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기자의 이스라엘, 요르단 성지순례 기행문<5>

김명열기자의 이스라엘, 요르단 성지순례 기행문<5>

갈멜산(Garmel)과 엘리야 선지자

역사적 유적지 가이사랴 방문을 마치고 우리 순례객 일행들은 그곳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에 위치한 갈멜산으로 향했다.

이곳 갈멜산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머리산 이라고 불리우는 산이다. 그리고 엘리야 선지자가 바알선지자 450인과 아세라 선지자 400인을 상대로 싸워 이긴 곳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의 왕 아합은 이방신을 들여오고, 바알 선지자들을 앞세워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불신하게 만들었는데, 그들은 온갖 거짓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혹했다. 이때 엘리야 선지자 혼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악에서 돌이켜 하나님을 향하게 한 그 역사적인 장소가 바로 갈멜산이다.

우리 일행들은 그 유명한 갈멜산에 도착했다.

갈멜산은 높이 550m의 샤론과 에스드리엘론의 두 평원 사이에 높이 솟은 산으로 석굴이 많고 수목이 울창하며 산 아래는 기손강이 흐르고 있다. 머리는 갈멜같고(아7:5) 해변의 갈멜같이(렘46:18, 사33:9), 아름다움을 노래할 때마다 등장하는 이 갈멜산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머리산(Holy Headland)이라고 불리었다. BC 4세기경의 헬라인들은 이 산을 거룩한 ‘제우스의 산’이라 불렀으며 AD 1세기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이 산을 가리켜 동상도 신전도 없이 오직 제단과 예배만 있는 산이 있는 것 이라 하였다. 갈멜산은 이스라엘 북쪽에 위치한 지중해 연안의 항구도시 ‘하이파’를 끼고 이스르엘 골짜기 쪽으로 25Km가량 펼쳐져 있다. 최고봉의 높이가 550m가량으로, 아담한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넓게 퍼진 모양을 하고 있다.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보이지 않는 이스라엘 남쪽의 황무지산이나 언덕들과는 달리 갈멜산은 푸른 숲이 우거져있다. 산 정상에 서면 이스라엘에서는 보기 드믄 드넓게 펼쳐진 이스르엘 평야가 훤히 보인다. 평야 너머에는 하이파시가 보이며 맑은 지중해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갈멜은 히브리음으로 ‘카르멜’로 포도원을 뜻하는 ‘케렘’에 하나님을 뜻하는 ‘엘’이 붙어서 카르멜이 되었다고 본다. 즉 하나님의 포도원이라는 뜻이다. 그 앞에 산을 뜻하는 ‘하르’를 붙여 유대인들은 갈멜산을 ‘하르 카 카르멜’이라고 부른다.

갈멜산은 옛적부터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의 거룩한 머리’라고 불렀다. 이유에 대해서는 엘리야와 엘리사가 머문 곳으로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이스라엘의 거룩한 머리’라고 칭해서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다는 등 의견이 많다. 구약 성경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갈멜산 이야기는 열왕기상 18장에 나오는 엘리야 이야기일 것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오랜 가뭄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때 비를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했다. 이스라엘 왕 아합은 오바댜와 함께 물 근원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엘리야를 만나는데, 엘리야는 아합에게 바알선지자 450인과 아세라 선지자 400인을 갈멜산에 모으라고 요청한다.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이 갈멜산에 모였을 때 엘리야는 함께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저들과 내가 각각 송아지를 각을 떠서 나무위에 놓고 자기가 섬기는 신의 이름을 불러서 불로 응답하는 신이 하나님이다”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말이 옳다고 했다. 먼저 바알의 선지자들이 오랜 시간 바알을 불렀으나 응답이 없었다. 이어서 엘리야가 하니님께 기도하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번제물과 주위의 것들을 다 태워버렸다. 불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돌과 흙까지 태웠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엘리야는 곧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바알 선지자들을 기손 시내에서 모두 죽였다. 당시 이스라엘은 아합왕으로 인하여 무척이나 혼란스러운 시대였다. 그가 이방신을 들여오고, 바알 선지자들을 세워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불신하게 만들었다. 득세한 바알 선지자들은 온갖 거짓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혹했다. 아합이 나라와 백성들을 어지럽게 만들었던 그때,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 선지자 혼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악에서 돌이켜 하나님을 향하게 하였다.

갈멜산 정상에서 엘리야선지자 동상을 보면서 엘리야와 그 시대를 생각해보았다. 갈멜산 정상에 올라가 그곳에서만 자란다는 ‘카르멜릿나에’라는 꽃을 보면서 잠시 엘리야와 그 시대를 생각해보았다. 이세벨의 충동질을 받아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우상을 끌어들이고 바알선지자들을 세웠던 아합왕, 오늘날 이 시대에도 아합왕 시대처럼 수많은 교회와 목회자들이 있지만 하나님 말씀을 정확하게 전해주는 이는 드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있다. 그들은 예수님이 우리들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을 알지만, 성경 말씀을 그대로 믿지 못해 “내 죄가 씻어졌다. 내 마음에 죄가 없다. 내가 의롭게 되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진 채 불신 가운데 살아가고 있을 때, 하나님의 참된종은 그 마음을 말씀과 연결시켜준다. 엘리야 선지자가 바알 선지자들을 이스라엘에서 제거한 것처럼 사람들의 마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불신들을 정확하게 제거해준다. 그런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갈멜산에서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 선지자 이야기를 빼버린다면 갈멜산은 특별히 기억해야할 이유가 없는 평범한 산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를 만나지 못했다면 우리 이름이 명확히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채 예수님과 상관없이 살다가 영원히 멸망을 당했을 것이다.

엘리야 선지자에 의해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증명되었던 갈멜산을 뒤로 하고 우리 일행들은 다음의 행선지인 므깃도로 향했다.

므깃도(이스르엘 평야를 지키는 군사적 요충지)

아마겟돈 전쟁은 과연 일어날 것인가? 일어난다면 그 시기는 언제인가? 인류종말의 전쟁터로 예언된 성서의 아마겟돈 므깃도를 찾아가는 길은 흥분과 기대로 가득했다. 세 악령이 왕들을 불러 모아 하나님의 군대와 영적 전쟁을 벌이는 곳으로 묘사된 아마겟돈(요한계시록 16:16)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므깃도는 나사렛에서 약18Km, 하이파에서 남동쪽으로 약32Km정도 떨어진 이스르엘 평야에 자리잡고 있다. 평지보다 약 50미터정도 높은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성읍이다. 이곳은 아마겟돈 이라는 말로 더 유명한 군사 전략적 요충지중의 하나이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아마겟돈(Amageddon)은 므깃도 산(Har megiddo)이라는 히브리말을 희랍어로 옮긴 말이다.

이스르엘 평야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비옥한 평야지대이며 곡창지대로, 므깃도는 고대로부터 이스르엘 평야를 지키는 요새 도시였다.

더구나 므깃도는 이스르엘 평야 중에서 동서남북으로 서로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의 요지였다. 해안을 따라 애굽으로, 남쪽으로는 사마리아와 세겜을 지나 예루살렘으로, 북쪽으로는 악고를 지나 두로와 시돈으로, 또 갈릴리를 거쳐 다메섹으로, 벳산을 거쳐 암몬으로 연결되는 사통 팔달의 교통로여서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따라서 평화시에는 대상들이 왕래하는 길목이었고 전시에는 북쪽의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등이 애굽을 치러 남쪽으로 갈때, 남쪽의 애굽이 북쪽을 치러 갈 때, 항상 므깃도를 거쳐 가야만 했으므로 이 므깃도는 아군에게는 방어 요새로, 적군에게는 점령해야만 하는 교두보로 이용되었다. 그래서 20여회 이상의 국제 전쟁을 치룬 지역이었다.

역사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이 므깃도에는 주전 3천5백년전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출애굽 당시에는 여호수아에 의해 가나안 땅과 함께 정복되었다. 그 후 다윗왕에 의해 점령되고, 솔로몬왕은 므깃도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하솔, 게셀과 함께 견고한 요새로 구축하였다 한다.(왕상9:15), 그러나 923년경 애굽의 시삭이 므깃도를 파괴하여 그 후 아합왕때 다시 재건되었다. 부상당한 아하시아 왕이 여기에서 죽었으며(왕하9:27), 요시아 왕은 북진하는 느고왕의 애굽군대를 이곳에서 맞아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그 후 이곳은 폐허로 남아있게 되었다. 그리고 1917년 영국의 알렌비 장군이 터키군을 패배시켜 승리를 이끈 곳도 므깃도였다. 이토록 므깃도는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수많은 전쟁을 통하여 점령, 파괴가 반복되는 전쟁터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더구나 신약의 요한 계시록에 이 도시가 헬라어로 음역되어 아마겟돈(Amegeddon)으로 등장하는데, 종말에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으로 표현되어 있는것(계16:16)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도시의 최초 기록은 이집트 카르낙 신전 벽면에 부조되어 있는 투투모스 3세의 승전 기록인데 그는 BC1468년 므깃도에서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왕이었음을 자랑하고 있다. 므깃도는 1925~39년 시카고대학의 동양연구소에 의해 발굴되었고, 1960년 니가엘 야딘이 추가로 발굴하였다. 이곳에서 가나안 원주민들이 만들었던 산당(High Place)식 신전을 발굴하였고, 또한 솔로몬때 건설한 성벽, 성문, 관저들도 발굴되었다. 므깃도에서 중요한 것은 솔로몬의 마병장(Solomon’s Stables)이다. 솔로몬은 그당시 군사력의 상징인 기병대를 육성하여 병거성(City of Chariosts)과 마병의 성 등을 건설하였다. 말의 고삐를 매는 돌기둥들은 약450마리 정도의 말과 150대의 병거를 수용할 수 있는 큰 규모이며 중앙에는 말에게 물을 먹이던 큰 물통도 있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이것을 솔로몬의 마병장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실제로 발굴된 지층은 솔로몬왕 때의 주거층이 아니라 이보다 약 100년후 아합왕때(BC 869~850)의 것이라고 한다. 므깃도는 이러한 병거, 마병성의 하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성 밖에 있는 샘물을 무사히 길어 올 수 있도록 만든 굴이다. 큰 통로가 지하 10m의 바닥까지 내려오고 그 통로의 끝에서 바위구멍을 뚫고 도시 밖의 샘으로부터 내부로 끌어들이도록 되어있다. 이것은 적의 외침이 있을 때 성이 포위되더라도 주민들이 생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밖의 샘 입구는 포위하고 있는 적에게 발견되지 않도록 흙으로 덮여있다.

므깃도 정상에서 바라본 이스르엘 평야는 광활한 대지위에 옥토로 펼쳐져 있었다. 옛날의 살벌했던 전쟁의 흔적은 사라지고 평화롭기만 했다. 그 가운데 기손강이 흘러 평화와 풍요를 상징하는 음악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이런 곳에서 인류종말의 전쟁이 일어나다니….. 므깃도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의문을 품을 만 하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의 아마겟돈은(므깃도)는 수많은 전쟁의 역사로 인해 세상종말의 전쟁터로 기록된 것에 불과하며, 므깃도는 종말이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 완성될때의 공간적 상황에 대한 예시로 제시된 것이라고 본다면 잘못일까?……. 중요한 것은 그곳이 언제, 어디가 되었든 마지막 날을 대비하는 나의 태도가 중요한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다음주에 계속 이어짐)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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