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황혼 이혼

<김명열칼럼> 황혼 이혼

 

한국 사회에서 최근의 실정을 보면 나이들은 부부들의 황혼 이혼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신문지상이나 언론매체에서는 황혼이혼을 심각하게 다루며 점차적으로 부정적인 논설을 펴고 있다.

서울에 살고 있는, 어느 65세된 노년기에 접어든 여자(부인)의 이야기이다. 65세의 나이에, 이젠 더 늙기 전에 황혼이혼을 하기로 남편과 합의했을 때 아내 G씨는 날아갈듯이 기쁘고 행복했다. 그녀에게 이혼이란, 온갖 신경질을 부리며 폭언을 일삼고 경제권도 넘겨주지 않는 남편 곁을 떠나 자유롭게 자기생각과 마음대로 세상을 살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가슴이 벅차오르고 생각만 해도 즐거웠다.

남편은 밖에서 집에 돌아오면 술이 고주망태가 되어 돌아오고, 어느 때는 외박도 종종 하며 가정에 불충실했다. 이러한 불성실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남편을 가까이서 보지 않고 구속받지 않으며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협의 이혼이기에 재산도 서로가 적당한 선에서 나누어가졌다. 자식들은 그 나이에 늙어서 이혼을 해봤자 엄마의 행복은 잠시뿐이라며 “그래도 아빠와 함께 평생을 살으라”고 간청을 했다.

평소에 자식들에게 아빠의 부도덕성과 불성실함, 그리고 악행을 입버릇처럼 일러바칠 때는 자식들이 모두 자기편이 되었는데, 막상 이혼을 하고나니 자식들의 마음과 시선이 싸늘해지고 엄마를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변했다. 오히려 제 아빠를 동정하고 아버지 집에는 한달에 한,두번은 찾아가는데, 자기의 집에는 오라고 오라고 사정 겸 엄포를 놓아야 마지못해 한번정도 왔다가 이내 시간이 없다며 자리를 뜬다. 특히 이혼 후에

는 며느리가 자기를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이웃집 노인 할머니 대하듯 사무적이며, 자기가 살고 있는 집에는 코빼기도 안 보인다.

G씨는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타지에서 공부했고 모두 취업해 독립할 정도로 성장했으므로 부모의 이혼을 쿨하게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인 자신의 편을 들어줄 거라는 기대도 내심 없지 않았다. 하지만 자식들은 부모의 이혼에 큰 충격을 받은 듯 했고, 오히려 이혼을 제기한 어머니를 원망했다. 자식들은 “아빠가 그래도 평생 동안 우리들을 공부시키고 먹여 살리지 않았느냐?” 고 따졌다. 딸은 딸대로 “엄마도 문제예요. 아빠가 자기중심적이어서 엄마에게 잘못한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혼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며 그러한 부모님의 이혼사례를 보고 나중에 자기들도 아무렇지도 않게 이혼을 한다면 그것은 모두가 부모(특히 엄마)에게서 보고 배운 탓이니 원망 말라고 을러댔다.

이러한 실정이 되고 보니 G씨는 지금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후회스럽다. 제일 곤혹스럽고 부담스러운 것은 자식들을 떠나 이웃이나 친구, 지인들이 자기를 대하는 태도다. 전에는 몰랐는데 막상 이혼을 하고 혼자 되고 보니 부부동반 모임에는 아예 불러주지도 않고, 자주 만나던 여자 친구들도 눈에 보이지 않게 자기를 회피하며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점차 거리를 두고 멀리했다. 그러다 보니 더욱 외롭고 자기의 신세가 처량한 신세, 왕따를 당하는 외톨이 신세가 돼버렸다. 자식들에게 당하는 서러움은 그런대로 참을 만 하지만, 남들에게 보이지 않게 외면을 당하고 무시와 왕따를 당하는 서글픔은, 당장이라도 이혼한 남편에게 달려가 잘못을 빌고 버젓이 남편과 함께 그들 앞에 서 보이는 것이 소원이 돼버렸다. 가슴을 치고 후회해본들 소용이 없는 노릇이었다.

남편은 평소에 꽤나 자상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어느 때는 직장에서 남들이 먹으라고 선물해준 음식을 집에 가서 집사람과 같이 먹겠다고 싸들고 오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가끔씩 서로가 의견이 맞지 않아 언쟁을 벌이고 늦게 술 취해 들어오다 보니 비위가 상하고 성질이 나서 참지 못해 그대로 쏘아 붙이고 화풀이를 해댄 것이다. 이제는 이혼을 하고 과거를 돌아다보니 자신의 불행이 남편 탓이라고만 여겼는데,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지고 괴로움이 엄습했다. 그리고 자식들이나 밖에 나가서 남들을 대하기가 두렵고 겁부터 생겨난다.

황혼이혼이라는 단어가 처음 쓰였을 때만 하더라도 이혼사유는 주로 남편의 폭력이나 외도 같은 것이어서 “그 나이에 참고 사시라”는 말을 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요즘 제기되는 황혼이유 사유는 어느 일방의 탓으로 돌리기엔 훨씬 다양하고 복잡해졌다. 앞으로는 더욱 그럴 것이다. 최근 한국의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늙어서 황혼 이혼을 한 남녀 75%이상이 이혼한 것을 후회한다며 “그래도 참고 살았으면 지금보다는 나았을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즉 성격이 안 맞고 말썽을 피우고 서로가 부합되지 않고 신경질을 부린다고 무조건 갈라서고 이혼을 한다는 것은, 특히 젊을 때와는 달리 60이 넘어선 노년기에는 감정을 앞세우기보다는 이성을 앞세우고 자식들의 입장을 생각하며 미래를 생각해보는 것이 더 바람직한 처세라고 의견을 제시했다.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도 언젠가는 반드시 날이 개이고 밝은 해가 솟아오르는 것이 철칙인 것처럼…………………

지금의 현실은 참기 어렵고 힘들다고 하더라도 꼭 불행한 생활만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으니 서로 조금만 양보하고 이해하며 용서하고 살면은 ‘황혼이혼’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딱지를 머리와 가슴속에 붙이고 살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흔히들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하지만, 부부관계는 서로가 똑같아 지기보다는 서로의 다른 점을 조화시켜 개인으로서, 부부로서 발전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일치와는 달리 조화는 서로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수용하는데서 출발한다. 내가 다른 사람의 생활방식을 존중하고 수용할 준비가 되어있는지, 상대방도 역시 그러한지에 대해 파악하고 조화를 이루어가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부부나 커플이 같은 취미를 가지거나, 같이 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좋다는 게 일반적인 통념이다. 그러나 24시간 같이 붙어있으면 오히려 상대의 사소한 언행이 거슬려 실망이나 싸움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건강하고 오래가는 관계를 위해서는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어보는 게 좋다. 아니면 시간을 내어 상대방이 경험하지 못한 다른 활동을 해보는 것도 괜찮다. 그래야 상대방의 부재를 더욱 느낄 수 있고 상대방의 소중함을 실감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부부사이는 항상 같이 있으면 오히려 소원해진다’고 프랑스 철학자 몽 테뉴의 조언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새끼 때문에 참고 산다는 얘기는 슬픈 얘기지만 결혼관계 내에서는 진리다. 상호 이해와 애정만으로 결혼이라는 장기 계약관계를 지속하는 영웅적인 남녀도 있기는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부부에게 결혼생활이란 행복할 때나 불행할 때나 대체로 착취제도다. 사랑과 희생으로 미화된 이 제도속에서 가해지는 폭력과 도박과 외도라는 혼인파탄 3대의 요인이 없는 한 가시화되지 않는다. 세상의 부부들, 누구나 이혼할 생각을 한두번쯤은 안 해 본 사람도 별로가 많지 않으리란 생각이 든다. 내가 잘 알고 지내는 어느 나이 지긋한 목사님도 자기부인과 40여년 동안 살아오면서 이혼이라는 단어를 자기의 머리속에서 떠올린 적이 자기의 나이숫자보다 백배도 더 많았었다고 고백했다. 결혼을 하고, 사랑이라는 감정의 부식성 때문에 부부가 같이 오랫동안 지내다보면 숙명적으로 싸움도하고 언쟁도 벌이고 때로는 숙명적으로 멀어질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결혼을 청산하고 이혼을 하여 부부가 따로 살면 행복해질까?. 아무 문제도 없이 그저 좋기만 하다면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부부로 맺어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부부에게 내준 숙제를 다 풀지 못했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는 싸우고도, 성격이 맞지 않아도, 미워도, 보기 싫어도, 잘못을 했더라도, 용서와 포용과 이해를 하면서 같이 살아야하는 운명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어쩌면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 창조주의 뜻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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