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기자의 이스라엘, 요르단 성지순례 기행문16

김명열기자의 이스라엘, 요르단 성지순례 기행문16

요르단강 서안지구(West Bank지역)과 요르단강 강가에서…………..

 

지난주에는 우리들 일행들이 주로 순례일정을 소화시킨 예루살렘지역을 중점적으로 소개하여 드렸는데, 이번에는 그 지역의 순례여행을 마치고 여정을 요르단강 서안지역 일대로 향했다.

이스라엘의 점령지구 안에는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인 두 지역(요르단 서편, 가자지구)이 있다. 이중 시스요르단(Cisjordan=라틴어로 요르단 서편)은 면적이 5640제곱 키로미터로 팔레스타인을 구성하는 다른 지역인 가자지구보다는 면적이 훨씬 더 크고(제주도의 3배정도) 인구는 약 3백여만명으로 더 많으며, 팔레스타인국 정부도 이지역의 라말라에 있는 등 팔레스타인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인구는 3백5만명, 이곳 정착촌의 유대인 인구는 57만여명을 포함하면 이 지역에는 360만여명이 살고 있다. 현재 이곳은 이스라엘이 대부분의 지역을 군사적으로 점령하고 있다. 가자지구와는 현재 이스라엘을 사이에 두고 분단 상태로 서로간 왕래가 쉽지 않은데다가 주요 정파도 여기는 파타, 가자지구는 하마스로 달라서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다. 개막장인 가자지구보다는 그나마 낫다고는 하지만 여기도 사정이 막장인게 다를 게 없다. 이스라엘정부의 압제와 인종차별, 유대인 정착민들의 행패, 빈곤, 실업으로 인해 이곳에 사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고통은 너무나 심각하다. 게다가 서안지구 주민들의 공식 실업율은 18%로 이스라엘인들의 3배가 넘으며 각종 인종차별까지 당하고 살고 있다.

라말라와 베들레헴, 여리고 정도만 행정력을 행사하는 자치정부 역시 상황을 제대로 해결을 하지 못하는 처지다. 그러다보니 이스라엘에 대한 분노와 반감이 강하며 걸핏하면 벌어지는 시위와 테러, 범죄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막장지역이다. 최근에는 흉기테러뿐만 아니라 자체 제작한 사제 총기까지 등장해 총기난사와 범죄까지 발생하면서 분위기가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 무엇보다 이 테러에는 팔레스타인이라면 남녀노소가 모두 나서서 하고 있으니 더 문제다. 이렇게 되다보니 이스라엘정부도 극단적으로만 대응을 하다 보니, 팔레스타인들을 더욱 분노하게 만들어 테러와 범죄가 끊이지 않는다. 특히 적은숫자의 군대와 경찰로 서안지구를 통제하자니 힘이 들어 유대인 정착민들에게 무장을 허용하여 방어하라고만 했는데, 이 유대인 정착민들이 하필이면 악명 높은 극단파 하레디가 대부분이라서 쓸데없는 총질과 폭력으로 문제만 일으켜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으니 이스라엘정부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 시민들은 이 지역에 함부로 가지 못하며 군인과 경찰도 이곳에 배치 받는 걸 싫어할 정도다.

이곳의 역사를 살펴보면, 1948년에 영국령 팔레스타인의 분할안에 따라 비 유대인의 영토로 미리 설정하고 있었는데, 제1차 중동전쟁을 맞이하면서 요르단이 침공하여 점령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 제3차 중동전쟁을 맞이하면서 이스라엘이 침공하여 점령했다. 이후로 요르단은 이 지역에 살고 있는 비 유대인들을 자국민으로 대우했으며, 자국 본토의 비유대인 인구를 늘리는 것을 꺼리는 이스라엘도 그것을 묵인했다. 매우 긴 시간이 흐른 후 1988년에 요르단은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자산에 대하여 영유권의 주장을 아예 포기했다. 왜냐 하면 요르단 본토의 정계와 재계가 3개국사이의 경제권력 쟁탈전에 빈번하게 휘말리자 요르단정부가 계륵이라고 판단하면서 과감하게 발을 뺀 것이다. 그래서 국제법상으로는 이스라엘의 점령과 합병은 불법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결국 1994년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통치권을 인수했다.

이곳을 여행하는 것은 위험이 따르는 특별여행주의보가 발령됐던 곳이기도 하다. 언제 돌발상황이 발생할지 모르므로 베들레헴과 같은 관광지 이외에는 되도록이면 가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지역에서 머물고 호텔에서 잠도 잤다. 가자지구와는 달리 웨스트뱅크의 상당부분이 이스라엘에 의해 지배되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 더 과장을해 말한다면 이곳은 그냥 이스라엘 본토라고 해도 크게 무리가 없다. 보통 이 지역으로 진입하려면 다음과 같은 루트가 있다. 남측에서 사해변 도로를 따라 가는 길, 예루살렘을 출발해서 서쪽으로 진입하는 길, 그리고 북측 갈릴리호수방향에서 접근하는 길, 이곳을 방문하는 성지순례객이나 관광객들은 도로에 설치된 체크 포인트에서 소총으로 무장한 이스라엘군인의 간단한 검문만 거치면 출입이 가능하다. 이스라엘의 주요 관광자원중 하나인 사해변의 상당부분이 웨스트뱅크 내에 있어 사해관광을 목적으로 오는 관광객들이 많이 있다. 또한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키부츠역시 존재하기에 키부츠를 목적으로 오는 관광객들도 있다. 우리 일행들을 태운 관광버스는 특별한 제제나 검문 없이 잠간 검문소 앞에 섰다가 이내 통과 싸인을 받고 목적지로 향할 수 있었다.

요단강 (요르단 강) 가에서……….

다음으로 우리가 들린 곳은 요단강 세례터 이다. 그곳을 방문하기 전 먼저 요단강에 대하여 설명을 드리고 출발하겠다.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를 이 광야로 인도하여 올려서 우리와 우리 짐승으로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악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신명기 20장 4~5”.

이집트 애굽에서 노예처럼 생활하던 이스라엘민족이 모세의 지도하에 한많던 이집트를 떠나 약속의 땅으로 향했다. 어려움 속에서 출발한 약속의 땅으로 향한 순례의 여정, 그러나 광야의 혹독한 생활을 겪으면서 선조의 땅 가나안으로 전진할 때 고난과 역경을 참아내지 못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광야에서 모세에게 거칠게 몰아 부치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왜 우리를 여기로 데려왔습니까?” 그들은 노예로 취급받고 차별을 받았던 때는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리고 허허벌판 광야에서 지난시절을 그리워하는 이스라엘 민족이었다. 노예 같은 생활도, 현재 경험하는 역경과 고난보다 낫다고 스스로를 쇠뇌하며 과거를 색칠하였다. 그때는 차별받았지만 지붕아래서 잠을 잘 수 있었다. 풍찬노숙에 참기가 어려워진 그들은 불평과 불만의 화살을 모세에게 마구 쏘아댔다. 예루살렘이나 여리고에서 요르단 강으로 가는 길은 사막이다. 물도 풀도 없는 황량한 사막(광야)이었다. 게다가 그곳은 해수면보다 몇백미터 낮은 지대이다. 광활한 사막 어느곳에는 가끔씩 베두인들이 쳐놓은 텐트가 보였다. 이스라엘민족도 그 옛날 저러한 광야에서 저렇게 살았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가끔씩 양무리들이 황량한 산비탈에 무리지어 있는 모습들이 보였다. 저쪽의 끝, 올리브산 너머에는 거의 사막지형이다.

성서의 땅, 그 지형은 성서에 적힌 말씀처럼 신비하고 오묘하다. 온갖 지형이 이 좁은 국토안에 다 있다고 한다. 사막과 비옥한 옥토가 함께…….. 북에는 민물인 갈릴래아 호수, 남에는 죽은 소금의 바다 사해가 있고, 그 사이를 연결시키며 흐르는 요르단 강이 있다. 자유가 없던 노예의 시절과 자유는 있지만 참기 어려운 역경, 그 사이에는 상징적인 요르단강(요단강)이 흐르고 있다. 삶과 죽음 사이 그 요단강, 그래서 강 이편과 저 편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과 광야를 가른다. ‘아제아제바라아제’의 뜻과 같다. 요단강 저편은 ‘피안’이다. 강은 물리적으로 이 경계 구분을 뚜렸이 한다. 바로 거기에서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

경계선에서……

그래서 세례란 거꾸로 들리는 것이 아닐까? 갈릴래아 쪽에서 내려오는 요단강 물줄기는 사해로 흘러간다. 세례는 이 사해, 죽음의 바다에서 생명의 갈릴래아(갈릴리) 바다로 물줄기를 바꾸는 것이다. 그래서 명심하자. 세례 받기전과 후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아니 반드시 달라야 한다는 것을……… 세례는 옛 생활의 죽음으로부터 새 생활로 부활하는 것이다. 죽음이 없이 부활은 없다.

영어 표현인 ‘옛 좋은 시절’을 뜻하는 the good old days는 광야생활에 대한 불평불만의 이스라엘민족과 비슷한 심리적 상태를 말해 준다. 그러나 옛날이 그렇게 다 좋았을까?. 구약의 이스라엘민족처럼 정말 ‘지금의 현재’가 참기 어려워 심리적으로 옛 시절 향수를 자극하는 것은 아닐까?.무의식중에 ‘향수’는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한다.

옛 시절을 미화하는 우리들의 심리상태는 가끔씩 미래지향을 방해한다. 모세와 여호수와의 굳건한 믿음과 리더십이 필요하지 않을까?.

군대생활 얘기를 자주하는 남자들은 군대로 다시 가라고하면 절대로 안 간다. 광야에서 모세에게 불평하던 이스라엘민족에겐 옛 시절 향수는 노예의 속박마저 망각하게 만들어버린다. 무서운 일이다. 과거가 미화되는 우리의 심리, 일본 우익들의 향수, 영국의 UKIP당원들의 대영제국 영광의 향수, 미국의 영광을 다시 라는 구호에 혹해서 트럼프를 꾹 찍어버린 미국시민들은 옛 시절 향수에 취해 알게 모르게 ‘과거 미화’에 동참했다. 샤넬 No 5보다 더 강한 ‘과거 향수’의 향이 퍼지는 것은 이스라엘민족의 광야 경험과 같이 ‘현실 불만족’이 그 근원이다. 과거를 통해 미래를 봐야지, 은연중 좋은 시절(the good old days)만 떠벌리는 사람들은 과거 미화뿐 아니라 미래조차 망각한 사람들이다. 약속의 땅은 그들에게 멀기만 할 것이다. 구약의 예언자 모세처럼 굴하지 않고 약속의 땅(the promised land)을 향한 걸음을 멈추지 말자. 그래서 흑탕물 요단강에서 세례때 약속 상기와 갱신은 계속돼야 한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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