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기행문 29>  천년의 도시 체코의 수도 프라하를 가다.

<김명열기행문 29>  천년의 도시 체코의 수도 프라하를 가다.

 

체코의 첫 여정은 천년의 고도, 프라하부터 시작했다. 프라하는 보헤미아 왕국부터 약 천년 넘게 이어진 체코의 수도로 중세시대 건축물이 잘 보존되어있는 곳이기도 하다. 프라하는 체코의 수도이다. 인구는 약 128만명이고 광역 도시권을 포함하면 인구는 216만명에 달한다. 프라하는 체코의 도시 중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이며 유럽연합에서 14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블타바 강이 프라하의 중심을 가로지르고 있고, 도시 전체는 온대 기후에 속하여 여름에는 온화하나 겨울에는 춥다. 프라하는 체코뿐만 아니라 중부유럽 전체에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인 중심지 역할을 한 도시 중의 하나이다. 관광지로도 유명하며 런던, 파리, 이스탄불, 로마에 이어 유럽에서 5번째로 방문객수가 많은 도시이기도하다. 역사적인 면을 살펴보면, 9세기에 창건, 보헤미아왕국의 수도를 거쳐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도시였다가 1918년 체코슬라바키아의 독립과 함께 그 수도가 되었다.

1968년 프라하의 봄 사태로 유명하며 1993년 체코공화국이 성립되자 그 수도가 되어 오늘에 이른다.

관광지의 중요한 명소로는 다음과 같다. 프라하는 세계 제2차 대전 동안 비교적 도심 파괴가 적었다. 그 때문에 상당수의 건축물들이 잘 보존될 수 있었다. 프라하는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건축물들의 양식을 자랑하는 곳으로, 로마네스크 미술, 고딕건축, 도로코, 르네상스, 바로크, 네오르네상스 건축, 신고전주의, 고딕 리바이벌 건축, 아루느보, 입체파 건축 등이 도시 곳곳에 퍼져있다. 프라하는 서울, 비엔나, 워싱턴 DC와 함께 Ga Wc가 분류한 알파(세계도시)로 분류되어있다. 프라하시의 중심가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있기도 하다.

다음은 프라하시내의 테마여행으로 관광지 몇몇 곳을 소개하여드리도록 하겠다.

먼저 카를교(Charles Bridge)이다. 프라하의 상징인 카를교는 파란만장했던 체코의 역사속에서도 약 6백년 동안 굳건히 자리를 지켜온 곳이다. 블타바강을 가로지르는 길이 약5백미터의 중세 석조 다리로, 옛날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카렐4세의 이름을 따서 카렐교라고 부른다. 14세기 신성로마제국은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를 비롯해 중앙유럽 전체를 포함하던 큰 나라였는데, 카렐 4세가 그 신성로마제국 전체의 수도를 프라하로 정했다. 그렇기 때문에 프라하 시민들은 아직도 카렐4세 시대의 프라하를 프라하 역사의 가장 황금기로 기억하고 있다. 다리에 얽힌 전설과 역사를 생각하며 건너다보면 발길이 늦춰져 그 위에 머물 수 밖에 없는 카를교, 카를4세의 지시로 만들어졌고, 양쪽에 15개씩 총30개의 조각상이 줄지어 서 있으며, 그중에서도 성 얀 네포무츠키 조각사의 이야기를 풀어보면, 성 얀 네포무츠키는 여왕의 고해성사를 들었는데, 왕이 “왕비가 무슨 얘기를 했느냐?” 라며 솔직하게 말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성 얀 네포무츠키는 절대로 여왕의 고해성사를 말할 수 없다며 거절했고, 왕은 성 얀 네포무츠키를 지하감옥에 가두고 고문했다. 결국 성 얀 네포무츠키는 종교적 신념을 지키며 죽었고, 왕은 성직자를 죽였다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블타바 강물에 던져버렸다. 동판 구조 위에 새겨진 개와 다리 아래로 떨어지는 성인의 순교모습을 쓰다듬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들 믿는다고 하여 그곳을 찾은 수많은 관광객들은 그것을 쓰다듬어보기 위하여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들도 장관이었다.

카를교를 건너 구 시가지로 가는 길을 왕의 길이라 부른다. 카를4세 왕이 대관식을 치르기 위해 행차하던 길이여서 그렇다고 한다.

카를교를 건너면 곧바로 구시가지에 도착한다. 광장 중심에서는 최초의 종교 개혁가 얀 후스(Jan Hus)도 만날수 있다. 민족의 애환과 굴곡진 역사의 무대가 되어온 광장에서는 매일같이 거리 예술가들의 흥미로운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자유분방한 보헤미안의 감성이 묻어나는 곳, 시대를 달리하는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사방을 둘러싼 광장에서 가장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끄는 곳은 구 시청사 건물(Prague Old Town Hall)이다. 14세기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중세 체코의 과학과 기술의 결정판이라 평가되는 이곳은 천문시계가 유명하다. 옛날사람들은 하늘을 보고 별자리 위치로 시간을 판단했기 때문에 낮에도 별자리의 위치를 볼 수 있도록 이런 천문시계를 만들었다고 이해하면 된다. 예를 들면 전갈자리와 북두칠성이 만날 때 우리가 전쟁을 해도 된다는 식의………..

글을 모르는 서민들을 위해 만들어진 천문시계, 매시 정각이 되면 시계 퍼포먼스를 볼 수 있다. 구 시청사 위로 올라가면 시계도 볼 수 있고, 최고의 프라하시의 전망도 볼 수 있다. 원래 시청사 건물은 제2차 세계대전때 독일군의 폭격에 의해 없어져, 옆에 있는 건물을 통해 입장하면 된다. 천문시계는 1410년부터 작동을 시작했고, 시계의 부품 대부분이 그 당시에 만들어진 그대로라고 한다. 열두사도 목각 인형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만들어진 새것이고 지금의 천문시계는 수세기에 걸쳐 여러 장인과 기술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합작품이다. 매시 정각마다 인형이 6개씩 있는 원판 두개가 이동하고 광장에서는 두 창문을 통해 그걸 볼 수 있다. 탑에는 3종류가 있다. 교회탑, 시청탑, 성탑, 이것이 유럽의 중세기를 다스리는 세가지 권력을 상징하는 것이다. 성탑은 귀족의 권력, 교회탑은 종교의 권력, 시청탑은 시민의 권력. 다음은 하벨시장(Havels Market)의 이야기이다. 1232년에 세워진 유래 깊은 시장으로, 시대의 흐름에 따라 시장에서 판매하는 물품들이 바뀌었다. 지금은 싱싱한 과일과 야채, 그리고 관광용품들을 팔고 있으니, 만약에 프라하에 간다면 오랜 전통을 가진 이 시장을 구경하는 것도 좋으리란 생각이 든다. 여행객들을 위한 과일 식수대도 마련되어있으니 상큼한 과일식수도 맛보면서 피곤한 다리를 쉬었다 가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은 유서 깊은 프라하성의 이야기이다. 이곳은 고딕, 바로크 등 시대별 건축양식을 볼 수 있는 성당, 왕궁, 수도원, 정원 등이 있는 성채단지이다. 구 왕궁들을 포함해 천백여년동안 세워진 다양한 건축물들을 볼 수 있다. 현재는 대통령관저로 사용되고 있다. 프라하 성은 다른 중세의 성들과는 달리 하나의 성이라기보다 거대한 성터 위에 여러사람들이 수백년에 걸쳐 산 흔적들이 있는 하나의 마을이라 생각하면 된다. 즉 귀족들이 이사와 집을 짓기도 했고,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이 남편을 잃은 귀족부인들이 모여 살 수 있는 시설을 짓기도 한곳이다.

우리들 일행이 이곳에 왔 을때는 마침 운이 좋게도 근위병 임무 교대식이 시작되었다. 교대식이라기보다는 그냥 평범한 임무교대였는데, 그래도 수많은 구경꾼들의 사람들은 호기심어린 눈으로 시간에 맞춰 기다리고 있었다. 영국 런던의 버킹엄궁전의 근위병 교대식이나 대만 타이페이의 행천궁 근위병 교대식에 비하면 아이들 장난 수준이었지만, 여기서는 그 자체가 볼거리였다.

대통령이 근무하는 건물이라고 하지만, 한국의 청와대나 미국의 백악관처럼 근무병들의 삼엄한 분위기속의 대통령 근무처가 아니라 대통령의 출입구 통로에는 경비병이 보초를 서고 있을뿐 그 입구의 통로에는 아무나 자유롭게 출입을 통제 받지 않고 드나들 수가 있었다. 바로 위층에는 대통령이 집무실에서 현재 근무를 하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프라하 성은 천년이상 체코의 상징이 되어왔다. 9세기에 체코 통치자의 거주지로 건설되어 최근에는 대통령의 집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프라하성은 왕궁, 행정시설, 성당, 요새, 정원과 황금 소로와 같이 그림같은 명소를 갖춘 세계에서 가장 큰 성으로 알려져 있다.

이제 마지막 코스로 성 비투스 대성당(St. Vitus Cathedral) 이야기이다. 수백년을 거쳐 1929년 20세기에 완성된 프라하성 내부에 위치한 성당이다. 성 비투스대 성당의 자랑이라 할 수 있는 22만 6천개의 유리조각이 들어간 성경의 최후의 심판을 묘사한 스테인드글라스를 보고 있노라면 신비로움을 자아내는 느낌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알폰스 무하라는 체코의 유명한 예술가가 만든 스테인드글라스. 기존의 다른 스테인인글라스와 달리 유리에 직접 그림을 그리고 가마에 구워낸 완성한 작품이라고 한다. 자세히 살펴보니 아르누보(Art Nouveau)양식의 진수와 우아한 색감까지 무하의 화풍을 그대로 드러나게 옮겨놓았다. 스테인드글라스는 가난한자의 성경이라 불렸는데, 중세 시대 글을 읽지 못하던 이들을 위해 그림을 그려 성서의 내용을 전달하고자 했기 떄문이라고 한다.

다음의 여행지로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화려한 문화와 예술의 도시, 합스부르크제국의 분위기가 물씬 풍겨나는 다채롭고 흥미있는 도시, 비엔나의 이야기를 글려드리도록 하겠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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