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렬 유럽여행 기행문 / 13회>

 

<김명렬 유럽여행 기행문 / 13회>

이전까지는 중점적으로 독일의 각종 풍습과 문화, 역사, 정치, 사회생활속의 먹거리문화, 맥주 이야기 등등을 망라하여 일반적인 상식과 정보를 함께하며 재미있고 흥미롭게 글을 써 올렸다. 아울러 유럽연합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을 드렸다. 이번주에는 여행을 하면서 보고 느낀 점들을 써 올려드리도록 하겠다.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하여 여행사 안내직원의 인솔하에 우리는 먼저 현지에 있는 한국 음식점에 들러서 점심식사를 했다. 모든 물자를 풍부하고 여유 있게 쓰고 있는 미국에 있다가 여행차 그곳 독일에 도착하여보니 인심이나 각종 물품들이 넉넉하고 여유롭게 사용을 할 수가 없었다. 제일먼저 피부로 직접 느끼게 된것은 물(음료수)이었다. 4명이 앉아있는 식탁 테이블에 1리터짜리 물병이 하나씩 제공되었는데, 무더운 날씨에 갈증이나 물을 컵에다 따라 벌컥벌컥 몇 모금 마시고나니 금새 컵이 비어서 다시 부어서 마시다보니 이내 물병은 빈병이 되었다. 마시는 물은 당연히 서비스로 손님들에게 제공되는 걸로 알고 한병을 더 주문을 하니 여종업원이 하는 말 ‘기본적으로 드린 물병 외에 추가로 주문을 하시면 유로 2달러를 더 내셔야합니다’라고 말을 건넨다. 여름이 짧은 독일에서는 옛날에 지은 건물들은 에어컨 시설이 제대로 안되어 있어서 그야말로 식당안은 열기로 가득차서 무척이나 더웠다. 땀은 줄줄 흐르고, 시원한 물이라도 실컷 마셨으면 좋으련만 그것도 맘 내키는 대로 먹을 수가 없으니 할 수 없이 사서 마실 수 밖에 없었다. 물 인심치고 너무나 야박하다. 음식맛 역시 한번만으로 다녀가는 단체로 온 손님들이라서 그런지, 상차림부터 부실하고 맛 역시 별로다. 그러나 오랜 비행시간 끝에 대하는 한국음식이니 그나마도 감지덕지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을 수밖에 없었다. 이곳 미국에서 사먹는 한국음식보다는 맛이 많이 부족하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했던가. 그런대로 밥 한공기를 뚝딱 찌개 국물에 말아서 먹고 나니 기운이 생겨난다. 점심을 먹고 나서 우리들 일행은 첫 여행지인 로덴부르크로 향했다.

중세의 보석이라고 불리는 로덴부르크에 들러 우리는 마르크트 광장과 시청사, 로덴부르크 구 시가지의 중세의 모습이 잘 간직된 거리의 모습을 구경했다. 로덴부르크(Rothenburg)는 독일 바이에른 주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이 도시의 본래 이름은 Rothenburg ob der Tauber(타우버강 위의 로덴부르크)를 줄인 지명이다. 프랑크 왕국시대인 9세기에 처음으로 도시의 존재가 기록되었고 신성로마제국시대에는 자유도시로 지정되어 교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17세기 독일을 뒤흔든 30년전쟁에 휩쓸리기도 하였으나 ‘능력자의 출현’덕분에 용케도 참화의 피해에서 모면하여 오늘날까지 옛도시의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1631년 10월 카톨릭군의 지휘관 틸리 백작이 로덴부르크를 점령했는데, 그곳에 살던 소년이 그 지역의 와인을 권했고 그 와인(포도주)맛에 감탄한 백작이 큰잔(3.2리터)에 부은 와인을 원샷(한숨에 다 마시는것) 하는 능력자가 있으면 도시의 약탈과 파괴를 하지 않겠노라고 선언했다.

이에 당시 시장이었던 누쉬(Nusch)가 나서서 그 큰잔의 와인을 단숨에 벌컥벌컥 마시고 잔을 비웠다. 그 덕분에 시장은 며칠동안 와인에 취해 깊은 잠에 골아 떨어지게 되었다. 아무튼 시를 약탈하려던 야망에 부풀어있던 틸리군대는 시를 점령하지 못하고 철수했다. 그 덕택에 로덴부르크에 남아있는 중세의 역사 유적들은 그대로 보존되어 남을 수 있었다. 어쨋든 옛날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시가지와 마르크트 광장, 시청사, 성곽 등의 옛 모습을 우리 관광객 일행들은 가이드 최은영씨의 자세한 설명과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재미있고 유익하며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들으며 시내와 성곽내의 곳곳을 흥미롭게 둘러볼 수 있었다. 이 도시는 이렇게 옛모습의 풍경을 그대로 간직한 덕분에 19세기 말쯤에는 그 전통적인 모습이 유럽의 전역에 알려져 관광업이 흥행을 이루게 된다. 문제는 이런 모습들이 나치에게도 주목을 받아서, 나치 독일시대에는 나치에 의해 가장 독일적인 도시의 전형으로 선정되고 이상적인 나치 공동체를 세우려는 운동이 벌어져서 독일 전국에서 로덴부르크 관광 상품이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유대인들은 일찌감치 이 도시에서 추방되기도 했다. 그래도 결국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로덴부르크는 살아남았다. 독일본토로 연합군이 상륙하고 독일의 패배가 눈앞으로 다가오던 전쟁말기, 로덴부르크에는 당연히 독일군이 주둔하고 있었고 전투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미국의 전쟁부장관인 존 맥클로이는 로덴부르크의 역사적인 가치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군 사령관에게 독일방위군과의 전투에 앞서 먼저 협상을 하도록 하였다. 협상의 내용은 방어와 후퇴중 양자만에 하나를 택일하도록 결정권을 주었다. 결국 독일의 방위군은 후퇴를 선택했고 로덴부르크는 파괴를 면할 수가 있었다. 비록 피해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어서 폭격으로 수십명이

사망하고 건물 수백채가 파괴되기도 했으나 다른 많은 도시들이 완전히 박살난 것에 비하면 피해가 매우 적어서 전쟁 후 빠른속도로 도시가 복구되고 현재에 이르렀다.

로덴부르크 시내 관광을 마친 후 우리들 일행은 일찌감치 호텔에 들러 여장을 풀었다. 푸짐하고 맛있는 호텔의 음식을 저녁과 아침식사로 들고 우리들 일행은 다음날 아침 일찍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 뮌헨으로 향했다. 로덴부르크에서 뮌헨까지는 약 3시간정도가 소요되었다. 뮌헨에 들러서는 시의 중심가인 마리엔 광장과 청탑이 인상적인 프라우엔 교회(Frauen Kirche, 성모교회) 등등을 둘러보았다. 뮌헨이란 도시명의 유래는 옛 고산지대, 독일어로 수도자들의 공간(forum apud Munichen=현대 독일어로치면 bei den monchen)이라는 뜻에서 유래하였다. 이 도시를 건립한 사람들은 베네딕토회 수도자들이다. 그에 따라 뮌헨의 휘장에는 수도자그림이 새져져 있다. 뮌헨의 시 고유색은 신성로마제국을 상징하는 흑색과 금색으로, 루트비히 4세 시절부터 채택하고 있다. 안정적인 경제와 사회제도, 낮은 범죄율 덕분에 살기좋은도시, 삶의 질이 높은 도시 순위에서 늘 상위권을 차지한다. 독일에서 인구 1인당 소득이 가장높은 대 도시이자 주택임대료가 비싼 도시로 꼽힌다. BMW(자동차), 지멘스(전자), MAN(상용차), 오스람(전기), 로데&슈바어츠(전기), 린데(가스) 등 독일을 대표하는 제조기업들의 본사가 소재하고 있고, 알리안츠(보험), 뮤닉 리(보험)등 보험회사들의 본사도 소재하고 있어 프랑크푸르트에 이어 독일 제2의 금융도시이자 보험산업의 중심지로 꼽힌다. 이 고장은 나치즘의 본 고장으로 현재도 극우정당 지지세가 있는 곳이다. 특히 뉘른베르크와 뮌헨은 히틀러와 나치세력의 발원지이기도 했다. 1938년에는 히틀러의 침략야욕을 늦추기 위해 동서유럽 국가들이 체코슬라바키아를 공중분해 시켰으나 결국 1년뒤 전 세계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인류역사상 최악의 협정으로 평가받는 뮌헨협정이 이루어진 곳이기도 하다. 특히 뮌헨에는 홀로코스트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다 하우 수용소도 근방에 있으며, 옛 나치당사도 있다. 현재는 대부분 형태로 보존되어 옛 역사를 반성하는 의미의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1958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이 희생된 뮌헨 비행기 참사와 검은 9월단의 테러로 이스라엘선수들이 사망한 72년 뮌헨올림픽 참사역시 이곳에서 일어났다. 2016년 7월22일에는 이란계 테러리스트가 시내 대형 쇼핑센터에서 총기를 난사하여 최소 9명이 사망한 2016년 독일 뮌헨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났다. 뮌헨시내 중심가에는 마리엔 광장이 있고, 시내 곳곳에는 수백년간 자리를 지켜온 아름다운 건물들을 볼 수 있다. 청탑이 인상적인 프라우엔 교회는 높이가 100미터에 달하며 그 외 잉글리쉬 가든 역시 볼만한 곳이다.

특히 뮌헨하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뮌헨의 옥토버페스트(Octpberfest)를 빼놓을 수 가 없다. 오늘은 이 유명한 옥토버페스트를 소개하여 드리도록 하겠다.

독일의 바이에른 지방의 뮌헨에서 매년 열리는 세계 최대의 맥주축제, 브라질의 리우 카니발과 일본 삿포로의 눈 축제와 더불어서 세계 3대 축제로 불린다. 옥토버페스트는 1810년도에 시작하였고 매년 9월 셋째 토요일부터 10월 첫째주 일요일까지 축제가 열리고 있다. 이후 1883년 뮌헨의 제6대 메이저 맥주회사가 축제를 후원하면서 4월 축제와 함께 독일을 대표하는 국민축제가 되었다. 이 축제기간에만 매년 6백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모여든다고 하니 놀랍기만 하다. 뮌헨의 인구가 130여만명인데, 6명중에 5명은 관광객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축제기간동안 뮌헨에서는 700만 리터 이상의 맥주와 생선이 40여톤, 닭이 70만마리, 소시지가 115만개가 소비된다고 한다.

축제가 열리는 곳은 뮌헨 중앙역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위치해있는 테레지엔비제 광장, 이곳에서는 5천석 이상의 맥주 텐트가 들어서고 놀이공원에서나 볼 수 있는 놀이기구들이 설치된다. 축제장 곳곳에서는 맥주코너가 마련되어있으며 각종 간식거리도 구입할 수 있다. 맥주를 우리가 늘상 마시는 음료수(물)처럼 상용하는 독일인들만의 맥주축제가 오랜 동안 해를 거듭할수록 세계 최대의 맥주 축제로 자리잡아 세계인의 축제가 된 것이다.

<다음주에는 아름다운 나라 오스트리아 방문기를 소개하여 드리도록 하겠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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