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우리 서로 칭찬하며 살아갑시다. –

<김명열칼럼>  우리 서로 칭찬하며 살아갑시다. –

 

얼마전 올랜도 Sea world에 범고래 쇼를 구경하러 간적이 있는데, 포악한 범고래가 조련사의 지휘에 따라 묘기를 부리는 게 너무나 신기해보였다. 범고래는 바다에서 가장 강력한 포식자다. 그런데 알고보니 조련사가 범고래를 훈련시키는데 가장 중요한 기제는 칭찬이었다. 칭찬을 하면서 고래의 기분을 좋게 유지시켜주면서 길들였던 것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원작자 ‘케네스 블랜차드’의 책 제목에서 인용한 것이다. 고래가 멋진 쇼를 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기 위해서는 고래를 향한 조련사의 애정과 칭찬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 이 책의 주요 내용이다. 칭찬이라는 말, 참으로 좋은 말이 아닐 수 없다. 잘 알다시피 칭찬은 일컬을 칭자에 기릴 찬이 합쳐진 단어이다. 이것이 한자만으로 뜻이 부족하여 사전을 찾아보니 “좋은 점이나 착하고 훌륭한 일을 높이 평가 한다”라는 뜻으로 나와 있다. 생각을 곰곰이 해보니 좀은 어색하다. 분명 낯선 단어는 아닌데 익숙하지 않은 거리가 먼 의미로 느껴지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우리나라가 유교주의 사상과 권위적인 사고의 영향을 받을 때는 칭찬이 필요치 않았다. 아마도 칭찬 없이도 윗사람들이 지시를 하거나 훈계를 하면 잘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수평적이기 보다는 극단적 수직적인 구조를 가졌던 당시 한국사회의 집단내에서 칭찬은 필요조건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세상이 달라져 경력과 나이보다는 능력 위주가 되다보니 진정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일방적인 명령은 더 이상 필요가 없다. 칭찬이 필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칭찬이란 무엇일까?. 칭찬에 대한 정의를 표현해본다. 단순히 잘한 것만을 말로서 표현 해주는 것이 칭찬일까?. 그렇다면 잘한 것과 잘못한 것의 판단기준은 무엇일까 부터 알아야 한다. 사람을 칼로 찌르면 분명히 잘못한 것이다. 그러나 의사가 수술할 환자를 칼로 찌르면 잘한 것이 된다. 내가 지금 길거리에서 옷을 벗으면 잘못한 것이 되지만 목욕탕에서 옷을 벗으면 잘한 것이 된다. 아이에게 음식을 주는 경우, 아이가 설사가나서 힘들어하면 아무리 배가고파서 밥을 달라고 해도 밥을 주지 않는 것이 잘한 것이 된다. 이런 것처럼 잘한 것, 잘못한 것, 다시 말해 착한 것과 악한 것은 절대적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주어진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선과 악이 시시각각으로 달라진다면 어떤 것이 칭찬이 되고 어떤 것이 비난이 되는지 알지 못한다. 이래서 선과 악의 기준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고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언어는 칭찬의 말이다. 칭찬은 기쁨을 주고, 희망을 주고, 기적을 창조하며, 사람과 사람사이에 생긴 벽을 쉽게 무너뜨린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기쁨과 행복을 안겨준다. 칭찬을 국어사전에서 보면 남의 좋은 점을 일컬어 ‘기림’이라고 쓰여져 있다. 이 뜻에 반해 고사성어에 보면 취모멱자의 뜻을 보면, 머리카락을 아무리 씻어도 비듬은 찾으면 나온다는 말과 같이 남의 잘못을 꼬치꼬치 캐면 아무리 훌륭한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의 잘못이나 흠이 없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성현이라 칭송받는 예수님이나 공자, 석가모니도 그 허물을 찾으려고 한다면 허물이 없겠는가?. 본래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옛날 우리나라 속담에도, 곰보도 곱게 보면 구멍이 다 예뻐 보인다는 말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들 인간은 상대를 보기에 따라, 마음먹기에 따라 시각이 다르며, 칭찬을 하는 쪽도, 듣는 쪽도 기분이 좋다. 그래서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베이스(1842~1910)는 “인간은 칭찬을 갈망하며 사는 동물이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인간이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하는 것과 같이 관련되어 있다. 즉 다른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서 칭찬을 받고 인정을 받음으로서 자기의 사회적 위치를 확인하게 되고 정신적인 만족감과 안도감을 얻는다. 그러나 칭찬을 받지 못하는 인간은 늘 불안정한 상태가 되며, 사회나 집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며 의욕도 잃게 된다. 사람을 부릴 경우 혹은 움직일 경우에 칭찬의 중요성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기보다 남이 잘되어가고 또 좋은 일을 하는 것을 보면 괜히 기분이 언잖아지는 얄궂은 마음보를 갖고 있다. 특히 멀리 있는 남보다 자기하고 가까운 사이인 사람이 잘되면 좋으련만, 그러지를 못하고 더욱 질투하고 시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므로 가까운 사이일수록 서로가 대할 때는 넓은 아량으로 오해가 없도록 해야 한다. 우리나라 옛 속담에 “사촌이 논을 사면 배 아프다”는 말처럼 나하고 상관없는 잘되었을 때는 별로 관심이 없지만 나하고 가까운 사람이 잘되고 잘 살거나 입신양면하면 헐뜯기도 한다.

이것은 대인답지 못한 소인배들이 갖고 있는 세상 인심의 단면인가보다. 그래서 자기하고 가깝고 친한 사람에게 기쁜 마음으로 칭찬하는 것이 더 참된 칭찬이라 할 것이다. 사람들 중에 흔히 함량이 모자라는 사람이 자기 자랑, 처자식 자랑을 하면 팔불출인 인간이라는 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별없이 열을 올려 같잖은 짓을 하면서 조금이라도 남을 칭찬을 해주는 데는 인색하다.

거짓 없는 칭찬, 아낌없는 칭찬은 상대방의 마음에 불꽃을 붙여주며 삶에 큰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준다.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사회에 칭찬의 말 한마디가 마치 시들어가는 화초에 물을주어 활기가 돋아나듯이 우리들 인간이 꼭 갖추어야할 덕행인 것이다. 예컨대 남으로부터 칭찬은 고사하고 별것이 아니라고 말해야 자기가 올라가고 손해 보지 않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남을 칭찬해주면 칭찬받는 사람은 전보다 더 존경스럽게 대해주며 칭찬을 받은 만큼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하게 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칭찬과 박수갈채에 왜 이다지도 인색하고 비정한지 알 수가 없다. 남을 헐뜯기보다 칭찬하고 격려하면 오히려 자기는 마음이 밝고 명랑하여 정신적 위로로 건강하며 오래 사는 비결도 된다. 훌륭한 사람은 남으로부터 칭찬받기보다 남을 칭찬하는 일에 더 즐거움을 느낀다. 그리고 칭찬할 때는 가능하면 칭찬받을 사람 앞에서 하는 것보다 그 사람이 보이지 않는, 듣지도 않는, 다른 사람 앞에서 칭찬해 주는 것이 더 옳은 칭찬이 된다. 그러나 사람다운 사람은 남이 나를 칭찬해주면 먼저 내가 그 칭찬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지 냉정히 되돌아봐야 한다.

실로 참된 칭찬은 그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를 한 사람의 정신에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 황금과 사랑보다 인간에게 더 필요한 두가지는 인정과 칭찬이라는 말이 있다. 사랑과 황금보다 더 필요한 두가지 ‘인정과 칭찬’, 이것이 참으로 쉬운 일 일 것 같지만 그렇지가 못하다. 남을 칭찬하고 인정하기보다는 부정 하고 비난하는 우리들이 아닌가 싶다. 이제는 더 이상 남의 허물을 보고 흠집 내고 상처 주며, 물고 뜯는 세상의 방법이 아니라 서로가 인정하고 칭찬하며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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