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

<김명열칼럼>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

 

오늘은 본론의 이야기를 말씀드리기전에 재미난 이야기를 먼저 들려 드리도록 하겠다.

1990년대 초 한국의 김영삼 대통령 시절, 청와대 오찬에는 칼국수가 자주 단골메뉴로 올랐다. 그런데 처음에는 이 칼국수를 젓가락이 아닌 숟가락으로 먹어야 했다. 우리나라에서 재배한 밀로 만든 칼국수는 찰기가 없어서 젓가락으로 집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칼국수 오찬에 초대받은 한 식품전문가로부터 우리나라에서 재배한 밀가루에 콩가루를 조금 섞어 반죽을 하면 찰기가 좋아져 젓가락으로 먹을 수 있다는 조언을 얻었다. 김 대통령에 의해 이 조언은 곧 채택되었으나 기대한 만큼 칼국수의 찰기가 향상되지는 않았다. 이에 실망한 청와대 주방팀은 예의 식품전문가에게 문의한 결과, 볶은 콩가루가 아니라 날 콩가루를 섞어야한다는 추가의 정보를 얻었다. 그 후 청와대 칼국수는 젓가락으로 먹을 수 있을 만큼 찰기가 좋아졌다.

여기서 질문이 되는 사항은? 한국의 토종 밀가루에 날 콩가루를 섞어 반죽하면 찰기가 좋아진다는 지식이나 그 지혜는 누가 개발했을까?

과거 우리나라 한국에서 가난했던 시절의 칼국수는 서민용 음식이었다. 일반 서민들은 소작농으로 논에서 생산한 쌀을 지주들에게 바쳐야 했기 때문에 자신들은 산비탈을 가꾸어 농사지은 밀이나 콩 같은 밭곡식으로 연명하며 살아야했다. 그리고 음식 만들기는 전통적으로 여자들 소관이었으니, 밀가루에 날 콩가루를 섞으면 찰기가 좋아진다는 노하우(Know-how)를 개발한 사람은 한국 선대의 어느 어머니였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역사속에 여성들의 업적은 기록으로 보존된 것이 거의 없다. 추측을 하건데 칼국수의 찰기가 없어서 맛도 그렇고 먹기도 불편하다는 사실을 감수성으로 인식한 어느 어머니가 있었을 것이고 그는 칼국수의 찰기의 맛을 개선해보려고 고민하고 무던히도 애를 많이 썼을 것이다. 이 고민에 밀가루에 다른 무엇을 섞으면 찰기가 높아질지 모른다는 상상력의 발휘로 이어졌을 것이고, 결국 그는 밀가루에 여러가지 다른 잡곡의 가루를 섞어보는 시도를 했을것이다. 그당시 서민들에게는 찹쌀은 귀한것이고 그 귀한 것을 밀가루에 섞어서 먹는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이었을테고………..

그러다보니 좀더 실질적이고 타당성있는 잡곡중에서 이것저것 밭곡식을 가루로 만들어 섞어보다가 드디어 어느날 날 콩가루를 섞었더니 찰기와 맛이 모두 좋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것이다. 이러한 경험이나 체험에서 얻어지는 것이 삶의 지혜이고 생활의 지식인 것이다. 그는 딸과 며느리에게 이 비법을 전수해 줬을 것이고 이것이 널리 전승되면서 우리나라의 식품 노하우로 정착되기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의문점이 생겨난다. 왜 볶은 콩가루는 안되고 날 콩가루만 되느냐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답변을 어느 식품영양학과 교수로부터 해답을 얻어냈다. 그것은 날콩가루 속에는 살아있는 효소(Enzyme)가 밀가루속의 효소와 결합하여 밀가루의 찰기를 높여주기 때문이라는 답을 얻었다. 수백년전부터 우리나라 민간 노하우의 삶의 지혜로 개발되어 전수되어오는 그 실용적 지식을 어떻게 최고의 음식솜씨를 자랑하는 청와대 주방팀들은 모르고 있었을까? 하는 의문점이 생겨난다.

지헤로운 사람의 공통점은 이렇다. 독일 베를린의 막스 프랑크 교육연구소가 15년동안 1천명을 대상으로 나이와 지혜의 연관성을 연구했다. 연구소는 오랫동안 연구를 통해 지혜로운 사람들이 갖는 몇가지 공통점을 밝혀냈는데, 첫째, 역경을 극복했거나 고난을 체험한 경험이 있다. 둘째,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 경험이 있다. 셋째, 일찍 인생의 어두운 단면을 체험한 경험이 있다. 연구소는 결론적으로 ‘인생의 문제를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지혜를 얻는다고 발표했다. 여러분께서는 인생에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사람들을 부러워한 적은 없었는지 묻고 싶다. 앞의 연구소발표를 보고 무엇을 느꼈는지?…….. 평안하고 문제가 없는 순탄한 인생이 반드시 좋은게 아니라는 걸 느끼지는 아니셨는지?……..인간에 대한 최고의 찬사는 부자나 권력자가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이다. 인생에서 성공이란 과연 무엇인가? 재산을 많이 소유하고 명예, 지위가 있다면 성공한 사람일까? 그것은 단지 외향적인 액세서리에 불과할 뿐이다.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은 스스로 행복감을 느끼면서 사는 사람들에게서 발견 할 수 있다.

경쟁사회에서 우리는 누군가를 이겨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진짜 이겨야하는 상대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이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 마음의 평화를 누리는 사람, 자신을 지키고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 사람, 이런 사람은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가꾸는 지혜로운 사람이다. 정비석 작가가 옮긴 나관중의 삼국지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유비는 오랫동안 유유히 흘러가는 황하의 강물줄기를 황홀하게 바라보다가 문득 논어에 나오는 지자요수(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라는 글을 떠올렸다. 지혜로운 사람은 세상만사의 사리에 통달하여 무엇에도 구애되지 아니하는 것이 마치 흐르는 물과 같다는 뜻이었다. “아~아 나는 물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지”<중략>. 모든 생명체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수분을 공급해주고 있지 않은가. 물은 모든 생명체의 원동력이다.

나는 물과 같은 인물이 돼야한다” 유비는 이렇게 조그맣게 소리 내어 중얼거렸다.

사람은 두가지 부류가 있다.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 이 두 사람의 차이점은 아주 작은 판단에 있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바쁜길을 가다가 목이 말라 물을 마시게 되었는데, 두사람은 물을 마신 후에 시원한 나무그늘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그런데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을 다그쳐 적당히 휴식을 취하고 일어나는 반면, 어리석은 사람은 휴식의 편안함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늦게 출발하여 목적지에 늦게 도착을 하게 된다. 이상의 사례는 우리들 인생에서 많이 적용되는 사례이다. 자신의 목표를 향해서 스스로 다독여서 노력하는 사람은 엄청난 노력을 붓지 않아도 편안하게 일을 성취하는 반면, 늘 쾌락에 빠지고 게으른 사람은 인생이 남들보다 늦거나 바쁘기 마련이다. 그리고 늘 바쁘게 살아가는 듯이 보여도 결과는 별로 좋지 못하다. 우리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정답을 찾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길게 볼 때 더 즐거운지 그것에 정답이 있다. 하루만 살다 갈 인생이 아니기에, 10년 20년 50년을 길게 내다보며 하루하루를 지혜롭고 즐겁게 살아가는 법을 찾아야한다. 오늘에 충실하면서도 내일을 대비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겠다.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의 차이는 아주 작은 사소함에서 비롯된다.

이곳에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법을 소개하여 드리도록 하겠다. 지혜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아닌 경험을 통해서만 쌓을 수 있는 덕목이다. 지혜를 습득하는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으며,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그 과정을 되씹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쌓이는 것이다. 세상을 향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최대한 많은 것을 배우려는 자세를 가진 상태에서 자신의 경험을 분석하고 스스로의 지식을 시험에 들게 할 수 있다면 언젠가 스스로를 되돌아 봤을 때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음을 인식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을 낮추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현명한 사람은 스스로를 지혜롭다고 뽐내지 않는다. 진정한 지혜는 모든 것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과 불필요한 지식을 구별할 수 있는 힘이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192>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