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기자의성지순례기행문26

김명열기자의성지순례기행문26

마음의 명상과, 암몬성(우리아 장군이 죽은 랍바성)

 

하루 하루가 쌓여 우리의 인생이 된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세면기 앞에서 면도를 하고있는데, 마침 내 곁을 지나는 집사람에게서 은은하게 풍겨나는 화장수 냄새와 백합향기와 마른 풀내음이 곁들인 향긋한 물비누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라는 작품이 영화화되어 화제를 일으킨 적이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향수 제조 사장 그루느이는 만물의 냄새를 구별할 줄 아는 천부적 재능을 지녔지만, 정작 그 자신은 어떤 체취도 가지고 있지 못한 불행한 사나이였다. 그렇기에 향기에 대한 그의 욕망은 살인을 무릅쓸 만큼 엄청난 것이었다. 결국 그는 온 세상 사람들을 사랑에 빠지게 하는 마법의 향수를 만들기 위해 아름다운 여인들에게 손을 댄다. 영화에서도 보여지 듯 향기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혹적인 힘을 상징하고 있다. 사실 굳이 향수를 뿌리지 않아도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고유한 향기를 지니고 있다. 향긋한 라일락 향과 같이 꽃내음 가득히 풍기는 향수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발가락 사이에서 풍겨나는 퀴퀴하고 역겨운 냄새가 나는 사람도 있다. 향기는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알려주기 마련이다.

“당신의 향기는 무엇인가요?. 주위 사람들을 기분좋고 행복하게 만드는, 그런 향기인가요?…..”

지난주에도 잠간 언급했듯이 아침 일찍 머물렀던 호텔을 출발한 우리 순례객들 일행이 오늘의 첫 여정지인 암몬성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개장 시간이 되지 않아서 20여분간 정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게 되었다고 말했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20여분동안에, 나는 잠시 근처의 벤치에 앉아서 아침 명상에 잠겨본다. 세상을 환하게 밝히며 지평선을 박차고 떠오른 이국땅 11월의 아침 햇살은 유난히도 눈부시고 화사했다. 새벽을 여는 11월의 아침은 만물들의 미약한 꿈틀거림으로 시작하고, 끓는 듯 타오르는 아침 해의 반가움은 머나먼 이국땅(요르단)이어서 더욱 반기고 반갑다. 분주한 일상의 지침은 꿀맛 같은 잠으로 보상받고, 다람쥐 쳇바퀴 같은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 마주치는 성도들의 따사로운 미소와 향기로운 한잔의 커피는 어쩌면 지치기 쉬운 일상에 멋진 활력소가 되어준다. 물방울 튀기는 수면에 비쳐져 반짝이는 아침 햇살의 즐거운 미소를 보면서 미소 짓지 않을 수 없음은 이 거대하고 웅장한 역사의 흔적과 자연의 위대한 힘일 듯………………….

오늘 하루를 여는 첫 아침의 반갑고 설레는 위대한 역사속의 업적과 그 옛날 선인들과의 발자취를 만남으로, 행복한 하루가 알찬 열매가 되어 주렁주렁 매달려 우리 모든 순례객들의 얼굴엔 미소가 떠나지 않는 행복어린 가슴이 되기를 소망하고 염원해본다.

세상에는 많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이 수없이 많은 사람들 중에 좋은 사람을 주변에 가진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이다.

마음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사람, 티없이 맑고 속이 깊은 사람, 말없이 곁에만 있어도 따스한 위로가 되고, 멀리 있어도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 가진 것 없어도 가난하지 않고 지치고 힘든 시간에 다정한 눈빛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 나의 삶과 생이 부평초처럼 흔들릴 때 손을 잡아 의지가 돼주고, 등을 두드려주며 같이 울어주는 사람, 이런 사람과 함께 사는 세상은 힘들어도 슬프지 않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가 누구를 안다는 것은 서로간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다. 그것은 서로가 오고 가는 길을 트는 일이다.

허장성세로 유명인사의 이름을 들먹이고 친분을 과시하는 사람중에 정작 상대는 그 사람을 모를 때가 많다. 인생의 가치를 높이는 것은 높은 사람, 유명한 사람을 얼마나 아느냐가 아니라 따스한 모닥불로 정을 나누며 서로의 가운데 놓인 빗장을 풀고 마음속에 있는 사소한 일상의 기록들을 들춰내며 함께 읽고 공감하며 나누는 것, 그것이 진정한 마음의 벗이고 인생의 동반자인 것이다. 자신의 품격을 높이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품격은 차별을 이긴다. 품격은 값없이 공짜로 얻어지지 않는다.

품격은 부족하고 비어있는 것들을 채우는 부단한 노력으로 삶을 넓히는 일이다. 사람의 가치는 물질이나 학력, 재산, 지식이나 교양으로 저울질 할 수 없다. 훌륭하고 유명한 사람만이 가치있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가치는 사물이 지니고 있는 쓸모다. 이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 다만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빛을 발한다. 나의 삶이 비록 초라하고 별 볼 일 없어보여도 그대 잡은 손 놓지 않으면 태양보다 뜨겁게, 밤하늘에 떠있는 저 초롱초롱한 별빛보다 더 뜨겁고 밝게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리라………….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오늘이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건강하고 복된 하루 되게 하여주시옵고 마음 속에 은혜와 소망이 가득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대감과 설레임속에 삶을 시작하면 힘과 용기가 생겨납니다. 하루를 시작하며 제일먼저 나(우리)의 입에서 ‘감사’ 라는 말이 나오게 하여주시옵소서. 하루를 보내고 잠이 들 때도 제일먼저 나(우리들)의 입에서 ‘감사’라는 말의 기도를 올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거룩하신 예수님 이름 받들어 간절히 기도드렸아옵나이다. 아~멘(오늘의 기도를 마음속으로 드리며 힘차게 하루를 시작한다).

 

암몬 성(우리아 장군이 죽은 랍바 성)

 

요압이 암몬 자손의 왕성 랍바를 쳐서 취하게 되매 사자를 다윗에게 보내어 가로되 내가 랍바 곧 물들의 성을 쳐서 취하게 되었으니.(삼하 12:26~27). 고대 암몬의 수도 랍바(Rabbah)는 오늘날 요르단의 수도 암만이다. 요단강에서는 동쪽으로 약 35Km 지점의 요르단 고원지대에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고대 랍바성은 오늘날 암만 중심지에서 약간 벗어난 산 언덕에 위치해 있다. 랍바는 왕성과 물들의 성(삼하 12:26~27)으로 불리며 완전한 이름은 암몬족속의 랍바(신 3:11)이고, 랍바는 그 단축형이다. 이 도시의 이름은 헬레니즘 시대에 톨레이 필라델푸스(BC285~246)에 의해 재건된 후 필라델피아 (Philadelphia)로 불리게 되었으며 후에는 이 명칭이 사라지고 암만이라 불리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랍바성 등성이의 산언덕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이곳에서 다윗에 의해 죽임을 당한 우리아를 생각나게 한다. 그 옛날 다윗은 밧세바를 범한 후 남편인 우리아를 죽이기 위해 요압장군에게 밀지를 내려 싸움이 격렬할 때 우리아로 하여금 이곳 성을 선두에 서서 공격하게 한후, 군사들을 뒤로 물러나게 하여 그를 돌에 맞아 죽도록 하였다.(삼하 11:14~17). 그런 랍바 성채에 오르자 사방으로 암만 시내가 한눈에 들어 왔다. 특히 로마시대때 건설된 야외극장이 멀리 분명하게 시야에 들어왔고, 왜 이 높은곳에 성을 쌓았는지 그 이유를 알만했다.

BC 21세기 초부터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랍바는 우리아가 죽은 이후 요압에 의해 함락되어 이곳 주민들은 이스라엘의 역군 사역자가 되었다(삼하 12:26~31). 그러나 솔로몬이 죽은 후에는 이스라엘로부터 독립을 쟁취해 트랜스 요르단 지역의 북 이스라엘을 압박했다. 선지자들은 암몬인들에게 분개하여 랍바의 파멸을 예언하였다. 이후 랍바는 북 이스라엘이 멸망한 후에는 앗수르의 지배를 받았고 계속해서 바벨론과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현재 랍바(암만)에는 중세와 비잔틴시대, 로마, 헬라 도시들의 유물들이 있다. 이곳에서 남쪽에 위치해 있는 암만공항 근처에서는 후기 청동기시대의 성소가 발견되어 무기, 인장, 갑충석, 보석과 도기들이 출토되었으며, 암만 시내에서는 철기시대의 분묘와 소장품들이 발굴되었다. 고대 도시 성곽에는 로마시대의 유적들이 가장 많이 나왔는데 우리가 그곳을 방문했을 때도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이 계속되고 있었다. 특히 성읍 정상에는 암몬의 국가 신인 밀곰을 숭배했던 신전 기둥이 높이 솟은채 남아있었다.

밀곰은 왕, 왕자라는 뜻으로 이 신에 대한 희생제물로 인간이 드려졌다(왕하 23:10). 이스라엘은 신앙이 타락했을 때 힌놈골짜기에서 유아들을 희생으로 드리는 가증스러운 일을 행했는데, 이는 암몬의 밀곰신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솔로몬은 지혜의 왕이었지만 그는 말년에 밀곰 신전을 감람산 위에 지었으며, 요시야는 그 신전을 헐어버렸다(왕상 11:5~왕하 23:13).

밀곰 신전 옆 약간 아래에는 비잔틴시대의 교회터가 있고 왕을 접견했던 알현실이 원형 그대로 남아있다. 밀곰 숭배처 가까이에 교회터가 있는 것은 이후 비잔틴때 이곳에 교회를 세웠기 때문이다. 이곳뿐만 아니라 비교적 오래된 역사를 가진 성읍에는 신전터와 교회터가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요르단은 회교국가가 되어 랍바성에서 바라본 암만시내에는 여기저기 회교사원이 세워져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이 나라에도 회교사원 탑 대신에 교회의 십자가 탑이 세워지길 마음적으로 기원해 보았다.

참고로 별도의 이야기는, 이곳 암몬성 안에는 우마이야 왕조의 궁전이 있었다고 한다. 시리아의 수도인 다마스커스가 우마이야 왕조의 중심이었던 당시 암만은 그 왕조의 제2도시로 성장을 했다. 이슬람 신도들은 평생에 메카 성지순례를 한번은 가야 하는데, 그 메카가 있는 사우디 아라비아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암만을 거쳐야 한다. 막막한 사막에서 물을 구할 수 있고, 땅이 비교적 비옥한 암만은 그들에게 그야말로 오아시스였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암몬성은 암만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으니 그야말로 명당중의 명당이었다.

이곳 사람들이 (자발 알 깔라아)라고 부르는 암몬성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춘 것은 10년전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제라시처럼 이곳도 그냥 방치돼 있었는데, 2010년에 새롭게 단장했다. 길도 닦고, 주차장도 완비하고, 유적지도 깔끔하게 정비한 것이다. 그러자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곳은 지대가 높아서 암만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기에 유적지를 둘러보고, 암만시내도 내려다 볼 수 있는 일석이조의 명소가 되었다. 앞서도 잠간 언급했듯이 암몬성의 남쪽에는 로마시대때 지어진 원형극장이 보인다. 로마정권은 당시 민중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빵과 볼거리를 제공했다. 빵은 거져 주다시피 해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했다. 여기에 전차경기나 검투사의 싸움, 그리고 서커스등의 눈요기를 시킨 것이다. 이것들은 정치적 무관심을 부르는 도구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거대한 극장들이 필요했다. 그들에게 원형극장은 정치적 불만을 녹이는 용광로였다. 저 원형극장은 6천명의 관객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규모라고 한다.

이 높은곳에서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은 물이었다. 성 안에는 빗물을 가두는 거대한 탱크가 있다. 지금의 규모로도 엄청난데 그 시대에 이런 토목공사가 가능했다는 것이 너무나 놀랍다. 시멘트가 없었으니 바닥 역시 돌로 마감을 했다. 물이 새지 않도록 돌을 다룬 기술은 그 시대의 토목기술이 무척이나 대단하고 뛰어났음을 증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성벽을 둘러 적을 막기위해 높은 곳에 이렇게 다시 높다랗게 성벽까지 쌓았으니 천하에 용맹한 우리야라도 어찌 살아 남을 수 있었을까?. 다윗은 매우 치밀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한 여인을 탐하고 차지하기 위해서 그 남편을 죽이려고 완전 범죄를 노린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음모는 후세에 세상에 다 알려지게 돼 있다.

잔꾀 많고 머리좋은 사람들은 세상에 참으로 많다. 지도자가 실패하는 경우는 머리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가슴이 차거워서 이다. 사람을 사랑으로 따듯하게 품지 못하면 아무리 머리가 빼어나도 성공하기 어려운 것이다. 완전범죄를 숨기려 했지만 결국 다윗의 계략도 모두 드러나고 말았으니 말이다.

요르단의 역사가 서린 암몬성은 아주 간결하게 이 나라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산 정상에 세워진 매우 정교하고 아름다운 도시였음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성경에는 다윗의 욕망과 게략이 추악한 도시처럼 느껴지지만, 실제의 암몬성은 신선했다. 늦가을 사막에서 불어오는 선들바람이 살갑게 다가온다. 산성에서의 신선함처럼 모든것이 청량하고 쾌적하다.

오늘 암몬성의 이모저모를 보고 느낀 소감은 이것으로 끝을 맺겠다. 다음 방문 여정지는 세계적으로도 너무나 유명한 관광지, 와디 럼(Wadi Rum)이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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