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 기자의 <이스라엘, 요르단 성지순례 기행문> 1

<이스라엘, 요르단 성지순례 (기독교 유적지 탐방 순례) 기행문> 1

순례 여행을 준비 하며………………….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여행을 하고있다.

왜 이들은 여행을 하고있을까?. 그 여행을 하는 여행의 의미는 무엇일까?. 혹자들은 여행의 의미를 여러 방면으로 두고 집을 나선다. 삶의 행복을 찾아서, 휴식을 위해서, 나의 미래를 위한 나만의 가치 투자, 등등의 수많은 수식어가 여행이라는 이름 앞에 덧붙임을 한다.

여행을 뜻하는 영어 Travel의 어원은 라틴어로 Travail, 트라바일이다. 트라바일은 말 그대로 고생을 뜻한다. 그냥 고생이 아니라 신이 여자에게 내린 약속, 즉 고생을 하지 않고는 아기를 낳을 수 없는 정말로 힘들고 어려운 고생, 여자들만이 겪는 산고의 고생 같은(물론 거기에 비유할 수는 없지만…..) 그런 고생을 말하는 것이다. 모든 여행은 부수적으로 고생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고생을 한만큼 얻어지는 수확도 크며 보람이 있다.

여행의 백미는 내가 그들을 아무도 모르며 그들 또한 나에 대해서 모르는 상황에 떨어져서 나만의 시간을 풍요롭고 실속있게 즐기며 사용하는 것이 그 목적이자 중심에 있다. 타인의 잣대에서 벗어나 나만의 잣대로 세상을 들여다보기도 하며 그들의 삶속에 풍덩 뛰어들어 한동안 허우적거리며 배우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터득할 수 있는 매력 또한 차고 넘치는 것이 여행의 백미일 것이다. 나는 이렇게 여행을 하면서 나의 눈으로 보고 느끼고 체험했던 모든 사실과 일들을 기행문으로 써서 지상에 올렸다. 15년전에 북한의 금강산 관광을 갔을 때 그곳의 북한 병사와 나눴던 진솔하고 비밀적인 그쪽 사회의 이야기들을 써 올리면서는 그곳 병사의 안위와 신변의 위험성이 걱정이 되었었는데, 철의 장막의 북한 사회에서도 미국의 달러($)의 위력 앞에서는 무릎을 꿇는(?) 이변을 보여주었던 그러한 이야기들도 기행문속에 포함을 시켜서 지상에 올렸을 때 독자들의 반응은 호기심과 감동의 그 자체였었다.

매번 여행을 다녀왔을 때마다 기행문은 수도 없이 써서 지상에 게재했었지만, 이번의 성지순례여행의 기행문은 이전의 그러한 기행문들보다는 보다 색다르고 의미 깊은 종교적 차원에서 다루어 글을 써 올릴 예정이며, 수많은 그리스도를 믿는 종교인들에게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좀더 가까이 느끼며 살아있는 역사공부를 구약시대와 신약시대를 병행하여 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줄로 믿는다.

특별히 강조하여 하고 싶은 말은, 성지순례 여행은 일반적인 여행과는 다르다. 앞에서도 잠간 언급했듯이 나는 여행을 참으로 많이 다녔다. 유럽의 여러나라를 비롯해 멕시코와 중남미 나라, 카리비안 연안의 나라,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의 여러지방과 유명 관광지와 명승지 등등……..그때 그때 여행을 하면서 그 여행지 모두가 나에게는 새로웠고 이색적이었으며 경이롭기까지 했다. 그리고 더불어서 알게 되고 배우는 것들도 참으로 많았었다. 그런데 이번에 다녀온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기독교 유적지 성지순례 여행은 다른 어떤 여행들보다 의미있고 뜻 깊었으며 성스러움마저 느낄 수 있는 보람 있었던 여행 겸 성지순례였다.

성지순례, 그렇게 성스러운 곳을 순례하는 것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였다. 유대인들은 매년 예루살렘을 찾아 유월절을 거룩하게 보냈으며, 예수님과 그 제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의 사도들의 무덤을 찾아 기도를 올렸고, 수많은 순례자들이 맨발로 걸어서 멀고먼 성스러운 땅(Holy Land)을 찾기도 했다. 이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복음을 선포하셨던 바로 그 장소, 성인들과 순교자들의 삶과 순교가 증거되는 바로 그 자리를 찾아 기도를 올리기 전 까지는 신앙인으로서 무엇인가 부족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아울러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순례란, 단지 예수그리스도의 생애가 펼쳐졌던 땅, 혹은 성인들과 순교자들의 무덤 등 널리 알려진 곳을 찾고자하는 자연스러운 욕망,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는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던 사람들에게 드리는 공경이 얼마나 성스러운 것인가를 깨닫게 해주는 신앙심에서 비롯된 초 자연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공경을 통하여 똑같은 성스러움과 신앙심을 구하는 희망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구약에도 나와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특정한 장소를 지정하시고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은총을 베푸셨다. 이는 신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권능이 명백히 드러나는 성전에서, 작은 교회에서, 그리고 광야에서, 동굴에서 등등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진리를 깨우칠 수 있었고, 또한 치유의 은총도 받았다.

나는 지난 11월1일부터 11일까지 10박11일동안 이스라엘과 요르단에 산재해있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유적지를 둘러보는 성지순례(기독교 유적지 탐방)를 다녀왔다. 은혜롭고 영적인 체험을 얻은 이번 성지순례는 한마디로 너무나 좋았고 보람스러웠으며 평생에 잊지 못할 감명스러운 여행이자 순례여정이었다. 결과적으로는 대 만족이었고 또다시 가보고 싶은 마음과 미련이 남는 성지순례 여행이었다. 이번 여행에 항상 보이지 않게 동행하시며 우리들 순례객 일행을 보호해주시고 이끌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리며, 해박한 성경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들에게 친절하고 안전하게 여행을 하도록 도와주신 이스라엘의 전병규 선교사님(목사님)과 요르단의 이정훈 선교사님(목사님)께 진심으로 마음속깊이 감사를 드리며 주님의 가호와 축복이 함께 임하시기를 축원드린다.

이번 성지순례 여행을 하기까지는 정말로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너무나 많았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성경의 구약과 신약에 나오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흔적과 역사하심이 서려있는 거룩한 땅인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성지를 가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 희망과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나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현실의 구속을 받아 그날 그날 주어진 바쁜 일정에 쫓기다보니 그곳에 갈 여유와 여건이 허락치를 않았으며, 차일 피일 미루다보니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일선의 직업전선에서 물러나 은퇴생활을 하다 보니 자연적으로 다시 성지순례의 꿈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평소에 가깝게 지내던 시카고의 하나여행사 대표 손 권사님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자문을 구했다. 나의 말을 듣고 난 손 권사님은 마침 좋은 기회라면서 적극적으로 성지순례여행을 도와주겠다고 약속을 해주셨다. 그 후 얼마가 지난 후 손권사님 내외분은 성지순례 설명회를 갖고 자 이곳 탬파를 방문했다. 탬파에 오신 두분은 나의 집에 머물면서 성지순례에 필요한 제반 준비를 도와주셨고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광고도 내어주었다. 나의 생각으로는 일찍이 탬파지역에서 공식적으로 성지순례객 모집이 없었던 걸로 기억되어, 이번에 광고가 나가면 많은 사람들이 응모하여 성지순례에 동참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결과는 너무나 저조했다. 설명회를 갖고난 후 내가 적을 두고 있는 교회에서 겨우 9명이 신청했고, 광고를 보고 신청하는 사람은 없었다. 사정이 이렇게 되고 보니 조바심이 생겨났다. 손 권사님께는 적어도 최소한 30명을 채워주기로 하고 여행경비를 $3680.00로 깎아서 딜을 보았는데, 이렇게 되면 적정 레귤러 가격인 4800달러에서 5400달러정도를 부담해야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사람은 모이지 않고, 이곳 저곳 아는 사람들에게 모두 전화를 걸고 때로는 만나서 식사대접도 하면서 섭외(?)를 했으나 반응은 별로 좋지 않았다. 열심히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께 매달렸다. 하나님께서는 나와 나의 집사람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셨는지 응답이 나타났다. 우리교회에서 4명이 더 신청을 했고 내가 잘 알고지내는 지인 5명이 함께 가기로 약속을 해주었다. 그리고 신문광고를 보고 크리어워러에 사시는 이집사님 내외분께서 신청을 하여 도합 20명이 이곳 탬파지역에서 신청을 마쳤다. 또 반가운 소식은 시카고에서 목회를 하고계시는 이석 목사님께서 동참의사를 보내주셨다. 이렇게 해서 인원수는 21명이 되었는데, 여행비용이 문제였다. 30명도 되지 않는 이 인원으로 정해준 그 금액으로는 도저히 여행사측에서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밑지는 장사였다. 할 수 없이 손권사님께 사정을 하고 매달렸다. 참으로 난처한 부탁이고 들어주기 어려운 떼를 쓰는 경우가 되었다. 한참을 망설이고 심사숙고해 생각을 하던 손 권사님은 이곳의 여러 믿음의 형제자매님들을 위하여 자기가 희생하고 도와주는 길을 택해 주셨다. 이렇게 적은 인원속에 이 금액이면 정말로 파격적이고 커다란 배려와 도우심이었다. 인원이 적더라도 45명 정원의 대형 관광버스는 우리를 위하여 전세를 내어 10박 11일 동안 타고 다니도록 이미 예약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또한 감사한 것은 손 권사님께서 우리 순례여행객들의 편리를 위하여 3천여달러에 달하는 여행경비를 일시불로 받는 것이 아니라 몇 달에 걸쳐 분할금으로 지불할 수 있도록 편리도 봐주었다. 이렇게 여행사의 도움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우리들 일행 21명은 큰 어려움 없이 여행수속과 경비를 지불하고 성지순례 여행길에 오르게 되었다.

이제껏 과정 중에 밝히지 못한 나만의 숨은 애로점과 힘들었던 과정의 이야기들은 생략하기로 하겠다. 모두가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의 선물인데, 나 한사람의 수고와 힘들었던 일들은 예수님의 고난과 피 흘리심의 십자가 고통에 비하면 아예 거론조차 할 수 없는 미미한 것이라서 목구멍 속으로 꿀꺽 삼키기로 하겠다.

성지순례를 떠나기 앞서 참고로 몇가지 이해가 필요한 정의를 유념해 볼 필요가 있다.

개인적이거나 공적인 어떤 일을 목적으로 현재 살고있는 곳을 떠나 다른 지역을 돌아다니는 일을 우리는 대개 광범위한 의미로 여행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다른 고장이나 나라에 가서 그곳의 풍습. 풍경, 문물 따위를 구경하는 것을 관광이라고 부른다. 그런가 하면 여정(Joureny)이라는 말도 있다. 그것은 여행의 과정이나 노정(일정)을 뜻하는 말이지만 좀 더 깊은 의미에서 예컨데 ‘내 인생의 여정’이라는 식으로 쓸 수도 있는 말이다. 인생을 하나의 어떤 ‘여정’이라고 쓸수는 있지만 ‘관광’이라고는 전혀 쓰지 않는 쓰임새이다. 이와 같은 여행에 관한 일련의 어휘가운데 가장 심원한 것은 아마도 순례일 것이다. ‘기원이 될 만한 어떤 곳을’ 돌아다니며 예를 행한다는 의미로서 종교적 쓰임새를 갖는 말이지만 그것은 어떤 주거의 양식을 띠는 말이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의 경우 그들은 자기조상을 칭할때 ‘영국인’이나 ‘유럽인’이라고 부르지 않고 순례자(Pilgrim father)라고 부른다. 그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기원을 일종의 이주민으로 규정하는 까닭일 것이다. 따라서 순례란 이와 같이 하나의 사전적 범주에 머물러 어떤 종교 사찰이나 관광하는 여행으로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영적 기원과 뿌리를 찾는 신앙의 여정이요, 또 그것은 바로 우리의 영적 주거의 삶의 한 형식과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에서 여행방식 가운데 가장 심원한 의미를 갖는다 할 것이다.

아브라함은 성서에서 그자신이 이미 순례자로 등장한다. 그에게 있어 성지는 하나님께서 ‘지시할’땅이었다. 그리고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해야했던 모세에게 순례는 ‘율법준수’였다. 그래서 그의 성지는 목적지 가나안이었을 것 같지만 실상은 ‘광야’ 그 자체로 보는 것이 맞다.

그런 점에서 다윗이나 솔로몬의 성지 또한 화려한 성전으로서 예루살렘이 아니라 젊은 날 찬양의 결실로서 예루살렘이 바로 성지이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는 두말할 나위 없이 십자가 도상에서 그들의 성지와 순례를 완성하셨다. <다음주에 이어짐>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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