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사색과 성숙의 계절인 이 가을에……

<김명열칼럼> 사색과 성숙의 계절인 이 가을에……

 

지는 낙엽을 보면서 내 자신 삶의 끝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고, 열매를 보면서 나는 내 인생에 무슨 열매를 맺고 살아가는지, 깊게 생각을 되짚어보는 계절이 바로 이 가을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이 무거워진다. 후회 없는 삶도 없고, 불안하지 않은 미래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파아란 하늘밑, 가을햇살이 맑은날 들판을 걸으며 금년의 삶을 마감하는 것들과 내년을 기약하는 것들을 만났다. 그 모든 것들이 머지않아 찾아올 겨울을 대비하며 의미있게 다가온다. 우리 곁에 찾아온 이 가을은 사람을 깊고 성숙하게 만들어주는 계절이다.

우리는 깊어지기 위해 하루나 이틀쯤 사색과 침묵의 시간도 갖고, 사색하며 황금빛으로 물들여진 가을길을 걸어보는 것도 퍽이나 좋을 것 같다. 태어남과 자라남이 봄이라고 하면 어른의 왕성한 활동은 여름으로 비유되고, 나이가 들어서 인생을 거두어 들이는 노인이 될 때에는 겨울을 앞에 둔 늦가을처럼 마지막 죽음을 앞두게 된다. 이러한 일생을 우리는 춘하추동의 4계절을 통해서 볼 수가 있다. 그래서인지 가을이면 많은 사람들이 성숙해지는 것 같다. 아울러 그래서 가을이면 마음이 깊어지는 계절이라고도 한다. 가을은 결실을 맺은 곡식과 열매를 거두어들이는 추수의 계절이다. 그러나 가을은 추수만 하는 계절만은 아니다. 추수를 하고난 빈 들녘처럼 자신의 마음을 비우는 계절이기도 하다. 무성했던 잎이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는 나무처럼, 소유했던 모든 것과 마음속의 탐욕까지도 버리는 계절이다. 그래서일까 추석 한가위가 되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팔월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있다. 가을의 풍요로움도 있지만, 그 풍요함을 이웃과 나누며 탐욕을 버리라는 뜻도 있는 나눔과 베품의 가을이기도

하다. 마음을 비울 때 남을 배려하고, 베풀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인간들에게 있어서 평등하게 주어지지만 거부할 수 없으며 그 누구라도 대신할 수 없는게 두개가 있다. 태어남(生)과 죽음(死)이다.

태어나는 것도 죽는 것도 자기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루어진다. 또한 빌려줄 수도 없고, 대신할 수도 없는 것이다. 모두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엄밀히 말하자면 계절이 다시 돌아온다고 하지만 지금의 가을은 지난해의 가을은 아니다. 새로운 가을이다. 강물이 흘러가듯 되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삶도 꽃이 피는 봄이 있고, 성장하는 여름, 그리고 결실을 맺는 가을, 마지막을 정리하는 겨울 등의 사계절이 있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말하지만 사색(思索)을 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아직도 2019년이 지나가려면 90여일이 남았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날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더 이타적이 되고, 희생적으로 행동을 하게 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욕심과 탐욕을 내려놓는 시간이 바로 지금의 시간이다. 비우면 채워지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가만히 귀를 귀울이고 가을이 우리에게 속삭이는 말을 들어보자. 봄 여름, 가을이 그렇게 물 흐르듯이 흘러가듯, 겨울도 이제 쉬이 우리 모두에게 찾아오지 않겠는가………….

결실과 풍요로움이 함께하는 이 가을은 성숙의 계절이다. 이른 봄부터 움을 틔워 오롯이 길러내어, 여름에는 그 호사로운 꽃을 맘껏 화려한 자태를 뽐내다가 이 또한 미숙한 자기 현시의 과욕으로 알고, 한잎 두잎 꽃잎을 뚝뚝 떨어뜨리곤, 말없이 내실로 다져 알알이 열매로 철드는 성숙의 계절이다. 그리고 그 결실조차 자랑할 것이 없다는 듯 겸양하게 머리를 조아리는 조신(操身)의 계절이며, 이 뿐아니라 토실토실한 그 결실을 하나도 제 입에 넣지 않고 모두에게 나누는 베풂의 계절이기도 하다. 또한 성숙이란 나 자신이 세상이나 직장, 또는 어느 공동체의 중심이 아니고 한 부분이란 것을 깨닫고 자기의 맡은바 주어진 일에 충실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는 것이다.

나 자신 역시 어릴 때는 내가 세상이나 학교, 직장, 집안에서 중심인줄 알고 주제넘게 굴었는데, 어느날 문득 깨닫고 보니 “아 ! 이게 아니었구나. 다른 사람도 그들의 생각대로 살아가고 나의 생각이나 신념이 그들의 생각보다 못할 수 도 있구나!”. 이렇게 되면서 철이 들고 이성이 올바르게 정립되면서 삶에 여백이 생기고 넉넉해지면서 기쁨과 평안이 커지고 나 자신의 성숙됨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도 완전히 채워지지 않은 미완성의 성숙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런데 오늘날 우리사회, 특히 한국의 사회는 오점 투성이의 사회를 유지하고 있다. 지금의 현 정권은 내편이 아니면 모두가 적이고 원수로 간주하며, 나에게(현 정권) 동조하지 않는 세력들은 적폐 청산의 타도되어야 할 대상으로, 그리고 악의 축으로 매도하고, 내가 하는 것은 옳고 남이 하는 것은 잘못한다는 내로남불식의 억지 주장을 펴고 있다. 아울러 나의 반대세력이나 비 협조자들은 권력으로 타도, 제압하려고만 한다. 그래서 세상은 늘 불화하고 또한 불편하다.

극심한 갈등속에 정부와 여당, 법무부가 합세하여 검찰을 몰아세우며, 타협도 절충도 조화도 양보도 협조도 거부한 채 그저 그렇게 일방통행만 강요하고 있다. 또한 내가 요즘 종교계를 볼 것 같으면, 그들은 천국에 대해서보다는 지옥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있고, 구원에 대해서 보다는 멸망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있으며, 그들은 용서에 대해서보다는 심판에 대해서 더 많이 이야기하고, 성자들의 행적보다는 죄인들의 행적을 더 많이 알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보듯 그들은 오직 자기의 잣대로 선과악을 판단하여 내가 아닌 너는 악으로 간주해버린다. 요즈음 우리의 사회는 성숙의계절인 이 가을에도 왜 오로지 힘에 의해서만 모든 것이 독단되고 있을까?….

경제든 언론이든 심지어는 종교계 까지도………..

아프리카 부족에 대하여 연구를 하던 어느 인류학자가 어느 한 부족의 아이들에게 “저 앞에 놓인 과일바구니에 까지 제일먼저 뛰어간 아이에게 과일을 모두 주겠다”고 말하자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듯 서로 서로 손을 잡고 함께 달려가 바구니에 다다르자 모두가 함께 둘러앉아 입안 가득히 과일을 베어 물고 키득거리며 웃음속 대화를 나누면서 과일을 나눠먹었다. 학자는 아이들에게 “일등을 한 사람에게 모든 과일을 주려했는데 왜 손을 잡고 같이 달렸느냐?” 고 묻자 아이들은 UBUNTU라고 외치며 말했다. “나머지 아이들이 다 못먹고 슬픈데 나만 혼자 먹으며 기분이 좋을 수는 없죠”. UBUNTU는 아프리카 어로 ‘우리가 함께 있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혼자서 전부를 움켜쥐는 일등이 되어야 한다고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제 자신도 그렇게 되려고 발버둥치는 우리들보다 훨씬 더 훌륭하고 성숙한 아이들이다.

연일 계속되던 폭염도 이제 한풀 꺾이고 이제는 제법 선들바람이 불며 하늘은 높고 파랗게 변해있다. 이 온화하고 편안한 가을날씨는 힘센 자나, 약한 자나 모두에게 차별 없이 골고루 따듯하고 화사한 햇볕을 선사한다. 참된 성숙이란 모든 이를 고루 대하되 한걸음 더 나아가 약하고 불쌍한 자를 품는데까지 이르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마음의 양식이 되는 좋은 글은 부족한 마음을 채워주고,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글의 내용이 주는 가르침이 있어 복된 삶을 살아가는데 윤활유와 같은 활력소가 됩니다. 좋은 글 한편이 나의 삶을 새롭게 해줍니다. 글쓰기는 내 존재를 증명하는 삶의 양식이기에 나는 오늘도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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