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꽃피는 3월에 봄같은 여인을 그리며…..

<김명열칼럼> 꽃피는 3월에 봄같은 여인을 그리며…..

봄의 여인과 겨울 남자가 결혼을 했다. 둘은 행복했으나 한가지 불행한 것은 아이를 갖지 못한 것 이었다. 다른 집 아이들이 뛰어 노는 것을 볼때마다 두 사람은 가슴이 아팠다. 어느 겨울 두사람은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눈을 뭉쳐 아이를 만들었다. 팔 다리를 만들고 얼굴과 눈 코를 만들고 입술을 완성하는 순간, 그 입술에 온기가 돌더니 놀랍게도 눈의 껍질을 벗고 한 아이가 나타났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도를 신이 들어주었다고 여기고 너무나 기뻐했다. 그리고 아이에게 ‘눈의 아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겨울 남자는 아이의 연약한 몸이 부서질까봐 집밖으로 나가는 것을 반대했지만, 봄의 여인은 아이가 마음껏 자신에게 주어진 기적 같은 생을 누리기를 원했다. 겨울이 긴 나라에서 아이는 잘 자랐고, 봄이 다가올 무렵 부모가 마음속으로 걱정하던 일이 일어났다. 아이는 그 마을의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사랑이 깊어지자 아이의 심장이 뜨거워지기 시작했고, 아이는 그렇게 심장부터 녹아서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이 이야기는 러시아의 전래 동화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처럼 이 사랑의 이야기는 비극적인 결말이 아니다. 진정한 사랑은 얼어붙었던 심장을 뜨겁게하며, 자신이 지켜온 형태와 에고를 다 녹여버리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존재가 녹아버릴까 염려하며 살고 있는 ‘눈의 아이’이다.

따듯한 봄이 왔다. 계절이나 월력으로 보더라도 3월은 봄이 시작되는 계절이다. 그래서 봄을 상징하는 말로 꽃피는 춘삼월이라고 한다.

옛사람들은 봄의 시작을 3월로 표현했다. 우리나라는 4계절이 뚜렷하다고는 하나 계절 사이의 경계를 구분하는 일은 쉽지않다. “종일토록 청려장 지팡이를 짚고 봄을 찾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매화나무 가지 끝에 봄이 와 있더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이 어느 사이엔가 봄이 와있다고 할 수 있다. 봄이 왔음을 알리는 것은 역시 꽃의 개화이다. 봄은 수천 수만가지 초목들이 꽃을 피워내는 아름다운 계절이다. 특히 3월달은 그 많은 꽃들 중에 상당수의 토종 꽃들이 개화를 하여 그 자태를 뽐내는 달이기도 하다. 이렇게 이른 봄에 피어나는 꽃중에는 단연코 내 고향 양지바른 산 기슭자락에 피어나는 할미꽃을 꼽을 수 있다. 한국 우리나라의 산야에는 식물의 종류가 풍부해서 봄을 알리는 꽃의 종류도 다양하다. 호젓한 산기슭과 잔디밭 또는 풀밭에 고개를 내미는 할미꽃은 스치는 찬바람 속에서도 문득 느껴지는 봄기운을 상징한다. 눈이 부셔 밝게 빛나는 태양을 쳐다보지 못하면서 고개 숙여 수줍어하는 모양을 우리는 예로부터 사랑해왔다. 꽃잎 바깥쪽이 흰 털로 덮여있어서 할미꽃이라는 이름을 얻었으며, 수수께끼에서도 “젊어도 할머니노릇 하는 꽃”이라고 하여 봄을 흥겨워하였다. “뒷동산에 할미꽃은 늙으나 젊으나 꼬부라졌네”라는 내용의 동요도 예로부터 봄철에 불리어졌다. 꽃이 지면 흰 털을 덮어쓰는 꼴이 역시 늙은이를 닮았다고 해서 백두옹이라고도 한다.

낙엽수의 잎이 돋아나기 전에 양지바른 곳에서는 바람개비 꽃이 신화처럼 산과 숲을 단장하는가 하면, 들과 길가에는 민들레꽃이 봄을 말하여준다. 찬바람을 피하기 위해서인지 땅바닥에 바짝 붙어서 자란다. 매화는 봄을 알리는 꽃중에서도 가장 이르게 피어나는 꽃으로 맑은 향기와 청아한꽃은 고결한 자세로 봄소식을 전한다. 매화는 가난하여도 그 향기를 파는 일이 없다는 맑고 지조 높은 마음씨를 우리 민족에게 심어주었다. 매화에 가까운 것으로 살구꽃과 복숭아꽃이 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라는 가사는 우리민족이 꽃피는 궁궐안에서 봄이라는 시간을 보내었음을 말하여준다. 살구꽃은 그 화사한 꽃색과 대단한 향기로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고 겨우내 음산하게 웅크려있던 마음과 몸을 밖으로 끌어내주고는 하였다. 봄을 수놓는 노란꽃으로는 개나리가 있고 황매화도 있다.

개나리는 왕성한 번식력과 땅을 가리지 않는 강한 적응력 때문에 어디에서나 군집을 이루며 아름다움을 나타낸다. 개나리꽃을 입에 물고 달아나는 병아리 뗴의 모습은 우리나라 어린이들에게 꿈과 낭만을 심어주는 봄의 정겨운 풍경이었다. 아름다운 핑크색의 진달래는 우리나라 산야에 특히 많아서 노래와 시에 많이 등장할 뿐만 아니라 화전놀이 등의 세시풍속과도 관련이 깊다. 3월3일은 삼짇날이라고도 한다. 강남에 갔던 제비도 이날이 되면 옛집을 찾아온다고 하며 마음씨 좋은 사람의 집을 찾아가서 추녀 밑에 둥지를 만들고 새끼를 깐다고 믿었다. 이처럼 제비는 항상 반가운 남쪽으로부터의 봄 손님이었다. 두견새의 애달픈 부르짖음이 노래가 되고 학들이 모여드는 봄날은 길고 노곤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긴 동면에서 깨어난 개구리가 활동을 하고 온갖 곤충들도 활동을 시작하여 노랑나비, 흰나비, 벌등이 날아다닌다. 이처럼 봄은 갓 피어난 꽃과 꽃 사이를 날아다니는 벌과 나비, 새들의 지저귐이 어우러지는 젊음과 생명을 상징하는 생동의 계절이다.

젊음이 피어나고 생동하는 봄의 시작인 3월, 봄의 계절의 주기로 볼때 시작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래서 “한 해의 계획은 봄에 세우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봄은 긴 겨울동안 농사의 소출이 없기 때문에 식량부족으로 시달리기 일쑤여서 이때를 ‘보릿고개’라 하였고, 다른 말로는 춘궁기라고 하였다. 식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무척 긴 것으로 느꼈으며. ‘봄 떡은 들어앉은 샌님도 먹는다’ 든가 ‘봄 사돈은 꿈에 봐도 무섭다. 봄에 의붓아비 제사지낼까’등의 속담은 모두 봄의 궁함을 나타내는 말들이다. 그런가 하면 봄에 흔히 보게 되는 생리적 현상인 낮잠을 두고 생겨난 말로 ‘일장춘몽’이 있는데, 이 말은 덧없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봄에 잠깐 낮잠을 이루었을 때 흔히 꾸게 되는 꿈은 덧없다는 뜻이다. 또 봄이라는 계절이 기간으로 보아 짧기 때문에 덧없다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또 봄은 오랜 겨울동안 움추렸던 생리현상을 활발하게 한다는 데서 유추된 생각이 ‘봄바람, 춘정’등으로 나타난다. 이 말은 계절적인 봄이 인생의 봄인 사춘기의 격정적 충동에 해당된다고 보는 것과 관련이 있는데, 봄에는 들뜨기 쉽다는 경계가 담겨있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봄은 새로움, 시작을 의미하고, 긴 동면의 깨어남, 생동감, 봄의 온화하고 화창함에서 오는 흥겨움, 풍류 등을 연상케 한다.

회색과 죽음을 연산케 하는 춥고 눈보라치는 기나긴 겨울이 지나가면, 세상은 변화의 물결로 일렁이기 시작한다. 변화의 신비, 다시 살아나는 생명의 세계, 그리고 아름다움의 극치인 꽃으로 산과 들이 뒤덮이는 봄은 참으로 아름다운 계절이다. 봄을 생각하면 누구나 곧 꽃을 연상하게 되고, 꽃을 보노라면 곧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마음속에 그려본다. 봄과 여인은 여러모로 동질성을 지닌다. 여인은 봄의 태양처럼 따스하다.

얼어붙은 가슴도 봄눈 녹듯이 풀어준다. 여인은 모든 것을 생동하게 한다. 따스한 봄의 햇살은 산천초목과 짐승및 곤충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물들의 성장과 생식의 활력소로 작용한다. 여인도 봄볕과 같은 신비로운 활력소의 구실을 한다.

단테의 가슴속에 베아트리체가 살아 있어, 인류사에 위대한 문학을 꽃피우게 한 것을 우리는 기억에서 지울 수가 없을 것이다. 참 여성적인 것이 스며드는 곳마다 봄철의 자연처럼 싹이 트고 꽃이 핀다. 모든 아름다운 것은 여성적인 신비의 바탕이 없이는 자라날 수가 없다. 여성의 신비로움처럼 자연의 신비 또한 참으로 조화롭고 경이스럽다. 한가지 꼭 밝혀둘 것은 여인은 늙어서 죽을때까지 내내 봄이어야 한다. 남성에게는 여름도 있고 가을도 있고 겨울도 있지만, 여인의 가슴속에는 봄만이 있어야 한다. 봄이 스러진 여인은 아무리 젊어도 벌써 그것은 생명을 잃은 여인이다. 여인은 영원한 봄이어야 한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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