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기행문> 효도 관광(1)

▲ 브랜든 샘물교회 임직식에서
(좌로부터) 장로임직 김명열, 김중현, 조말남, 김건배 목사, 안수집사 안은순, 이은혜, 정신자.

<김명열기행문> 효도 관광(1)
요세미티 국립공원

우리민족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효를 하늘의 뜻으로 알고 지극정성으로 몸과 마음을 다하여 실천할 정도로 큰 덕목으로 섬겼다. 이른바 환웅칠훈(桓雄七訓)은 단군조선의 특징이자 교육이념으로 이를 잘 뒷받침해준다. 그 조목들은 매우 인간적이면서도 현실적인 것으로, 그 내용을 살펴보면 부모님에게는 지극히 효도해야하며 늙은이와 어른을 높이 받들어야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단군왕검의 팔조교(八條敎)에서도 부모 섬김을 하느님 섬김처럼 여겼다. 결국 우리조상을 낳아 준 이가 하느님이기 때문에 천손민족인 우리민족은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 곧 하느님을 공경하는 것과 같다고 여긴 것이다. 환인(桓因), 환웅(桓雄)의 단군왕검으로 전승되어온 우리의 효(孝)문화는 고조선에서 삼국시대로 이어졌으니, 그러한 미풍양속의 효 문화 속에 중원에서도 우리나라를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칭하였던 것이다.
한국 교육사를 회고해 볼 때, 공식적인 문헌에 의하면 고구려 소수림왕 2년때(기원전 372년) 공자의 사상이 전해졌고, 그해에 국립대학 격으로 태학이 세워져 문(文), 사(史), 철(哲) 교육이 비롯되었다. 태학에서는 오경(五經) 중심의 경학(經學) 교육을 실시했는데 현대로 말하면 곧 철학교육으로 그 핵심은 인효(仁孝)가 중심이 된 교육이었다. 이러한 인효사상은 삼국시대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는데, 고구려 태학에서부터 백제, 신라 등 삼국시대로 전승되었고, 고려말에 주자학이 도입되면서 한말(韓末)까지 성균관을 중심으로 관학의 중심사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인효사상은 근대로 접어들면서 큰 수난을 겪게 된다. 중국의 역사왜곡과 일제의 혹독한 식민지 교육정책이 우리 효사상의 원래 뿌리와 정맥을 자르더니, 조국이 광복되자 이번에는 서구사상의 강력한 파도가 밀려들어와 효사상과 노인 경노사상을 흐려놓았다. 이로 인해 인효사상의 부재속에 근대화가 진행된 한국사회는 다양한 문제를 겪고 있다. 가정이 파괴되고 자살률이 세계적으로 높고, 부모를 부양하지 않는 불효가 성행되고, 패륜이 날로 늘어나고 있으며, 4대악(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불량식품)이 극성을 부리다보니 국민들의 삶이 불안해지고 미래가 암담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걱정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이 되다보니 현대교육을 받은 많은 젊은이들과 지식층은 제 살길도 바쁘고, 먹고살기도 힘든 판인데, 이러한 판국에 나 살기도 힘든 세상에 무슨 부모님을 섬기고 효도의 도리를 할 수 있겠느냐고 항변하는 자식들도 많이 있다. 한국은 조선시대를 정점으로 특히 유교사상에 물들어서 부모님께 향하는 효를 으뜸으로 여겼다. 효에 대한 이론적 설명은 공자에서 비롯되었는데, 그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덕을 인(仁)이라고 하면서 그것의 근본내
용으로 제(悌)와 효를 들었다. 그리고 부모와 자식사이에 생길 수 있는 구체적인 효의 실천방법을 제시했다. 이후 맹자는 요순(堯舜)의 도를 효제로 이해하면서 백성들에게 효제의 도리를 가르치는 것이 왕도정치의 주요 내용이라고 했다. 공자와 맹자는 부모와 자식사이의 자연스런 애정이 효의 기초이지만 애정과 도덕적 의무를 명확히 구별하여 효는 엄격한 도덕적 의무라고 강조했다. 물론 자식과 부모사이에는 자식의 부모에 대한 일방적인 도덕적의 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맹자에 보이는 오륜(五倫)에서는 부자유친이라 했고, 이는 논어의 부부자자(父父子子), 예기의 부자자효(父慈子孝)와 함께 부모와 자식 상호간에 도덕적의무가 성립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공자, 맹자의 시대부터 이미 유교의 부자 윤리에서는 자식의 부모에 대한 도덕적의무가 거의 일방적으로 강조되었다. 자식의 효도는 부모의 자애를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자식의 효도와 부모의 자애가 동일한 가치 또는 중요성을 갖는 도덕적 의무는 결코 아니었다. 유교사상에서 강조하는 효는 부모를 섬기는 것과 부모를 부양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그 가운데 부모에 대한 물질적 봉양보다는 공손한 정신적 자세를 중시했다. 부모를 섬긴다는 것은 부모의 명을 받들어 부모를 위해 힘쓴다는 것을, 또는 부모의 뜻을 거스리지 않고 공경과 예의를 다하여 모신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렇게 자식이 부모를 섬기고 모신다는 것은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자식들에게는 너무나 힘이 들고 어려운 일이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저 살기도 바쁘고 어려운데 부모님을 생각하고 효의 도리를 다 한다는 것은 정말로 힘이 드는 이야기이다. 세상의 모든 부모들은 자식을 낳고 기르고 양육하는데 자신들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헌신하고 노력한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귀중한 생명까지도 바칠 각오가 돼있다. 그렇게 힘들고 어려움 속에 양육하고 길러낸 자식이 잘되고 성공하는 것을 보는 것이 부모님들의 최대 관심사이고 목적이며 삶의 보람이다.
나 역시 그러한 부모들 속의 한 사람이다. 나는 아이들을 양육할 때 가정교육의 촛점을 효에 맞춰서 키웠다. 성경말씀의 십계명에도 명시되어있듯이 자식들은 부모를 섬기고 봉양하는 것이 으뜸의 덕목으로 삼고 있다. 나의 자녀들은 모두 초등학교를 미션스쿨에서 다녀서 그런지, 어렸을때부터 하나님을 믿는 신앙심이 돈독했고, 그로인해 부모인 우리 부부에게는 큰 말썽 없이 잘 성장하고 올바르게 교육을 받아 사회인이 되었다. 사회인이 되어서 직장을 잡고 사업을 하면서도 틈나는 대로 부모를 찾아 의지와 희망이 돼 주고, 부모님을 위해 여행도 잘 보내준다. 특히 고마운 일은 아직 미혼인 막내딸은 매년 제 부모님을 위해 월급에서 매달 일정액을 저축하여 모았다가 엄마, 아빠의 여행을 위해 기꺼이 투자한다. 작년, 재작년, 그 전해에도, 그리고 얼마 전의 지난 11월달에도 우리 부부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휴가를 내어 함께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구경시켜주었다.
지난해 11월 19일(일)은 나의 신앙생활 50여년만에 커다란 획을 긋는, 감동과 감격과 사명감과 축복을 받는 기쁘고 즐거운 날이었다. 하나님께서 한없이 부족하고 죄에 빠진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해주시는 댓가로 나를 용기(用器)로 삼으시고 일꾼과 종의 신분으로써 섬김과 헌신을 다하라는 사명감을 주시며 장로라는 직분을 명하셨다. 이 장로라는 직분은 명예직이나 감투의 직분이 아니고 보다 더 열심히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순종하고 봉사하는 자세로써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라는 하나님의 준엄하신 명령으로 알고 있다. 이제 좀 더 낮아진 자세와 겸허한 마음으로 충실한 종과 일꾼의 본분과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야겠다는 마음적인 다짐과 기도를 드렸다.
요세미티 국립공원 안에 있는 캐빈은 몇달, 또는 1~2년전에 예약을 하지 않으면 빌려 쓰기가 힘들다고 한다. 특히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명절이나 연말연시에 이곳을 이용하기란 정말로 어렵고 오랫동안 기다려야만 된다고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도우심과 나의 막내딸 Aileen의 부단한 노력으로 우리가족 세 사람은 작년 11월 20일부터 26일까지 일주일간 요세미티 국립공원내 아름다운 숲속에 자리잡고 있는 캐빈 한채를 독채로 빌릴 수가 있었다. 11월19일(일)날 아빠의 장로 임직식 예배에 참석하고 축하해 주기 위하여 나의 딸은 특별휴가를 내어 18일 늦은 비행기로 시카고에서 날아왔다. 19일 주일, 오전11시에 정기 주일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고, 오후4시에는 장로 및 안수집사 임직예배가 시작되었다. 멀리계신 조문길 목사님(미국장로교 총회 한인목회실)과 박성주 목사님(미국장로교 한인교회 전국총회), 데이빗 베이커 목사님(PCUSA탬파노회), 박준필 목사님(탬파 한인장로교회),유석현 목사님(사라소타 한인장로교회)등 외에 10여분의 목사님들께서 장로 3명, 안수집사 3명의 직분자들에게 기도, 권면, 설교, 축사, 집례 등을 인도하셨고, 담임목사님인 김건배목사님께서 모든 예배예식을 인도하시고 축하해주었다. 아울러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본 교회의 성도들과 함께 새로운 임직자들을 위해 함께 기도하고 찬양하며 축하예배를 성스럽고 기쁘게 하나님께 올려드렸다. 그리고 평소 가깝게 지내고 함께 사랑과 은혜를 나누며 정을 주고받으며 이 지역에 함께 살고 있는 지인 및 교우, 친구분들도 20여명이 참석하여 나의 장로 직분 임직식을 축하해주었다. 모두가 함께 저녁만찬을 사랑과 은혜, 축복 속에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 나누고 이야기꽃을 피우다보니 시간이 많이 경과했다. 내일은 새벽 일찍 새벽 비행기를 타고 시카고를 경유하여 캘리포니아주의 새크라멘토로 떠나야했다. 탬파에서는 직접 새크라멘토로 가는 항공편이 없어서 부득블 시카고를 거쳐야만했다. 나를 위해 찾아온 하객들과 지인, 친구분들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오니 밤 10시가 넘었다. 이것저것 주섬주섬 옷가지와 일용품들을 챙겨 넣고 짐 가방을 싸놓고 나니 자정이 되었다. 내일아침 3시에는 예약한 우버 택시가 우리 집으로 오기로 했다. 집에서 탬파공항까지는 1시간 거리이다. 새벽5시30분 비행기를 타려면 미리 일찍 공항에 나가야한다. 지금부터 잠을 잔다고 해도 고작 2시간 여를 잘 수 있다. <다음호에 이어짐>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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