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낮에 나온 반달

<김명열칼럼> 낮에 나온 반달

오늘 오후에 산책을나와 우연히 하늘을 올려다보니 하얗게 빛을띈 반달이 파란 하늘위에 높이 떠 있다. 높은 하늘 어느자락에 걸린 낮에 나온 반달을 보자니 ‘낮에 나온 반달’이란 동요가 생각나 어렸을때 동무들과 함께 즐겨 불렀던 낮에나온 반달의 노래를 입속에서 흥얼거려본다.

달은 밤하늘에 떠올라야 제격이고 많은 사람들이 쳐다봐주는데, 낮에 뜨는 달은 파란하늘을 배경으로 떠있지만 봐주는 사람이 없으니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는것 같다. 반달이 주는 정서는 아무래도 망월에 향한 그리움이나 소망을 나타내지 않나 싶다. 그래서 고요하고 파란 빛을 배경색으로 떠있는 반달은 보기에 따라 햇님이 쓰다버린 쪽박 같기도 하고, 꼬부랑 할머니가 물 길러갈 때 들고 가는 물동이 같기도 하고, 서쪽나라를 향해 가는 하얀 쪽배 같기도 하며, 햇님이 쓰다버린 신짝 같기도 하다. 그래서 아장아장 걸어가는 우리 아기에게 신겨줬으면, 하는 그리움과 소망을 담아내기도 하는 것 같다.

여러분께서는 이미 다 알고 머리속에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을 우리나라 동요 ‘낮에 나온 반달’의 가사를 참고로 소개하여 드리도록 하겠다.

1)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햇님이 쓰다버린 쪽박인가요, 꼬부랑 할머니가 물 길러갈 때 치마끈에 딸랑딸랑 채워줬으면, 2)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햇님이 쓰다버린 신짝인가요, 우리아기 아장아장 걸음 배울 때 한발 짝에 딸각딸각 신겨줬으면, 3)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반달은 햇님이 빗다버린 면빗인가요 우리 누나 방아 찧고 아픈 팔 쉴 때 흩은 머리 곱게 곱게 빗겨줬으면.

이 곡은 동요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윤석중(1911~2003) 선생님이 지은 7.5조의 동시(童詩)를 한국의 악성(樂聖)으로 불리는 홍난파 선생님이 작곡해서 1927년에 발표한 명곡 동요이다. 우리들이 어렸을 때, 국민학교(초등학교)시절 불렀던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이 동요를 직접 불러보았거나 심지어 들어본지도 꽤나 오래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깨어있을 때도 꿈꾸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쓰여진 이 가사는 낮에 나온 반달을 ‘햇님이 쓰다버린 쪽박’이나 ‘신다버린 신짝’ 또는 ‘빗다버린 면빗’에 비유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동요가 1924년에 발표된 윤극영 선생님의 ‘반달’,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이니까, 이 동요는 매우 초기의 동요작품에 속한다. 동요는 3.1운동 이후의 좌절된 민족의 설움과 울분을 어린이운동으로 승화시켜서 자주독립정신을 일깨우고 민족운동으로 발전시키려는 의도로 시작되었다. 즉 민족운동의 수단으로 어린이운동이 시작되었고 그 표현수단을 동요에서 찾았던 것이다. 초기에는 찬송가나 일본군가 곡조의 우리말 가사를 붙이고 창가(唱歌)라고 불렀다. 초창기 동요의 노랫말은 내용이 암시적이고 사회성이 강했기에 ‘반달’도 금지곡으로 탄압받았고, 40년대 초부터 해방때까지는 일체의 동요작곡이 금지되었을 뿐 아니라, 우리말로 동요를 부르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시대를 반영해온 동요는 해방 후에 나라를 찾은 감격에 ‘새나라의 어린이’, ‘어린이 행진곡’ 등이 나왔고, 통일의 염원을 담은 ‘우리의 소원’이 나왔다. 6.25전쟁중에는 전시 동요로 ‘우리공군 아저씨’. ‘대한의 소년’, ‘간호언니의 노래’ 등이 나왔다. 그리고 휴전 뒤에는 거칠어진 정서를 순화하기위한 노래들이 주류를 이뤘다.

하지만 동요는 약 50년의 전성기를 끝으로 CM송이나 대중가요에 밀려서 음악시간에나 들을 수 있고, 아이들도 잘 부르지 않는 노래가 되고 말았다. 어린이도 인기 아이돌의 노래나 어른 노래를 몸을 비꼬고 흔들어대며 불러야 귀여움을 받는 한심한 세태가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어린이 합창단’이나 ‘어린이 노래자랑’ 또는 창작 ‘동요대회’도 실종된 지 오래이다.

참고로 이 낮에 나온 반달 동요의 작사자인 윤석중 선생님은 한일합방 이듬해에 8번째 자녀로 태어났다. 선생님은 두 살때 어머니를 여의고 외조모 밑에서 자랐는데 형과 누나들이 모두 어릴때 세상을 떠나자 “돌처럼 무겁게 오래 살라”는 뜻으로 석중(石重)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외톨이로 문학에 심취했던 선생님은 1925년 제1회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극 ‘올빼미의 눈’으로 등단했고, 어린이 잡지에 ‘오뚝이’로 입선했다. 소파 방정환 선생께서 그의 능력과 열정을 인정하여 개벽사가 발간하던 ‘어린이’지의 부록인 ‘어린이 세상’을 맡겼는데 1931년에 방정환선생님이 타계하자 어린이 잡지의 주간(主幹)을 맡게 되었다. 이후 선생님은 어린이날 노래, 엄마앞에서 짝짝궁, 졸업식 노래, 달 따러 가자, 고추먹고 맴맴, 기차길옆 오막살이, 밥상위에 젓가락이 나란히나란히, 나리나리 개나리, 이슬비 내리는 이른아침에 우산셋이 나란히, 산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등등 800여곡의 동시와 많은 학교의 교가 등 1300여편의 동시와 노랫말을 지으신 위대한 아동문학가였다.

고국에서 예전에 국민학교를 다녔던 대부분의 동포들은 ‘낮에나온 반달’의 동요를 애창 했을 것이다. 낮에 나온 반달 동요의 가사는 윤석중 선생님이 작사 하고, 홍난파 선생님이 작곡하신 동요 노래다. 밤에 제 역할을 하는 달이, 그것도 반달이 태양이 빛나는 대낮에 떠 있으니, 그나마 보일 듯 말듯 희미하게…………. 이는 일제에 점령당한 조선민족의 처지를 상징하는 것으로 어린이들에게 조국이 따로 있다는 진실을 알리기 위한 애국 동요로 나 자신은 해석한다. 그 당시의 동요에 나오는 낮에 나온 반달이 현대 노인의 위상을 표현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하늘을 쳐다보아야 겨우 보이는 낮에 나온 반달이 달밤에 등장하려면 노인들이 어른의 갑옷을 벗고 어린이가 되어보면 어떨까?……….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윌리암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1770~1850)는 일찍이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노래했다. 성경말씀에도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이 순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마가복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노인들의 함정은 주제파악과 분수를 지키는데 서툴다. 인생의 연극 무대에서 내려와 배우에서 관객으로 역할이 변경되었는데도, 종종 무대 위로 올라와서 연극에 끼어든다. 주제파악을 모르는데서 망령끼가 발생하는 것이다. 완전히 가라앉은 배는 항해하는 다른 선박에 장애가 되지 않지만, 절반쯤 가라앉은 배는 다른 배의 항해에 장애가 된다는 사실을 넌지시 알리고 싶다. 인식의 대 전환이 필요하다.

낮에 나온 반달, 그 반달을 바라보며 문득 머리속에는 상념(想念)이 밀려온다. 저 반달은 외롭지 않은 유일한 달이다. 그리고 그 반달은 외로움에서 벗어나는 두가지의 방법을 알려준다. 그것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을 고집하지 말며 우리들의 욕심을 저 반달처럼 절반을 비운다는 것, 그것이다. 정철의 불법사전 중에서 “겨울하늘 어느 자락에 달린 달을 보면 때론 차가운 외로움이 저며 옵니다. 따스한 달빛을 뿜어주지만 그 안에 어느 시간엔 서러운 외로움도 녹아 있나봅니다”. 정철의 불법사전이란 책에서 낮에 나온 반달은 외롭지 않은 달이라고 이야기 한다. 어두운 밤이 아니라 환한 대낮에 분주한 세상과 사람들과 함께 하니 외롭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그 외롭지 않은 낮에나온 반달을 보며 외로움을 이기는 법을 깨달았다. 그 하나는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을 고집하지 않는거다. 외로운 밤의 서쪽하늘 한편으로만 고집하지 않고 환한 대낮에 남쪽하늘로도 나오듯이 시간과 공간을 깬다면 우리의 외로움도 덜어질듯 하다. 또 하나는 자신의 반을 덜어내고 저렇게 둥실 떠있는 반달처럼 욕심의 반을 비우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외로워지는 건 주위를 욕심으로 채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욕심의 반을 비운 낮에 나온 반달, 어두운 밤을 혼자서 외롭게 비추며 새벽녘까지 추위에 떨며 세상을 지켜주는 고마운 달을 생각하며 조용히 묵상에 잠겨본다.

낮에 나온 반달은 잠시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윤석중선생님이 작사하고 홍난파(1898~1941) 선생님이 작곡했다. 여기에 잠시 홍난파선생님의 슬픈 인생 이야기를 전해 드리도록 하겠다. 경기도 수원(화성군 남양면 활조리) 산골마을에서 태어난 홍난파 선생님은 젊은 날 홍사단과 서울 YMCA를 중심으로 열정적인 음악활동을 하였고, 끊임없는 창작활동으로 우리나라 초기 음악개척에 선구적 업적을 쌓았던 위대한 예술가이다. 그러나 그의 말년은 참으로 애석하기 그지없게 세상을 떠났다. 안창호의 홍사단에서 일을 하던 어느 날, 한 애국지사의 강연을 듣고 불타는 애국심이 솟아올라 장안에 두 대 밖에 없었던 귀한 바이올린을 저당 잡히고 등사기를 사서 ‘독립선언서’를 직접 인쇄하여 동지들과 함께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며 조선의 독립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앞장섰다가 결국 수배령이 내려 순사에게 체포되고 종로서에 수감되고 말았다. 그는 거기서 “배후를 밝히라” 며 받은 모진 고문으로 하여금 온 몸에 상처를 입고, 병약해진 몸으로 몇달만에 석방이 되었지만, 석방 전날, 감옥에서 제공한 마지막 음식(석방된후 독립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콜레라 균을 넣은 고깃국)을 먹고, 집에 돌아온 뒤 고열과 구토, 설사, 두통 등의 고통속에서 갖은 고생을 하다가 결국 얼마 살지 못하고 애석하게도 1941년 해방을 몇년 눈앞에 둔채, 43세의 짧은 나이로 인생을 마감하고야 말았다. 그러나 홍난파선생님은 살아있는 동안 ‘어린이 운동’에 그 뜻을 같이 하면서 초기 동요작가 중에서도 가장 많은 명작을 남긴 선구자로서 자신의 재능을 아낌없이 쏟아내며 동요발전에 손색없는 업적을 남겼다.

달은 밤에만 뜨는 것이 아니다. 밤에 뜨는 달은 보름이 지난달이다. 즉 왼쪽으로 볼록한 하현달과 그믐달은 밤에 뜬다. 오른쪽으로 볼록한 달은 낮에 뜬다. 즉 초승달부터 보름달이 되기 전의 상현달들은 낮에 뜬다. 보름달은 해가 질 때쯤인 저녁에 뜨고, 해가 뜰 때쯤인 아침에 진다. 낮에 뜨는 달이 낮에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낮에 뜬 달은 밤이 되어도 하늘에 떠 있다. 다만 해가지고 하늘이 어두워지면 색깔이 바뀔 뿐이다. 파란 하늘위에 보이는 달은 하얀색이지만, 어두워지고 까만 하늘에 보이는 달은 노란색이다.

밤에 뜬 달도 밤에만 보이는 것이 아니다. 밤에 뜬 달은 낮이 되어도 하늘에 떠있다. 밤에는 노랗게 보이던 달이 하늘이 밝아지면서 색깔이 하얗게 변할 뿐이다.

낮에 나온 반달을 보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과 상념에 젖어 펜 가는대로 글을 써 보았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아득한 옛날의 어렸을 적의 동요를 다시 한번 입속으로 흥얼거리면서 옛날속의 추억과 이야깃거리 기억들을 더듬어 보았다. 저 반달속에 나의 모든 어린시절 옛 추억들이 사진속 필림처럼 차곡차곡 쌓여있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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