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아직도 내 남편은 운전교관 중?,,,,”

<독자투고> “아직도 내 남편은 운전교관 중?,,,,”

 

남편은 중학교 2학년때에 집에 자가용(Jeep 차)이 있어서 부모님 몰래 겁도 없이 차를 몰고 나갔다가 나무를 들이박아 사고를 냈단다. 물론 면허도 없고, 사춘기에 호기심으로 큰일 날 뻔 했단다. 그후로 남편은 결혼이후에도 한번도 사고가 없는 무사고 운전자였다. 운전대에 앉으면 졸음도 사라지고, 그렇게 마음이 편하단다. 한국에 있을때에도 사업을 해서 그 당시만 해도 자가용이 드물어 우린 무척 자랑스러웠다. 미국에 온지 30여년이 훌쩍 넘었는데, 몸이 아프고 나서는 운전을 할 수 없게 되자 웬지 아쉽고 허전해 했는데 당시 내가 생각만 해도 정말 측은한 감정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운전을 하면 옆자리에 앉아서 잔소리가 심했다.

나는 미국에 온 후 5개월이 지나 운전면허증을 따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이왕에 미국에 왔으니, 영어로 시험을 보고 싶어 한달을 공부하고 좋은 점수로 1차 시험을 통과해 퍼밋을 받았다. 실기연습은 인근의 학교 운동장에서 남편에게 배웠는데 당시 남편은 소리지르며 막대기를 흔들고 “잘한다 잘해”, 핸들을 돌릴때면 “한대치고 음… 두 대치고,,,” 그럴 때마다 막대기로 ”딱“ 때려 무섭고 떨리고 겁이 났다. 운전중 사고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으니 먼저 Wife(부인)의 생명을 위해서 그러겠지 했지만 너무 큰소리로 야단쳐 도저히 배울수가 없었다. 처음 3~4일 배우다가 “나 못해, 당신한테 운전 못배워”, “나도 너 못 가르켜, 넌 운전 생전 못할 거야”라고 위협까지도 했다. 부부가 운전을 배우다 이혼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운전을 못하면 바보 취급당하고 또 이곳에서는 “발”이기에 꼭 배워야 했다. 그래서 자동차 학원에 등록을 했다. 생각이 난다. 오래전 시카고 면허 시험장에 가서 시험 볼 때가…… 먼저 Seat Belt를 하고 기도를 드렸다. 이쪽 저쪽 코스(Course)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주차(Parking)를 잘하면 된다. 교관이 “Pass”하자,, 어휴, 천군만마를 얻은 듯 기분이 최고였다. 그때의 그 감격, 기쁨은 잊을 수가 없다. 그 후에 경미한 접촉 사고, 상대방의 실수등 사고가 있었다. 그후로 남편이 아프기 시작하며 나는 완전히 남편의 운전기사가 되어 가자는 대로 항상 모시고 다녔다.

그런데 차를 탈 때마다 문제가 생긴다. “Start”를 천천히 해라. 빨리 끼어 들어가라, 천천히 가라. 밟아라, 커브돌때에 크게 돌아라, 차선을 바꿔라” 도무지 내가 숨을 쉴 수가 없다. 하도 스트레스(Stress)를 받아서 시누이 내외한테 예기했더니, 그럴때마다 “환자(?)”를 내려놓고 가란다. 그리고는 가차 없이 오빠를 야단쳤다.

운전자에게 맡기고 지켜보면서 조용히 가면 되는데, 또 자기가 좋아하는 옆 길로 가잔다. 난 큰길, 불빛이 환한 대로가 좋은데, 너무 힘들어서 속이 뒤집어 질것 같았다.

“여보! 제발 잔소리좀 그만해!. 내가 알아서 운전할게” 나는 안전을 위해 교통법규는 물론 운전도 절대적으로 안전하게 한다. 더불어 하지만 환자를 태우고 다니기 때문에,,,,

“여보!. 1분 먼저 가려다 50년 먼저 간대. 뭐가 급해서 빨리 가려고해. 운전자 나이도 있고 차도 오래됐는데“. 남편은 성화다. ‘사고나면 어떻게 되는 줄 아세요?. 당신 Ride(운전사)도 못해주고 병원에도 못가고 제발 잔소리 좀 고만해요.’ 나는 투덜거리며 한숨을 내쉰다.

남편은 얼마나 운전을 하고 싶었을까?. 건강할 때는 올랜도에서 뉴욕, 시카고를 두 번씩 왔다갔다한 Veteran(경력있는 최상급) 1등 운전자였는데,,,, 얼마나 답답했을까? 나는 이해한다. 그 심정을, 그래서 꾹 참는다. 그런데 그 야단치던 남편은 3년전에 하늘나라로 갔다. 5년이 넘도록 투석을 하고 Pacemaker(맥박제동장치)까지 하며 심장병을 앓다가, 우리 곁을 떠났다. 지금도 내 남편은 아직도 내 옆자리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 같다. 보고 싶다. 그 잔소리가 마냥 그리워진다. ”여보! 지금 보고 있지? 나 씩씩하게 잘 살고 있어…. 이제 맘놓고 편히 쉬세요. 그동안 고마웠어요. 운전대 앞의 사진속에서 남편이 웃으며 수호해준다. 50년도 못 채우고 간 사랑했던, 그 사람이다. <올랜도 독자 권영자>    1144/2018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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