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기자의 이스라엘, 요르단 성지순례 기행문<8> 

김명열기자의 이스라엘, 요르단 성지순례 기행문<8>

중동의 6일 전쟁

 

지난 호에 잠시 언급을 했었는데, 기행문을 이어가기에 앞서 이곳, 이스라엘의 역사와 현재의 상황 등을 독자들께서는 지식적인 측면에서도 견지하시는 것이 좋을듯하여 이번에는 두번에 걸쳐 과거의 전사 및 오늘날의 정세현황을 아는 대로 소개하여 드리도록 하겠다.

현재의 중동 상황은 깊지 않은 땅속에서 휴면중에 있는 활화산처럼, 언제 폭발하고 터져 나올지 모르는 위험 상황의 현실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내가 이스라엘, 요르단의 성지순례 여행을 가겠다고 하니, 몇몇 지인들이나 친구들이 나에게 하는말 “그 위험한 지역에 왜 가느냐?”고…….. 사람들이 생각하기로는 지금도 그곳 중동지역, 특히 이스라엘과 그 주변의 아랍권의 국가간에 끊임없이 긴장이 지속되고 툭하면 발생하는 팔레스타인이나 아랍권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한 테러나 총격사건이 자주 일어나다보니 이러한 말들을 나에게 전하며 염려와 걱정의 안위 말들을 하실 만 하다. 이와 같이 뭇 사람들은 중동의 화약고라고 할 수 있는 이스라엘(예루살렘)의 성지순례 여행에 대하여 많은 관심과 염려, 걱정의 충정어린 말씀들을 해 주셨다.

2018년 5월14일, 이스라엘 주재 미국대사관이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하여 문을 열었다. 이는 전년도 12월1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공식 수도로 인정한다고 발표한데 따른 조치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팔레스타인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미국대사관이 예루살렘으로 이전해 문을 연날,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이스라엘 접경지역에서는 수만명이 쏟아져 나와 불이 붙은 타이어와 돌을 던지며 격렬하게 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군이 총을 쏴 팔레스타인 50명이상이 목숨을 잃고 약 2400명이 다쳤다. 그 후 팔레스타인이 살고 있는 가자지구에서는 지난 6주동안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정책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고, 미국대사관 이전은 이 시위에 기름을 부었다.

가자지구를 실질적으로 통치하는 이슬람 무장정파 하마스는 2017년 12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가 나오자 트럼프대통령이 ‘지옥문을 열었다’고 반발한바 있다. 아울러 그들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전의 상태로 가자지구 땅을 자기네 팔레스타인들에게 되돌려 줄 것을 끊임없이 요구하며 이스라엘 군인들의 가자지구 점령지에서 즉시 철수할 것을 요구하며 시위와 테러로 이스라엘정부에 항의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서쪽으로 지중해와 접해있고, 북쪽으로는 레바논과 시리아, 남쪽에 이집트의 시나이반도, 동쪽으로는 요르단강에 둘러 싸여있는 곳이다. 전체면적이 약 2만6천 제곱킬로미터 정도인데, 북한의 평안도나 남한의 경상도 크기만 한 작은 땅이다. 팔레스타인 땅이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지리적 정의는 시대에 따라 조금씩 바뀌었지만 대체로 오늘날의 이스라엘 영토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구역 일대를 말한다. 현재 이지역의 80%는 이스라엘 영토인데,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요르단강 서쪽 연안지역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는 지중해 해안을 따라 길게 뻗어있는 가자지구를 차지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싸움은 한마디로 땅 때문이다.

이들의 분쟁은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학자들은 대략 기원전 60만년전부터 팔레스타인지역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지금의 이스라엘인들의 조상인 유대인들과 팔레스타인들의 조상인 블레셋인등, 여러 민족들이 함께 거주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기원전 11세기경 이스라엘이 왕국을 건설하고 일대를 다스렸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기원전 1세기경에 로마제국에 멸망하고 이스라엘민족은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지고 이곳에는 주로 아랍인들이 살게 된다. 이후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충돌하는 십자군전쟁등 몇차례의 큰 전쟁을 겪은 후 이 지역은 오늘날 터키의 뿌리인 오스만 투르크 제국으로 넘어간다.

1차 세계대전 당시에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독일편에 선다. 하지만 이 전쟁은 영국과 프랑스,러시아, 등의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고 결국 오스만 투르크제국은 연합군에 의해 분할된다. 그런데 이때 각자 이해 관계들이 얽히면서 서로 다른 약속을 한 것이 오늘날 분쟁의 씨앗이 되고 말았다.

첫번째 약속은 전쟁이 한창이던 1915년, 당시 이집트 주재 영국 고등무관이었던 헨리 맥마흔이 아랍권과 약속을 한다. 당시 아랍권의 도움을 받기위해 아랍의 정치 지도자였던 후세인 빈 알리와 서한을 주고받은 일이다. 연합군이 이기면 당시 오스만 제국에 속했던 팔레스타인 지역에 아랍인들의 국가를 세우는걸 지지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1년뒤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 등 연합군도 협약을 한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오스만제국을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요르단 등으로 분할 통치 하겠다는 거였다. 다시 한해 뒤인 1917년, 이번에는 당시 영국의 외무장관이었던 아서 벨푸어가 국가수립을 추진중이던 유대인들에게 약속을 해준다. 즉 그것은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들이 국가를 수립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겠다는 거였다. 당시 전 세계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돈이 많기로 유명했고, 연합군은 막대한 전쟁자금이 필요했다. 전쟁의 와중에 혼란스럽게 펼쳐진 이런 중동 외교정책이 결국 오늘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빌미를 제공하는 불씨가 되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많은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돌아오면서 이 지역에는 다툼이 벌어지게 된다. 2차대전 무렵에는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독일의 독재자인 아돌프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핍박하자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대거 밀려들어온 것이었다.

양측간에 유혈 폭력사태가 끊이지않자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을 맡고 있던 영국은 이 문제를 유엔으로 넘겨버린다. 그러자 유엔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반반씩 나누는 이른바 팔레스타인 분할안을 표결에 부쳐 통과시킨다. 하지만 이 분할안을 유대인은 환영했지만 팔레스타인 지역에 사는 아랍인들의 반발은 매우 컸다. 당시 인구 비율상 유대인은 아랍인의 3분의1밖에 안되는데 절반씩 나누는 건 맞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또 더 비옥한 지역이 유대인들 차지가 됐다는 불만도 있었다. 어찌됐건 이듬해 영국은 이 지역에서 철수하고 유대인들은 유엔의 결정을 근거로 1948년 이스라엘 국가 수립을 선포한다.

이스라엘은 건국후 모두 4차례 시리아, 이집트, 요르단 같은 중동국가들과 전면전을 치룬다. 첫번째 전쟁은 이스라엘 국가수립에 반발한 주변국, 요르단과 이집트, 시리아, 레바논 같은 나라들이 연합해 이스라엘로 총 공격해 들어온다. 이때 하지만 이스라엘은 막강한 자금력과 미국의 도움 등으로 승리한다. 또 중동국가들이 연합군을 결성해 작은나라를 공격하는데 대한 국제적인 여론도 그다지 호의적이진 않았다. 이스라엘은 매번 승리를 거뒀고 그때마다 땅을 더 넓혀갔다. 그러면서 수없이 많은 팔레스타인 난민들도 발생하게 된다. 1948년의 1차 중동전쟁 이후 이 지역을 떠난 사람과 그 후손을 합친 난민수는 65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팔레스타인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수천년간 살았던 팔레스타인 지역에 독립국가를 건설하기를 원하고 있다. 1960년대에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라는 조직을 만들어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수립을 추진했고, 1994년에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립을 선포했다. 하지만 현재 국제사회에서 독립국가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국가로 인정받기위한 노력을 계속 전개하고 있는데, 지난 2011년에는 유엔 산하기관으로서는 최초로 유네스코로부터 정회원 국가 지위를 인정받기도 했다. 지난 2015년에는 이스라엘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로마 카톨릭 교황청이 팔레스타인을 공식 국가로 인정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대한 테러를 주도하고 이에대한 이스라엘의 대응이 계속되면서 요즘도 끊임없이 크고 작은 유혈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하마스는 지난 2006년 선거에서 승리한 이래 가자지구를 장악하고 이스라엘은 물론이고 팔레스타인 정부와도 마찰을 빚고 있다.

이상은 끊임없이 유혈사태를 야기하고 있는 중동의 화약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분쟁 이야기와 그 배경의 역사 이야기를 서술했고, 다음은 제3차 중동전쟁(6일전쟁)에 대해서 아는 대로 그 이야기를 전해드리도록 하겠다.

다음 호를 관심 깊게 기다려주시기를 바라겠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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