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꽃처럼 향기로운 사람

<김명열칼럼> 꽃처럼 향기로운 사람

하늘은 푸르고 곡식은 익어 고개를 숙이며, 추수의 손길을 기다리는 풍요로운10월이 되었다.

플로리다의 가마솥 날씨를 밀어낸 것은, 사나운 폭풍우의 바람도, 먹구름도, 소나기도 아니었다. 지난 몇달동안 내내 습기와 땡볕으로 개운치 않았던 그 지겨웠던 여름을 걷어낸 것은 단지 시간이었다. 한낮, 밖으로 외출을 하려 밖으로 나오면 목구멍까지 뜨겁게 치밀고 쳐 올라 왔던 뜨거운 열기는 이 시간이라는 녀석이 해결해주었다. 그 시간은 기억속에 흐르는 시간도 포함되어있다.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는 지난 9월초 어느날에는 갑자기 장대같은 소낙비가 내렸다. 적어도 숨을 쉴 수 있을 정도의 짧은 단비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고마운 일이었다. 그때 그시간 마지막 여름의 끝자락을 보내면서 나는 시간의 덕을 좀 봤다. ‘시간이 없다’고 늘 습관적으로 되풀이하던 내 의식의 시간속에서 지난 여름 내내 공존하던 무더위와 싸웠던 그 악연의 시간들을 슬그머니 놓아버린 것이다. 실망스러웠던 열기의 상징, 무더위의 시간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내 기억세포를 감염시키던 그 시간들과의 동거도 그렇게 끝이 났다. 이 가을에는 정말로 순수와 진실의 시간을 만들고 싶다. 돌맹이를 들어 집어던지면 쨍그렁하고 소릴내며 깨어질 것 같은 투명하고 짙푸른 가을하늘이 저만치서 나를 보고 손짓을 하고 있다. 고개를 들어 그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니 두둥실 떠가는 구름위에 가을이 나를 데리고 왔다. 이른 아침에 반소매를 긴 소매로, 바꿔 입은 옷 소매속으로 파고드는 햇살이 부담이 없고 따듯한 차 한잔이 그리워진다. 계절의 변화가 없는 듯한 이곳 플로리다에도 어느듯 태양의 빛을 받는 시간들이 많이 줄어들었다.

청춘일때는 청춘인줄 모르고, 젊었을땐 젊은인줄 모르고 지나온 과거가 회한속에 떠 오른다.이제 가을의 중턱에 서서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한켠에 접어두었던 기억을 더듬으며 속절없이 빈 웃음꽃만 피운다. 세상의 모든 인연속에는 향기라는 것이 있다. 냄새가 아닌 향기, 각자가 걸어온 세월만큼의 향기, 그것은 어느날 냄새일 때가 있고 향기로 남을 때 가 있다. 상상밖의 낯선 여행길에서 마주치는 풍경속에서도 어느 때는 그 사람의 향기를 기억한다. 커피 한잔에도, 교회의 종소리에서도, 덜컹거리는 기차의 창가 자리에서도 그렇다. 지나간 시간과 세월이 데려오는 냄새가 아닌 향기, 냄새는 가깝고 향기는 멀다고 생각한 것도 이렇게 하늘이 파랗게만 보이는 뭉개구름 밑에서였다. 가을이 되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는 말이 있다. 이 가을에 나도 시인이 되려나 보다. 가을하늘은 참으로 높고 아름답다. 저 하늘을 “톡톡”하고 두드리면 흰옷을 입은 천사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파란문을 살며시 열고 나올 것 같다. 사람이 이 세상 사는 동안 평생에 좋은일, 선한일, 값어치있는 일을 한 사람은 죽어서 저세상으로 갈때 천사기 마중 나와 하늘나라로 인도하고, 평생 동안 좋은일 한번 안하고 악한일, 남을 괴롭히고, 사기 및 강도, 절도 등의 나쁜일을 한 사람은, 험상궂은 얼굴의 저승사자가 펄펄끓는 지옥의 유황불 구덩이로 그 사람을 끌고 간다고 했는데, 나는 과연 세상에서 얼마나 좋은일, 착한일, 선한 일을 했었던가 생각을 해보니 얼굴이 붉어진다. 꽃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저마다 향기를 낸다. 그러나 거기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꽃의 향기는 타고나지만 사람의 향기는 선택되고 창조되고 새로워진다. 향수도 좋은 방향제이다. 그러나 눈빛과 얼굴, 말씨와 사랑스러운 미소, 그리고 마음과 영혼에서 풍겨 나오는 그 사람 고유의 아름다운 내면의 향기를

따르지는 못한다.

시카고에는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고 있는 친구 한사람이 있다. 그 친구는 매년 10월말이나 11월초에는 근처의 공원에 가서 은행나무에서 떨어진 은행을 주워다가 껍질을 까고, 잘 씻고 닦아서 남들에게 선물로 나눠준다. 특히 내가 모 사회단체의 회장으로 있을때도 늦가을만 되면 은행을 잔뜩 자루에 담아와서 회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하는 착한 사람이다. 2년전 어느 겨울, 추위를 피해서 겨울휴가로 탬파의 나의 집으로 놀러왔을 때, 그는 짐 보따리에서 주섬 주섬 은행이 담긴 꾸러미를 내앞에 풀어놓았다. 귀한 은행을 받는 기쁨도 잠시, 은행에서 풍겨 져나오는 역한 구린내(똥냄새)에 나는 나도 모르게 코를 막을 수밖에 없었다. 고린내가 아닌 은행열매에서 본래부터 나는 이 역겨운 냄새는, 역한 냄새를 풍겨 다른 짐승들의 접근을 꺼리게 하고 열매를 먹지 못하게 하는 종족보호 본능 떄문이라고 한다. 사람도 가까이 하게 되면 냄새를 맡게 된다. 향기로운 냄새든지 썪는 냄새든지, 각각 그 사람의 인격과 신앙의 냄새가 있다.

그런데 멀리서 보면 그럴듯하게 보이던 사람도 가까이 해보니 은행의 열매처럼 역한 냄새를 풍기는 것을 종종 경험하게 된다. 또한 나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 그런 좋지 않은 냄새를 풍기며 살고있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나 자신을 살펴보게 된다.

성경에 보면 사도 바울은,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는, 자기의 희생과 겸손에서 나오는 모든 사람들을 기분 좋고 상쾌하게 하는 냄새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자기 교만과 자랑으로 치장하고 이웃에게 자신의 무엇 하나도 거저 주지 않으려는 이기적인 삶을 산다면 결국 우리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는 고린 냄새만 풍기는 역하고 좋지 못한 사람이 되고야 말 것이다. 하지만 은행열매는 화롯불에 들어가 익혀지면 그 어떤 열매보다 달콤하고 고소한 맛을 낸다. 우리들, 고린내 나는 교만하고 불손한 우리들이 그리스도 예수님의 향기가 되려면 예수님을 내 안에, 내 삶에 모셔 들여 새로운 발효(숙성)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그래서 내 고집과 편견과 교만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모든 사람들에게 달콤한 열매로 그들을 유익케 하는 향기로운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할 것이다.

향기로운 꽃은 향기를 맡는 사람에게 순간의 행복을 주지만, 향기로운 사람은 수많은 사람의 삶을 변화시킨다. 그런데 향기로운 사람을 그리워하는 사람은 많지만 스스로가 향기로운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만큼 향기로운 삶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 힘든 이유일 것이다. 향기로운 사람은 인간사의 희노애락에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않고 주어진 삶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향기로운 사람은 스스로 살신성인(殺身成仁) 하고도 그 댓가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다. 향기로운 사람은 지식, 물질, 정신을 모두 내어주고도 더 내어놓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사람이다. 향기로운 사람은 주고 받는 것에 마음을 쓰지 않지만 그 마음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내미는 손을 뿌리치지 않으며 거두어가는 마음에 서운해하지 않는 사람이다. 가벼운 지식을 조롱하지 않고 자신보다 나은 인품에 기꺼이 고개를 숙이는 사람이다.

향기로운 사람, 그 사람은 누구인가?. 나의눈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내 생각은 무엇을 바라는가?. 내 마음은 어디에 머무는가?. 향기로운 사람은 당신이 아니라 내가 되기를 원해야 한다. 그렇게 노력하고 그 길을 쫓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향기로운 사람이 되는 길에 생을 걸어도 결코 후회를 힐 일은 아니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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