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렬 유럽여행 기행문 / 18회>  참혹했던 세계 제2차 대전

<김명렬 유럽여행 기행문 / 18회>  참혹했던 세계 제2차 대전

 

이 세상에서 전쟁이 없는 세상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특히 2차 세계대전만 없었더라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참혹하고 불쌍하게 세상을 떠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쟁은 평화를 파괴하는 주범이며, 인류에게 불행을 안겨주는 씨앗이다. 그러한 전쟁이 아직도 세상에는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으니, 아마도 인류가 존재하는 한 이 전쟁은 우리의 사전에서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는 인류역사상 가장 큰 상처와 인명살상을 초래한 세계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하여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다.

제2차 세계대전은 1939년 9월1일부터 1945년 9월2일까지 치러진, 인류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남긴 가장 파괴적인 전쟁이다. 통상적으로 본다면, 전쟁이 시작된 때는 1939년 9월1일 새벽 4시45분 아돌프 히틀러가 다스리는 나치 독일군이 폴란드의 서쪽 국경을 침공하고,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 연합군이 1939년 9월17일 폴란드의 동쪽 국경을 침공한때로 본다. 그러나 또 다른 편에서는 1937년 7월7일 일본의 중화민국침략, 1939년 3월 나치 독일군이 프라하 진주 등을 개전일로 보기도 한다. 1945년 8월6일과 8월29일, 일본의 히로시마 시와 나가사끼에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이후 8월15일 일본제국이 무조건 항복하면서 사실상 끝이 났으며, 일본이 항복문서에 서명한 9월2일에 공식적으로 끝이 났다. 이 결과로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식민지로 남아있던 지역들이 독립하거나 모국으로 복귀하고, 그 외에도 여러나라들의 식민지가 독립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사자는 약 2500만명이고 민간인 희생자는 약 3천만명에 이른다. 전쟁기간중 일본은 1937년 중국침략때 난징등에서 대 학살을 감행하며 겁탈과 방화를 일삼았고, 수십만명의 난징시민을 무자비하게 학살하였고, 포로 학살 등 여러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 또한 나치 독일은 ‘인종청소’라는 이유로 수백만명 이상의 유태인과 집시를 학살하였다. 미국은 1945년 3월10일 일본의수도 도쿄와 그 주변 수도권 일대를 소이탄으로 대규모로 공격한 이른바 도쿄공습을 감행하여 민간인 15만명을 살상하였고 같은 해 8월6일과 9월에 각각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원자폭탄공격을 감행하여 약 34만명을 살상했으며, 영국공군과 미국 육군항공대는 드레스텐 폭격과 뮌헨공습을 감행하여 각각 20여만명을 살상하는 등 전쟁과는 상관없는 민간인들의 피해도 매우 심각했다.

전쟁은 크게 서부 유럽전선, 지중해전선, 동부유럽전선과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으로 구분할 수있다. 이 외에도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중동, 대서양해역과 인도양해역등 기타 하위전선도 2차세계대전의 전역에 포함된다. 전쟁은 세상에서 없어져야한다. 전쟁이 없는 세상을 평화시대라고 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평화를 유지하기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세계적으로 맺어진 연합국은 공식적으로 1945년 10월24일에 유엔을 생성하고, 1948년 모든 회원국의 공동표준으로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했다. 전쟁의 수혜자인 연합국인 미국, 소련, 영국, 중화민국, 프랑스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이 되었다. 서방연합국과 소련의 관계는 전쟁 후에 급격히 악화되어 전후 유럽은 미국주도의 북대서양조약기구와 소련주도의 바르샤바조약기구의 두 동맹으로 나뉘었으며 긴 기간 동안의 두 세력은 정치적 긴장과 군사적 경쟁은 냉전으로 전례 없는 군비경쟁과 대리전을 치루게 된다. 아시아에서는 미국이 일본 본토와 태평양의 일본이 점령했던 섬을 점령하고, 소련은 사할린섬과 쿠릴열도를 합병했다. 한반도에선 일본의 항복으로 36년간의 일제 강점기가 끝났지만 일본군 무장해제로 인해 미국과 소련이 1945년부터 1948년까지 38선을 경계로 남과 북을 점령하여 분단이 되었다. 역시 미국과 소련의 대립으로 인해 한반도에서도 남과 북으로 갈라지면서 서로 한반도를 통일하겠다고 주장하고, 북한의 김일성은 1950년 6월25일 남한을 기습 남침함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했지만 그가 원하는 적화통일은 실패하였다. 중국에서는 중일전쟁에 따른 국공합작으로 보류됐던 국공내전이 1946년 6월 재 발발하였다. 그 결과 중화인민공화국이 세계사에 등장하며, 동시에 기존 중화민국은 타이완으로 쫓겨 이전하게 되고 양안관계를 형성하면서 분단국가로 남게 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모택동이 통치하고 중화민국은 장개석이 통치하는 양안 관계가 생성된 것이다.

중동에서는, 아랍은 팔레스타인 분할안에 거부하여 제1차 중동전쟁이 발발한다. 유럽의 식민지제국은 식민지를 유지하려 노력하나, 탈 식민지화와 전쟁으로 인해 많은 자원 및 인력의 손실이 발생한다. 참전국가는 다른 영향을 얻었으나 세계적인 경제는 크게 고통 받았다. 미국은 다른 나라보다 훨씬 부유해졌고, 그 후 1950년대 베이비붐이 시작되면서 국내총생산이 증가하여 세계경제를 지배하게 된다. 영국과 미국은 1945년부터 48년까지 산업군축계획을 세웠다. 때문에 유럽의 경제침체는 국제무역의 상호의존과 맞물려 몇 년 동안 회복되었다. 1948년 중반 서독의 화폐개혁과 유럽경제자유화가 가속화되어 유럽 부흥계획이 1948년부터 1951년까지 진행되었으나 1948년 이후 서독의 경제는 라인강의 기적으로 회복되었다. 또한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경제도 회복되었다. 대조적으로 영국의 경제는 파산직전이었으며, 수십년동안 영국경제는 하락세를 보였다. 소련은 전후시대의 엄청난 생산력증가에도 불구하고 매우 큰 인적, 물질적 손실을 입었다. 일본은 고도성장을 경험하며 1980년대에 가장 큰 경기침체 중 하나가된다. 중국은 1952년에 전쟁전 산업생산량이 복구되었다. 한국은 해방 후 과도기와 침체기를 이어가는 암울한 시대를 맞아 경제적인 폐해가 이만저만이 아닌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로 전락하고 만다. 그러나 1961년 박정희가 이끄는 군사정변 이후론 그가 대통령이 된 후 새마을운동과 더불어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오늘날에는 세계적으로 10위권 안에 드는 경제대국이 되었다.

세계적으로 그가 일궈낸 업적을 역사는 높이 평가하지만, 유독 현재에 들어서 문재인 정부는 그의 이러한 국가의 부흥과 경제발전을 의도적으로 폄하하고 왜곡하면서 북한의 김정은에게 한국의 부를 나눠주고 있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148>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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