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아름다운 이 가을에………

<김명열칼럼> 아름다운 이 가을에………

 

금년은 그 어느해 보다도 더 지독하게 무더웠던 해였던 것 같다. 잠시 밖에 나가서 정원에 무성하게 자라난 잡초를 뽑고 나면 금새 온몸은 땀으로 목욕을 한 듯 흠뻑 젖어지곤 했다. 온몸에 가득히 배인 열기를 입을 크게 벌려 훅훅 토해내듯이 불어내며 어서 빨리 이 지겹고 무더운 여름이 지나가기를, 마치 오솔길을 산책하다 갑작스레 만난 소낙비가 어서 속히 지나가기만을 바라듯이 그렇게 간절하게 떠나가기를 기다렸는데, 이제 서야 마침내 기나긴 여름도 세월과 시간 앞에 굴복하여 꼬리를 내리고 우리들 곁을 떠나가고 있다.

이제는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들바람도 시원하게 불어오고 동북쪽에서 불어오는 계절풍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만 가던 수은주를 멈춰 세우고 끌어내리고 있다. 가을이 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시(詩) 중 하나가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이다. 가을이 되면 유난히도 고독해지는 이들이 많다. 커피와 차를 너무나 좋아해서 다형(茶兄)이라고 불렸던 김현승 시인은 평생 고독과 눈물로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려고 노력했다. 시인은 “나의 본질은 고독이다. 인간은 그 근원에 있어 고독하다 그러므로 고독감은 인간의 자폐증이다. 따라서 고독감이 강할수록 인간의 영원과 무한에 대한 신앙은 강하게 되고, 신을 향하여 벌리는 팔이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인간의 원죄 의식을 기독교정신으로 표출한 것이 고독이었다.

가을걷이로 넉넉한 계절, 이러한 풍요와는 달리 외로움과 소외감에 정신의 곳간이 텅 빈 우리의 마음속, 고독과 허무와 우수의 계절인 이 가을을 우리는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무더위 속에 지치고, 뜨거운 햇볕을 피해 어두운 저녁 밤에 산책을 하다보면 모기떼와 전쟁을 치르느라고 치열한 싸움을 벌였던 그 여름이 지나가고 새벽의 어둠을 뚫고 가을이 왔다. 나에게 이 가을은 인생을 느끼게 하는 계절이다. 만물이 생동하며 생명이 움트는 봄을 지나 질풍노도 청년의 여름을 거치는 동안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인생을 이제야 생각하는 것은 기울어져가는 햇빛, 다가오는 세밑, 그리고 겨울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도 모른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해마다 맞이하는 가을이지만,(가을이 오면 어김없이 꼭꼭 가을에 대한 글을 써서 신문지상에 게재한지도 20여년, 그래도 올해에도 어김없이 빠뜨리지 않고 가을에 대한 글을 쓴다) 올해의 가을이 더 엄숙해지고 더 고독하게 다가오는 것은 가을이 점점 나와 닮아간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황혼기와 가을은 여러 면에서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생명이 움트는 시기와 질풍노도의 성장기인 청년기를 지나 따스한 햇볕으로 익어가는 풍요로운 황금빛 가을 들판을 스치다보면 황량한 들녘과 메마른 나뭇가지를 마주하게 된다.

미당 서정주 시인은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는데도 봄부터 소쩍새가 울고, 천둥은 먹구름 사이에서 울고, 무서리가 내리고, 잠도 오지 않았다”고 했다. 하물며 한 인생이 황혼까지 올 때에는 얼마나 많은 사연들을 담고 있었을까를 생각해 본다. 나에게 풍요로움과 낙엽으로 상징되는 가을은 언지부터는 풍요로움은 사라지고 낙엽만이 남아있다. 떨어진 낙엽과 앙상한 나뭇가지는 가을이 고독의 계절이고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시간들임을 말해준다.

이제 가을이다. 비록 쓸쓸함과 공허함이 온 몸을 감싸지만 지나간 아름다웠던 추억을 회상하면서 다가오는 겨울을 준비하여야겠다. 나른해진 햇살에 석양에 비추인 그림자가 길게 땅위에 누워있다. 뜨겁던 태양열은 불어오는 선들바람에 식어서 한결 더 덜 뜨겁다. 작열하는 태양 볕이 아니라 살갗을 만져주는 듯한 촉감의 햇살은 한결 화사하며 눈이 부시다. 소리 소문도 없이 아무도 모르게 느끼지 못하는 사이 가을은 그렇게 밤도둑처럼 살금살금 걸어와 어느새 우리들 곁에 와 서있다. 가을은 창문을 열어봐야 보인다. 이럴 때는 무작정 밖으로 나와 봐야 가을을 만날 수 있다. 그래야만 가을의 숨소리와 모습을 보고 느낄 수 있다. 환경에 얽매여 내 주변만 바라보며 삶에 구속되어 창살없는 감옥속 생존경쟁에 시달리며 앞만 보고 달려가 던 눈길을 잠시 밖으로 돌려 들녘을 바라보자. 비록 내가 심어놓은 추수할 곡식은 아니더라도 황금알이 조랑조랑 달려있는 벼 이삭과 빨갛게 익어가는 사과와 감들이 눈부시다. 저렇게 부러질 듯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과일들을 바라보면 저절로 배가 부르다. 가을은 입으로 말하지 말고 마음으로 말을 해야 느낄 수 있다.

흔히 봄은 꽃과 다투고 여름은 태풍과 싸운다고 하지만, 가을은 다투지 않는다. 오히려 가을은 가진 것을 내어주며 겸손히 내려놓고 비울뿐, 더 가지려고 욕심을 부리지 않고 시샘과 다툼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가을을 좋아하고 예찬하는 것이 아닌가싶다. 가을은 가진 것을 내어주고 베풀며 내려놓고 또 내려놓고 벌거숭이가 되어 겨울로 간다. 가을은 시(詩)가 있는 계절, 가을에 숲을 걸으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로맨티시즘의 주인공이 된다. 조각달을 물고 기러기가 돌아가는 길, 그 가을 길에 노오란 은행잎이 가득하다. 가을은 바람의 수다가 있어서 좋다. 나무곁을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이 언제나 나무 가지를 심술궂게 흔들어대며 나뭇잎들과 요란스럽게 수다를 떨다 간다. 한참동안 바람과 함께 수다를 떨던 나뭇잎들은 가을바람에 뒤척이면서 한잎 두잎 돌아눕고, 마음 흔들리는 가지에 외로움의 등불을 걸고 혼자서 즐기다 취해서 고독감속의 깊은 잠속에 빠져 길고긴 겨울의 동면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곱게 물든 단풍은 꽃보다 아름답다. 그 단풍을 보노라면 아름다운 정취와 서정을 만나볼수 있다. 그것은 오직 가을 속으로 깊이 들어가야 한다. 흔히 처서(處暑)를 두고 하는 말 중에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개 구름 타고 온다”고 했다. 바로 그 처서가 지난지도 지난 8월 23일로 한달반이나 돼 간다. 아무리 사는 일이 팍팍하다 해도 파랗게 높아진 하늘이 가을이 됐음을 실감시킨다. 폭염이 제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자연의 섭리는 어느덧 조석으로 조금씩 시원한 바람을 선물하여 청량감을 더해 준다. 하늘의 코발트색이 나날이 짙어지고 있다. 분명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가을이다. 이제 지나간 백로와 함께 귀뚜라미의 합창도 시작됐다. 곤충 학자에 의하면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는 섭씨 24도 내지 26도일 때 가장 높고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고 한다. 그런 소리를 들을 수 있어 가을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태풍도 폭염도 쉴 새 없이 쏟아지던 빗줄기도 시간의 굴레 앞에서는 무릎을 꿇었다. 민족의 명절 추석도 엊그제 10월1일로 지나갔다. 들녘의 벼도 머리를 숙이고 수확을 기다린다. 이렇게 자연은 호된 시련을 주기도 하고 또 반드시 인간에게 안식과 수확을 주기도 한다.

가을의 기(氣)는 곧 우리의 옷소매에 스며들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한국의 정치는 아직도 국민들이 걱정을 해야 한다. 국민에게 오늘의 확실함과 내일의 청사진을 알려줌이 없이 그 자리에서 맴돌고 있다. 가을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결실의 가을, 수확의 가을 이라고 하지 않는가. 올 가을에는 흐뭇하고 안정된 마음으로 귀뚜라미의 소리를 들어봤으면 좋겠다. 아직은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와 인류가 공포와 두려움 속에 안정을 못 찾고 있지만, 이럴수록 용기와 의욕이 필요하다. 경제의 어려움은 장기화되고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소득이 감소하는 고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 힘을 잃어버린 정치에 이 찬란한 가을과 더불어 새로운 영감과 용기를 불어 넣어야한다. 자연의 시련은 계절과 함께 사라질수 있지만 인간들이 저지른 재앙은 반드시 그 값을 치러야 한다.

우리는 저 푸른 하늘을 바라보면서 이 가을을 멋있고 보람 있게 설계해야 한다. 그리고 가을의 은총에 감사해야 한다. 아름다운 결실의 가을이다. 우리 모두에게 삶의 보람이 주렁주렁 열렸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아름다운 인생의 가을이다.

자연이나 인생이나 가을은 아름답고 풍요로움을 안겨준다. 이 아름다운 자연과 가을을 선물해 주신 조물주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겠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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