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배고픈 시절의 보릿고개

오늘 나는 본문의 글을 쓰기전에, 우리나라 조선 중기시대, 영조왕때의 왕후, 정순왕후 김씨(1745년 12월2일~1805년2월11일)의 이야기를 먼저 들려드리도록 하겠다.

정순왕후 김씨는 1745년 현재의 충남 서산에서 김한구와 원풍부부인 원씨의 딸로 태어났다. 1757년 영조의 정비(중전마마)인 정성왕후가 승하하자 영조는 부왕인 숙종의 유지에 따라 후궁들중에서 왕비를 책봉하지 않았다. 1759년 6월9일 정식으로 중전간택을 통해 김한구의 딸을 새 왕비로 6월22일 창경궁에서 혼례를 올렸다. 당시 영조의 나이는 66세, 정순왕후는 15세로 조선 개국이후 가장 나이차가 큰 혼인이었고 그가 왕비에 책봉될 때 부모 내외는 물론 조부 김선경도 생존하고 있었다. 심지어 1735년에 태어난 영조의 아들인 사도세자와 며느리인 혜경궁 홍씨보다 10살이나 어렸다. 간택 당시의 일화로 영조는 간택규수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깊은 것이 무엇인지 물었는데, 다른 규수들은 “산이 깊다” “물이 깊다”는 답변을 했지만 유독 정순왕후는 “인심이 가장 깊다’고 답하여 영조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또한 가장 아름다운 꽃이 무엇이냐? 는 질문에 다른 규수들은 매화꽃을 비롯해 난초, 국화, 목련꽃 등등을 아뢰었으나 유독 정순왕후 김씨는 질문에 답하기를 “목화 꽃은 비록 멋과 향기는 빼어나지 않으나 실을 짜 백성을 따듯하게 만들어주는 꽃이니 가장 아름 답다” 라는 말로 영조를 감탄시켰다고 한다.

너무나 영특하고 사려 깊은 생각과 마음, 지식에, 마음이 이끌린 정조는 마지막으로 이러한 질문을 던졌다. “이 세상에서 제일 높은 고개가 무엇인가?” 라고 물었다. 읍(고개를 숙이고)하고 있던 규수들은 저마다 높은 고개의 이름을 거명하며 왕의 질문에 답을 내놓았다. 이윽고 정순왕후의 차례가 되어 영조가 물으니 “보릿고개야 말로 세상에서는 가장 넘기가 어려운, 가장 높고도 높은 고개인줄로 아뢰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그 외에도 아버지의 이름이 적힌 방석위에 “어찌 여식의 몸으로 무례히 앉을 수 있으리오”하고 거절하며 끝내 아버지 이름이 적힌 방석위에 앉지를 않았다고 한다.

보릿고개, 이것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배고프고 허기진 평민들에게는 참으로 높고 넘어가기가 힘든 고개였나 보다. 옛날 나의 어린 시절 역시 가난하고 배고픈, 기아와 굶주림에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하던 시대였다. 그때 그 시절, 우리들은 그렇게 배가 고팠다. 쌀이 주식이었지만 가난한 백성들에게는 쌀밥(이밥)은 부자들의 주식이고 명절이나 제사때 또는 잔칫상에서만 먹을 수 있는 고급 음식이었다.

그 대신 대체의 주식으로 보리가 가난한 농민과 백성들에게는 더욱 가까운 주식이고 양식이었다. 이 보리는 수천년간을 이어온 우리 민족의 먹거리였다. 그만큼 보리는 우리조상의 숨결과 숨결로 이어져 우리나라의 역사와 삶의 이야기, 그 가장자리에 있었다.

이렇게 보리는 질곡의 삶과 가난의 상징이었다. 우리네 조상들은 그 가난을 물리도록 먹었으니 자식들에게만은 꽁보리밥을 먹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세월이 가고 시대가 변하다보니 그렇게 세대간에 꽁보리밥의 추억도 사라져갔다. 국민학교(초등학교) 수업을 마치고 먼지 나는 신작로 길을 검정고무신을 신고 몽당연필이 들은 필통과 책보를 어깨에 질끈 빗대어 동여매고 딸랑딸랑 소리를 내며 집으로 뛰어와 뱃속이 허전하여 간식거리를 찾을라치면, 항상 부엌에는 대롱대롱 둥그런 대나무 채반 안에 엄마가 넣어두었던 보리밥이 담겨져 있었다. 장독대에서 퍼온 된장, 고추장에다 텃밭에서 뜯어온 상추나 쑥갓, 고추, 오이, 깻잎 등의 푸성귀를 대충 대충 잘라 넣고 보리밥과 비벼먹던 그 밥은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이었다. 이렇게 허기진 배를 채우며 가난속에 쌀밥이 먹고 싶어 꿈속에 그리며 소년시절을 보냈던 그 시절, 그런 보리밥은 이후 2000년대를 넘어서며 웰빙 바람에 힘입어 다시금 황제 밥상이 되어 우리들의 밥상으로 되돌아왔다. 옛날 허기진 배를 채우고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먹었던 그 보리밥이 이제는 건강식이 되어 부자들이나 호사가들의 밥상에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옛날 그 시절, 그나마 보리밥도 없어서 먹지 못했던 그 보리밥, 보리가 익어서 밥을 지어 먹으려면 한달 이상은 족히 기다려야만 했던 배고프고 굶주렸던 보릿고개의 그 시절의 옛날에 비교해본다면 정말로 꿈같이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들이다.

과거 한국에서는 기후 때문에 동남아와는 달리 쌀을 1년에 한번밖에 수확하지 못했다. 따라서 가을에 쌀을 수확하여 비축한 뒤 소비하는데, 봄철이 되면 쌀이 모두 떨어지게 된다. 그걸 대비하기 위해 쌀을 수확한 자리에, 어느 논에는 밭작물인 보리를 심는데 이 보리는 여름철(5월하순~6월초순)이 되어야 수확할 수 있다. 따라서 봄철에는 쌀이 없다보니 먹을 것이 없어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은 끼니꺼리가 없어 밥을 굶게 된다. 이렇듯 이 기간을 보리가 수확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마치 높은 고개를 넘듯이 너무나 힘이 들다 해서 “보릿고개”라고 하였다. 물론 지금은 그 말이 사라진지 오래됐지만, 이 보릿고개라는 말은 현재도 식량사정이 좋지 않은 북한, 김정은의 정권에 서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날 한국의 대중가요 가수 진성씨가 부른 “보릿고개”라는 노래가사를 참고로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다.

<그 시절을 어찌 사셨소. 초근목피에 그 시절 바람결에 지워져 갈 때. 어머님 설움 잊고 살았던 한 많은 보리고개여. 풀피리 꺾어 불던 슬픈 곡조는 어머님의 한숨이었소. 아야 우지마라 배 꺼질라. 기슴 시린 보릿고갯길. 주린배 잡고 물 한바가지 배 채우시던. 그 시절을 어찌 사셨소. 초근목피 그 시절 바람결에 지워져 갈 때. 어머님 설움 잊고 살았던 한많은 보릿고개여. 풀피리 꺾어 불던 슬픈 곡조는. 어머님 한숨이었소 어머님의 통곡이었소>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재배되고 있는 보리는 그 역사가 1만년이나 된다고 하지만, 우리 민족에게도 보리는 쌀 다음의 주곡으로 긴 세월동안 애환을 같이 해왔다. 이제는 옛 이야기가 되었지만 늦봄 춘궁기 보릿고개는 우리조상들이 운명처럼 겪어야했던 인고의 잔혹사, 바로 그것이었다. 해마다 이때가 되면 양식이 바닥나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일이 다반사였기에 ‘봄이 왔으나 봄이 아니로다’라는 춘래불사춘의 시구(詩句)로 배고픔의 고통을 탄식하곤 했다. 그러나 오늘날 풍요로움을 누리는 젊은 세대들은 보리쌀의 형태조차 알지 못하겠지만, 50대 이상의 노,장층에게 보리는 추억이고 향수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처럼 가난한 서민들의 주곡이었던 보리, 내 고향 들녘에 이맘때는 그린 녹색의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 질펀하게 지평선 위에 끝없이 펼쳐져있던 보리밭은 현대화란 거센 파도에 밀려 이제는 보리밭 그 자리는 아파트 숲으로 변해버렸고 이제는 그러한 모습들은 그림에 서나 볼 수 있을 뿐이다. 온갖 먹거리가 지천을 이루고 쌀이 남아돌아가서 걱정이 되는 세상이 돼버렸다. 그야말로 상전이 벽해(뽕밭이 푸른바다가 되었다. 즉 이뜻은 세상일이 몰라보게 확 달라졌다는 뜻의 사자성어다)라 아니할 수 없다. 찰기가 없어서 후~우 하고 불면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꽁보리밥, 그 밥이라도 실컷 배불리 먹는게 소원이었던 지난날 옛날의 시절을 생각하는 것이 어찌 필자뿐이겠는가…………

보리의 계절에 가난하고 힘들었던 보릿고개 시절을 되돌아보며 아련한 추억속으로 빠져들어 본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추억이 머리와 가슴속에 아직도 남아있으리란 생각이 든다.<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