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기자의 이스라엘, 요르단 성지순례 기행문<2>

김명열기자의 이스라엘, 요르단 성지순례 기행문<2>

성지순례를 가기 전에………………….

 

(지난주에 이어서 …….)

아울러 바울을 포함한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은 이러한 그리스도의 순례와 성취를 전파하고 이해시키기 위해 그야말로 수많은 지역을 고행속에 돌아다녔다. 그들 역시 순례를 감행한 것이다. 그리고는 그 내용을 기록으로 남겼다. 우리는 이 장구한 일련의 그 기록물을 성서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 모세, 다윗, 예수님 등의 이분들은 모두 성지에서 당대에 활동을 했고, 사도 바울과 같이 그것을 증거하고 전파하기 위해 애쓴 초대교회의 공동체들은 그것을 기록으로 남겼다면, 현세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는 바로 그 기록물, 즉 성서에 적힌 그것을 읽고 또 그것을 토대로 그들의 발자취를 밟음으로 그 성지를 증언해내는 증인의 역할이 바로 우리에게 맡겨진 본분일 것이다. 이와 같이 성지를 밟는 가장 큰 목적은 우리가 읽는 성경만이 진짜라는 사실체험에 있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여러 종교가 있고 그들 나름대로 경전이 있지만, 그 기록은 대부분 교리적인 내용뿐이다. 천사기 나타나서 전해준 예언을 기록한 것뿐인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러나 우리가 읽는 성경에는 사실적 증거에 의한 실존의 이야기들로 되어있고 우리는 문자와 현장을 통해서 그 이야기속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천사가 전해준 몰몬경을 의지하는 몰몬교처럼 비 현실적인 존재에 의한 비역사적 기록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삶을 지닌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 이 땅의 사람으로 사신 예수님, 그리고 그와 함께 활동했던 제자들의 숨결이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믿음의 실제 현장 방문도 평생의 사명가운데 하나인 셈이다.

순례, 특별히 성지순례는 믿음을 가진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쯤 해보고 싶은 꿈이다. 이번에 나와함께 순례에 동참하신 분들도 오랫동안 벼르고 계획하며 꿈이 이루어지기를 고대했던 사람들이다. 무려 40여년을 성지순례를 하기위해 기회를 틈틈이 기다리며 노력하신분도 계시고, 어느 집사님은 사랑하는 딸의 도움으로 꿈에 부풀은 성지순례의 목적을 이루신 분도 계시다. 우리 일행을 인솔한 브랜든 샘물교회의 김건배목사님 역시 오래전 신학대학생 시절 장학금 특혜로 성지순례를 할 기회가 있었으나 신분의 제약(미 시민권자 학생들만 자격이 주어짐) 때문에 (그 당시 김목사님은 영주권자였음) 가지 못했으나 이번에 기회를 얻어 기독교유적지 ‘성지순례’를 돌아볼 수 있었다. 성지순례는 과거에도 그랬었지만, 오늘날에도 순례는 많은 희생을 요구한다. 순례의 특징은 멀고 낯선 곳으로 가야만 한다. 항공기 여행이 편리해진 현대 시대에도 적잖은 피로를 동반하는 여행이다. 매일 매일 계획된 일정을 소화하다보면 많이 걸어야하고, 모든 것을 보려면 그것만큼 체력의 소모가 요구된다. 때문에 건강이 좋은 사람에게도 벅차게 느껴질 때가 있다. 게다가 순례를 위해 드는 비용도 만만치가 않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나 믿음을 가진 신자들은 성지순례를 평생에 한번쯤은 꼭 해보고 싶어 한다.

그 이유는 무얼까?

왜 우리는 그 땅을 한번이라도 밟아보고 싶은 열망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이유는 단 하나, 그에 대한 답은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그 하나님과 예수님을 더 가까이서, 더 친밀하게 만나보고 싶기 때문이다. 세상속에 살면서 영으로만 느끼고 만나온 주님을 피부로 느끼듯이 그곳에 찾아가 가까이서 직접 보면서 체험하고 싶은 것이다. 누구에게나 순례에 대한 열망이 있다는 말은 누구에게나 하나님과 예수님을 더 가까이서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뜻이다. 그 열망이 강한 사람도 있고 약한 사람도 있지만, 예수님과 하나님을 진실로 믿는다면 누구나 그 열망을 가지고 산다. 이러한 열망의 대상인 순례의 전통은 어느 종교마다 다 있지만, 아무래도 유대인들의 예루살렘 순례가 가장 유명하다고 볼 수 있다.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져 살아야만했던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한번 가보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다. 유대교 전통에서는 모든 유대인 남성에게 매년 세번씩 성전으로 순례를 하도록 요구한다. (유월절과 오순절및 초막절 등, 이 명절에는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기도를 드리는 전통이 있음). 그러나 실제로 그

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로마나 스페인, 기타 먼 곳의 나라에서 떨어져 살았던 유대인들은 일년에 한번 순례를 하기도 쉽지 않았는데, 그러한 꿈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시편 84편은 이 같은 순례의 갈망을 표현한 말씀이다. 시온의 성전, 그 영광스러운 예루살렘 성전을 향한 시인의 열망은 뜨거웠다.

5절을 보면 이렇게 써 있다. “주님께서 주시는 힘을 얻고 마음이 이미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보면 “마음이 이미 순례길에 올랐다”는 표현이 마음에 와 닿는다. 객지생활을 하다가 명절이 되어 고향을 찾아가본 분들은 이 마음을 다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몸은 아직 떠나지 않았는데 마음은 이미 고향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예루살렘을 향한 시인의 갈망이 그토록 간절했던 것이다. 여기서 시인은 왜 이렇게도 간절히 순례를 원했을까?. 그것은 주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때문 이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지순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순례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향한 순수한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나 예수님을 향한 간절한 마음으로 여정에 올라야만, 관광이나 여행이 아니라 진정한 순례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으로 순례를 할 때, 그 순례길에서 하나님을 새롭게 만날 수 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새롭게 만나면, 나는 더 이상 과거의 나 일수 없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하나님과의 새로운 만남으로 인해 변화가 일어나게 되어있다. 그래서 순례를 끝내면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흔히들 사람들은 성지순례를 마치 관광이나 여행을 하는 것쯤으로 생각하고 순례길에 나서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엄격히 구별해 말한다면 순례와 관광의 차이는 그 목적부터가 다르다. 순례는 그 기본적인 의미가 종교의 발생지를 찾아가는 것을 뜻한다. 즉 순례는 종교가 처음 일어난 곳이나 성인의 무덤, 발자취 등 종교적으로 의미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참배함을 의미한다. 반면에 관광은 종교와 상관없이 어떤 곳(나라나 지방 등 유명한곳 등등)의 경치, 풍습, 문물 등을 찾아가서 구경함을 뜻한다. 이와같이 순례와 관광과는 차이가 많이 있다. 즉 성지순례는 순교자 및 사도자, 선지자, 성인 등등의 삶과 죽음을 기억하고 배워서 오늘의 그 증거자 ‘믿음의 신자’로 살며 그리스도 예수님을 따르는 깊은 신앙의 표현이다.

한 여름 뙤약볕의 무더위가 지나간 좋은 계절, 겨울철 동절기를 맞아 우기가 시작된다는 11월달에, 춥지도 덥지도 않은 알맞는 온도가 여행객이나 순례객들에게 온정을 베풀며 아름다운 가을 날씨를 보여주는 좋은 계절에 우리는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성지순례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커다란 축복이었다. 이스라엘은 크리스찬들에게는 특별한 장소이니 만큼 특별한 은혜가 있었고, 순례의 감흥과 기쁨이 순례여행을 마친 후에도 한참이나 계속되고 있다. 이번에 성지순례를 가면서 가장 우려했던 일은 내가 역사적 사실이 있었던 그곳에 갔을때 그저 지식으로만 받아들이고 아무런 감동이 없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었다. 그러나 그곳의 성지순례 기간 동안 신부가 신랑을 맞이하여 축제를 여는 그곳에 나 자신이 신부가 되어있는 듯 한 영성의 충만함을 맛보았다. 한마디로 더할 나위 없이 좋았고 행복했으며 은혜와 성령의 인도로 축복이 넘쳐나는 순간이었다.

11월1일 금요일 저녁 6시30분에 탬파국제공항을 이륙한 독일소속의 루프트한자 항공기는 10시간여를 비행 끝에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 착륙을 하고, 그곳에서 1시간 반을 기다렸다가 다시 같은 항공사인 루프트한자 항공기편으로 4시간 반을 비행끝에 오전10시20분에 이스라엘의 텔아비브 벤구리온(Ben Gurion) 공항에 오후3시30분에 도착했다. 잠들지 않는 도시로 불리고 있는 이스라엘의 텔아비브(Tel Aviv), 이스라엘의 비지니스와 상업 중심지이자 문화의 도시, 또 한편으로는 해변 휴양지로 잘 알려진 벤구리온 국제공항은 연간 약 2백5십여만명의 순례객과 여행객들이 찾는 이스라엘의 관문이다. 성지 예루살렘에서 45Km쯤 떨어져 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벤구리온 공항은 이스라엘 초대 총리인 다비드 벤구리온의 이름을 따서 만든 공항이다. 폴란드의 폴론스크에서 태어난 그는 1906년, 3천년이 훨씬 넘는 역사를 가진 성서시대의 항구 욥바 항을 통해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와 비밀 시오니즘 단체를 결성했다. 이어 유대인 단체의장을 지내다가 1948년 독립을 선포하고 초대 총리가 됐다. 1970년 정치를 그만둔 후 그가 살던 키부츠로 돌아갔고 그곳에서 죽었다.

머나먼 옛날, 하나님의 힘에 이끌려 갈데아우르에서 나와 가나안에 정착한 아브라함의 긴 여정,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약속의 땅,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겠다고 약속한 축복의 땅, 아브라함을 우르에서 이끌어내 정착시키고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여호수아를 통해 인류 구원과 사랑을 실현시킨 성스러운 땅이 바로 이곳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국적에 상관없이 이스라엘을 찾는 발걸음이야말로 하나님에게서 기뻐하시는 여행의 시작일 것이다.

두려움과 떨림의 땅, 새로운 2천년대를 넘어선지 어언 19년이 지나가고 있는 지금, 성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제시하고 있는가. 고대부터 문화의 교차지역으로 수많은 전쟁에 휩싸였던 이스라엘, 이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이스라엘은 우리나라 경상남북도를 합친 것 만한 면적의 작은 나라이다. 요단강과 지중해 사이에 끼어 길고 좁다란 모양을 한, 인구 8백여만명의 작은 나라이지만 평야와 사막, 광야, 산지를 고루 갖추고 있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작은 땅덩어리인데도 불구하고 텔아비브와 카이사리아(가이샤라=Caesarea)등의 지중해 해변도시, 북쪽의 카멜산부터 이어지는 기름진 샤론평야, 여러 종교의 성지인 예루살렘, 해수면보다 200m 아래인 갈릴리 호수와 400m 아래인 염분이 30%인 사해, 남쪽 네게브 사막지역, 북단 헬몬산 스키장과 남단 홍해에 접한 에일랏 등의 리조트지역 등 모든 것이 너무나 다이내믹하고 다양하기만 하다. 북쪽의 헬몬산으로 부터 남쪽의 홍해까지 470Km의 기다란 땅은 남한의 4분의1만한 크기지만, 인류의 역사속에서 가장 중요한 땅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북쪽으로는 레바논, 동북쪽으로는 시리아, 동쪽으로는 요르단, 남쪽으로는 이집트 등의 이슬람국가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다윗의 성도 예루살렘과 제1의 도시 텔아비브, 욥바, 하이파, 갈릴리, 나사렛, 므깃도, 사해, 쿰란, 마사다 등의 수많은 유적지를 갖고 있는 이스라엘은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등 세계 3대 종교의 성지로 사실상 세계의 중심이다. 지금도 종교와 이념의 차이로 인해 큰 갈등과 대치 가운데 있는 땅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해 세가지의 복음을 제시한다.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모세, 다윗을 통해 약속을 실현하고, 스스로 선택한 백성이 교만과 우상숭배에 빠질 때는 심판을 하셨으며, 회개하고 찾을 때는 희망과 비젼을 약속하셨다.

그리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궁극적인 구원을 실현하셨다. 이스라엘 땅은 앗시리아가 침략하고 바빌론이 약탈했다. 그후 페르시아에 점령되고 알렉산더의 통치를 지나 로마제국의 속주로 전락하면서 하나님의 심판과 사랑을 체험했다.

주후70년 유대인들은 성서의 예언대로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져 1948년 독립할 때까지 1천9백여년을 나라 없는 민족으로 지냈다. 다윗의 예루살렘 정도 3천년과 예수님 탄생 2천여년, 건국 70주년을 넘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끝없는 자기네 땅, 영토 주장에 골머리를 앓으며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수천년동안 원수 같은 입장의 견원지간 사이로 지내온 두 민족이 작은 땅덩어리에서 서로간 평화를 누리며 잘 살 수 있을지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이스라엘은 언어로써 히브리어와 아랍어를 사용하고 있고, 면적은 20770제곱키로미터, 인구는 850여만명 정도이고, 종교는 유대교가 80%로 가장 많고 이슬람교가 20%이며 기독교는 겨우2%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193> <다음호에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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