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은혜와 배신과 용서

<김명열칼럼>  은혜와 배신과 용서

 

사람이 인간관계로 겪는 큰 상처는 “배신의 상처”이다. 사랑하고 믿었던 사람의 배신 뒤에는 깊은 분노와 고통이 찾아온다.

많은사람들이 이 배신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채 살아가고 있다. 역사적으로 알려진 유명한 배신들도 있다. 로마의 시저도 친자식처럼 여겼던 부르투스에게 암살당했고, 다윗왕도 자신의 아들 압살롬에 의해 배신을 당했고, 참모인 아히도벨에 의해서 배신을 당했다.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하고 악한 배신은 예수님의 제자였던 가롯 유다의 배신이다. 예수님에게는 육체적 고통보다도 더 큰 고통은 바로 사랑하는 제자의 배신이었을 것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배신을 당할때 누구나 예외 없이 깊은 상처와 고통과 슬픔을 경험한다. 배신의 상처를 딛고 정서적으로 건강하고 바르고 씩씩하게 사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일수도 있다. 그만큼 회복하기가 쉽지 않고 극복하기 어려운 위기가 배신의 상처와 고통일 것이다.

나는 2주전에 올린 글, 칼럼에 ‘남이 나에게 잘못을 저질렀을때’ 제하의 글을 게재한 적이 있었다. 이글을 읽으신 독자분들 중에 여러분께서 자신이 겪었던 배신의 경험담을 이멜로 보내주셨다. 여러분 공히 그 당시의 배신감에 치를 떨었고, 커다란 고통과 아픔, 분노속에 밤잠을 제대로 못자며 괴로워 하셨다고 하며, 어느분께서는 그 배신감을 아직도 잊지 못한 채 분노의 칼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다고 했고, 어느분은 오죽했으면 그렇게 자신에게 배신을 했을까? 하며 자위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를 용서했다고 했다. 그러한 분들 중에 대표적인 사례를 두분을 선정하여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다.

첫번째 사례의 한분은, 마이애미에 사시는 O여사로, 그분께서는 오갈 데 없이 무일푼으로 가난하게 지내는 불쌍한 지인 한분(50대 여성)을 측은지심이 들어 자기집으로 데려다가 숙식을 제공하며 무려 3년동안을 돌봐주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자기가 집을 비운사이 집안에 보관해둔 보석류와 돈을 갖고서 종적을 감췄다고 한다. 그동안 그녀와 그는 서로가 의지하고 벗하며 친 자매처럼 행복하게 잘 지냈는데, 이렇게 하루아침에 배신을 하고 말도 없이 떠나가 버렸으니 기가 막히고 어처구니가 없으며, 은혜를 배신으로 보상해주고 간 그녀가 원망스럽고 죽이고 싶도록 증오심이 생겼다고 했다. 또 한사람의 예는 시카고에 거주하는 k씨(58)의 이야기이다. k씨는 지난 90년도에 미국으로 이민와서 각종 궂은일이나 힘든 일을 마다않고 열심히 노력하고 일을 한 결과 집도 사고 조그마한 자영업체도 갖게 되었다. 그들 부부는 그동안 열심히 저축하고 모은 돈을 자금난으로 고전하고 있는 처남의 사업을 돕기 위해 집까지 저당잡혀 융자금을 얻어내 처남의 사업을 위해 지원해주었다. 이번 한번만 도와주면 평생을 잊지 않고 은혜에 꼭 보답을 해드리겠다는 약속의 말도 그들 부부의 마음을 신뢰의 믿음으로 바꾸어주었다. 몇년이 지난 후 처남은 성업중인 사업체를 처분하고 k씨가 빌려준 돈도 갚지 않은채 어느날 갑자기 소리 소문도 없이 잠적해버렸다. 그후 나중에 안 이야기로 그의 처남은 한국으로 영구 귀국해버렸다고 한다. 이러한 경우 두 사람의 말인 즉, 이러한 배신자를 어떻게 용서를 할 수 있느냐고 분통을 터뜨리며 배신감에 그들을 죽이고 싶도록 증오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말 속담에 “머리 검은 짐승은 정도 주지 말고 거두지도 말라”는 말이 있다. 머리 검은 짐승은 당연히 인간을 두고서 하는 말이다.

이와 같은 한자성어로는 배은망덕, 남에게 입은 은혜를 저버리고 그를 배반, 배신할 때 쓰는 말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때로는 지난날의 마음의 상처가 삶 전체를 흔들기도 한다. 과거에 받은 상처를 고스란히 끌어안고 그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품은 채 불행한 삶을 이어가는 이들이 많이 있다. 어린 시절 부모가 준 상처, 믿었던 누군가의 배신, 과거 연인이 준 상처 등등, 이미 지나간 일임에도 과거에 매여 고통을 되새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삶 전체가 불행하고 몸과 마음이 병들게 된다. 특히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한 분노는 부정적인 감정의 뿌리라고 불릴 만큼 심신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분노가 인체에 미치는 생리작용을 연구한 듀크대학 정신과 레드포드 위리암스 교수는 “분노가 사람을 죽인다”고 단언할 만큼 심신을 파괴한다고 강조했다. 분노와 마음의 상처에 묶여 산다면 그 부정적 감정을 없애지 않는 한 결코 행복한 삶으로 나아갈 수 없다. 분노의 굴레를 벗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 바로 “용서”이다. 이 용서라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 줄 안다. 그러나 모든 일과 사람에 대해 용서하는 것이 과거로부터 진정 자유로워지는 길이며,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는 근원적인 방법이다. 용서를 하면 분노가 사라지고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이 평온해진다.

용서하는 마음은 자신의 선택이다. 살면서 분노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느끼는 분노의 감정도 다양하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 지는 소소한 원망도 있고, 평생 따라다니는 큰 분노가 있다. 그러나 아무리 불같이 들끓는 분노의 감정도 용서하는 순간 평온해진다. 그것이 바로 용서의 힘이다. 용서하지 않을 때 감정의 노예가 되어 스스로를 영원한 피해자로 만들게 된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복수의 칼을 갈면서 자신의 삶을 불행에 가두는 것이다. 자신의 불행한 삶을 구제하고 행복하게 살기위해서 용서를 해야 한다.

용서가 필요한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에겐 용서에 대한 선택권이 있다. 모든 것이 자신에게 달려있다. 엔라이트 교수의 말처럼 ‘용서는 선택’인 것이다. 상대방의 관점에서 보려고 시도할 때 감정은 변하게 된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무조건 옳다는 관점에 길들여진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돌아보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도저히 바뀔 것 같지 않던 생각도 유연해지고 변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불완전한 존재이다. 때때로 외롭고 실수를 하고 남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받아 아파하고 배신도 당하며 삶의 여정에서 길을 잃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나도 그 사람도 당신도 예외가 아니다. 그리고 악의적으로 상처를 주는 경우도 있지만, 그러한 경우는 일상에서 보면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다. 단지 생각이 깊지 못해서 자신이 말과 행동이 남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감정적 스트레스가 쌓인 상태에서 저지르는 실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생의 질곡 속에서 정서적으로 불완전할 때 누구나 그러한 실수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용서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다. 감정의 변화를 이끄는 코드는 바로 나와 그 사람이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일상속에서 겪는 자잘한 불쾌감은 물론이고 평생 품어온 오랜 분노까지도 용서하기로 마음을 먹으면 얼마던지 밀어낼 수 있다. 심지어 어릴적 겪은 가정폭력, 끔찍하게 당한 범죄나 테러까지도 용서 할 수 있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을것 같은 일조차도 실제로 용서를 선택해서 새로운 삶을 사는 이들이 많고, 그들은 한결같이 그 용서가 바로 자신을 위한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유명한 성교육 전문가이자 상담가인 구성애씨역시 그런 경우이다. 그녀는 어린시절 당한 성폭행으로 불행의 늪에서 살아왔다. 분노하고, 죽을 생각을 하고, 자신을 성폭행한 사람을 죽이려는 범행계획까지 세우는 등 극단적인 심리변화를 경험했었다. 그러나 그 사람을 용서하면서 비로서 아픈 상처에서 벗어났고, 삶을 짓눌러온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녀의 아우성(아름다운 우리 아이들의 성교육)강의가 사람들에게 큰 공감을 낳은것도 자신의 치유경험을 바람으로 한 것이기 때문이리라.

은혜와 배신과 용서, 에 세가지 단어는 우리들의 인생에서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그러나 그 세가지중에 두가지의 단어, 즉 은혜와 용서는 일반적인 삶의 궤도에서 탈피하여 나의인생을 업그레이드 시키고 보람되며 복된 삶을 이어가게 해주는 새로운 인생의 설계도이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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