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기자의 이스라엘, 요르단 성지순례 기행문<9>  제3차 중동 전쟁, (6일 전쟁)

김명열기자의 이스라엘, 요르단 성지순례 기행문<9>  제3차 중동 전쟁, (6일 전쟁)

 

지난주에 이어서 중동의 6일 전쟁 이야기. 제3차 중동전쟁 또는 6일 전쟁은 1967년 6월 아랍권 나라들과 이스라엘간의 전쟁으로도 알려졌다.

이 전쟁은 이스라엘을 상대로 주변 이웃국가인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이 연합하여 벌인 전쟁이다. 이때 당시 이집트는 아랍연합공화국으로 불렸다. 이스라엘과 주변국가 사이의 관계는 제1차 중동전쟁 이후 안정화된 적이 없었다. 1956년 스에즈 위기 당시 이스라엘은 주요 목표 중 하나였던 ‘티란해협’을 확보하는 것을 중요시하게 여겼다. 이 지역은 1950년 이래 이집트가 이스라엘의 항해를 봉쇄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철수할 수 밖에 없었다. 티란해협을 다시 개방할지도 모른다는 보장을 받게 되었다. 유엔 긴급군이 국경에 따라 배치되었지만 비무장 합의는 없었다. 1967년 6월까지 이스라엘 주변국 사이의 긴장은 높아졌다. 이스라엘은 티란해협에 대한 봉쇄는 전쟁 명분이 될 것이라 말하며 1956년 이후의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5월말 가말 압델 나세르는 이스라엘 선박에 대해 해협들이 봉쇄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후 이집트는 이스라엘과의 국경을 따라 군을 전진시켰고, 6월5일 이스라엘은 이에 대항해 이집트 공군기지에 예방적 기습을 가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들은 제3차 중동전쟁에 관한 논란중 하나이다.

이집트는 기습당했고, 이스라엘군은 소수의 피해만 입은 채 이집트 공군을 거의 궤멸시켰다. 이는 이스라엘에 공중 우위권을 제공해 주었다. 동시에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와 시나이반도를 향해 공세를 개시했고, 이는 다시 이집트군을 놀라게 했다. 몇몇 초기의 저항이 있은 후 이집트 지도자였던 나세르는 시나이반도에서 이집트군을 철수시켰다. 이스라엘군은 서쪽으로 계속 진격하여 이집트군에 큰 손실을 입혔고 시나이반도를 정복하는데 성공했다. 나세르는 이집트가 이스라엘의 공습을 물리쳤다고 주장하며 요르단과 시리아에게 이스라엘을 공격해달라고 했다. 이스라엘은 동 예루살렘과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요르단 군을 축출했으며 시리아군에게도 반격을 가해 골란공원을 점령했다.

전쟁이 6일간 이어져 ‘6일 전쟁’으로 불리는 3차 중동전은 오늘날 이스라엘~팔레스타인지역에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중동전쟁의 주요 배경으로 꼽힌다. 중동현대사에서 정치적, 지정학적 대 변동을 초래한 3차 중동전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이스라엘과 아랍권 국가간 총성 없는 전쟁으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실제 이스라엘이 이 전쟁 이후 이집트와 요르단, 시리아등 아랍권 국가들의 영토를 빼앗으면서 아랍권과 적대적 관계를 확고히 했다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이스라엘은 이 전쟁에서 아랍국가들에 압승을 거둔 뒤 요르단강 서안지역과 가자지구, 동 예루살렘,시리아 골란공원, 이집트 시나이반도를 장악했다. 골란고원 일부와 동예루살렘은 유엔 등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이스라엘에 강제로 병합됐고, 서안은 지금도 이스라엘에 점령된 상태다. 가자지구는 50여년째 이스라엘군에 봉쇄돼

있다. 이스라엘은 골란공원엔 군병력과 검문소를 배치한채 이 일대를 실질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3차 중동전쟁의 포문은 이스라엘이 1967년 6월5일 먼저 열었다는게 역사학자들의 대체적 시각이다. 건국후 20년이 되지 않았던 신생국가 이스라엘은 이날 새벽 자국의 존립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등 아랍 연합국을 선제공격했다. 이날 저녁까지 파괴된 이집트 공군기는 약 300대에 달했다. 이스라엘군은 동시에 이집트와 함께 이스라엘에 전쟁을 선포한 요르단, 시리아등의 비행장들을 공습해 약 100여대의 전투기 들을 박살냈다. 이스라엘은 사실상 전쟁첫날 이 일대의 제공권을 완벽히 장악했다. 이스라엘 공군기의 피해는 19기에 불과했다. 선제기습 공격으로 기선을 잡은 이스라엘군은 지상전에도 거침이 없었다.

이스라엘 동쪽으로 요르단에 있는 예루살렘을 점령해 ‘통곡의 벽’앞에서 감사기도를 올렸고, 서안과 가자지구를 장악했다. 북쪽으로는 골란고원에서 시리아군을 몰아냈다. 이집트, 요르단,시리아 영토에 동시에 진격해 2만700제곱킬로미터에 불과하던 영토를 순식간에 6만8천600제곱 킬로미터로 늘려놓았다. 이스라엘의 기습으로 허를 찔린 아랍연합군의 주축인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는 단일 대오를 형성하지 못했다. 이라크와 쿠웨이트, 수단, 사우디아라비아 등도 아랍연합군을 지지했지만, 이스라엘군의 파죽지세를 막지 못했다.

아랍권 국가들은 이렇다 할 역습도 가하지 못한채 각자 따로 군사작전을 펼치며 분열된 모습을 보였다. 결국 요르단과 이집트, 시리아 등 세 나라가 국제사회의 중재아래 차례로 휴전을 받아들이면서 전쟁은 발발 6일만에 종료됐다.

이 전쟁은 불과 6일만에 끝났지만, 이는 지금도 이어지는 총성없는 전쟁의 또 다른 시작이었다. 이스라엘의 점령을 거부하는 원주민인 팔레스타인들이 목숨을 건 저항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역시 점령지 철수를 통한 팔레스타인은 물론 주변 아랍권국가와 평화공존을 모색하기보다는 점령, 강제 합병정책을 밀고나가면서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아랍국들의 단결을 부추겨 긴장이 고조된 끝에 1973년 4차 중동전이 터졌고, 삶의 터전을 잃고 쫓겨난 팔레스타인들은 이스라엘과 유대인을 상대로 계속해서 공격을 가했다.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외교적으로 고립된 상태다. 3차 중동전 후 지속한 이스라엘의 점령정책은 중동분쟁의 해결을 요원하게 만드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1967년 11월 결의안 242호를 채택, 이스라엘이 3차중동전때 점령한 아랍국가들 영토에서 철수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국제법 효력을 지닌 안보리 결의안을 지금까지 무시하고 있다. 이는 팔레스타인과 아랍국가들이 “이스라엘이 국제법을 무시하고있다”며 점령정책을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배경이 됐다. 이스라엘은 1978년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평화협정을 맺은 이집트에 시나이반도를 반환했을 뿐이다. 이스라엘은 2005년 정착촌과 군대를 일방적으로 철수한 가자지구를 포함한 나머지 점령지에서는 불법적인 지배와 통제, 봉쇄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은 서안과 가자에서 팔레스타인들의 잠정자치 허용을 골자로 하는 ‘오슬로 협정’을 1993년 체결하고도 정착촌확장과 분리장벽건설 등으로 일부 점령지를 자국의 영토로 만들기위한 시도를 멈추지않고 있다. 정착촌을 지은 곳에 유대인들을 지속해서 이주시키면서 팔레스타인들과 의 뿌리 깊은 갈등은 더욱 커졌다.

이스라엘은 50여년간 강점한 서안과 동예루살렘, 골란고원지역 등지에 정착촌 200개 이상을 건설해 유대인 60만여명을 이주시켰다. 현재 서안에 가장 많은 135개 정착촌이 건설돼 이스라엘인 35만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동예루살렘에도 이스라엘인 20만여명이 살고 있다. 이스라엘은 정착촌주택 건설 추진 이유에 대해 대외적으로는 안보논리를 앞세우고 있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영구적인 수도로 만들기 위한 시도도 지속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주 이스라엘 미국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 내부와 그 주변의 서안지역에 정착촌을 집중적으로 건설한 점에 미루어 예루살렘의 지리적 영역을 확장하고 인구 비율상 유대인의 우위를 확보해 향후 정치적, 국제적 논쟁 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분석이 많다. 당연히 팔레스타인은 반발하며 현재 고착상태에 빠진 이~팔 평화협정 재개 조건으로 정착촌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팔레스타인들은 3차 중동전 발발 이전의 국경을 기준삼아 예루살렘을 수도로 하고 서안과 가자지구를 영토로 하는 독립국가건설을 갈망하고 있다. 이를 위해 팔레스타인은 국제사회에 이~팔 평화 공존 방안을 기반으로 한 ‘2국가 해법’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국제사회가 지지하는 ‘2국가 해법’에 모호한 입장을 밝히며 팔레스타인들의 꿈을 수용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은 오히려 우호세력인 미국의 전폭적인 후원아래 50여년간 점령한 땅에서 일어나는 팔레스타인들의 시위 행위를 무력 진압하거나 점령지의 반환을 요구하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인 하마스를 테러단체로 지정했다.

이스라엘은 또 골란고원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시리아의 요구도 무시해왔다.

이스라엘은 3차중동전을 계기로 점령국의 이미지가 부각되자 이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행보도 보인다. 그 예로 이스라엘정부는 ‘점령지’라는 표현 사용을 꺼리는 대신 ‘분쟁지역’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이스라엘의 저명한 역사학자인 ‘톰 세게브’는 “6일전쟁은 실질적으로 끝나지 않았다”며 “그 전쟁 7일째는 지난 5ㅇ여년간 지속해왔다. 그 전쟁은 우리와 팔레스타인들에게 매일 매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이스라엘 일간지 하레츠에 말했다.

<이상은 독자 여러분들께 참고로 중동전쟁의 역사적 배경과 그 실제 상황의 이야기들을 지식과 정보를 드리는 입장에서 아는 대로 서술해 보았다. 앞으로 계속해 이어나가는 기행문내용에 많은 도움과 참고가 되기에 시간을 할용해 소개하여 드렸다. 애독자 여러분들의 해량을 바라겠다.>

<다음주에 계속>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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