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기행문> 가을구경, 힐링 여행 <10>

<김명열기행문> 가을구경, 힐링 여행 <10>
My old kentucky Home State Park

아침에 일어나 호텔에서 제공하는 아침식사로 커피와 빵 한 조각으로 가볍게 식사를 마치고, 짐 가방을 들고 나와 곧바로 근처에 있는 마이 올드 켄터키 홈 주립공원으로 자동차를 몰고 그곳으로 향했다. 그곳에 가보니 늦은 아침 시간이었지만 벌써부터 이곳을 찾은 많은 사람들이 공원주변에 산재하여, 건물이나 뮤지엄, 기타의 시설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공원의 규모는 얼마 크지는 않았지만 군데군데 볼 것들이 많았다.
Bardstown에는 1795년 미 상원의원이었던 John Rowan이 지은 Federal Hill이라는 농장이 있는데 그의 조카였던 Steven Foster가 1852년 이곳에 왔다가 영감을얻어 My old Kentucky Home이라는 유명한 노래를 작곡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오고 있다.
켄터키주는 1928년 이 노래를 주가(State Song)로 지정하고 동전의 뒷면에 Federal Hill 건물을 켄터키의 상징의 하나로 삽입하였다. 지금은 이 지역이 주립공원으로 지정이 되어 공개되고 있으며 여름의 시즌에는 포스터의 음악이 뮤지칼로 공연되기도 한다. 포스터가 마이 올드 켄터키 홈을 작곡했다고 하는 저택은 지금은 박물관으로 개방되고 있다.
참고로 여기에 그 유명한 노래 My old Kentucky Home의 노래 가사를 소개하여드리도록 하겠다. 작사 작곡 Stephen C. Foster 1853년.
제목은 나의 켄터키 옛집이고 내용은 다음과 같다. 햇빛은 켄터키 옛집을 밝게 비추고 / 지금은 여름철 검둥이들은 즐겁다네 / 옥수수는 여물고 들판은 꽃들로 덮여있고 / 새들은 하루 종일 노래부르네 / 아이들은 통나무집 마루에서 즐겁게 뛰놀며 / 모두가 즐겁고 행복하고 그리고 밝게 빛나네 / 이제 곧 힘든 시절이 닥쳐오리니 / 그때는 편히 쉬거라 나의 켄터키 옛집. 합창(Chorus) 귀여운 아가씨 울지 말아요 / 아, 오늘은 제발 울지 말아요 / 나의 켄터키 옛집을 위해 / 우리함께 노래를 불러요 / 멀고 먼 나의 켄터키옛집을 위해. <2절은 생략>
이 유명한 노래를 작사작곡한 Stephen Collins Foster(1826~1864)는 미국 근대작곡가로 펜실바니아주 로렌빌(지금은 피츠버그의 일부)에서 출생하였다. 지방 사업가인 아버지의 사업관계로 여러 지방을 전전하다가 15세때 학교를 그만두고 음악에 열중하였다. 독일인 음악교사에게 피아노와 화성학(和聲學) 초보를 배우고 가곡(歌曲)작곡을 시작하였다. 20세때 형이 경영하는 회사에서 일하면서 여러 곡을 작곡하였는데, 특히 ‘오 수재너 1848’는 골드 러시때 태평양연안으로 모여드는 젊은이들에게 크게 유행하였다. 23세때 회사를 그만두고 가곡 작곡에 몰두하였다. 어렸을때부터 흑인들의 노래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기략을 바탕으로 수많은 노래를 작곡하였다. 그리고 그의 노래는 많은 사람들이 애창함으로써 흑인노예 해방운동의 원동력이 되었다.
노래를 예술가곡과 대중가곡으로 나눈다면, 포스터는 절대적인 위치에 있는 대중가곡의 귀재라고 할수 있다. 미국 남부지방을 여행하면서 독특한 가곡을 많이 작곡하였다. 그의 작사작곡한 ‘스와니강 1851년’, ‘켄터키 옛집 1853년’, ‘금발의 제니 1854년’. ‘올드 블랙 조 1860년’등이 이 무렵에 작곡되었으며 이들 소박하고 자연스런 민요적 가곡은 미국가정과 학교에서 애창되었고, 그는 미국 민요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그가 작곡한 가곡수는 188편에 이르며 그에 관한 문헌과 기록은 모두 피츠버그 대학 포스터 기념관에 소장되어있다. 특히 그중에서도 유명한 ‘나의 켄터키 옛집’에 대하여 다시한번 회고하여 정리 한다면, 이 노래는 흑인 노예들의 슬픔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곡으로 1853년 직접 포스터가 작사작곡하였다. 이곡은 포스터가 여행중 켄터키주 배이즈타운에 있는 저택에서 영감을 얻어 지었다고 전해진다. 그후 1922년부터 주정부에서는 이 저택을 직접 관리하며 ‘켄터키 옛집’이라는 이름을 붙여 포스터 기념관으로 지정하였다. 1986년 이 노래는 켄터키주의 주가(州歌)로 채택되었고, 이 포스터 기념관은 My old Kentucky Home State Park으로 만들어져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마이 올드 켄터키 홈 주립공원을 구경하고 나와 우리는 근처의 카페에 들러 음료수를 들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다음의 여정과 지리를 점검해보고 방향을 정해 찾아가기로, 미리 살펴보는 것이다. 카페를 나와 시내를 벗어나 한적한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렸다. 도로 양편에는 무르익어가는 가을의 풍경과 모습들이 평화롭고 정겹게 시야속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와 자연의 조화에 감탄사사가 절로 나온다. 이렇게 축복받고 아름다운 미국의 땅에 이민와 뿌리를 박고 잘 살게해 주신 하나님께 또한 감사의 기도를 마음속으로 드렸다. 우리는 31 E. 켄터키 지방도로를 따라 북서쪽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주위의 풍경을 감상하며 평균속도를 유지하며 달려가다 보니 어느듯 Louisville이 나온다. 한낮이라서 그런지 러시아워때보다는 한산한 기분이 들 정도로 하이웨이는 차들이 많지 않았다. 루이스빌을 지나 한적한 동네가 보이고 레스토랑의 입간판 광고 싸인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 동네에 들어가 식당에 들러 점심 식사를 마쳤다. 다시 나와서보니 우리는 이미 인디애나주에 들어와 있다. 다시 64번 국도 하이웨이를 타고 서쪽으로 달리면서 Marengo Cave(마렌고 동굴)를 찾아갔다. 이 동굴은 켄터키주에서도 멀지 않은 곳, 인디애나주에 위치한 자연동굴이다.
인디애나주에는 이 동굴 외에도 몇개의 석회암동굴들이 산재해있다. 인디애나주는 미국동부 오대호남쪽에 위치해있는 주이다. 인디애나라는 이름은 인디언의 땅이라는 뜻이다. 북쪽으로 미시간호 및 미시간주와 인접해있고, 동쪽으로 오하이오주, 남쪽으로 오하이오강을 끼고 켄터키주, 서쪽으로 일리노이주가 있다. 인디애나폴리스가 주도이다. 인디애나주는 바로 인접한 일리노이주와는 달리 공화당 성향이 가장 큰 주이다. 1992년과 1996년에는 인디애나 주변에 공화당이 승리한주가 하나도 없어 붉은섬(An Island of Red)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이 주 출신의 유명한 정치인으로는 벤자민 해리슨과 댄 퀘일이 있다. 주요 생산업으로는 제조업을 꼽을 수 있다. 제조업은 인디애나주에서 다른 주들보다 더큰 국내 총생산을 차지한다. 교통수단도 제조에 의하여 추가된 가격의 기간들에서 인디애나의 주요한 제조품이나 자동차조립공장들은 포트웨인, 라파에트, 프린스턴과 사우스밴드 지역들에서 운영된다. 인디애나는 자동차부품과 트럭을 생산하는 주요한 주 안에 올라와있다. 또한 철강업도 활발하다. 인애나 북서부 시카고와 인접해있는 캘러멧지역은 주요 철강업생산지역중의 하나다. 알미늄역시 많이 생산되고 있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다음호에 이어짐>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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