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욕구와 욕망을 줄이면 행복이 늘어난다

<김명열칼럼> 욕구와 욕망을 줄이면 행복이 늘어난다

여행을 하다보면 참으로 아름다운 곳을 많이 보게 된다. 그러면 그 아름다운 곳에 살고 싶을 때가 많다. 정말로 그곳이 내가 사는 곳보다 좋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내가 그곳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낯선 정경이어서 더욱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으로 보일수도 있다. 사람의 욕구는 한이 없다. 뭔가를 이루고 나면 또 다른 뭔가를 이루고 싶어진다. 이 끝없는 욕구가 때로는 분란을 일으키고 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
어느 날 세계의 정복에 나선 알렉산더 대왕이 막사에서 한없이 울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걸 본 부하들이 그 이유를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제 더는 정복할 땅이 없어서 우는 것이다”. 우리들은 매일 물을 마셔도 또다시 목이 마르다. 그런 것처럼 우리의 삶도 욕구와 욕망의 연속인가보다. 우리의 삶이 욕구와 욕망으로만 이어진다면 우리는 행복할 날이 없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내가 어느 곳에 살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똑같은 상황이라도 내가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똑같은 것을 보아도 다르게 볼 수 있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새로운 것이 되고, 내가 살고 있는 곳도 새롭게 다가온다. 어느 유명한 철학자는 ‘진정한 발견은 새로운 땅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데 있다’라고 말했다. 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늘 뭔가에 대한 욕구로 평생을 욕구불만으로 살아갈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도록, 나를 향한 새로운 시각과 세상을 전과는 달리 볼 수 있는 새로운 발견의 눈을 가지고 세상을 보았으면 좋겠다.
행복의 사전적 의미는 욕구와 욕망이 충족되어 만족하거나 즐거움을 느끼는 상태, 불안감을 느끼지 않는 심리적인 상태를 말한다. 모든 사람들이 행복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 그것은 불만족이 해소된 상태, 즉 만족감을 느낄 때이다. 모든 욕구가 충족되어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상태, 불만족이 해소된 상태가 과연 존재할까?.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어서 행복과 불행은 물질에서 찾기보다는 마음에서 찾아야할 것 같다.
인간은 끊임없이 행복을 추구하고 노래하고 그리워하지만 행복을 누리며 사는 사람은 그리 많은 것 갖지 같다. 행복이란 단어는 너무나 추상적인 것이어서 사람마다 그 기준이 다르고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자기 분수에 맞는 기준을 정해두어야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행복이 불만족이 해소된 상태라면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는 원자재인 불만족이 온 세상에 널려있다. 무한한 행복은 무한한 불만족을 충족시킨 상태라 볼 때 모든 괴로움은 행복을 위한 밑거름이 분명하다.
질병은 건강의 기쁨을 주기위해, 죽음은 삶의 가치를 인식시켜주기 위해, 이별은 만남의 기쁨을 알게 하기위해, 산모의 고통은 새 생명의 탄생을 위해 존재하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리라. 옛날 사람들은 행복이란 뜻을 편안하고 노동하지 않는 무사안일적이고 낙천주의적인 상태에서 찾았고, 나물먹고 물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니 세상만사가 편하다는 안분지족을 노래하며 행복감을 표현하였지만, 요즘 행복의 가치 기준은 자기의 주어진 현실 속에서 매사에 보람과 긍지를 갖고 땀 흘리며 열심히 일할 때 얻어지는 것이 행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행복의 가치 기준이 물질과 욕망(욕구)에 있지 않을진데, 인간은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것이 철칙이며 진리인데, 물질소유를 행복으로 착각한 나머지 지나친 과욕 때문에 사회질서가 혼란하고 자기 자신을 망치는 일을 우리들 주변에서 흔히 보게 된다. 욕망이나 욕구 앞에서 가장 귀중한 것은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텅빈 마음이라는 공간이 있다. 이 공간을 메우려고 갖은 재주를 다 부려보지만 진정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고 방황만 하고 있다.
인간과 동물의 다른 점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 하나는 욕망(욕구)에 대한 양쪽의 반응 차이가 엄청나게 크다는데 있다. 동물은 그 욕망에 충실하지만 그 욕망이 해소되면 그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욕망에 대해 욕망을 풀기 전에 고민하다가 정작 그 욕망이 해소되면 또 다른 욕심으로 끝없이 가지를 치곤 한다. 가령 예를 들자면 호랑이는 배가고프면 물, 불을 가리지 않고 먹이를 탐하지만 정작 배를 채우고 나면 눈앞에 아무리 맛있어 보이는 먹이가 왔다 갔다 하더라도 더 이상 해치거나 탐하지 않는 것 같은 이치와 같다. 반면에 인간은 배가 아무리 고파도 배를 채우기 전에 많은 것을 생각한다. 남의 것을 허락 없이 훔치면 도둑이 되며, 일을 하지 않고 먹을 것을 구하는 것은 구걸이니 어떻게 하면 명분 있는 식량을 구할 수 있을까? 하는 등등의 일이다. 그러나 일단 먹을 것이 눈앞에 나타나 기본적인 욕구를 해소하고 나면 또 다른 욕망이 머리속에서 뭉클뭉클 솟아난다.
이 남은 것을 저장했다가 내년에 씨를 뿌리면 더 많은 곡식을 얻을 수 있을텐데 등등……… 이런 차이의 내면에는 인간은 동물과 달리 만족을 모른다는 점일 것이다. 끊임없이 자라나는 욕망의 싹, 이 싹은 매우 위험하기에 애당초 더 자라나지 않게 싹을 잘라내는 것이 상책이다.
미국의 어느 호텔지배인이 우연히 식당 부엌을 지나다가 일하는 요리사가 한숨을 쉬면서 이런 탄식을 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내게 백달러만 있다면 이렇게 불행하지는 않을텐데….” 그 소리를 듣고 지배인은 가엾은 생각이 들었다. 그까짓 돈 백달러가 무엇이길래 저렇게 불행을 느끼면서 탄식을 할까. 생각하면서 요리사가 무엇을 가지러 잠시 자리를 비운사이에 백달러 지폐를 봉투에 넣어 도마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요리사가 그 돈을 발견하고 얼마나 기뻐할까를 상상하면서 몰래 숨어서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드디어 요리사는 볼일을 마치고 다시 부엌으로 돌아왔다. 그는 도마 위에 있는 봉투를 발견하고는 얼른 그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잠시 동안 깜짝 놀라는듯하더니 또다시 한숨을 쉬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미련한 것아 왜 백달러만 말했느냐. 왜 이백달러만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이러한 모습을 보는 우리들도 이와 같지 않은가?…. 없을때는 없다고 불평하고, 받은 후에는 더 많이 받지 못했다고 원망하는 모습은 아닌지 모두가 한번쯤 반성해보아야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했을 때 하나님의 은혜로 홍해바다가 육지같이 갈라져 마른땅을 밟듯이 건넜으며, 배가 몹시 고파서 쓰러져 갈때쯤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와 메추라기로 배를 채웠고, 목마름에 지쳐서 물이 마시고 싶어 갈망할 때에는 반석에서 물이 나와 갈증에 시달리는 목을 축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가 지나지 않아 다시 시작된 원망과 불평이 끊이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줄 몰랐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가 생명을 얻어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부터 해서 우리들이 감사할일들은 수없이 많아서, 하나님께 부끄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것이 당연한 일인 것처럼 더 좋은 것을 갈망하고 더 많은 것을 탐하는 우리의 그칠줄 모르는 욕심과 욕구에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퍽이나 마음 아파하실 것이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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