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기자의 이스라엘, 요르단 성지순례 기행문<6>

김명열기자의 이스라엘, 요르단 성지순례 기행문<6>

수태고지 교회, 그리고 가나 혼인잔치 기념교회

 

자난주에는 갈멜산과 엘리야선지자에 대해서 글을 써 올렸다

그곳, 갈멜산을 설명하면서 주위에 광활하게 펼쳐진 비옥한 땅 이스르엘 평야에 대해서 언급한바 있다.

다음의 순례지를 방문하기에 앞서 참고로 이스르엘 평야와 이스라엘의 키부츠 농장에 대하여 간략하게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다.

먼저 이스르엘 평야 이야기다.

이스르엘평야는 정말 이스라엘에서는 보기드믄 곡창지대이다. 그 뜻이 ‘하나님이 뿌려주심’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이 평야는 이스라엘의 보석이라고 할수있다. 갈멜산 북쪽에서 요단강을 향해 깊은 골짜기로 물이 많고 비옥한 벌판이 형성되어있다. 이곳은 옛부터 해변길의 주요 대로(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를 연결시켜주는 국제도로가 통과 하는곳) 이므로 무역이나 상거래를 하는 대상과 군대의 왕래가 잦아 그만큼 절대적인 필요가 요하는 곳으로, 때문에 이곳을 차지하려는 욕망때문에 전쟁이 자주 일어났던 곳이다.

이곳은 여사사 드보라와 바락이 하솔의 시리아와의 대결장이기도 하며, 세계적인 전쟁이 자주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 16장 16절에서 아마겟돈이라 하여 인류 최후의 전쟁터로 예언한 곳이다. 이러한 이스라엘 평야에 니븟의 포도원이 있다. 하롯샘에서 므깃도로 가는 길 오른편 약간 낮은 구릉에 약간의 북 이스라엘 유적과 전쟁 기념비를 볼 수 있다. 다음은 이스라엘 키부츠 농장에 대하여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다.

키부츠 (Kibbutz)는 이스라엘의 집단 농업공동체이다. 이 운동은 사회주의와 시오니즘을 결합하여 노동 시오니즘의 형태로 되었으며, 독립적인 농업이 실질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이뤄졌다. 공동생활의 필요성 때문에 또 이데올로기적인 영감 때문에 키부츠의 구성원들은 순수한 공동생활 양태를 만들었고 이는 전 세계의 관심을 받았다.

구성원들은 사유재산을 가지지 않고 토지는 국가의 소유로, 생산 및 생활용품은 공동으로 소유하며, 구성원의 전체 수입은 키부츠에 귀속된다. 주거는 부부단위로 할당되고 식사는 공동식당에서 제공되며 의류는 계획적인 공동구입과 공평한 배포 등을 통해 제공된다. 아이들은 18세까지 부모와 별개의 집단생활을 하며 자치적으로 결정된 방침에 따라 한 기부츠의 구성원은 60~2000명으로 일정하지 않으며, 가입과 탈퇴는 자유롭다. 1909년 시오니즘 운동중에서 생겨난 후 현재 약 230개가 있고, 그 구성원은 8만여명이 되며, 전체 농업인구의 1717%를 차지하고 있다.

갈멜산의 엘리야선지자 성지 유적지를 둘러본 후 우리들 일행은 다음 여정지인 수태고지 교회로 향했다.

수태고지교회는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 예수님의 수태 사실을 전해주었다는 장소인 마리아의 집터에 세워진 교회로, 지하에는 마리아가 수태 고지를 받았던 동굴 (Grotto of Annunciation) 이 보존되어있다. 이곳에 처음 교회가 세워진 것은 기독교가 로마제국에서 공인된 후 당시 콘스탄틴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여사의 주선에 의해서 지어졌다고 한다.(서기 326년경). 그리고 여러 차례 파괴되어 재건되는 역사적인 과정을 반복하면서, 오늘날의 건물은 5번째 교회로 이탈리아 건축가 조반니 무치오가 설계하여 1969년 완공한 것이다. 교회지붕은 백합꽃을 거꾸로 매단 느낌을 주는 모양으로 설계하였는데 교회의 전통에 의하면 성모 마리아의 상징이 백합이었다고 한다. 교회 윗부분에는 마리아와 가브리엘 천사의 모습, 중간부분에는 4복음서의 상징, 출입문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을 부조로 묘사해놓았다. 교회 2층에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보내온 성화가 전시되어있는데 각기 자기나라의 풍속 배경을 넣었다.

이곳에는 한국에서 온 성화도 있다. 한복을 입은 마리아님과 색동저고리를 입은 예수님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없는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너무나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한국의 이남규 교수의 작품이라고 한다. 수태고지교회 내부에도 아름다운 성화들로 장식되어 있다. 수태고지 교회를 설계한 조반니 무치오(Giovanni Muzio)는 고대 교회의 유적을 보존하면서 교회위에 교회를 연결하였다.

아래층에는 십자군과 비잔틴 시대에 지어진 교회의 잔해와 수태고지 동굴이 위치하고 있다. 마리아가 수태고지를 받았던 동굴안에는 작은 제단이 놓여져 있고 라틴어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요 1:14’ 라고 적혀있다.

수태고지 교회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에 예수님께서 공생애에 처음으로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이적을 행하신 가나의 혼인잔치 기념교회가 있다. 수태고지교회를 둘러본 후 우리들 일행은 다음 행선지로 가나 혼인잔치가 열렸던 장소인 그곳으로 향했다.

가나 혼인잔치 기념교회

나사렛을 떠나서 동북쪽 티베리아로 가는 길의 약 7Km정도 위치에 있는 곳에 가나라는 마을이 있다. 성경에서 가나는 예수님 공생애 초에 가나의 혼인잔치 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첫번째 기적을 일으킨 곳이다.(요한복음 2:1~11). “사흘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계시고 예수와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 세통 드는 돌 항아리 여섯이 놓여있는지라 예수께서 저희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가득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어주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었다.

또 가나에서는 두번째 이적이 있었다. 예수님이 말씀으로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쳐주신 곳이며(요 4:46~54), 예수님의 제자 나다나엘의 고향이기도 하다. 현재의 가나가 성경에서 말하는 가나인가는 확실치 않으나 이곳이 성경에서 말하는 가나로 여겨지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학자들은 보고 있다. 그 하나가 우연히도 이곳의 원래 지명인 칸나가 성경상의 지명인 가나와 비슷하고, 지리적으로 나사렛과 티베리아 사이의 도상에 있기에 순례자들이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것 때문이다. 그래서 1879년 프란치스카 교회에서 혼인잔치가 열렸다는 터를 매입하고 1884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든 현재의 기념교회를 건축하였다. 이 건물의 지하 교회 바닥에는 고대 유대인들이 사용하던 아랍어 문구가 씌어져 있고, 또 지하실에는 예수님 당시에 사용되었다는 돌 항아리가 있어 당시의 상황을 연상시켜준다.

많은 신학자들은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여 첫 기적으로 물로 포도주를 만든 사건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그것은 자칫 낭패를 볼 수 있었던 혼인잔치를 축제의 분위기로 승화시킴으로써 결혼의 신성함과 가정의 소중함을 일깨웠다는 사실이다. 순례자들은 이런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듯 이곳에 와서 미혼자들은 좋은 배필을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하며, 그리고 이미 결혼한 기성 부부들은 행복한 가장을 위하여 열심히 정성을 다하여 기도를 드린다.

우리들 일행들은 대개가 가는 곳마다 현지에 도착하여 과거 아득한 옛날 예수님의 행하신 모든 업적을 기리며 숭고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곤 하는데, 이곳에서도 어김없이 모두가 경건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여 기도를 드렸다. 어느 곳이나 찾아온 관광객이나 순례객들로 법석을 이루고 북새통을 이루며 정신이 없을 정도였으나, 고생은 되지만 예수님을 다시 영적으로 뵙는다는 마음으로 모두가 경건한 마음 그자체로 순례길을 다녔다. (다음주에 계속 이어짐)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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