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 기행문 27>  플리트 베체 국립공원

 

<김명열 기행문 27>  플리트 베체 국립공원

1 폴리트비체 국립공원

이 공원은 크로아티아 국립공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수많은 폭포로 연결된 16개의 크고 작은 호수로도 유명하다. 원시림같이 우거진 숲사이로 가지각색의 호수와 계곡, 폭포가 조화되어 천연적인 모습 그대로의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프리트비체 국립공원은 자그레브와 자다르, 두 도시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국립공원이다. 약 19.5헥타르에 해당되는 면적의 숲으로 이루어진 이 공원은 1979년에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보존을 위해 내부의 모든 인도교, 쓰레기통, 안내표지판 등을 나무로 만들었고, 수영, 취사, 채집, 낚시가 금지되어 있으며 애완동물의 출입도 막고 있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은 그 크기가 매우 커서 구석구석을 자세히 보려면 3일정도가 소요되는 공원이다. 하지만 근처의 대도시 자다르나 자그레브에서 하룻 동안 들러서 보아도 그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봄철에는 풍부한 수량의 폭포의 웅장함을 볼 수 있고, 여름철에는 녹음이 우거진 울창한 숲의 조화가 가장 신비로운 장관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류 부분에 위치한 호수와 계곡들은 그 크기가 조금 더 작고 얕으며, 나무도 작아 아기자기한 느낌을 준다. 프리트비체 국립공원의 대부분의 물은 Bijela와 Crna(흰것과 검다는것을 뜻한다) 강으로부터 흘러 들어오며, 모든 물줄기는 Sastavici 폭포 근처에 있는 Korana강으로 흘러나간다.

공원 내부의 방대한 량의 물은 물에 포함된 광물, 무기물과 유기물의 종류와 량에 따라 하늘색, 밝은 초록색, 진한 파란색, 또는 회색을 띄기도 한다. 물의 색깔은 날씨에 따라서도 달라지는데, 비가 오면 땅의 흙이 일어나 탁한 색을 띄기도 하고 맑은 날씨에는 햇살에 의해 반짝거리고 투명한 물빛이 연출되기도 한다.

2 자그레브

자그레브(Zagreb)는 유명한 관광지는 없어도 크로티아의 수도이며 관문역할을 하는 곳이다. 자그레브 시내는 사실상 볼거리가 많지 않기 때문에 약 4시간정도면 대부분의 관광지를 둘러볼 수 있다. 주요 명소는 엘라치챠 광장 주변과 그 북쪽에 포진해 있다.

자그레브 여행의 중심지인 엘라치챠 광장은 세계 2차 대전이후 공산주의 권력에 의해 “공화국 광장”이라 불리다가 크로아티아가 유고연방에서 분리된 후에 지금의 이름을 되찾았다. 엘리치챠 광장 중앙의 기마상은 1848년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침입을 물리친 전쟁영웅 엘라치챠를 기리는 것이다. 크로아티아를 상징하는 타일 모자이크 지붕의 성 마르크 성당(Crkva Sv. Marka)도 자그레브에서 잘 알려진 곳이다. 성 마르크 성당은 14~15세기에 걸쳐 건축된 고딕 양식의 성당이다. 성당주변에 크로아티아 국회와 관공서들이 있어서 주변에 경찰과 돌라치(Dolac)와 시내 어디서든 눈에띄는 2개의 철탑을 자랑하는 자그레브 대 성당을 들려 볼만 하다.

우리들 여행객 일행은 자그레부 시내의 대성당, 성 마르크교회 와 반 에라치챠 광장을 구경하고 호텔에 투숙했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우리들 일행은 헝가리의 고도(옛 도시)인 부다페스트로 이동했다.

3 헝가리

헝가리는 중앙 유럽에 있는 내륙국이며 수도는 부다페스트이다. 서쪽과 북쪽으로는 오스트리아, 북쪽으로는 슬로바키아, 북동쪽으로는 우크라이나, 동쪽과 남쪽으로는 루마니아, 남쪽으로는 세르비아, 남서쪽으로는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폴란드, 체코슬라바키아와 함께 비셰그라드 그룹의 일원이자 유럽연합의 정회원국이다. 헝가리의 주민은 대부분 우랄족에 속하는 헝가리인이다.

헝가리 국가의 근대사를 간단히 설명을 드리자면, 헝가리는 나치 독일주도의 추축국에 가담하면서 뮌헨협정(1938년), 빈 중재(1938년 및 1940년)를 통해 루마니아로부터 북서부를 할양받았고, 슬로바키아~헝가리 전쟁(1939년)등으로 슬로바키아의 국경지역 일부를 합병하였다. 헝가리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잃은 땅을 회복하기 위해 또한 나치 독일의 압박을 받아, 추축국에 가담하여 유고슬라비아 왕국을 공격해 현재의 슬로베니아 일부를 지역과 세르비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전역을 합병, 대국이 되었다. 그러나 전세가 불리해지자 1944년 헝가리왕국의 마지막 섭정왕, 미클로시 호르티는 추축국으로부터 이탈하려고 하였으나 아돌프 히틀러의 도움을 받은 살러시 페렌츠가 이끄는 화살 십자당의 헝가리를 장악함으로써 이탈은 저지되었다. 결국 헝가리는 1945년 5월8일의 패전까지 추축국으로서 전쟁을 치루고 부다페스트 포위전으로 연합국으로 돌아서게 된다.

종전후 1946년 2월1일에 군주제가 폐지되고 헝가리 왕국은 명실공이 붕괴되었다. 파리조약(1947년)에 따라 전쟁으로 얻은 영토를 모두 잃었으며 소련에 의해 헝가리 인민공화국이 선포되었다. 소비에트 연방 점령하의 헝가리에서는 1949년 사회주의 공화국을 표방한 헝가리공화국(헝가리 제2공화국)이 성립되었다.

1956년 10월23일 발발한 1956년 헝가리 혁명이후 10월24일 수상으로 임명된 임레 너지는 소련의 간섭에서 벗어나고자 바르샤바 조약기구 탈퇴를 선언했다. 소련군이 개입, 독자노선 추구를 이끈 임레너지를 사형시키고 반공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했다. 하지만 이후 헝가리는 중앙유럽의 민주화를 주도한다. 1980년대 후반이되자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와 함께 공산당(헝가리 사회주의 노동당) 독재의 한계가 드러났다. 1980년대 후반의 헝가리 민주화운동 결과 1989년 5월, 헝가리는 서방측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에 설치되어 있던 철조망인 이른바 “철의 커튼”을 철거하고 국경을 개방하였다. 1989년 10월23일에는 신 헌법의 시행으로 다당제와 대통령제를 기반으로 민주주의 시장 경제를 도입하고 국호를 헝가리공화국으로 변경했다. 이로써 헝가리 인민 공화국은 명실공이 붕괴되었다.

참고로 한국과 헝가리의 관계는 대략 다음과 같다. 한국 문헌에 헝가리라는 나라가 최초로 등장한 것은 조선 후기의 문신 이유원(1814~1888)이라는 사람이 편찬한 임하필기라는 책에서이다. 이 책의 이역죽지사는 동남아와 서구 여러 나라의 지리적 위치나 민족, 토산물 등을 한 시로 읊은 것인데, 그중 헝가리에 대한 시 한편이 있다. 여기서는 “옹가리아” 라고 표기하였다. 이는 헝가리의 영어발음에 거의 근접한 발음의 음역어로서 이유원이 청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귀국할 때 전별 선물로 받은 황청직공도에 나오는 한자 표기와 설명을 그대로 받아 들인것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당시 1892년에 조선과 수교한바 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이 끝난후 1989년 2월에 대한민국과 수교했다.

현재는 남북한 동시 수교국이다. 과거 공산국가로서는 대한민국과 최초로 수교관계를 맺은 나라이기도 하다.이는 북한의 동유럽외교에 치명적 일격을 가한 사건이기도 하다. 북한은 동유럽 외교의 간판이었던 김평일 주 헝가리대사(김정일의 이복동생)를 소환하면서 공관도 대리대사(참사관)로 격하시켰다. 이듬해 7월부터 모든 동유럽권 유학생들의 철수가 단행되었다. 헝가리는 역사적으로 한국과 인연이 많다. 헝가리가 자랑하는 음악가 졸탄 코다이의 첫번째 제자가 안익태이다. 1956년 소련의 간섭에 시민들이 봉기, 5천명가량이 사망하는 모습을 본 충청북도 음성의 한 국민학생(초등학생)이 유엔에 영문편지를 보내 항의를 했는데, 그 학생이 바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다. 이러한 인연으로 반 사무총장은 헝가리 봉기 50주년때 외국인에게 주는 최고훈장인 “자유의 메달”을 받았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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