로 봐도 참으로 가슴 아픈, 이렇게 수많은 전사자와 부상자를 내며 우리나라를 구해준 유엔사 참전국 여러 나라와 특별히 우리들이 이민와서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 이곳 미국에서 참전한 모든 용사 여러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 당시 (6.25전쟁 당시) 내가 살고 있던 고향 땅은 아군과 적군이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는 전쟁터의 중심지였다. 밀리고 쳐들어가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악 순환속에서 내가 사는 동네 옆의 드넓은 들 벌판에는 미군 주둔군들이 캠프 본부를 만들어 진을치고 잠시 동안 머물고 있었다. 이들이 진을 치고 있는 캠프주변 울타리 철조망 너머로 우리네 꼬마들이 호기심어린 눈으로 몰려가면 그곳의 미군들은 우리 어린이들에게 쵸코렛이나 캔디, 과자, 잼, 식빵, 우유가루, 커피, 휴지 등등을 갖고 나와 어린이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우리 어린이들은 그렇게 공짜로 주는 물품들을 얻기 위해 거의 매일같이 그곳 캠프를 찾아가 군인들을 향해 손을 내밀곤 했다. 여러번 찾아가다보니 이제는 영어도 배워서? ‘기브미 쵸코렛, 기브미 챱챱 등’ 몸짓 발짓 등의 바디 랭귀지 까지 통 털어 손을 내밀다 보면, 그네들은 어느새 우리 꼬마아이들이 무엇을 달라고 하는지를 알아차리고 깡통에 들은 통조림이나 과자류, 버터, 우유, 커피 등등을 꼬마들이 내미는 손위에 얹어주기도 했다. 그 당시 미군들에게 얻어먹은 많은 물품 중에는 커피(인스탄트 가루커피)도 있었는데, 작은 포장지 안에 짙은 밤색을 띈 커피가루는 어느 때는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그만 딱딱하게 굳어버려서 그걸 멋도 모르고 과자인줄 알고 꺠물어 먹었다가 너무나 쓰디 쓴 맛에 그만 얼굴을 찡그리며 “아이고 써라. 너무 쓰다 써”하고 이내 퉤퉤 하며 침 뱉듯이 입 밖으로 내뱉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러한 광경을 본 어른이나 친구들은 손바닥을 치며 좋아라고 배꼽을 잡고 웃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어느 친절한 미군이 하우스보이(캠프내 잔심부름을 하는 사함)인 한국계 15~6세 되는 소년을 대동하고 나와서 친절하게 커피를 어떻게 해서 마시는가를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그 이후 우리 동네 사람들은 뜨거운 물에 미군들에게서 얻어온 설탕을 넣고 커피를 타 넣어 마시는 법을 배웠다. 그래서 툭하면 자랑삼아 커다란 대접에 커피와 설탕을 타 넣고 숭늉이나 막걸리를 마시듯이 후루륵 후루륵, 벌컥 벌컥 마시기도 했다. 그러고는 커피의 씁쓰레한 맛을 참으며, 막걸리를 마시고 난 후처럼 “크 ~ 아! 맛 좋 타 아…….!”하면서 입가를 닦아내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우리 동네 사람이나 인근의 마을 사람들은 커피 맛을 처음 맛보게 되었다.

우리 동네 옆 넓은 들판에 진을 치고 있던 미군들은 그곳에서 약 3개월정도 머물다가 어디론가 북쪽을 향해 밤사이 떠나가 버렸다. 그들은 세상에서 처음으로 커피 맛을 보게 해준 은인(?)들이다.

그들이 그곳을 떠나간 이후 십여년동안 커피 맛을 못 보다가, 나중에 서울에 유학차 올라와서 학교 친구들과 광화문의 어느 빵집에서 오랜만에 커피 맛을 보게 되었다. 오늘날 이 커피는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될 필요한 기호품이 되었다. 심지어는 한국의 시골 농촌에서도 이제는 농사를 짓는 농부들에게도 커피는 빠질 수 없는 생활속 음료수가 되었다고 한다. 시골의 논,밭에서 농부들이 일을 하다가 핸드폰으로 읍.면소재지에 있는 다방에 전화를 걸어 커피를 주문하면 불과 몇십분 안에 다방의 종업원 아가씨가 배달 커피를 들고 농사일을 하는 현장까지 찾아와 커피 서비스를 해준다고 하니 세상이 변하기도 참으로 많이 변했다. 옛날 내가 고향에서 살던 때와 비교하면 옛날 그때는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이 되었다. 한 여름의 무더위가 정점으로 치닫고 있는 요즘, 농촌의 정자나무아래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 풍경 하나, 볕이 따가워지기 전인 아침나절에 서둘러 들일을 마친 농부들은 해가 중천에 이르는 한낮이면 수박이랑 참외랑 챙겨들고 마을 정자에 모여 망중한을 즐기게 마련인데, 이때 빠지지 않는 것이 있으니 바로 시원한 냉커피다.

우리나라 커피 역사는 1896년 아관파천(을미사변 이후 일본군의 공격에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과 왕세자가 약 1년간 왕궁을 떠나 러시아 공관으로 거처를 옮긴 사건)때 고종황제가 처음 마시며 시작됐다. 120여년 남짓한 세월이 흘렀으니 꽤 오랜 역사를 가진 셈이다. 물론 커피가 일반에게 널리 보급되기 까지는 그로부터 꽤 많은 세월이 필요했다. 해방 무렵 만해도 미국의 원조물품 속에 든 커피는 우리 식생활과는 궁합이 맞지 않아 그냥 버리기 예사였다. 하지만 구수하면서도 향긋한 커피 향은 서서히 도시민들의 입맛을 유혹했고, 마침내 식사후나 손님이 방문할 때면 으례 내놓는 기호식품으로 자리 잡았다. 도시민들의 전유물이었던 커피가 농촌에도 널리 퍼지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에 들어서다. 농촌의 커피문화를 주도한 것은 다방이었다. 농산물 판매 등으로 호주머니에 잠간이나마 여유가 생긴 농부들은 평소 점찍어 놓았다가 들른 읍내 다방에서 맛본 커피 맛을 잊지 못했고, 이후 면 소재지에도 하나 둘씩 다방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렇게 남정네들로부터 비롯된 농촌의 커피문화는 자연스레 각 가정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농촌 가정에 커피세트 하나 구비해놓지 않은 집은 없다. 식후에는 숭늉대신 응당 커피를 마시며, 새참을 나갈 때도 꼭 챙긴다. 1990년대로 들어와서는 커피와 설탕, 프림을 한데 섞은 커피믹스가 보편화 되면서 커피의 이용이 한결 더 수월해졌다. 집집이 커피를 애용하다 보니 커피 세트는 명절날 시골 친,인척을 찾아뵐 때 건네기 좋은 선물로도 각광받고 있다.

한편 농촌에 커피가 정착하는 과정에서 ‘티켓다방’이라는 썩 달갑지 않은 문화도 등장했다. 요즘도 농촌에서는 전화 한통이면 짧은 옷차림을 한 다방 아가씨가 비닐하우스 논밭 한가운데 까지 커피를 배달하는데, 이것은 커피와 관련된, 커피 입장에서는 다소 불명예스러운? 농촌의 향락문화 이기도 하다. 이렇게 배달을 온 아가씨와 썸씽이 생겨서 가정 파탄이 나고 동네방네 소문이 나서 개 창피를 당한 시골의 순진한 농부들이 많이 생겨나서 사회의 문제로 까지 번지기도 했다.

어쨌거나 커피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서, 농촌에서 즐겨 마시는 커피의 특징은 커피, 설탕, 프림 모두를 듬뿍듬뿍 넣은 ‘양촌리 커피’라는 것이다. 농촌을 소재로 한 드라마 ‘전원일기’ 속의 배경 마을인 양촌리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고상함을 떨지 않는 촌스러운 커피라는 뜻이다. 여기에 얼음을 띄우면 바로 시원한 갈증 해소 음료가 되니, 요즘 농부들은 한여름이면 미숫가루나 식혜, 수정과를 대신해 한 대접씩 냉커피를 즐긴다.

커피속에 든 카페인이 건강에 해롭다는 둥, 실은 괜찮다는 둥, 말이 많지만 아무튼 이제 커피는 산간 오지 깊숙이까지 파고든 국민음료가 됐다. 최근 들어서는 필리핀, 베트남, 러시아 등 커피 문화권에서 시집온 여성 결혼 이민자들과 도시에서 귀농한 가정이 늘어나면서 농촌의 커피문화도 많이 세련돼지고 다양해졌다. 또한 모를 일이다. 여성결혼이민자들과 도시 출신농부들의 활약에 따라 다시 몇십년 후면 농촌이 도시의 커피문화를 능가 할지도……………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1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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