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나쁜 공직자들(한국의 이야기)

<김명열칼럼> 나쁜 공직자들(한국의 이야기)

불의에 대한 분노는 주권자인 국민들의 특권이자 의무이다.

세상의 부정과 비리, 악행이 사회를 어지럽히며 악한 세상이 판을 칠때, 악이 승리하는 조건은 선한 사람들이 침묵을 하고 있는 것이다. 눈앞의 불의와 부정을 못 본 척 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죄악이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어느 추운겨울에 농부가 길을 가다가 추위에 떨고 있는 독사를 발견했다. 농부는 측은한 마음에 뱀을 집어서 따듯한 옷 속 품안에 넣었다. 잠시 후 따듯한 온기에 생기를 찾은 뱀은 그만 농부를 물고 말았다. 농부는 독이 온몸에 퍼져서 죽어가면서 “아 ~ 사악한 것에 동정을 베풀었더니 이 지경이 되었구나”라고 탄식했다. 그러자 뱀이 말했다. “나를 너무 원망하지 마세요. 제 본성이라 어쩔수 없었습니다”.

지금 좌파가 판을 치고 있는 한국 좌파의 남의 탓 타령은 뱀의 본성처럼 고치기가 힘든 고질 같다. 그들은 모두가 골고루 잘사는 지상낙원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공산 혁명에 성공한 레닌은 “곧 모든 인민의 집에 황금 변기가 놓이는 시대가 온다”고 외쳤다. 이것도 도저히 실현될 수 없는 허언(虛言)이다. 난관에 봉착하면 그들은 본색을 드러낸다. 부르조아, 반동 탓, 제국주의 방해 탓으로 돌리면서 끊임없이 희생양을 찾는다. 현재 한국 집권 정부의 끝없는 “내로남불”도 이러한 고질에 뿌리를 두고 있다. 집권층은 자기들의 잘못을 딴 데로 돌리는 데는 프로 선수다.

경기 악화는 통계 탓이고, 일자리 부진은 발목을 잡는 야당 탓이며, 국가의 부채는 각 언론들의 과장 탓이고, 집값(부동산) 폭등은 전 정부의 탓이다. 윤미향 의원의 일본군 위안부들에 대한 추문은 토착왜구의 준동으로 돌리고,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불미스러운 가족들 스캔들은 적폐세력의 반동으로 몬다. 전 추미애 법무부장관 아들의 ‘황제복무’의 의혹을 놓고도 공익제보자를 범법자로 낙인찍고, 의혹 관련자들을 궤변으로 감싸는 일이 벌어졌다. 악이 선으로 둔갑돼 흙탕물 세상이 된 것 같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사회의 구석구석에 부정과 비리가 만연하고, 도덕과 윤리와 규범이 무너지고 있음을 보아왔다.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 사람들과 힘 있는 자들의 탐욕이 어우러져 마치 부정의 경쟁이라도 하듯 배불리기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 같다. 그들의 배불리기 경쟁 싸움에서 우리 민초들은 언제나 희생을 강요당해왔고, 그들의 무대를 빛내주는 말없는 관객이 됐을 뿐이다. 우리 사회에는 ‘내 탓이요’하는 사람이 없다. 어떤 문제가 터지면 소관부처를 따지고 오직 ‘네 탓이요’하고 책임전가에만 혈안이 되어있다. 이런 정치판의 모습을 본 어느 중견기자가 하는 말 “상당수 정치인들이나 공직자 상당수는 역량이나 덕망도, 철학도 없는 것 같다”며 그들은 개인적인 부귀를 위해 권력의 주변에서 눈치나 살피고 있다가 기회만 있으면 이권에 개입해 돈이 되는 일이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뛰어들고 있다”고 목청을 높였다. 하지만 뇌물, 부정, 비리, 이권, 축적 등의 각종사건에 연루된 공직자들은 “관례로 돼있는걸 가지고 웬 야단들이냐”고 항변한다. 이 말을 우리네 민초들은 과연 얼마나 믿을지 궁금할 뿐이다.

고위 공직자는 고위공직자대로, 하위 공직자는 나름대로 민원인과 결탁하여 부정한 먹이사슬에 얽매어 부패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게 오늘날의 현실인 것 같아 보는 사람의 마음만 안타까울 뿐이다. 공직자의 부정과 비리는 우리사회에서 아주 흔한 범죄유형이다. 또한 슬픈 것은 이 땅의 상당수의 재산가들은 옳지 않은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고는 그것을 무기로 온갖 부정적 가치를 만듦으로 오늘과 같은 가치 혼돈의 사회가 되게 하였다는 점이다. 그들로 인해서 나라의 경제가 흔들리고 정치판조차 난장판이 된 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언제부턴가 우리사회는 부자가 되는 것은 선(善)이고 가난한 것은 악(惡)으로 정의되고, ‘부자가 되라’는 말은 덕담으로 널리 통용되고 있다. 이러한 세론(世論)은 사람에 따라 공감도가 다를 수도 있지만 틀린 말은 아니라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생각이다. 그렇듯 우리사회는 부(富)는 평가를 하면서 가난은 아름답게 보려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옛날 조선시대의 공직자들이 지켜야 할 규범으로 사불 삼거가 있었다고 한다.

사불(4不), 즉 공직자(公職者)로서 하지 말아야 할 네가지는, 一不(부업을 갖지 않는다). 二不(땅을 사지 않는다). 三不(집을 늘리지 않는다). 四不(재임지의 명산물을 먹지 않는다). 다음으로 삼거(三拒)로, 공직자로서 거절해야 할 3가지이다. 一拒(윗사람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한다). 二拒(부득이 요구를 들어줬다면 답례를 거절한다). 三拒(경조사의 부조를 거절한다).

연산군 시대에 청백리 윤석보(미상~1505)의 일화이다. 윤석보가 풍기군수 재임시절 본가에 남은 부인이 궁색한 살림에 밭농사라도 짓고자 세간을 팔아(아내가 시집올 때 가져온 비단옷을 팔아 채소밭 한뙈기를 샀다) 약간의 땅을 샀는데, 이 소식을 전해들은 윤석보는 국록을 받는 공직자의 도리가 아니라 여기고 바로 사직을 청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공직자들이 불문율처럼 여긴 사불(四不) 삼거(三拒)의 규범을 몸소 실천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그동안 한국의 정부기관 공직자들이 부정부패로 인하여 국민들에게 실망과 좌절감을 안겨준 것이 수도 없이 많았었는데, 최근에 또 한국토지공사(LH) 직원들이 미공개 정보를 빼내 부동산 투기를 해온 사실이 밝혀져 국민들을 다시 한번 분노케 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각종 비리사건에 연루된 장관이나 차관, 국회의원은 물론 대통령을 보좌해온 청와대의 비서진들까지 이에 뒤질세라 부정을 저지르고 있는 실정이니 국민들이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로 인하여 얼마전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여당과 문재인정부가 참패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결과를 보면 당연히 잘못을 저지른 댓가를 톡톡히 치루고 뜨거운 맛을 보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아직도 이 정부의 여러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공직자들의 비리와 부정은 아직도 척결되지 않고 보이지 않게 자행이 계속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탐관오리들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조선시대 한 아전(衙前=조선시대 중앙과 지방의 각 관청에 근무하던 하급관리)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조선 영조때 호조 서리를 지낸 김수팽 이라는 전설의 아전이 있었는데, 그는 청렴하고 강직한 일화를 남겼다. 호조판서가 바둑을 두느라고 공문결재를 미루자 김수팽이 대청에 올라가 판서의 바둑판을 확 둘러엎어버렸다. 그러고는 마당에 내려와 무릎을 꿇고 “죽을죄를 졌으나 결재부터 해 달라”고 하니 판서도 죄를 묻지 못했다고 한다. 또한 어느날 김수팽이 숙직하던 밤, 대전 내관이 왕명이라며 10만금을 요청했다. 그러나 그는 왕명인데도 시간을 끌다가 날이 밝고서야 돈을 내주었다고 한다. 야간에는 호조의 출납을 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내관이 사형에 처할 무엄한 일이라고 했으나, 영조는 죄를 묻기는커녕 오히려 김수팽을 기특히 여겨 상을 내렸다고 한다. 김수팽의 아우 역시 아전이었다. 어느날 그가 아우의 집에 들렀는데 마당 여기저기에 염료통이 놓여있었다. “아내가 염색업을 부업으로 한다”는 동생의 말에 김수팽은 염료통을 모두 엎어버렸다고 한다. “우리가 나라의 녹을 먹고 있는데 부업을 한다면 가난한 사람들은 무엇으로 먹고 살라는 것이냐?”며 엄하게 나무랐다고 한다. 이러한 김수팽의 일갈에는 조선시대 관리들의 청빈한 정신이 담겨있다. 조선의 관료들은 四不 三拒를 불문율로 삼았다고 한다.

또 한 예로서 청송부사 정봉은 영의정이 꿀과 잣을 보내달라고 부탁하자, “잣나무는 높은 산위에 있고 꿀은 민가의 벌통속에 있다”고 답을 보냈다고 한다. 우의정 김수항은 그의 아들이 죽었을 때 무명 한필을 보낸 지방관을 벌주었다고 한다.

얼마전 문재인정부의 관료, 장 차관 및 고위 공직자들의 청문회를 보면 공직사회에서 사불 삼거의 전통은 완전히 사라지고 사필(四必)이 자리를 잡은듯 하다. 그 사필(四必)은 위장전입, 세금탈루, 병역문제, 부동산투기 등의 네가지 요건을 갖추지 않으면 고위 공직자후보가 되기 어려운 현실이 아닌가 비꼬기도 한다. 특히나 위장전입, 부동산투기, 세금탈루는 명백히 불법인데도, 불법을 저지른 장관이 불법을 뿌리 뽑겠다고 오히려 큰소리를 치니 이 같은 코미디 쇼가 따로 없다. 공직사회의 부패가 이 지경이 되다보니, 조선시대에 청렴결백한 관리를 양성하고 장려할 목적으로 실시했던 ‘청백리 제도’라도 다시 도입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조선시대 방촌 황희정승, 퇴계 이황, 고불 맹사성 등은 사사로운 개인의 이익은 뒤로 하고, 오로지 백성만을 위해 충성과 헌신봉사로 오늘날 후손들에게 존경받는 청백리(淸白吏)의 표상으로 귀감이 되고 있는 점을 의미 있게 되짚어 볼 일이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1265>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