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 기행문 26>  포스토이나 동굴 및 크로아티아 관광

 

<김명열 기행문 26>  포스토이나 동굴 및 크로아티아 관광

 

다음 일정으로 우리들 일행은 포스토니아로 이동하여 세계에서 두번째로 긴 아름답고 거대한 포스토니아 동굴을 관광했다.

이곳은 가장 경이적이며 자연 그대로의 미술적인 환경을 함께 갖추고있는 천연적인 태고의 신비를 지니고있는 동굴이다.

미국에 살면서 나는 이곳저곳을 많이 여행하고 관광하면서 수없이많은 동굴들을 답사하고 구경했는데, 그러한 동굴 모두가 각기 특색이나 여러가지의 모양을 갖추고 있었지만, 이곳역시 감탄사가 나올 만큼 장엄하고 기괴하며 아름답기까지 하다.

슬로베니아는 11000개 이상의 동굴이 있다. 그중에 포스토니아동굴은 보관상태가 좋기로 유명하다. 이러한 유명세를 타고 개방된지 2백여년만에 약 3600만여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슬로베니아 남서쪽 포스토니아 지방의 피브카(Pivka)강에 의해 만들어진 길이 24,120m의 카르스트 동굴이며 그중 5Km가량만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규모나 천태망상으로 만들어진 형상들을 보노라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야말로 지하궁전이다. 커다란 지상의 국립공원을 그대로 지하에 옮겨놓은 것 같이 규모 또한 어마어마하다.

처음에는 보도 여행만이 가능했지만 1872년에 철로가 부설되었다. 황족의 방문에 맞춰 사람이 밀어 움직이는 수동식 트레일러가 처음 철로위에 등장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점령군인 독일군에 의해 1000배럴 정도의 항공연료가 이 동굴에 저장됐다가 슬로베니아 유격대에 의해 폭발됐는데 불길이 일주일간이나 계속됐다. 그때 동굴의 입구도 검게 그슬렸고 내부의 많은 부분이 파괴되는 아픔도 겪었다. 1945년 이후 오염을 일으키는 트레일러의 개솔린 파워를 밧테리 파워로 교체하여 나날이 증가하는 관광객을 수송했다. 1954년에 복선 레일이 가설되었고 4년후엔 콘서트홀에 순환선이 설치됐으며 점차로 증가해가는 관광객을 실어나르고 있다.

별도의 얘기로는 크로아티아 나라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고자 한다.

크로아티아 공화국(Republic Croatia)을 줄여서 크로아티아라고 부른다. 남동 유럽에 속한 나라로 발칸반도의 판노니아 평원의 교차점에 자리 잡고 있다. 수도는 자그레브이다. 동쪽으로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보스니아 헤르체코바나, 서쪽으로 아드리아해, 북쪽으로는 슬로베니아와 헝가리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크로아티아는 유엔, 유럽연합의 가입국이다. 크로아티아는 지중해 연합의 창립회원국이며 2013년 7월1일 유럽연합에 28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국제통화기금에서는 이 나라를 신흥 개발도상국으로 분류하며 세계은행에서는 고소득경제수준으로 본다. 이 나라의 역사를 볼 것 같으면, 신석기시대부터 현재의 크로티아에 사람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8세기에는 흑해, 지중해, 아드리아해, 연안에서 온 고대 그리스인들의 식민도시가 수립되었다. 1세기에는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크로아티아인이 현재의 크로아티아에 온것은 7세기 초의 일이다. 이들은 크로아티아 공국(626년~925년경), 판노니아 공국(9세기)을 세웠다. 925년경에는 트르피미르 비치 왕조 출신의 토미슬라브 공작이 크로아티아의 칭호를 받았다.

중세 크로아티아 왕국은 200여년 가까이 주권을 지켰으며, 페타르 크레시미르 4세와 드미타르 프보니비르 국왕시대에 전성기를 누렸다. 1000년경부터 베네치아 공화국이 아드리아해 연안을 통제하면서 크로티아는 헝가리 왕국과의 동군연합 관계를 수립했다. 868년 크로아티아-헝가리 타협이 체결된 뒤로부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종식되면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부터 독립한 크로아티아는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는 나치독일의 괴뢰정권인 크로아티아 독립국이 수립되기도 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면서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일원이 되었다.

1991년 6월25일에 크로아티아는 독립을 선언해 주권국가가 되었다. 발칸반도 중서부의 아름다운 나라 크로아티아, 아드리아해 남쪽 연안에 자리한 지중해성 기후의 국가로 비교적 날씨가 따듯한데다 동유럽 특유의 낭만적 정취에 힘입어 자유여행, 허니문 등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지역이다.

우리 관광객 일행들이 크로아티아를 방분하는 날은 마침 크로아티아와 영국이 월드컵 쟁탈전으로 8강의 대열을 놓고 대전을 하는 날이었다. 우리를 태운 관광버스가 크로아티아 국경검문소에 도착했을 때, 이곳 검문소는 때 아니게 시끌법적하며 검문소 직원인 듯 한 남여 직원들이 분주히 생수의 물병을 들고 그곳을 통과하는 차랑들마다 승객들에게 물병을 선물해주고 있었다. 잠시 국경 검문을 받기위해 갓길에 멈춰 서있는 관광버스를 향해 20대의 젊은 미모의 아가씨 2명이 물병을 양손에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그 뒤에는 건장한 30대의 남자 한명이 20여병이 들어있는 물병 케이스(박스)를 들고 따라오고 있었다. 그들이 버스에 가까이 와서는 물병을 건네주며 크로아티아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미소 띈 얼굴로 인사를 하며 반긴다. 당신들은 이곳을 통과하는 모든 차량과 승객들에게 이렇게 모두에게 물을 주느냐고 묻자, 그것이 아니란다. 오늘은 특별한 날, 자국 크로아티아와 영국이 월드컵 8강전을 놓고 오늘 저녁 대전을 벌인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의 나라 크로아티아가 승리하기를 바라는 염원에서 응원을 해달라는 뜻으로, 그리고 함께 즐기며 응원전을 펼치자는 의미로 식수병을 선물해준다고 했다. 물병을 받아든 우리 모두는 함성을 지르며 크로아티아 승리를 외쳐 주었다. 서로가 두손을 번쩍 치켜들며 승리를 염원했다. 사실인즉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영국이 이기건, 크로아티아가 이기건 별로 크게 상관을 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묘하다. 국경검문소 직원들이 선물한 물병을 받아든 그 순간 이후로는 참으로 묘하게도 나는 영국을 제치고 크로아티아가 이기기를 마음속으로 염원하며 기도했다. 호텔에 도착하여 보니 거리와 집집마다 사람들은 흥분에 들떠 크로아티아 국기를 들고 나와 펄럭이며 자국의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호텔의 라비에도 승리를 기원하는 프랭카드가 걸려 있었다. 해안가의 중소도시 아름다운 해변의 비치에는 야외 대형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 주위에는 벌써부터 수많은 인파와 군중들이 나와서 함성을 지르며 크로아티아를 외치고 있었다. 그 함성 소리는 호텔방에 앉아 있으며 티비를 보는데도 지장을 줄 정도로 크게 들려왔다. 티비로 중계되는 월드컵 중계방송을 보다보니 어느듯 시간이 되어 게임은 끝나고, 결과는 크로아티아가 3대2로 승리했다.

승리에 도취된 민중들의 함성이 귓청을 울렸다. 거리로 뛰쳐나온 수많은 시민들은 인산인해로 거리를 메웠고, 자동차의 경적은 밤새도록 끝날 줄을 몰랐다. 승리를 만끽하는 환희에 찬 군중들의 함성의 메아리는 내가 묵고 있는 호텔방의 구석구석 까지 울려 퍼졌다.

수만리 이국에서 온 여행객의 노고도 이들의 함성속에 조용히 침몰되어갔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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