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 칼럼>  매화를 그리며……………..

 

<김명열 칼럼>  매화를 그리며……………..

 

이른봄 일찍 다른꽃들보다 먼저 피어나는 매화를 나는 참으로 좋아한다.

나는 그 매화를 볼때마다 항상 말할수없는 놀라운 감정에 휩싸이곤 한다. 왜냐하면 첫째로 그것은 추위를 타지않고 구태여 설한풍을 택해서 피기 때문이고, 둘째로 그것은 그럼으로써 초 지상적(超地上的)인, 비 현세적인 인상을 내 마음속에 던져주기 때문이다. 모든 것들이 얼어붙어서 찬 돌같이 딱딱한 동토속의 엄동설한, 모든 풀과 나무가 아직도 눈을 감고 추위속에 몸을 떨고있을때, 이 추위와 한기를 추위로 여기지 않고 의연하고 꿋꿋하게 언 땅을 뚫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매화, 이는 실로 한때를 앞서서 모든 신산(辛酸=세상살이의 고됨과 쓰라림)을 신산으로 여기지 않는 선구자의 영혼에서 피어오르는 꽃이랄까…………

그 꽃이 청조하고 가향이 넘칠 뿐 아니라 기품과 아취가 비할 곳 없는 것도 선구자적 성격과 상통하거니와 그 인내와 그 패기와 그 신산에서 결과(結果)된 매실(梅實)은 선구자로서의 고충을 흠뻑 상징함이겠고, 말할 수 없이 신선한 맛을 극대화 하고 있는것 마져 선구자다워 흥미롭다. 매화는 겨울이 끝나면서 우리에게 가장먼저 찾아오는 봄 손님이다. 매화의 아름다움에 반한 중국 북송대의 시인 임포는 매화를 아내로 삼아 은둔 생활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런가하면 수필집 “인생예찬”으로 유명한 김진섭은 매화찬(梅花讚)이라는 글에서 매화를 가리켜 ‘조춘만화의 괴’라고 표현했다. 이른 봄에 피는 꽃 가운데 우두머리, 다시말해 “봄꽃의 왕” 이란 뜻이다. 옛날사람들은 매향을 가리켜 아름다운 향기라는 뜻의 ‘가향’이라 부르고, 매향은 귀로 듣는 향기라 표현하기도 했다. 옆에서 바늘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큼 고요하고 정갈한 마음을 가져야만 비로써 그 향기를 맡을 수 있다는 뜻이다. 매화의 꿋꿋함과 의연함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은 아마도 세한삼우(歲寒三友)가 아닐가 싶다. 찬바람을 이기고 마침내 새순과 꽃을 피우는 세벗, 여기에서 말하는 찬바람은 단지 날씨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터, 세상을 살면서 부닥치게 되는 온갖 고난과 역경을 의미한다. 우리의 선인들은 혹한을 꿋꿋하게 이겨내는 세벗, 즉 소나무, 대나무, 매화를 보며 삶의 지혜와 교훈을 얻었던 것이다. 옛 선인들이 앞을 다퉈 극찬했던 매화, 아쉽게도 그림이나 글, 사진속에서 말한 그런 근사한 매화를 만날 수 있는 곳은 그렇게 많지 않다. 고즈넉한 산사(山寺)나 선인들의 체취가 담긴 특별한 공간에나 가야 어렵사리 조우할 수 있다. 그것도 꽃이 피는 시기를 잘 맞추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일찍이 소동파가 “해마다 봄이 가는 것을 서러워하지만, 봄은 그 서러움을 용납하지 않고 떠난다”라고 말했듯, 매화역시 오는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일들이 그렇듯 남보다 부지런해야 매화도 보고 매향(梅香)도 느낄 수 있다.

매화꽃의 꽃말은 고결한마음, 인내, 정조, 청결 그리고 충실이라고 한다. 매화는 춥게 살드라도 그 향기를 팔아 안락함을 구하지 않는다는 아름다운 말처럼, 다섯장의 청결한 꽃잎으로 피었다가 지고 마는 모습이 아름다운 연인의 모습과 흡사하다하여 옛 문헌에는 젊은 여인에 비유되곤 했다. 이를 두고 세한삼우라고도 했지 않았던가. 벚꽃을 닮았으나 그리 야단스럽지 아

니하고, 배꽃을 닮았으나 그리 청상스럽지 않으며, 군자의 자태를 연상시키는 격조가 돋보이는 꽃이다. 매화는 중국이 원산지이며 약 3천년전부터 “신농본초경”에 기록이 되어있고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인 고구려 초기부터 약초로 사용하였으며 종류로는 흰매, 능수매, 만첩홍매로 나누어지나 분홍매가 가장 많다.

오래전 옛날 내가 이곳 미국에 이민오기전의 젊은 시절, 나는 그때도 여행을 좋아하여 한국땅의 이곳저곳을 많이 여행했다.

따스한 봄빛이 만물을 소생시키는 이른봄 3월이 되면 나는 가끔씩 아름다운 매화꽃을 피워 자태를 뽐내고 있는 강원도 강릉의 오죽헌이나 전라남도 구례의 화엄사를 찾기도 했다. 먼저의 이야기로 강릉 오죽헌의 율곡매(栗谷梅)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매화나무는 오죽헌이 들어설 당시인 1400년경에 같이 심어져 그후 신사임당과 율곡선생이 직접 가꾸었다하여 “율곡매”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율곡의 어머니이신 신사임당은 매화를 좋아해 매화를 소재로 한 많은 그림을 그렸고, 딸의 이름을 매창으로 짓기도 했다. 율곡매는 꽃색갈이 연분홍인 홍매 종류로서 지금도 3월20일 전,후로 꽃이 필때는 은은한 향기가 퍼져서 오죽헌을 감돌고 있다고 한다. 율곡매는 다른 매화나무에 비해 훨씬 알이 굵은 매실이 영그는 귀중한 자원으로 학술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현재 천연기념물 제484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두번째 매화나무는 전라남도 구례의 화엄사에서 자생하는 것으로 천연기념물 제485호로 지정되어있다. 이 매화나무는 들매(野梅)로 알려져 있는데 사람이나 동물이 매실을 따먹고 버린 씨앗이 터서 자라난 나무로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이 야생매화는 재배하는 매화보다 꽃과 열매는 작지만, 꽃의 향기는 더 강한 특징으로 인하여 학술적인 가치가 크다. 또 화엄사 길상암 앞 급경사의 대나무 숲에 매화나무가 4그루가 자생하고 있었으나 그중에 3그루는 죽고 오직 이것 한그루만 남아있기에 더욱 잘 보호되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매화도 피고 만물이 생동하며 꽃피는 춘삼월의 따듯한 봄이 찾아왔건만, 한국 내조국 우리나라의 서민경제는 여전히 어렵고 차거운 겨울 속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국 곳곳에서 직장을 잃거나 문을 닫은 중소기업자들이 길거리를 떠돌며, 그들의 가슴속은 아직도 차거운 겨울바람 설한풍속의 추위속에 움추려 떨고 있다. 수없이 많은 실업자는 물론이며 따듯한 보금자리를 갖지 못한 독거노인들의 등짝은 차겁기 만 하다. 실직한 가장들과 어려운 살림살이에 희미한 웃음조차 잃고 사는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 내 형제 자매 이웃들에게 따듯한 봄을 맞아 꽃소식과 함께 좋은 일들이 피어나 모두가 살기 좋은 사회가 되고, 국민들 모두에게 아름다운 매화가 무더기로 활짝 피워주기를 기대하며 간절히 소망한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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