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흡연가, 애연가들이 꼭 들어야 할 담배 이야기.

<김명열칼럼> 흡연가, 애연가들이 꼭 들어야 할 담배 이야기.

 

엣날 40년전에 한국을 방문할 때의 이야기다. 오랜만에 고국을 방문할 때면 으례 비행기 기내에서 면세로 살 수 있는 물품들 중에 많은 사람들은 양담배를 꼭 사갖고 갈 때가 많았다. 그때 그 시절에 한국에서는 미제 양담배가 아주 인기 있는 기호품이었고, 귀국 선물로는 빠질 수 없는 인기품목이었다. 그중에 특히 양담배 중에서도 Marlboro 담배는 빠질 수 없는 인기품 이었다.

여기서 말보로 담배이야기가 나왔으니, 세계 최초의 필터형 담배인 Marlboro 이야기다.

담배를 즐겨 피우는 사람은 소위 말하는 ‘말보로’란 세계적으로 유명한 담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담배에는 아주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미국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지금의 MIT공대의 전신인 학교를 다니는 가난한 고학생이 있었다. 그는 어느 지방 유지의 딸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여자측 집안에서는 가난한 고학생에게 딸을 맡길 수 없어 둘 사이를 반대하여 두 사람을 갈라놓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그 여자의 부모는 딸을 멀리 있는 친척집으로 보내 버렸다.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그 청년은 그녀를 찾기 위해 갖은 고생을 하며 몇달 며칠을 찾아 헤매 다녔다. 마침내 그는 궂은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느날 그녀를 만났다. 터덜터덜 그녀집 앞으로 갔는데, 마침 그날은 그녀가 집에 돌아오는 날이어서……… 오랜만에 둘은 집앞에서 반갑게 해후를 했다. 그러나 그녀의 입에서는 뜻밖의 슬픈 소식이 전해졌다. “나 내일 결혼해” 이말을 들은 남자는 뒷통수를 세차게 얻어맞은 듯 멍하니 서 있다가 “그럼 내가 담배 한대 피우는 동안만 내 곁에 있어줄래?”라고 말했고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 당시의 담배는 지금처럼 필터가 있는 담배가 아니었다. 종이에 잎담배를 말아 피우는 것이다. 몇모금 피니 금새 담배는 다 타들어가 입술을 데었다. 그 짧은 시간이 지나자 여자는 집안으로 들어갔고, 둘은 그걸로 끝났다. 그 남자는 입술을 데인 그것을 기인하여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세계 최초로 필터가 있는 담배를 만들게 되었다. 세계최초의 필터 담배는 날개 돋힌 듯 팔렸고, 그는 곧 이어 백만장자가 되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얼마 후 남자는 그 여자의 소식을 들었는데 여자는 남편이 죽고 혼자서 병든 몸으로 빈민가에서 외롭고 힘들게 살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 남자는 흰눈이 펑펑 쏟아지는 어느 겨울날, 하얀 벤츠를 타고 옛날의 사랑했던 연인을 찾아가서 말했다. “나는 아직도 당신을 사랑해, 나와 결혼해 주겠어?” 여자는 망설이다가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다. 남자는 다음날 다시 오겠다고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그 남자가 그녀의 집에 찾아갔을 때 그녀는 목을 매단채 싸늘한 시신으로 변해 있었다. 그 남자는 그 다음부터 자기가 만드는 담배에 Marlboro라는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Man Always Rememver Love Because of Romance Over.” 이 말의 약자가 Marlboro 이다. ‘남자는 흘러간 로맨스 때문에 언제나 사랑을 기억한다’. 오래전부터 그리고 그때마저도 변함없이 그녀를 사랑했던 그의 마음이 그 담배에 Marlboro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했다고 한다.

마약으로서의 담배는 술보다는 역사가 일천하지만 오랜 과거로부터 존재해왔다. 서기 7세기경 마야 신전의 벽에, 이미 제사장이 담배를 피우는 그림이 묘사되어있다. 담배에 대해 말할 때 담뱃잎을 피운다는 개념을 떠나서 어떤 종류든 풀이나 약초 등에 불을 붙여 연기를 빨아들이는 흡연 문화는 기원전에도 인류 곳곳에 존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불씨라는게 쉽게 구해지는 것이 아니라서, 사제가 있는 신전 같은 곳에서 처방받아서 ‘불까지 붙여줘서’ 피우거나 한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담배가 유럽의 문헌에 처음 언급된 것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1492년 항해를 통해 원주민에게 잎담배를 받아온 뒤였다. 영국에선 16세기 후반에서야 귀족인 월터 롤리가 처음으로 담배를 피웠는데, 물론 당시에는 담배를 만드는 기술이 없었고, 원주민들에게 받아온 담배만으로 피워야 했다. 당연히 담배의 숫자가 제한되어 있었으므로 골초가 된 롤리는 방에서 몰래 혼자 피웠다. 어느날 하인이 우연히 보니 주인 머리에서 연기가 나는 것에 기겁하고 다른 하인들에게 주인 머리에 불이 난다고 말하는 통에 하인들이 물을 가득히 가져와 그냥 머리에 끼얹어버렸다.

막상 담배가 알려지긴 했으나 유행이 되는 것은 반세기나 지나서였다. 본격적인 담배 경작의 시초로 평가되는 것은 프랑스인 장 니코가 약초로서 담배를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담배의 주요 성분인 니코틴의 어원 또한 이 사람의 이름에서 생겨났다. 초기에는 시가만 있다가, 시가 잎을 자르다가 남은 것을 종이에 말아 피우는 궐련, 담배 잎을 잘라 파이프 등에 넣고 피우는 파이프 담배 등이 생겨났다. 물 담배 역시 넓게 보면 파이프 담배라고도 할 수 있다. 요즘에 말하는 담배는 대개 궐련이다.

한국에 담배가 들어온 역사를 보면, 인조실록 37권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우리나라 사람이 몰래 남령초(南靈草=담배)를 심양에 들여보냈다가 청나라 장수에게 발각되어 크게 힐책을 당하였다. 담배는 일본에서 생산되는 풀인데 그 잎이 큰 것은 7~8촌(寸)쯤 된다.

가늘게 썰어 대나무통에 담거나 혹은 은이나 주석으로 통을 만들어 담아서 불을 붙여 빨아들이는데, 맛은 쓰고 맵다. 가래를 치료하고 소화를 시킨다고 하는데, 오래 피우면 가끔 간(肝)의 기운을 손상시켜 눈을 어둡게 한다. 이 풀은 변진 정사년(1616~1617년) 간부터 바다를 건너 들어와 피우는 자가 있었으나 많지 않았는데, 신유, 임술년 1621~1622년 이래로는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손님을 대하면 번번이 차와 술을 담배로 대신하기 때문에 혹은 연다(煙茶)라고 하고 혹은 연주(煙酒)라고도 하였고, 심지어는 종자를 받아서 서로 교역까지 하였다. ‘오래 피운자가 유해무익한 것을 알고 끊으려 하여도 끝내 끊지 못하니, 세상에서 요망한 풀이라고 일컬었다’. 심양으로 굴러 들어가자 심양사람들도 또한 매우 좋아했는데, 오랑캐 한(汗)은 토산물이 아니라서 재물을 소모시킨다고 하여 명령을 내려 엄금했다고 한다. 이상은 인조실록, 인조16년 (1638년) 8월4일 갑오 1번째 기사에서 발췌한 것이다.

조선에는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부터 고추, 호박 등과 함께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서구와는 다르게 말아 피우는 시가 대신 파이프 담배라 할 수 있는 ‘곰방대’부터 들어왔다. 조선시대 담뱃대의 길이마저 반상과 권력의 차이를 반영했으며 양반님네들이 피우던 장죽이 서민들에게 넘어오면서 곰방대로 간소화되었다. 담배라는 이름은 조끼나 빵처럼 포어 Tabaco의 일본식 표기인 담바고로 전해진 것에서 유래됐다.

흔히들 흡연가들이 말하는 영혼의 비타민이라 할 수 있는 담배?. 그러나 그 결과는 좋지 않다. 수천년의 흡연 역사에서 의학적 해악을 거론한 것은 이제 겨우 50여년 정도에 다다른다. 물론 담배의 해악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소수의 깨어있는 목소리는 가끔 있었지만, 애연가들의 흡연 예찬에 눌려 기를 펴지 못했다. 불과 몇십년전 까지만 하드라도 담배는 인류에게 다양한 멋과 정취를 제공하였으며, 최고의 기호품으로 전폭적인 애정을 받아왔다. 세계적인 인물중에는 골초가 많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골초 중 한사람은 옛 영국수상 처칠일 것이다. 식사할 때와 잠자리에 드는 것 외에는 입에서 시가를 놓은 적이 없다고 전해질정도로 골초였다. 이밖에도 세계적인 골초는 수없이 많다. 러셀, 피카소, 훼밍웨이, 체 게바라, 마오쩌둥, 뎡샤오핑, 등등. 특히 글을 쓰는 문학인들, 작가중에도 애연가는 많이 있다.

담배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시인 오상순은 ‘꽁초’에서 음을 따 공초(空超)라는 호를 만들 정도로 끽연가였다.

평생 하루 20갑 이상 담배를 피우면서 연아일체(煙我一體)로 살다 간 선생의 묘비 뒷면에는 ‘담배를 사랑하다’라는 글귀가 뚜렷하게 음각되어있다. 작가 박경리 선생도 애연가였다. 한국의 2000년대 초순, 담뱃값 인상이 거론될 때 한국문인협회의 소설가 및 작가들이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모여 ‘담뱃값 인상안 규탄집회’를 갖기도 했다. 생업인 원고 집필에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창작 아이디어의 유일한 벗인 담배 값마저 대폭 올리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는 이유 있는 항의였다.

글을 쓰는 작가나 문학인들 외에도 담배를 즐겨 피는 애연가및 골초들은 세상에 너무나 많이 있다. 내가 잘 알고 지냈던 지인 K씨가 있었다. 하루 한끼 밥을 못 먹어도 괜찮은데 담배는 한개비도 피우지 않으면 ‘죽을 것처럼 미치겠다’고 한 골초중의 골초였다. 이미 그는 몇년전에 폐암으로 인해 세상을 떠난 망자이지만, 평상시 그는 담배라면 사족을 못 쓰는 애연가였다. 그의 말을 빌자면 평상시 손에 담배 한개비가 들려있지 않으면 불안할 정도였다며, 하루에 5갑 정도를 불살랐다고 한다. 죽음을 앞당기는 키쓰, 죽음의 연기인 담배는 뜨겁게 불꽃을 피우는 순간 재가 되는, 쾌락과 위험이라는 이중성을 내포하고 있는 백해무익한 기호품…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으로 시작 했다가 골초가 되는 과정을 겪게 되는데, 담배가 주는 순간적 쾌락과 덧없는 심리적 위안의 댓가는 끔찍하고 치명적이다. 담배에 든 599종의 첨가제들이 타면서 벤젠, 포름알데히드 등 69종의 발암물질이 나온다고 한다. 흡연은 심장병과 뇌졸중 등 심혈관계 질환은 물론 각종 암의 주된 원인이다.

온갖 질병의 근원임에도 끊기 어려운 중독성이 가장 큰 해악이다. 담배의 독특한 습관성을 자극하는 것은 니코틴의 향기와 맛이다. 니코틴에 중독된 뇌에서 니코틴이 부족할 때 나오는 물질(CRF)도 금단현상을 유발한다.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빈속이라도 담배를 물어야 하는 것은 밤새 떨어진 혈중 니코틴을 급히 보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담배가 없다면 재떨이라도 뒤져서 꽁초에 불을 붙여야 했다. 때문에 누군가의 표현처럼 담배는 ‘정신적 비타민’ 이었고 ‘힘든 삶에 위안을 주는 친구’였다. 그러나 이렇게 정신적 위안과 비타민이 되는 담배는 폐암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한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폐암으로 고통 받다 세상을 하직한 몇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폐암은 굉장히 고통스러운 암이라고들 말한다. 암세포가 조직을 깊숙이 침범하면 칼로 찌르는 듯 하고 불에 태우는 것처럼 날카롭게 아프다고 한다. 그런데 다른 암들의 통증은 이른바 마약 진통제로 덜 아프게 해줄 수 있는데, 폐암은 숨을 못 쉬게 되니까, 그 숨을 못 쉬는 고통은 아직 해결할 수 있는 의학적인 수단이 전혀 없다고 한다. 그냥 앉아서 숨을 색색, 갈비뼈 사이로 그 사이가 움푹 움푹 파일 정도로 고통스럽게 숨을 몰아쉬게 되는데, 이것은 정말 백약이 무효라고 한다.

이러한 아주 끔찍한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오늘 나는 절실히 금연의 필요성을 느끼고, 애연가들을 위하여 이 글을 쓰기로 작심했다.

결론은 이렇다. 아무리 담배가 정신적 비타민이 되고 삶에 위로와 평안을 주며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잠시적 수단이나 방법이 되더라도, 그러나 이것은 절대로 피워서는 아니 될 금기의 악한 물품이라고…… 백해무익의 이러한 담배를, 이 글을 읽고 계시는 흡연가 및 애연가 여러분들께서는 지금 당장 담배를 끊으시라는 권고의 말씀을 강력하게 드린다. 당신의 사랑하는 가족들과 즐겁고 행복하게 오래도록 살고 싶으면 지금 곧 바로 실행에 옮기시라고….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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