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새해를 맞아………….

<김명열칼럼> 새해를 맞아………….

자연적인 흐름에는 시작도 끝도 없다. 해와 달과 계절로 측정되는 자연의 시간에는 오로지 주기적인 영원한 순환의 반복이 있을뿐이다.
아침을 꼭 하루의 시작으로 보든가, 초생달을 한달의 첫날로 꼽는 이유가 석연치 않다면, 구태여 어떤 특정한 날을 일년의 시작이라는 뜻에서 새해라 부르는 까닭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세상과 사회에서는 어떤 특정한 날을 제도적으로 선택하여 고정시켜 새해라 부른다. 우리들은 그날을 설날이라고 일컬으며 즐거우면서도 경건하게, 넓게는 사회적, 특히 가족이라는 사회적공동체를 재확인하고 그 가치를 강화하는 기회로 삼는다. 그날 새옷으로 갈아입고 조상을 위해 차례를 지낸다. 그리고 어른들에게 세배를 드리고 설을 맞아 준비한 음식들을 가족들과함께 나누며 정담을 나눈다. 설날은 분명 축제의 날이다. 할아버지나 할머니, 아버지나 어머니로부터 세뱃돈을 받았을 때의 기뻤던 기억을 갖지 않은 한국인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설날은 무엇보다도 새로운 포부와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그 실현을 다짐코자 하는 날이다. 새해를 맞아 우리는 어느덧 살아온 지난 1년의 삶을 새삼 회상하고 그 의미와 가치를 더듬어보고 정리한다. 새해를 맞아 우리는 각별하게 삶의 계획을 세우고 포부를 가져보며 그것의 실현을 위해서 각별한 결의도 해본다.
한국에서 제일 추운 한겨울의 어느 날을 새해로 정한 것은 극히 인위적이다. 365일 가운데 어느날을 잡아 새해라고 부르지 못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새해를 맞이해서 각별히 과거의 삶을 반성하고 새로운 포부를 갖고 새로운 꿈을 각별히 계획한다면 그것도 역시 인위적이다. 우리는 언제 아무데서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새로운 다짐을 하고 새로운 삶의 꿈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각에 따라 아무 날이고 새날, 새해가 될 수 있다. 그런데도 하필이면 꼭 어느 특정한날을 골라 설날이라고 부르고 그날따라 잔치를 벌이고 제사를 지내고 새로운 꿈과 결단을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스럽게만 보인다. 특별히 어떤 날을 정해 잡아 그것을 새해라고 부르는 이유가 무엇이며 새해에는 새로운 포부를 새로이 다짐해야한다고 새롭게 결의를 굳혀야만 하는 의의는 어디에 있을 것인가.
모든 자연의 현상은 반드시 어떤 리듬을 타고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하루는 낮과 밤, 한달은 초생달과 만월, 그리고 일년은 사계절의 가락에 맞추어 운동한다. 모든 생명은 탄생, 생식, 그리고 죽음이라는 박자에 맞춘다. 하루, 한달, 일년은 언제나 똑같을 수 없고 언제나 다를 수 도 없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하루, 한달, 일년을 의식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한 생명의 탄생과 죽음이 없다면 그것은 자신의 귀중함은 물론 그 존재 자체도 의식하지 못 할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어떤 특별한 시간에만 특별히 귀중해 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포부와 결의가 어떤 특정한날에만 각별하게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삶은 시시각각 똑같이 값진 축제이다. 우리는 매일같이 포부를 갖고 새로운 희망을 다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생활과 우리의 정신에 인위적으로나마 어떤 박자를 부여함으로써만 우리의 삶, 우리의 정신을 보다 더 새삼스럽고 보다 더 역력하게 의식할 수 있다. 삶이 즐겁다하여 시시각각 축제를 마련한다면 그것은 이미 축제의 의미를 잃을 것 이다. 포부를 가짐이 중요하다지만 매일같이 포부를 새로히 다짐한다면 그것은 이미 포부를 다지는 기능을 잃게 될 것이다.
비록 제도적으로 만들어 지긴 했지만, 새해라고 부르는 설날이 각별히 귀중한 축제가 되는 이유는 그것이 가장 뚜렷한 자연의 박자인 사계절, 365일 가운데의 유일한 날이기 때문이다. 새해에 품어보는 새로운 포부와 결의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일년에 한번 돌아오는 설날에 이루어진 유일성 때문이다.
그동안 누구든 수많은 새해를 맞이했고 그럴 때마다 되풀이되는 축제를 즐겨왔다. 그날따라 그동안 누구나 자신이 살아온 과거를 반성했을 것이고 각별히 새로운 꿈으로 계획을 세워보곤 했을 것이다. 우리의 구체적 반성과 우리의 구체적 계획은 사람마다, 그리고 해마다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서로 다른 그것들은 단 한가지로 요약된다고 믿는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과거보다는 미래를 좀더 보람 있는 삶을 살고자함에 있다. 무엇이 보람 있는 삶일 수 있겠는가? 가장 보람 있는 삶은 보람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긴장된 노력 속에서만 체험 될수 있다. 새해는 바로 그러한 체험을 마련하는 계기가 된다.
그러기위해서 이번의 새해가 상투적인 또 하나의 설날이 아니라 유일한 것이 되게 해야 한다. 이번 새해의 결의가 또 한번 되풀이되는 공수표나 공염불의 기도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2018년 새해가 되었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했다고 카톡이나 문자 메시지들이 많이 들어온다. 보내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따듯한 마음을 느낀다. 모두가 다시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마음, 지난해보다는 조금 더 나은 내일을 고대하는 마음들이 지어낸 새해,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하루하루가 새날이고 새해다. 매일 매일의 연속선 안에서 들쭉날쭉 그렇게 아침이오고 해가지고 그렇게 살아왔다.
내가 아는 어느 지인은 새해아침 일찍 떠오르는 태양을 보기위해 어제저녁에 차를 몰고 동쪽의 바닷가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고, 가까이서 동쪽 바다위로 떠오르는 일출의 모습을 감상하고 새해의 희망과 계획을 그려보고 다짐해보는 시간을 갖기위해서란다. 나에게 함께 그곳에 가보자고 청이 들어왔으나 일을 핑계 삼아 함께 가지 않았다. 나에게는 그 시간 새해 첫 아침, 지나온 1년의 기억들을 뒤적여보고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보며, 찾아온 금년 한해에 하고 싶은 일들을 머리속에서 추상하며 마음을 새롭게 다지는 마음의기도가 더 값지다고 생각하기에………….
매일 매일을 겪으면서 그때에는 몰랐었는데, 지나고 보니 지나간 세월과 시간들이 한 순간에 흘러갔고, 짧다고 생각이 든다. 시간은 주관적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을 쪼개어 살면, 하루가 길고 삶도 길어질 것 같은, 그래서 금년에는 하루의 시간을 길게 늘리며 살고 싶다. 긴 하루를 마감하고 다음날, 기쁨이 솟는 아침 해를 매일같이 맞이하기 위해서라도….어느때건 매해 보고 느끼는 감정인데, 연말에서 새해로 바뀌는 시점에서, 또는 새해를 맞이하여 가뜩이나 메시지 같은 것을 통하여 비슷한 내용의 같은 동영상을 복제해서 돌리는 것이 의미 없게 느껴진다. 보내준 사람의 마음이나 성의는 모르는바가 아니지만, 어느 날은 여러명으로부터 똑같은 동영상을 여러개 받은 적이 있었다. 마음이 담기지 않은 습관적인 인사 돌리기 같고, 그만큼 인간관계가 가벼워진 느낌을 지울 수 가 없다. 한 글자라도 마음을 담아 보내던 손편지, 손으로 쓴 카드가 없어진지 오래다. 그러나 유독 나만은 예외다. 연말연시를 맞아 나에게는 많은 사람들과 지인, 친구로부터 카톡이나 크리스마스카드, 연하장 등의 인사와 안부, 축하 이메일 등을 통하여 기쁜 소식들이 줄을 이었다. 나는 그 보내준 사람들에게 일일이 모두에게 나의 마음과 정성이 담긴 손 편지, 손으로 직접 쓴 카드와 연하장들을 보내주었다. 쉽게 프린트된 내용의 인쇄물이라던가 간편하게 보내는 이메일, SNS등의 매체를 이용하기보다는 또박 또박 자신의 마음을 담은 한 글자, 한 문장의 인사를 고민하며 적어 보내는 정성이 아쉽다. 2018년 금년 한해는 매일 매일이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정성과 온정을 나누는 삶이되시기를 모두에게 빈다. 이러한 소망이 하루의 해가 뜨는 매순간마다 마음속에 새롭게 다져질 것을 바란다. 그리고 새해라는 것은 결국 새로운 마음이라는 것을 깨닫기를 바란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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