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기자의 성지순례 기행문(30)

김명열기자의 성지순례 기행문(30)

페트라, 그리고 요르단의 수도 암만 시

 

<지난주에서 계속 이어짐>

페트라의 보고는 페트라를 구성하는 수많은 경이로운 유적중 처음으로 등장하는 유물일 뿐이다. 진정으로 페트라의 모든 것을 탐험하고 둘러보기 위해서는 최소 4~5일이 필요하다. 페트라 계곡에 들어서면 이곳의 기괴암석 바위절벽과 형용할 수 없는 자연미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걸출한 건축학적 업적에 압도를 당한다. 정교하게 바위를 깎아 만든 수백기의 무덤은 섬세 한 조각물을 갖추고 있다. 대부분 지진으로 파괴된 주거지와 달리, 무덤은 내세에서도 유지될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하고 견고하게 조각되었고, 500기의 무덤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이곳에는 나바테아인들이 건설한 3000석의 거대한 로마식 극장도 있다. 또한 오벨리스크, 사원, 제단과 석주도로가 있으며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에 아드~데이르 수도원이 위풍당당한 모습을 드러내는데 바위를 깎아 만든 800개의 계단을 오르면 이곳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짧은 일정에 이곳을 방문한 우리들 일행은 많은 곳을 보지 못하고 그런 것이 있다는 설명과 그곳의 안내책자를 빌어 그 내용을 파악했다.

이곳에는 두개의 훌륭한 박물관이 있는데, 바로 페트라 고고학 박물관과 페트라 나바테아 박물관이다. 두 박물관은 모두 페트라지역에서 발굴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으며, 페트라의 화려했던 과거를 조명해준다. 유적지 내부에는 와디 무사와 인근 베두인 정착촌에서 온 몇몇 장인이 도자기 및 베두인 장신구와 줄무늬를 이루는 이 지역 모래를 담은 현지 수공예품을 판매하는 소형 가판대도 있어 기념품도 살 수 있다. 이곳은 자동차 진입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걷기를 원치 않는다면 말이나 마차를 타고 2Km정도 되는 시크를 통과할 수 있다. 내부에 진입하면 당나귀를 빌려 탈 수 있는데, 좀더 모험심이 강한 사람이라면 낙타를 탈수도 있다. 모두 조련사가 함께 해 인도하며 지정된 길을 이용하여 이곳 전체를 둘러볼 수 있다.

물론 마차나 말, 당나귀, 낙타 등의 교통수단을 이용할 경우 최소한 30달러에서 1백달러 정도의 비용을 입장료 외에 추가로 지불해야만 이것들을 이용할 수 있다.

페트라는 이 지역에 정착하여 시리아까지 확장된 상업제국의 토대를 수립한 유목민족인 나바테아 아랍인들에 의해 BC 6세기경에 최초로 세워진 곳이다. 셀레우코스의 안티고누스 왕, 로마의 폼페이 황제 및 헤롯대왕이 페트라를 자기 제국의 지배하에 두려는 시도를 연이어 했음에도 불구하고, 페트라는 로마에 점령당하게 된 AD 100년경 까지 거의 나바테아인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로마제국이 콘스탄티노풀을 비롯한 동방으로 눈길을 옮긴 비잔틴 시대에 페트라에는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었지만, 이후 점차 그 중요성을 잃게 되었다.

요르단의 수도 암만 시

페트라 역사유적지를 둘러본 우리들 일행은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요르단의 수도 암만을 향해 버스에 올랐다. 3시간여를 운전 끝에 해가 져 어두운 저녁시간에 암만시내의 다운타운 어느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버스를 타고 오고 가면서 보고 느낀점은, 이곳 요르단은 참으로 많은 관광객들이나 순례객들이 찾는 나라, 성서의 땅 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역사의 유적이자 관광명소인 페트라를 제외 하더라도 요르단에는 성서적으로 너무나 유명한 예수님의 베다니 세례 터, 모세가 오른 느보산, 엘리야 선지자가 승천한 언덕, 세례요한의 순교지 마케루스 등을 만날 수 있는 성서의 땅이 바로 요르단(Jordan)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체험하고자 하는 성지순례객들의 발걸음을 재촉하는 요르단은 구약성서에서 이스라엘 다음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지역으로, 출애굽 여정과 사사시대, 통일왕국시대의 주요 무대였다. 암몬, 모압, 애돔 왕국과 함께 시작된 성서의 땅은 그리스, 로마, 비잔틴, 나바테아 문명 또한 품고 있어 과거를 돌아볼 수 있는 성서, 역사, 고고학적 유적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요르단의 수도 암만은 고대 암몬 왕국에서 유래됐다(신 3:11). 근동의 주요도시로 자리 잡았던 암만은 로마제국 시대에는 필라델피아라는 이름으로 홍해와 시리아 사이의 중요한 무역 교역로였다. 오늘날 암만은 로마시대 원형극장, 로마 성전 및 비잔틴 교회 등 다수의 유적을 자랑한다. 해발 850m에 위치한 시타벨은 암만에서 가장 오래된 장소중 하나이자 인기 있는 관광명소 중 하나다. 이미 지난번에 소개했었던, 6500년전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건설된 ‘제라쉬’는 가장 잘 보존된 곳 중의 하나로 꼽힌다.

암만에는 역사적 가치를 품은 수많은 유적들을 보존한 박물관도 다수가 있다. 요르단 박물관에는 3000여점의 유물이 전시돼 있다. 특히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 세례 터가 그리 멀지않은 곳에 있다는 사실이다. 요르단 동편을 따라 위치한 베다니(요 1:28) 세례 터는 암만시내에서 40여Km 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암만은 이슬람 사원과 기독교가 공존하는 도시이다. 암만이 기타 고대 아랍도시와 다른점은 이슬람풍의 도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Mecca)와 메디나(Medinah), 이집트의 카이로, 시리아의 다마스커스 등이 도시 입구에서부터 이슬람 향기를 물씬 풍기는 것과 달리 암만은 유구한 도시의 역사에 비해 이슬람적 요소가 다른 아랍권의 이슬람교 국가들보다 덜하다. 오히려 현대 도시적 성향이 더 짙다. 이슬람 종주국이니 모하메드의 직계손이니 하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암만은 기타 아랍도시에 비해 이슬람의 색채가 묽다. 그리고 암만은 다 종교가 공존하는 도시다. 물론 암만 시민 200여만명중 약 90%가 이슬람 신자 즉 무슬림이긴 하지만, 나머지 10%가 천주교, 기독교, 조로 아스터교, 러시아정교, 자유교, 등등 다양한 종교적 분포를 보인다는 점에서 레바논의 베이루트와 함께 비 이슬람 종교의 분포율이 꽤 높은 지역으로 손꼽힌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의 비 이슬람 종교가 암만에 전파되기 이전에 이미 이 지역에 정착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암만은 사막의 오아시스다. 암만은 일반적으로 사막 한가운데 건설된 목마른 도시이며, 머릿속에 그리는 아랍도시의 전형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 도시에는 4계절이 있고, 봄과 가을에는 제법 선선한 바람까지 분다. 1월에는 수은주가 섭씨4도까지 떨어졌다가 8월에는 섭씨 32도까지 올라간다. 그러나 습도가 매우 낮아 한여름에도 체감온도가 그리 높은편이 아니어서 에어컨을 설치한 가정이 그렇게 많지 않다. 오히려 암만시내에 보면 가가호호 난방용 보일러를 설치해두고 있다. 그것은 겨울에 최저기온이 영하까지 내려가지는 않지만, 매서운 바람 탓에 체감온도가 영하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어느해 겨울에는 눈이 많이 와서 최대 1m의 눈이 쌓인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기후환경조건으로 인해 아랍인들 사이에서는 최적의 피서지로 각광받고 있다. 기타 아랍권 도시와는 달리 천혜의 기후를 선물 받은 암만 또한 고민거리가 있다. 그것은 바로 부족한 수자원이다. 암만에는 수자원의 원천이 되는 강이 전혀 없다. 고작 암만시내에서 듬성듬성 발견되는 지하수와 암만보다 고도가 낮은 지역의 강에서 어렵게 끌어올린 식수가 전부다. 매년 여름 암만시는 식수난에 고통을 받고 있다. 시 당국에서는 여름철 부분 단수를 체계적으로 시행하고 있으나, 가뭄이 심한 해에는 집집마다 물 전쟁을 치러야 한다. 우리를 인도해주신 이정훈선교사님도 물 1갤론으로 세수하고 양치하고 몸전체를 씻기까지 했다고 한다. 물 역시 돈처럼 아주 귀하다고 했다. 물이 부족하다보니 일상생활을 하는데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했다. 우리들 일행이 호텔에서 숙식할 때 샤워라든가 기타 생활용수로 큰 불편 없이 물을 넉넉하게 사용하였다고 하니, 그것은 일부 특수층들을 배려한 차원의 물 공급이지(관광사업 장려차), 일반 대중(국민)들에게는 그림의 떡 같은 얘기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암만시내 곳곳에는 집집마다 물을 저장하는 물탱크가 두 세개씩 설치돼 있는 것을 쉽게 볼 수가 있었다. 2주일에 한번씩 공급되는 물을 저장했다가 다음번에 물을 공급받을 때 까지 아껴서 사용해야만 하기에, 만약 그 안에 물을 모두 다 써 버렸다면 꼼짝없이 물을 마시지도 못하고 세수나 밥도 못해먹을 난처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 때문에 모든 국민들은 물을 절약하며 알뜰 살뜰 절수 하며 살아가고 있다. 물을 제약이나 제한 없이 마음대로 쓰고 있는 미국 국민들이나 한국인들은 얼마나 하나님에게 축복받은 민족들인가….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물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고 오늘도 물을 과용하거나 남용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어쨋거나 암만 시내에서 새집을 짓거나 이사를 할 경우 제일먼저 집 아래 지하수가 있는지? 그리고 자체 양수시설이 있는지? 유무를 살피는 것이 철칙이다. 찐빵에 앙꼬가 없고, 낙타 봉우리에 물이 없듯이, 사막 한가운데 오아시스를 자부하는 암만에도 물이 무척 귀하다. 아마도 암만이 제공하는 오아시스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원한 기후와 정신적 안정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요르단의 수도 암만은 지난 5천년동안 그랬듯이 조용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자신의 빛을 세상에 비추고 있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그 어느 아랍권의 도시보다 개방성과 역동성이 강하며, 미래를 향한 준비가 철저하다. 미래 제2의 중동건설과 평화정착에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하게 될 국제도시 암만, 그들의 미래는 남모르는 잠재력에 비례할 것이다. 중국의 저명한 역사가이자 문명기행 저술가인 ‘우치위위’ 교수가 중동 주요도시를 방문한 후 발표한 기행문의 한 구절이 가슴에 와 닿는다. “암만은 카이로보다 훨씬 안락하다는 느낌을 준다. 그 어떤 꾸밈의 흔적도 찾아볼수 없다” 암만의 감춰진 가능성과 순수성을 그 노교수도 알아차린 모양이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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