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깊어가는 가을밤, 고독속의 사색과 자기 성찰

<김명열칼럼> 깊어가는 가을밤, 고독속의 사색과 자기 성찰

 

현대를 살아가고있는 많은 사람들은 거미줄보다 더 복잡하고 불편하게 얽혀있는 관계속에서 이따금씩 자신의 가치를 타인의 거울로써 가늠하고자 하는 것 같다. 그런 것은 나 자신도 그리 해왔으니까………..물론 타인의 평가와 가치는 절대로 무시할 수 없다.

다만 그러한 가치를 위에 두어서는 나의 진정한 행복이나 삶의 보람은 찾기가 힘들것이라는 생각이든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현재의 나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큰 불편함이나 부족함이 없이 잘 살아가고 있다. 이따끔 사람답지 못한 비인격자를 만날 때는 감정이 폭발하고 분노가 고개를 들기도 하지만, 흐르는 물을 바라보듯 눈을 지그시감고 그냥 넘어가고 있다. 화(분노) 라는 감정은 나의 행복한 삶에 전혀 도움이 되지않기에 몸에 달라붙은 벌레를 떼어내듯, 불쾌하지만 애써 떨쳐낼 수 있기 때문에……. 그 대신 나는 성경을 읽고, 글을 쓰며, 차도 마시고, 반가운 얼굴을 마주하고 담소를 나누기도 한다. 그리고 이렇게 밤이 이슥한 깊은 어둠속에서 창밖의 별을 세며 고독의 늪에 빠져들기도 한다. 적막과 고요가 함께 어울려 외로움과 고독과 사색이 뒤엉켜 벗이 되고 잔잔한 호수의 수면위로 물안개가 피어오르듯, 막연한 그리움과 추억의 회상들이 머릿속에 떠 오르기도 한다. 외로움은 혼자일 때 나타나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혼자라고 해서 반드시 외로운 것은 아니다. 혼자라는 것과 외로움은 다르다. 외로움이 타인으로부터 고립된 기분으로 인한 우울함이라면, 고독은 바로 그 고립된 기분을 즐기는 것에 가깝다. 외로움은 사회적 배제와 공허함으로 인한 부정적인 상태이지만 고독은 그것으로 인한 즐거움이다. 다른 사람의 비위를 맞출 필요도 없이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하는 데에서 비롯되는 즐거움이다. 사람들과 부대낄 필요도 없고, 인간관계에서의 피로로부터 벗어나서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으며 자기 성장을 할 수 있는 긍정적이고 건강한 상태이다. 정신적 고통이 아니라 과도한 자극을 피하게 하는 정신적 자유와 해방인 것이다. 사람들이 이제는 고독이라는 말보다는 외로움이란 말을 더 많이 쓰고 있는 것 같다. 사실 고독(Solitude)과 외로움(Loneliness)의 의미는 뒤섞인 채 쓰이고 있다. 가령 “고독사”라는 표현처럼 고독은 외로움이라는 뜻에서 더 가깝게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용어는 그 쓰임에서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나 아렌트(1906~1975)는 “정신의 삶~사유”에서 고독은 외로움(고립)과 구분된다고 말한다. “내가 내 자신과 교제하는 실존적 상태”를 고독이라고 한다면, 고독과 마찬가지로 홀로 있으나 “인간집단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나 자신으로부터도 버림받은 상태”는 외로움(고립)이라는 것이다. 외로움이란 달리 표현하자면 나 혼자이며 동료가 없는 상태이다. 아렌트의 이러한 생각은 인간이란 본질적으로 복수로서만 존재한다는 것, 인격들 혹은 독특성들로 구성된 다원성이 인간의 조건, 그 자체를 구성한다는 그녀의 기본 사유로부터 나온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낙엽이 떨어지고 아침기온이 서늘해지는 가을이 되면 문득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다소 가라앉기도 하고, 또 조용한 사색의 시간을 갖고 싶어 한다. 혼자서 사색의 시간을 갖다보면 어느덧 고독이라는 감정에도 쉽게 빠져든다. 특히나 외로운 사람들에게 고독이란 감정은 번식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서식지가 된다. 사실 고독은 인간에게 필요한 감정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벗어나 고독을 느끼는 시간은 힘들고 엉켜있던 사람들 사이의 실타래를 하나하나 푸는 작업이기도 하며, 짙은 고독은 다시 사람에 대한 그리움으로 전환되어 사람에대한 사랑과 욕구를 만들어준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대인 관계에서 고독은 필수적이기도 하다.

우리네 인간들은 내면속에 세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밖으로 향하는 눈이고, 두번째는 위로 향하는 눈이며, 세번째는 안으로 향하는 눈이다. 밖으로 향하는 눈은 자연과 객관적 대상의 세계를 관찰하는 눈이다. 위로 향하는 눈은 나를 창조해주시고 우주만물을 창조해주신 조물주 하나님이나 신과 종교적 신앙의 세계를 가진 눈이고, 안으로 향하는 눈은 나 자신의 자아와 내면적인 세계를 보는 눈이다. 특별히 젊은이들, 즉 청년의 사색과 관심의 특색은 내향성과 내면성에 있다. 그는 눈을 밖에서 안으로 돌리고, 남에게서 자기에게로 돌린다. 그것은 자기발견은 물론 자기탐구와 자기성찰, 자기 응시의 눈이다. 내가 나의 내적 세계를 들여다보려는 눈이다.

요즘처럼 깊어가는 가을철에는 우리들 누구에게나 사색이 필요한 계절이다. 사색에는 무엇보다 조용한 환경이 필요하다. 우리는 사색하기 위해서 주위의 번잡하고 시끄러운 환경이나 접촉에서 격리되어 조용한 장소를 찾아야한다. 더군다나 나 자신의 성찰에는 그러한 환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고독은 사색하기 위한 조건이다. 우리는 고독속에서 자기가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내가 나를 면밀히 응시하고 조용히 인생을 명상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고독의 시간은 또다른 각도와 의미에서 본다면 구원의 시간이다.

젊은이의 혼은 고독속에서 마음껏 꿈을 꿀수있고 감상에 젖을수있으며 상상의 날개를 타고 낭만의세계를 달릴수있다. 고독은 조용히 앉아서 내가 나와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청년은 고독속에서 향수를 느낀다. 그것은 마치 플라톤이 말한 것처럼, 영혼이 이데아의 세계에 대해서 노스탤지어를 느끼는 것과 같다. 과거의 역사를 살펴보면 위대한 여러 사상가들이 고독을 사랑하고 고독을 애찬 했다.

고독은 그들에게 있어서 진지한 사색을 위한 정신의 터전이었다. 니체는 “고독은 나의 고향이다”라고 말하였으며 “진리는 호의에서 착상 된다”라고 하였다. 니체는 고독한 산보속에서 사상의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자기의 성찰을 위해서는 시끄러운 곳보다는 조용한 장소가 요구된다. 조용한 환경속에서 자기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이 바로 성찰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고독은 우리가 깊이 생각하고 이치를 찾는 길이기도 하지만, 내가 나를 응시하고 조용히 인생을 명상하는 시간이라고 볼 수 있다. 고독과 사색의 시간을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구원의 시간이기도 하지만, 마음껏 꿈을 꾸며 즐길 수도 있다. 상상의 날개를 타고 감미로운 분위기속에, 즉 내가 나하고 대화하며 꿈을 꿀수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밝고 맑은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좋은 꿈으로 가장좋은 세계를 그리며 날개를 펴고 높이 날아갈 수 있다. 그러나 꿈은 어디까지나 꿈이며, 현실은 아니기때문에 이념에 대한 꿈과 이상에 대한 도취는 바로 현실로 돌아올수 있어야 한다. 고독을 사랑하고 기리는것도 고독이 진지한 사색을 위한 정신의 터전이라고 볼수있지만, 고독과 사색을 즐기며 함께하는 사람이 진정 인생의 참다운 멋을 아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꿈이나 품격도 타인과의 접촉에서 원만해진다고 봐야한다. 마음의 바탕에 까탈스러움이 많거나 표가 나는 사람도 상호 여러 사람과 대면하고 접촉하는 가운데서 원만한 성격도 형성된다. 우리의 정서중에서 가장 깊고 고상하다고 할수있는 고독을 잘 알아야먄 인생을 안다고 했다. 그러나 인간은 남과의 의사전달이나 정보를 유통하는 사회적 실존이기 때문에 오직 고독에서 벗어나 현실의 생활로 돌아올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어떤것을 깊이 생각하고 그 이치를 찾기위해 고독의 세계를 갖는다 해도 우리는 고독속에 살아갈수는 없다. 생명적 공감의 따듯한 인간적 대화속에서 행복할 수 있고 생의 보람을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고독은 정신의 산책처일뿐 영원한 안식처는 아니다. 다만 인간에게는 사색과 자기 성찰을 위해서 고독한 환경이 필요하다고 봐야하며, 또 고독속에서 혼자 견딜 수 있다면 진실로 지혜로우면서도 정신력까지 강한사람이 될 것이다.

우리네 인간은 혼자 있으면 많은 사람이 그립고, 사람속에 있으면 고독이 그립다. 홀로 있을때 고독할 뿐 아니라, 알지 못하는 군중속에 섞일 때 한층 고독을 더 느낄 수 있다. 서로 따듯한 대화를 잃어버릴때 인간은 고독하기도 하지만 낯선 군중들속에서 다른 나라 사람처럼 느낄때 더욱 고독의 슬픔과 설움을 느낀다. 그렇지만 고독을 아는사람은 고독을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고독을 배척하기보다 즐기고 사색을 통해 존재의 이유를 거듭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의 삶이 여유를 만들어주지 않을까 한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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