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세상이 너무 뒤숭숭 하니, 마음조차 불안하다.

<김명열칼럼> 세상이 너무 뒤숭숭 하니, 마음조차 불안하다.

 

각종 사건이나 사고의 빈발함과 최근 세계적으로 확산되고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19의 여파로 세상이 너무나 어수선하고 뒤숭숭하며 불안감은 극에 달하고 있다. 중국발 코로나 바이러스 질병으로 인하여 한국은 물론 미국이나 유럽, 아프리카 등등의 세계 각 곳의 수많은 나라들이 악성 전염병인 코로나 바이러스19로 인해 Pandemic 상황으로 난리를 치고 있다. 그로인해 글로벌 경제는 침체되고 모든 생산이나 수요 공급이 원할하지 못하여 민생경제는 파탄지경에 이르렀다. 그에 더해 관광업과 요식업, 서비스업 등은 직격탄을 맞아 회생불능상태에 이르렀다. 글로벌시대에 벌어지는 위기 상황이 우리에게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이웃에서 기침을 하면 우리는 감기에 걸리는 꼴이다.

과학과 문명이 발달할수록 이런 예기치 못한 바이러스와 가축전염병은 사라지지 않고 창궐하고 있으니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얼마전 연초 한국에서는 아프리카 돼지열병으로 야단법석을 일으켰고 그로 인해 돼지 사육농가들은 전전긍긍 하고 있다. 질병 전파에 대한 예방차원으로 멧돼지와 집돼지 모두가 살육되고 몰살당했다. 비록 말 못하는 산짐승이나 집의 가축 동물이라도 생명을 지닌 동물이다. 그런데 질병의 매개체로 낙인찍어 무차별 살육을 자행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없다.

최근 들려지고 전해지는 소문에 의하면 북한의 김정은 정권아래서 고초를 받고 있는 일반 백성들은 코로나 바이러스 전염병으로 인해 개, 돼지, 짐승처럼 처참하게 죽어가고 있다고 한다. 소식통에 의하면 북한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린 확진 환자는 격리 수용되어 병원치료를 받는 것이 아니라 확진 판정이 내리면 어디론가 끌려가서 즉결 처형되고 그 자리에서 불태워 시체조차도 흔적 없이 잿가루로 만들어버린다고 한다. 아예 전염의 근원을 뿌리조차 없애려는 의도로, 병자의 시체조차 완전히 태워서 코로나 바이러스 전파를 사전 차단시키려는 완전 봉쇄작전으로 판단된다.

지금처럼 세상이 어수선하고 사회가 불안해도 사람과 사람과의 교류와 정이 지속된다면 아직 희망이 있는 사회일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런 사람과의 교류와 정이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전염병 사태로 완전히 차단되고 인위적으로 격리되며 통제되는 현실이 되었으니 참으로 안타깝다. 더불어 시절이 하 수상하니 어찌 처신하며 살아가야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우리 모두가 사람다운 삶을 살아가기가 힘든 시대에 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지금 시대가 참으로 어수선하다.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고, 실망하고 절망하고, 허탈해 한다.

한국의 어느 지인은 문재인대통령이 좀더 일찍 중국인들의 입국을 차단만 시켰더라도 오늘날처럼 이렇게 한국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고통을 겪고 몸살을 앓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며 자괴감이 든다고 했는데, 아마도 많은 국민들 역시 그런 마음일 것이다. 내가 이런 모습을 보려고 당신을 찍었나? 하는 자책감속에 문재인대통령을 원망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고 한다. 국민들의 마음은 처음에는 분노였지만 이제는 허탈한 마음인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은 사기를 당하고 현실적인 피해도 피해지만 “내가 바보같이 이렇게 당했는가”하는 허탈감과 같은 것이다.

오늘 나는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하여 성경을 읽는 중에 믿음 장으로 유명한 히브리서 11장1절의 말씀이 유난히 마음에 와 닿아 이곳에 올려본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하는 말씀이다. 요즘 나는 믿음이란 무엇인가(?) 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고 묵상에 젖어본다. 이렇게 시절이 어수선한 때에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내 믿음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모두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이때에 하나의 글은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 삶의 청량제, 선을 향한 올바른 지표를 세워주는 이정표 같은 참으로 좋은 글도

되지만, 한편으로는 한편의 글은 어느 사람의 비평도 감수해야 한다. 단어 하나, 조사 하나, 호칭 하나가 사람들을 자극할 수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나의 생각과 소신, 결국 나의 믿음이 독자들 앞에서 모두 드러나는 것을 감수해야한다. 더군다나 이 글은 사라지지 않고 인터넷이란 매개체를 통하여 전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간다. 오늘도 수없이 많은 독자들이 지구촌 곳곳에서 나의 글을 읽고 있다. 이렇게 애독하고 있는 내가 써 올린 글은, 과거와 같이 활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이버공간에서 손쉽게 검색된다. 그런데 한때가 아니라 영원토록 이 글들은 남아서 나의 믿음을 드러낸다. 그래서 요즘 글을 쓴다는 것은 믿음의 심판대에 서는 것과 같다.

오늘 나의 믿음은, 머지않아 세상에 확산되고 있는 이 괴질 코로나 바이러스 전염병도 반드시 인류의 우수한 의술과 첨단 과학의 활약에 힘입어 퇴치되고 말 것이라는 확신과 믿음을 가져본다. 그래서 정의가 가득한 세상, 행복과 건강이 가득한 세상, 사랑과 평화가 가득한, 하나님

의 축복이 넘치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뜻이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나라의 바른 가치이기에 그것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이다.

요즘 나는 걱정거리가 하나 더 생겼다. 나의조국 한국에 대한 걱정이다. 한국의 사회를 보니 시국이 너무나 어수선하다. 백성들은 밥을 달라고 아우성치는데 백성의 녹을 먹고사는 정치는 귀를 막고 있다. 역사는 계승의 힘을 얻고 발전해야 하는데 오히려 후퇴를 하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다. 옛날 중국의 요순시절이 그립다. 임금의 이름조차 모를 만큼 백성들은 평화로 왔다. 그래서 요순시절이요 태평성대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에게는 두 가지의 임무가 주어져 있다. 첫째는 빈부격차 해소이고, 둘째는 이념갈등을 완충시키는 것이다. 이게 대다수 국민들의 바램이다. 그러나 현실은 절망적이다. 소득주도성장은 빈부격차를 더욱 더 악화시켰고, 비핵화를 내건 평화정책은 이념의 골 깊은 갈등을 낳았다. 부부가 매일 싸움질만 하면 자식들은 식사를 걸러야 하고 밖으로 나돌 수밖에 없다. 가정 파탄의 원인이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여당과 야당이 싸움질에 매달리면 희생의 댓가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가져야한다. 한국의 국회의원들은 너무나 호강하게 살고 부족함이 없이 산다. 7명의 보좌관, 비서진에다 연봉이 억대를 넘는다. 일을 해도, 하지 않아도 꼬박 꼬박 돈은 나온다. 그 돈의 월급의 원천은 국민들의 피와 땀이다.

3~4천원하는 무 배추를 팔아서 겨우 먹고사는 노점상 아주머니,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어 눈시울을 붉히며 전전하는 실업자, 편의점에서 하루 20시간을 꼬박 혼자서 일해야 하는 영세 중소상인들, 생명 소모를 감수하고 농약을 뿌리고 있는 70이 넘은 노인 농부의 비지땀, 이런 눈물과 피눈물, 땀방울이 모여 예산을 만들고, 그 예산으로 국회의원들은 상위 1%대의 월급을 받고 있다. 세상이 너무나 불균형을 이루고 공평하지 않아서 잠시 불편한 심기를 다른 곳으로 돌려보았다.

다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전염병 이야기다. 바이러스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감염된 사람을 알아보고 접촉을 제한해야 확산을 막을 수 있다. 때문에 기술의 발전이 사람들간에 만나지 않아도 되는 삶을 가능케 하며 위기속 생존의 확률을 높이기 위해 도움을 준다는 것은 일견 반가운 일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지구상의 다른 종과 비교해보아도 육체적으로 결코 강인하지 않음에도 지금껏 수많은 위기를 함께 극복하며 살아남은 우리 인류는 같은 종의 개체들과 함께 있을 때 안온함을 느끼고 행복하도록 진화했다. 그러하기에 같은 종을 두려워하고 교류를 끊어야만 하는 오늘날의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우리의 지능은 부족한 지식에서도 지혜를 이끌어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분석해서 만들어낸 백신이 올 여름부터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실험에 들어간다는 소식도 들려오지만 아직도 가야할 길은 멀고 험난해 보인다. 유전체 분석과 인공지능 같은 새로운 지식을 더하고 전 지구적인 협력으로 도전하여 이 어려움을 빨리 극복하기를, 그리고 이겨낼 때마다 더욱 지혜로운 종으로 조금씩 더 진화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망한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209>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